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3.8 여성의 날

1.
   난생 처음으로 3.8 여성의 날 행사에 다녀왔다. 내 정보력의 범위 내에 있는 여성의 날 행사는 여성연합 등에서 주최하는 전국여성대회와 전국학생행진 등에서 주최하는 여성의 날 문화제, 이렇게 두 개인데 둘 다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단체들에서 여는 거라 그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다.(어제 다녀와서 좀 찾다보니 민주노총에서 하는 여성 노동자 결의대회 같은 것도 있긴 하더라.) 작년에는 주변 사람들이 꽤나 간다길래 은근슬쩍 묻어서 가 볼까 했으나 마침 다른 일과 겹쳐서 가지 못했다.
   어제 다녀온 것은 여성연합 등에서 연 전국여성대회를 비롯한 몇 가지 행사들. 2시부터 열린 여성의날 기념식에서 아는 선배가 공연을 한다기에 가기로 맘 먹었던 건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정작 공연은커녕 선배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행사는 역시나 그저그랬지만, 의외로 다양한 단체들에서 부스를 열고 있어 그리 아깝지는 않은 시간을 보냈다.
   어제의 견문을 꽤나 자세히 썼었는데, 뭔가 오류가 생겨 날려먹는 바람에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이 글을 참조할 것. 나와 동행한 이의 후기로 연결된다.

2.
   나를 여성의날 행사로 이끈 다른 요인도 하나 있었다. 여성 민우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여성의 날 공지 게시물 중 ‘3.8을 맞이하는 민우회원의 자세’라는 파트다.

미션1. 봄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황사에 대비해 마스크를 챙긴다!
미션2. 초봄 쌀쌀한 기운을 든든히 막기 위해 후드티를 입는다!
미션3. 즐겁고 신나게 여성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간편한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맨다!
그리고 미션 4.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썬글라스를 필참한다!

위의 ‘미션’ 네가지는 이명박 정권의 복면금지법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다. 집회에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황사와 쌀쌀한 날씨를 피하기 위해 얼굴을 꽁꽁 가리자는 것. 이 중 나를 잡아 끈 것은 바로 세 번째 미션이다.
   대학에서 4년 동안 이런저런 모임들, 특히나 종종 집회에 나가는 모임들에서 활동했고 그 중 3년은 선배-경험자-로서, 혹은 어떤 일의 담당자로서 공지를 보내거나 상대방이 겪을 상황에 대한 조언을 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동안 집회는 늘 격했고, ‘뛸’ 일들로 가득했다.
   당사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는 해도, 집회에 가면 뛰거나 싸워야 하니 편한 옷(대개는 ‘안 예쁜’ 옷)을 입고, (구두가 아닌)운동화를 신고 오라고 말하는 것은 늘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뛰기 위해 어떤 차림을 하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뛰기 힘들어 보이니 같이 뒤로 빠지자’고 말하는 편이 내겐 훨씬 쉬운 일이었다.
   평소에는 늘, 여성의 외모가 사회에 의해 규제받고 있는 것이며 불편한 복장과 화려한 화장은 온전한 개인의 선택이 아님을 강조하던 이들이 집회나 새터, 혹은 비슷한 행사들이 있을 때마다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요구하는 것을 보는 것은 또한 내 입에 그 말을 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여성단체’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더라. 그래서 궁금해졌다, 그들의 3.8이 말이다.

3.
   여성의날 행사에 참가한 이들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몸이나 얼굴이 아닌, 복색과 태도가 말이다. 어느 집회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통일된 차림을 하고 있는 이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고, 감정이 과잉한―혹은 결의가 과잉한 노래도 별로 들리지 않았다.
   다만 참가단체별로 한 두가지씩의 아이템은 공유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보라색 원통을 머리에 쓰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보라색 풍선을 손에 들고 있었다. 주최측에서 나눠준 듯한 붉은색과 노란색의 술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다.
   내가 늘 보아오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같은 것’에서 아름다움, 혹은 강함을 찾는 듯했으나 다행히 그것이 나의 소름을 끼치게 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 한두가지 물건들로 인해 하나가 되기에 그들은 너무도 다양한 표정과 다양한 몸짓을 갖고 있었던 덕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진은 늘 보아 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대중가요’에 속하는 노래들이 종종 흘러 나왔고 여성 사회자들이 마이크를 잡았지만, 그리고 내가 보아온 것보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사람들이 방송차를 따랐지만 말이다. ‘퍼레이드’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늘 보아오던 평범한 행진과 다르지 않았다.
   방식도, 구호도,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인삿말도 소위 ‘남성적’인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하면 조금은 설명이 될까. 당연하다는 듯 ‘쇳소리’로 인사를 하고 발언 중에 설움이 북받쳐 눈물을 터뜨린 후에야 겨우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잇던 여성 연사들을 볼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청계광장에서 시작한 행진은 국가인권위원회와 프레스센터 앞에서의 퍼포먼스를 포함하고 있었다. 인권위 축소해 반대하는 줄넘기와 언론법 개악을 반대하는 상자밟기, 이 두개의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행진 대열에 있던 한 휠체어 장애인은 그저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늘 주제넘은 짓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광경을 볼 때면 나는 늘 그 당사자만큼의 웃음을 지을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짓는 웃음만큼의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물론 어제도 그랬다.

4.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다가 한 번, 서로 입을 맞추었다. 작았지만, 쪽,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가시기 무섭게 머리 위에서 거친 음성이 들려 왔다. "그런 건 집에서 해." 뭔가 싶어 고개를 들자 그는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그런 건 집에 가서 하라고."
   몇 분 전인가 버스에 타 내 옆에 서서는 거친 숨을 뿜고 있던 이였다. 그의 숨에는 약한 술냄새과 짙은 담배냄새가 섞여 있었다. 독한 그 냄새와 씩씩거리는 커다란 소리가 뜨거운 숨결을 타고 내 얼굴에 날아왔다. 물론 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늘 그렇듯 티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타인의 애정표현―신체접촉을 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거나 불쾌한 일일 수 있다. 충분히. 하기에 그의 문제 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이의 제기는 딱히 없다. 물론 긴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것이 왜 불편한지, 볼편해야만 하는 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는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문제 제기에야 항변할 말이 없지만, 그의 ‘반말’에는 충분히 할 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이라거나 ‘집에서’라는 표현에도 충분히 따질 여지는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입에서 "엇다 대고 반말입니까"라는 말이 맴돌았을 뿐.
   그렇게 시간이 가는 동안 그의 숨 속에서 술 냄새는 차츰 옅어졌지만 하루 이틀된 것이 아닐 담배 냄새는 좀처럼 가시지도, 그렇다고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버스에 사람이 더 탈수록 그는 내 의자에 다가왔고, 불룩 나온 그의 배는 내 어깨를 밀고 들어왔다. 열린 단추 아래 펄럭이던 그의 코트자락은 기어코 내 무릎을 그의 품 속으로 넣고야 말았다.

5.
   집에서 쉬며, 곰TV에 업데이트 된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남편’들의 모습이 너무 역해서, 결국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그 전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왔던, 여성들에 대한 가정 폭력이나 1900년대 초반 남아프리카의 여성들이 겪었던 온갖 고난이 떠올랐다. 뻔뻔하게도 나는, 그들의 잔혹사만이 괴로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