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3.(월)

어제는 침실 치수를 쟀다. 벽지를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으로 벽지를 주문했다. 저번에 대강 쟀을 때보다 한 장 적게 나왔다. 그대로 주문했다. 모자랄까봐 겁난다. 귀찮다. 풀은 미리 발린 채로 온다. 아주 큰 일은 아니다. 이러나 저러나, 2년 계약으로 들어와서는 반 년만에 도배라니 이게 무슨 짓일까. 내일은 도배를 할 것이다.

여덟 시쯤 한 번 깼을까. 열 시가 넘어서 한 번 더 깼는데 그러고는 그냥 누워 있었던가 또 잤던가.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하루를 시작했다. 두 번을 꿈을 꾸다 깼는데 두 번째 꿈만 기억난다. 우연히 만난 친구를 따라 커다란 낡은 상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더니 친구네 집이 나왔다. 복층이었고 침실 ― 침실이라기보단 그 자체로 침대에 가까운 위층 ― 로 가는 계단이 가파랐다. 친구가 계단을 향해 가길래 따라 올라가려는데 친구가 멈췄다. 계단이 서랍이었다. 친구는 서랍을 열어 실내화를 꺼내주었다. 고무 재질에 발걸이가 듬성듬성한 그물 같은 모양이었는데 그물코가 대부분 끊어져 있었다.

깨서 전화기를 보니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벽지 업체였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대한통운 택배파업으로 △△택배로 발송되는데 택배비 3000원 추가됩니다 // △△택배 발송 원하시면 입금부탁드립니다 // ○○은행 ××× ×××× ×××× □□□입니다”[1]미리 알지는 못했다. 대한통운 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고 오는 6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파업의 원인은 … (계속) 계좌번호는 휴대전화 번호 같았는데 발신자 번호와 달랐다. 애초에 무슨 택배가 온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한참 생각한 끝에 벽지를 주문했단 걸 떠올렸고 이윽고 메시지 끝에 벽지 업체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보았다. 택배비를 입금하고 답장을 보냈다.[2]지금 메시지를 옮겨 적으며 확인해 보니 발신자 번호와 계좌 번호가 같다.

된장찌개를 끓여 먹으려던 전날의 계획을 폐기하고 근처 분식집에 가서 오징어덮밥을 먹었다. 종종 그렇듯, 북한 출신 주민들이 등장하는 종편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화면을 보기 전에 목소리와 말투만 들은 상태에서 어떤 얼굴이 떠올랐는데 고개를 돌려 보니 말하는 이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의 얼굴일까 한참 생각했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기분이었지만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런 경험은 없었다. 밥을 반쯤 먹고서야 떠올렸는데, KBS 〈안녕하세요〉 출연자의 얼굴이었다. 남편이 북한식 감자볶음만 먹고 다른 건 좀체 먹지 않으려 한다는 고민을 들고 나온 이였다. 남편은 처음에는 그저 감자볶음이 맛있어서라고 눙치다 아픈 가족사를 이야기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짐을 좀 정리했고 그 후론 종일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제 표시해둔 논문 열 편을 다운로드했다. 열어보지는 않았다. 친구가 쓸 USB-HDMI 젠더를 검색해 주문했다. 여기엔 시간을 좀 들였다. 그 외엔 주로 괜한 웹서핑을 했다. 토비 맥과이어가 출연한 〈스파이더맨〉을 보았다.[3]어젯밤엔 서브모니터도 설치했다. 오늘은 모니터 하나엔 영화를 띄워 놓고 나머지 하나로는 웹서핑을 했다. 앞의 절반은 어제 본 것 같다. 일기를 몰아서 쓰다 보니 많은 것을 잊는다. 지난 며칠간은 띄엄띄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도 보았다. 얼마 전 극장에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일기에 쓴 재미없음이 아니라, 토비 맥과이어의 얼굴이었다. 〈스파이더맨〉 이후로는 적어도 의식하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십수 년을 늙어버린 채 갑자기 마주하게 된 얼굴.

