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그로테스크

   3월 7일 저녁, 서울역에서는 달포 전 경찰의 진압 작전으로 죽음에 이른 이들에 대한 추모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 곳이 늘 그렇듯, 무대를 바라보거나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경청하는 사람들과, 하필 이런 데서 저런 일을 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섞여 있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무대에 올라 있는 것은 어느 악사(樂士)였다. 낯선 악기가 낯선 가락을 흘리고 있었다. 낯선 곡의 연주가 끝나자 악사는, 그것이 몽골의 음악이며 “천상의 바람”이라는 제목의 곡임을 알려주었다. 천상에 있을 죽은 이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연주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악사가, 청중들에게 보다 익숙할 것이라는 다음 곡의 연주를 준비하는 동안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틈을 타고 등 뒤에서도 악기 소리가 들려 왔다. 역사 입구에서 으레 열리는, 외국인 악사의 연주였다. 그곳에 서는 이들이 늘 그렇듯, 그 역시 청바지 위에 판초를 걸치고 손에는 커다란 팬플룻을 들고 있었다.
   외국인 악사가 연주하는 것은 러시아의 민요로, 한국에서는 “백만송이 장미”라는 유행가의 가락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었다. 그 곡 역시, 그 악사의 차림만큼이나 그 장소에서는 익숙한 것이었다.
   앞뒤에서 들려 온 두 개의 가락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앞에서는 이 땅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이국의 음악을, 죽은 이들과 같은 피부, 같은 말을 가진 악사가 연주했고 뒤에서는 이 땅에서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하는 다른 땅의 사람이 자신의 악기로 이 땅의 가락을 연주했기 때문이었다.
   내 앞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는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지만, 내 등위에서 들리는 어느 외국인의 삶을 위한 연주 역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잠깐의 정적을 틈타 나는, 내 자리를 떠나 외국인 악사의 무대를 향했다. “백만송이 장미”의 가락은 흥겨우면서도 구슬프게, 바삐 팬플룻을 움직이는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광장에 펼쳐진 커다란 무대 때문인지, 아직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매일같이 열리는 비슷한 무대이기 때문인지 외국인 악사의 앞은 한산했다. 연주를 하고 있는 그와 그의 매니저쯤 되어 보이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 무대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는 나를 포함해도 다섯이 채 되지 않았다.
   외로운 무대에서도 연주는 이어져서, 익숙한 유행가 가락이 끝나고 아마도 악사의 고향 노래쯤 될 법한 새로운 가락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곡을 연주하는 데에는, 앞의 곡을 위해 썼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래서 꽤나 다른 소리를 내는 다른 팬플룻이 사용되었다. 쇳소리가 약간 섞인 듯한 대금 소리 비슷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망연히 그것을 듣고 있는데 내 곁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비틀거리는 몸짓이 그가 술해 취했음을 말해주었다. 괜히 눈을 마주쳤다가는 원치않는 대화, 그러니까 나는 공감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넋두리를 주워섬겨야 할 것 같아 모른체 앞을 응시했다. 곁눈질로 그를 살폈지만, 그 역시 내 옆에 서 있기만 할 뿐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내게 할 말이 있음을 내가 모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의 침묵은 결국 나를 움직이고 말았다. 내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약간의 사시가 있는 그는, 무언가로 덮힌 하얀 혀를 갖고 있었다. 그 하얀 물질이 그의 혀를 잡고 있기라도 한듯, 그의 발음은 불분명했다.
   그의 발음을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여러번 겪어 본 상황인 덕에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내게 담배를 요청했고, 나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자 그는 그렇잖아도 그래 보인다고, 그러면 혹시 이천원이 없느냐고 물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돈이 없네요, 라고 답했지만 사실 돈은 있었다. 이천원은 없었지만 만원짜리 몇 장이 지갑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말을 꺼내기전부터 이미, 담배 한 갑을 사다 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고민이었을 뿐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내 친구들에게 권하지 않는 담배를, 한데잠 자는 이에게라고 해서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돈이 없다고 말한 후 나는 악사를 응시했다. 하지만 가락은 내 귓속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지갑에 있는 만원짜리로 그에게 무엇을 사다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재미 없는 머리로는, 그가 좋아할 만한 것이라고는 술과 담배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물론 그것들은, 차마 사다 줄 수 없는 물건이었다.
   마주 앉아 술이라도 한 잔 기울일 생각이라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마는, 차마 그럴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술을 마실 만큼 내 몸이 성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하얀 혀를 바라보며 그의 말을 읽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외국인 악사의 음악을 마저 듣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돌아온 추모의 무대에서는, 고인들의 가족이나 벗들이 애도의 말을 잇고 있었다. 이미 비슷한 무대에서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여서 그 울림은 오히려 방금 보고 온 하얀 혀의 것보다 적었다. 눈물과 함께 마이크를 향하는 그 소리들을 흘려 들으며 나는 무대 주변을 배회했다.
   고인들과 함께 싸웠던, 다행히 죽음은 면했지만 범법자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게 된 고이들의 동료들에 대한 탄원 서명을 받는 부스가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펜을 쥐어들자 부스를 지키고 있던 이가, 읽어 보았는지를 물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를 받아들자 그는 탄원 서명 운동과 함께 재판 비용 모금 운동도 벌이고 있노라고 했다.
   아무 대답을 않았지만 그는 말을 이었다. 지금 만원을 기부해 주시면 재판정에 설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아까 뱉었던 말을 또 한 번 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죄송합니다, 지금은 돈이 없네요, 라고 나는 다시 말했다. 그는 나중에 생각나면 계좌로라도 꼭 넣어달라며, 유료로 배포하는 소책자까지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하얀 혀를 보며 고민했듯, 지금이라도 돌아가 돈을 낼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그러지는 못했다. 지갑에 손을 댈 수록 눈 앞에 하얀 혀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가 담배 없는 밤을 보내는 대신, 나는 지갑 없는 밤을 보내야 할 성 싶었다. 한켠에서 죽음을 기리고 한켠에서 삶을 찾아 서로 다른 음악이 흐르는 서울역에서 나는, 늘 그렇듯, 삶도 죽음도 아닌 나의 당당함을 찾아 남을 속였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