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

  탁, 밥통 스위치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이십 분쯤이 지났다. 아침이라기엔 늦은 시각에 일어났다. ‘평일 오전 아홉시’로 설정되어 있는 알람을 무시하고 계속 잔 터였다. 금요일은 그들에겐 평일이지만, 내게는 유일하게 완전히 하루가 비는 날이다. 물론 고정적인 일정에서의 이야기이고, 오늘조차도 따로 잡힌 일정이 있으니 완전한 휴일은 아니다.
  잠을 깨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컴퓨터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었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화장실엘 다녀왔다. 컴퓨터가 켜 지면 밀린 리포트를 쓸 요량이었다. 부팅 중의 푸른 화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배가 고파져 왔고,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간만에 카레를 해 먹어야겠다, 는 생각을 하며 냉장고를 열어 양파와 감자, 토마토 소스, 다진 마늘을 꺼낸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양파와 감자를 볶고, 거기에 토마토 소스를 얹어 또 볶는다. 그 뒤의 레시피는 잘 알지 못해서, 그냥 카레 가루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다. 친구가 준 사제私製 카레가루는 시중의 것과는 조금 다른 맛이다. 마침 집에 남아 있던 우유를 조금 넣었더니 맛과 색이 시중의 것과 비슷해졌다. 카레에 우유를 넣어보기는 처음이다.
  카레가 끓는 동안 밥을 안쳤다. 그리고는 싱크대 가득 쌓여 있는 어제의 설거지를 시작했다. 어젠 제대로 된 밥을 먹지 않아서 설거지는 간단했다. 스파게티를 먹었던 접시와, 고구마를 삶았던 냄비가 찜기, 그리고 그것들을 먹느라 쓴 수저들. 늘 그렇듯 세제는 쓰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보일러를 틀어 두고 있어서, 따뜻한 물을 사용할 수 있어 훨씬 수월한 편이다.
  카레는 설거지가 끝날 때쯤 완성되었다. 늘 먹던 붉은 카레보다 훨씬 노란 빛을 띠고 있다. 밥이 다 되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방으로 들어 왔다. ‘대기 모드’로 들어가서 검게 변해 있는 모니터를, 마우스를 흔들어 깨운다. 지인들의 블로그를 둘러 보고, 마지막으로 내 것에 들어온다. 친구들이 남긴 몇 개의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다. 읽으며 피식 웃고는, 답을 잠시 미룬다.
  블로그에는 방문자들의 유입 경로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검색을 통해 들어 온 것인지 혹은 링크를 통해 들어 온 것인지라든가, 어떤 검색어를 사용했는지 혹은 어디서 링크를 눌렀는지 등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들어 온다. 도라에몽이나 불알, 전기곤로 같은 검색어를 통하는 사람도 있고 내 블로그 주소를 통째로 검색해서 들어 온 사람도 있다.
  다녀간 이들의 이름이 남지 않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 뿐더러, 와 놓고 흔적조차 없는 지인들을 무심타 원망치 않아도 좋으니 말이다. 블로그에는 하루에만도 수십의 사람이 다녀간다. 나는 그들을 전혀 알 수 없다. 길에서 마주친 생면부지의 사람을, 옷차림과 표정만을 겨우 확인하고 흘려보내는 것과 같이 말이다.
  탁, 하는 소리가 들린지 십 분쯤이 지났다. 뜸같은 것이야 들이지 않아도 좋지만,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밥을 먹는 건 못할 짓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그래야만 하는 순간들은 늘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먹기 위해 아등바등해야만 하는 육신에 대한 혐오를 불러 온다는 뜻이다. 이제 십 분이 지났으니 걱정은 없다. 밥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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