저녁엔 된장찌개를 끓였다. 그제였나 사온 감자가 아니라, 있는 줄 몰랐던 감자를 썼다. 싹 여러 개를 도려내니 반밖에 안 남았다. 싹난 감자를 쓸 때마다 궁금해 한다. 요즘도 감자싹엔 솔라닌이 있을까. 씨없는 수박을 그렇게나 공들여 만드는데 독 없는 감자가 없다는 건 이상하니까. 하지만 한 번도 찾아보진 않았다. 싹과 그 주위의 초록색을 띠게 된 부분을 도려내면 간단히 제거할 수 있고 그다지 강하지도 않은 독, 이라면 굳이 없앨 노력은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수박을 먹는 이의 폭보다는 감자를 손질해야 하는 이의 폭이 훨씬 좁으니까. 다만, 색맹인 탓에 늘 궁금하고 무섭다. 초록색으로 변한 부분을 잘 도려내고 있는 걸까. 도통 모르겠다. 배탈이 난 적은 없다.

식사를 마치고는 화장실 세면대에 실리콘을 둘렀다. 일전에[4]10월 27일의 일이다. 배수구 덮개도 아직 바꾸거나 개조하지 않았는데, 이건 아무래도 영영 안 할 것 같다. 배수관을 바꾸느라 긁어내고는 여태 그냥 두었다. 표면이 마른 상태에서 작업하고 마른 채로 한참을 두어야 하는데 화장실이 그럴 때란 좀처럼 없으니까. 이번엔 맘먹고 말리고 닦았다. 실리콘이 다 마를 때까지 안전히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있던 실리콘이 너무 엉성하게 마감되어 있어 ― 아마도 전문가였을 ― 작업자를 탓했는데, 여러모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세면대와 바닥 사이의 틈은 넓고 세면대는 곡면에 바닥은 기울러져 있고 타일 사이에는 틈도 있다. 겨우 마쳤고 (실은 이미 조금 들떴다) 전문가가 해서 그나마 그 정도였던 걸까, 하는 생각만 남았다. 하는 김에 벽면 타일 사이 마감이 제대로 안 된 곳 두 군데 ― 전문가였다면, 작업자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 와 못자국 두 군데도 실리콘으로 매웠다.

도배. 도배. 도배.


당일에 써도 까먹네. “겁 없이 끼기로 한 낯선 이들과의 […] 스터디”의 단체대화방이 오늘 개설되었다. 안면이 있는 이 몇과 이름만 아는 이 몇이 있다. 이번에도 (셰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 말고는 다 전문가인 모임에 끼게 되었다. 다음주에 첫 모임을 하게 될 성 싶다.

1 미리 알지는 못했다. 대한통운 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고 오는 6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파업의 원인은 지난해 1월과 6월 두 차례 이뤄진 사회적 합의문에 대한 해석 차이다. 택배사, 영업점, 과로사대책위, 정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는 지난해 △택배 분류작업은 택배기사의 업무가 아니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0시간 이내로 한다 △별도의 분류 인력을 위해 택배 원가를 개당 170원 인상할 수 있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170원 인상’이란 부분을 두고 노조 측은 이 돈을 택배기사 처우 개선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롯데와 로젠, 한진은 인상분 170원을 모두 기사 처우 개선에 쓰고 있는데, CJ대한통운만 인상분의 60%인 100원만을 내놓고 있다”며 이를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CJ대한통운은 170원이란 숫자 자체는 의미 없다는 논리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타사에 비해 그만큼 자동화 설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을 반영했다”며 “어차피 전체 택배비 중 50%가 수수료로 기사들에게 배분되기 때문에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몫도 커진다”고 반박했다.
이런 해석 차이 외에도 궁극적으로는 총파업을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소통 움직임이 없다는 문제가 더 크다. 노조는 이번 파업만큼은 끝까지 가겠다고 하고 사측은 택배기사와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니 교섭할 일은 없다는 원론만 반복하고 있다. 회사와 택배기사가 중간에 대리점을 끼고 있는 형태라 노사협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했는데, 사회적 합의가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는 얘기다.”(hankookilbo.com/News/Read/A2022010314190000117)
2 지금 메시지를 옮겨 적으며 확인해 보니 발신자 번호와 계좌 번호가 같다.
3 어젯밤엔 서브모니터도 설치했다. 오늘은 모니터 하나엔 영화를 띄워 놓고 나머지 하나로는 웹서핑을 했다.
4 10월 27일의 일이다. 배수구 덮개도 아직 바꾸거나 개조하지 않았는데, 이건 아무래도 영영 안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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