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사회당의 당원이었다. 희망사회당, 한국사회당 등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2005년에서 2012년까지 당적을 두고 있었다. 2012년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합당한 후, 나는 당적 없는 사람으로 돌아 왔다. 합당에 찬성했음에도 (당대회에 가지 않아 찬성표를 던지지는 못했다) 당적을 버리기로 한 것은, 당시 진보신당이 한 성폭력 사건 사후 조치를 미흡하게 한 탓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정당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정당이라는 큰 조직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었다. 사회당 활동을 하기부터 당원이 되기까지에도 수 개월 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당 활동을 하는 몇 년 동안에도 내적인 갈등이 있었다. 새삼 그런 이야기들을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적을 버리면서, 그래도 이후의 투표는 진보신당에, 지금의 노동당에 하리라 생각했다. 내가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정당, 내가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이들이 활동하는 정당, 따라서 나와 많은 것이 맞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합당 직후에 있었던 총선에서는 진보신당에 투표했던 것 같다. 대선 때에도 그랬을 것이다. 유세장에도 몇 번인가 찾아갔고 (이건 당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선거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일상적인 뉴스에도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녹색당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띄다'와 같은 비장애인중심적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해 택한 표현이지, 흔히 쓰는 대로의 의미로 택한 표현은 아니다.) 녹색당은 사회당의 소멸을 즈음해 창당한 정당이다. 당시 나는 그들 곧 진보신당과 합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보신당에 흡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만한 운동이 어디 있겠냐만, 그 중에서도 정당 정치는 만만치가 않다고 여겼다.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이상과 현실을 조정하고 적당한 선에 타협하는 능력도, 그것을 위해 연구하는 능력도 필요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생당은 스스로의 길을 갔고, 적어도 내게는, 가장 흥미로운 정당이 되었다.
'적당히 타협'하지도, '이상만을 제시'하지도 않는 듯하다. 이상을 지키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하는 것,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본령이며, 그 중에서 정책적으로 가능한 것을 현실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제도권 정당 운동의 일이다. 이 둘을 가장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녹색당인 듯했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언제나 전방위적인 실험과 연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밖에 있는 나이므로 자세히는 모르지만, 추첨식 대의원제나 공식 청소년 기구 등 다른 당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실험들을 비롯해 페미니즘, 반나이주의, 반학벌주의 등을 활동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을 끊임 없이 하고 있는 듯했다.
비록 한 장짜리였지만 선거 공보물은 흥미로웠다. 구체적인 공약들이 빽빽히 적여 있었고, 후보자들은 학력 없이 흑백사진과 함께 (이건 돈이 없어서겠지만) 실려 있었다. 청년 비례니 뭐니 하는 이름 없이도 청년 정치인들이 후보가 되었다. 탈핵, 동물권, 기본소득 등 지금 한국 현실정치에서 가장 급진적일 이슈들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정책으로, 그리고 단순히 정책이 아니라 현재적인 실천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1번 여성 후보를 두고 남성 후보를 먼저 실은 정의당 공보물, 나무가 아깝다 싶을 만큼 구호만 있었던 노동당 공보물에 비하자면 녹색당 공보물은 더 좋게 읽혔다. 가장 순진한 사람들, 가장 선량한 사람들, 이런 것이 녹색당 창당 당시의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가장 프로페셔널한 사람들, 가장 급진적인 사람들, 이런 것이 녹색당의 이미지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녹색당에 표를 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