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4-05.(토-일)

2021.12.04.(토)

일찍 일어나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내려서는 라면을 먹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몰랐는데 주문 받던 이가 나를 언니라 부른 모양이었다. 그냥 씩 웃고 말았는데 그는 다른 직원과 몇 마디를 더 주고 받았다. 머리도 길고 마스크도 쓰고 있고 생긴 것도 여자 같아서, 하는 식의 이유 몇 가지를 댔다. 말을 받은 직원은 그래, 다 언니지 뭐, 하며 웃었다. 한 번 더 씩 웃었다.

카페에 앉아 일을 했다, 고 쓰고 싶지만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최근에 본 열 시즌짜리 ― 260편이 조금 못 될 것이다 ― 시트콤, 그새 또 마친 다섯 시즌 짜리 ― 이건 시즌당 편수가 적고 마지막 시즌은 한 편짜리라 총 스물다섯 편, 그러니까 앞의 것 한 시즌 정도의 분량이다 ― 시트콤에 이어 보기 시작한 만화를 봤다. 열 시즌짜리는 처음 본 것이고 다섯 시즌짜리는 이번이 세 번째. 만화는 아마 네 번째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왔다. 잠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어느 채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친구와 잠깐 서점에 들렀다. 친구는 필요한 것을 사고 다음 일정으로 떠났고 나는 괜히 서점을 좀 더 배회하다 다른 친구를 만났다. 근처 카페로 가서 두어 시간 잡담을 나누었다. 늦봄이었나 구한 일자리를 부당하게 그만 두고는 새로 구한 자리에서 먼젓번 일자리에서 보낸 만큼의 시간을, 석 달쯤을 보낸 친구다. 두 직장에서의 일화를 주로 들었다. 나는 생활이 단조롭고 대개 감흥이 없으므로 많이 말하지 않았다.

그 친구를 보내고 또 친구를 만나 지하철을 탔다. 뚝섬역에 내렸나, 십오 분쯤 걸었던 것 같다. 중간에 어느 행사장에 잠시 들렀으나 들어가자마자 나왔다. 존재는 알았지만 그날 거기서 하는 줄은 몰랐던 행사였고 계획에 없던 방문이었다. 다른 친구가 부스를 차려놓고 있는 곳이었는데 너무 금세 나와서 만나지는 못했다. 마저 걸어 공연장에 도착했다.

김원영과 프로젝트 이인의 무용 공연 《무용수-되기》. 지난해에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장애·비장애 문화예술 동행프로젝트” 《같이 잇는 가치》에서 상연된 동명의 공연을 확장한 것이었다.[1]여기에 다녀와서는 「대체 텍스트, 번역, 비평 혹은 패싱의 정치학」이라는 글을 썼다. 무용수 한 사람과 안무·연출을 맡은 두 사람(둘 중 하나는 ‘무용수 한 사람’과 동일인이다), 드라마터그와 의상 디자이너가 아는 사람인 공연이었으므로 관객 중에도 아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오랜만에 본 이가 많았지만 인사를 길게 나누지는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는 같이 간 친구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텐동. 돈부리야 익숙하지만 텐동은 처음인가. 둘이 다르긴 한 건가. 모르겠다.

이튿날에는 노뉴워크 그룹전 《다정한 침해》의 설치가 예정되어 있었다. 동료들의 전시이자 ‘침해자’라는 이름으로 나도 사진 세 장을 낸 전시다. 설치도 돕고 전시도 볼 수 있을지, 이틀을 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하루를 묵고 설치를 돕기로 하고 숙소를 찾았다. 주말 밤에 급히 숙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만실인 곳이 대부분이었고 이따금 방이 있으면 꽤 비쌌다.

2021.12.05.(일)

그래도 어찌저찌 서울에서 잤다. 구기동 전시장까지는 한 시간 반 가량이 걸린다고 했다. 일어나서 대강 씻고 아홉 시 조금 지난 시각에 길을 나섰다. 우선은 ― 간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일정이 바뀌진 않았는지 떠보려고 ―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주전부리를 사갈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는 메시지가 올라 왔는데 배가 조금 고팠지만 역시 조용히 넘겼다. 전시장은 서너 번 가 본 곳이라 어렵지 않게 당도했다. 연락 없이 나타났으므로 사람들이 놀랐다.

조명을 달거나 옮기는 일, 합판과 각목을 잘라 엉성한 경사로를 만드는 일 따위에 힘을 보탰다. 목재를 사서 만들 계획이었으나 근처 목재상 중에는 재단까지 해주는 곳은 없어 동네를 빙빙 돌며 버려진 나무가 없는지를 살폈다. 꽤 많았으나 모두 공동주택의 마당 안에 있었고 길가에 방치된 것은 없었다. 다행히 전시장 창고에서 쓸만한 것이 나와서, 원래 구상보다는 조금 작게, 뚝딱뚝딱 만들었다. 나사가 끊어지거나 뭉개지지고 했지만 큰 탈은 없었다.

전시장에서 동료들이 사온 김밥이나 귤, 커피 따위를 조금 먹었고 네 시쯤 제대로 된 첫 끼니를 먹었다. 전통문화보존명장인가 하는 명패가 붙은, 두부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이었다. 두부 명장이었을까, 나는 청국장찌개를 먹었다. 두부가 들어 있었겠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고양이 사진을 넣은 커다란 액자를 바닥에 세워두고 앞에다 밥그릇을 둔 카페에서 동료가 사 준 커피를 마셨다. 전시장은 나온 것은 해가 진 후. 곧장 터미널로 이동했다.

1 여기에 다녀와서는 「대체 텍스트, 번역, 비평 혹은 패싱의 정치학」이라는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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