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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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 제사에 갔다가, 몇 년만에 외가 친척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외삼촌 외숙모 가족은 거진 6, 7년 만에 본 셈이니, 정말로 오랜만의 일이다. 그 집에는 아이가 셋이다. 제일 큰 애가 열여섯, 둘째가 열하나, 막내가 일곱살이다. 징그럽게도 매달리는 막내랑 놀아주고 있는데 문득 그아이가 내 나이를 물었다. 스물 셋이라고 답했더니 군대 가야겠네, 라고 반문한다. 그렇다고 하니 하는 말이 아주 가관이다. 그렇게 작은 키로도 군대 갈 수 있냔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아이의 열한살짜리 누나가 끼어든다. 키가 작다고 하는 말에 아마도 자기 동생의 일로 잘못 들은 듯, 엉뚱한 소리를 한다. 작아도 군대 가야지. 가기 싫으면 여자 해. 그런데 여자 되면 집안일 해야 된다. 막내가 일하기 싫다고 답하니 당연하다는 듯 덧붙인다, 그래도 해야지. 여자들 일 하는 거 몰라?
아, 이 얼마나 처절한 진실인가. 열한살짜리가 이미 알아버린 여성의 현실이 다름아닌 집안일이라니. 남성의 군 복무 문제와 관련해 늘 나오는 이야기가 겨우 출산에 관한 것으로 국한되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 아이는 스무살 서른살 씩이나 먹은 어른들보다도 훨씬 나은 셈이다. 생물학적이고 특수한 경험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이미 깨닫고 있지 않은가. 아, 처절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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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나 버스를 탈 때면 늘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기를 기도한다. 여석이 없어 누군가 꼭 앉아야 한다면 그는 어린 사람일 수록, 그리고 여성일 수록 좋다. 물론 통계적인 가능성의 문제일 뿐이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나 남성은 옆사람, 그러니까 나에 대한 배려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해서 너무 힘들다.
오늘의 기차여행에 나와 동석한 사람은 예순이나 일흔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다. 내가 탄 다음 역에서 기차에 오른 그에게는 네 명의 일행이 있다. 그 일행들이 짝을 지어 앉은 옆에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함께 않아 있는 것이다. 원래는 다른 이가 내 옆에 앉겠다고 했으나, 불편한 타인과의 동석을 그가 자청하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아이고, 젊은 총각 옆에 한 번 앉아 보겠다고."
"그런 게 아니라, 느그들 이야기하면서 앉으라고 안 그라나. 요는 꼭 내 아들 같구만 무슨."
나를 옆에 앉혀 두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농을 주고 받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피식 하고 웃었다. 내가 웃는 걸 봤는지 못 봤는지 내 옆의 그가 내게 말을 붙인다.
"안 그렇소, 총각?"
반말이었다면 어쩌면 그 앞의 웃음까지도 무르고 싶을만큼 기분이 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그렇게 이야기 한 후에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활개를 펴고 앉았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덩치가 그리 크지 않았고, 활개를 펴지는 더더욱 않았다. 일행들과 함께 싸온 먹을거리를 내게도 권하면서도 그는 말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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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 썼던, 태안 사진을 받은 이들 중 한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진ㅡ첫팀’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사람이다. 잊고 있었던 사진을 보내주어 고맙다고, 좋은 추억거리가 될 거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언제 청주 오면 연락주삼 밤 한끼 살게요". 이 문자의 주인공은 4, 50대의 여성이었다. 다른 사진들을 받은 것은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들. 그들이 문자를 할 줄 모르는 것인지 혹은 사진이 안 간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무뚝뚝할 뿐인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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