수업에서는 아니었지만, 대학에서는 참 많은 것들을 배웠고 또 깨쳤다. 아는 것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해야 할 일도 늘었지만 반대로 해서는 안될 일들 또한 늘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해내지 못한 것들도 꽤 있다. 그 중 내가 오래동안 노력하고서도 아직 완전히 해내지 못한 몇 가지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졸업 전부터 했었다. 그러고서도 이제야 이것을 쓰게 되는 나의 게으름 역시, 내가 어찌하지 못한 것들 중 하나일 테다.
‘집에 내려 간다’는 말
내가 보아 온 세계전도나 지구의에는 항상 북극이 위쪽이 그려져 있었다. 당연히 서울이 김해보다 높은 곳에 그려져 있었고. 하지만 서울 올라간다, 혹은 김해 내려 간다는 말은 단순히 그런 지리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우주의 위아래를 알기는 어려우니 그 지리적 문제 역시 허구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그 말들은 김해에 살 때에도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때에야 서울과 김해를 오갈 일이 없으니 딱히 쓸 일 또한 없었다. 하지만 서울에 살게 된 4년 전부터 상황은 달라졌고, 나는 말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덕분에 ‘서울 올라 간다’는 말을 쓰는 일은 없게 되었지만 ‘집에 내려 간다’는 말은 여전히 종종 튀어나오곤 한다.
비슷한 말 중에 ‘아래로부터’라는 표현이 있다. 대의민주주의 형식을 갖춘 곳에서 대표자가 아닌 이들을 종종 ‘아래’로 칭하곤 한다. 아래로부터의 의견 수렴, 아래로부터의 복지, 뭐 이런 식으로. 그들을―그리고 나를 ‘아래’로 칭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인데, 이 말 역시 아직 완전히 입에서 떼어 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유제품
육류를 먹지 않은지 어느덧 열달 가량이 되었다. 먹기 위한 사육에 반대하는 것이 애초의 동기였기에 계란이나 유제품 역시 최대한 먹지 않으려 하고 있고, 그 중 계란은 빵을 먹을 때가 아니면 섭취하는 일이 딱히 없을만큼의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유제품은 아직 상당한 양을 먹고 있다. 물론 생우유를 사서 마시는 일은 많지 않지만, 커피나 빵에 곁들여 먹는 경우는 아직 상당히 있고 치즈는 돈이 허락할 경우의 이야기지만 그냥 간식으로도 종종 먹는다. 그런 식으로 직접 섭취하는 것과 빵이나 과자, 피자 등을 통해 섭취하는 양을 합치면 만만히 넘길 수준은 아닐 것이다.
유제품을 끊지 못하는 것은 ‘우유의 처지’가 내게 그만큼 강하게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보아온 육우肉牛나 (알을 낳는)닭은 그야말로 몸부림칠 틈조차 없는 곳에 갇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내 주위의 젖소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로운 환경에 있었다. 그나마 저정도면 살만하겠네, 라는 인식이 베어 있는 것이다.
며칠전 스펀지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각종 기능성 우유의 허와 실을 밝히는 코너를 방영했다. 그 중 ‘잠 잘 오는 우유’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우유를 만들기 위해서 농장에서는 소의 멜라토닌 수치가 높은―즉 소가 잠오는 상태인 새벽 세 시에 소의 젖을 짠다고 했다. 그쯤 되는 것을 보았으면 이제 우유도 과감히 끊어야 하는데, 사실 약간은 자신이 없다.
1인칭 주어 ‘형’
주변에 1인칭 주어로 형/오빠, 혹은 언니/누나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청자와 자신과의 관계를 우선시한 단어 선택이라든가 친밀감의 표현이라든가 하는 여러가지 변명이 있겠지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느 정도의 권위 의식에 기반한 단어 선택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동생이’로 시작하는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 반증일 터.
하지만 나로서는, 의식적으로는 물론이고 실수로조차, 혹은 농담으로조차 사용해 본 적이 없는 표현이다.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런 말을 쓰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번인가 자조적인 농담으로 써 보려 했던 적이 있으나, 그조차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내게는, 감히 사용할 수 없는 표현인 것이다.
대신 ‘형아가’라는 표현을 때때로 사용한다. 원래는 종종 사용했었는데, 스스로가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인식하고부터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그 빈도를 떨어뜨렸다. 내게 이런 표현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듣는 사람은 딱 한 명, 일곱 살이라는 꽤나 큰 터울이 있는 내 동생이다. 주로 무언가를 해줄 때 이 표현을 사용한다. "형아(물론 경상도 방언으로 발화하기때문에 실제 발음에는 꽤 차이가 있다.)가 나중에 해 주께."하는 식으로.
터울이 큰 막내가 그나마 ‘형아’로 스스로를 지칭하지만, 아마 나이 차이가 더 적었거나 우리 둘의 나이가 더 많았더라면 ‘형님’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표현을 유독 동생에게만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마 작년이나 재작년쯤의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1년 혹은 2년 동안이나 신경 쓰고서도 아직 완전히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끊지 못한 것이 어디 이것 뿐이랴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당시 떠올렸던 것이 분명히 세 개의 항목이었는데 쓰다 보니 둘밖에 기억나지 않아 두 개의 항목만을 정리해서 게시했었다. 뒤늦게 나머지 하나가 다시 떠올라서, 늦게나마 추가한다. 순서대로 앞의 두 개가 처음에 쓴 것이고 마지막 것이 후에 추가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