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0.(토)

자정쯤 누웠다. 여섯 시가 지나 잠들었고 열두 시가 지나 일어났으므로 금세 잠들기는 감히 바라지 않았다. 두어 시간은 그냥 ― 시트콤을 보며 ― 흘려보내고 차차 잠들 노력을 할 요량이었다. 두 시에 이르자 허기가 졌다. 일어나 짜장라면을 끓였다. 먹었다. 멜라토닌도 한 알 삼켰다. 누웠다. 그러고도 네 시 경까지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뒷덜미에 불안의 감각 ― 불안의 감각이란 말이 썩 어울리지는 않을 어떤 통증인데, 달리 표현할 말은 찾을 수 없다 ― 이 퍼졌다. 한 시간 넘게 줄곧 뒤척였다. 다시 일어나 담배를 피우고야 겨우 잦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섯 시까지도 잠은 들지 않았다. 일곱 시에 알람이 울 예정이었다. 잠은 포기하기로 했다. 시트콤을 보다 말다 하며 한 시간 반쯤을 보내고 일곱 시 반에 일어나 채비를 했다. 여덟 시가 좀 지나 집을 나섰다. 정류장 전광판에 도착 예정 버스가 표시되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확인해 보니 몇십 분은 지나야 올 성 싶었다 (왜인지 정류장 이름으로 검색하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정확한 도착 예정 시각은 확인하지 못했다).

시내까지 걸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친구가 준 쿠폰으로 커피와 조각케익을 주문했다. 케익이 품절이라며 다른 것을 고르라고 했다. 잠시 들여다보다 티라미수를 골랐다. 추가금액 200원을 카드로 결제했다. 후회했다. 맛은 문제가 없었다. 코팅된 종이 위에 얇은 비닐을 둘러 얹어 둔 몇 가지 조각케익을 두고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티라미수를 고른 것을 후회했다.

한 시간 반 넘게 (시트콤을 틀어두고) 웹서핑만 했다. 한동안은 쇼핑몰을 뒤졌다. LED등과 전등갓을 찾았다. 이 집에 와서 손을 댔거나 댈 예정인 것의 대부분은 기능이나 위생상의 문제가 있는 구석들이다. 뻥 뚫린 창에 커튼을 달고 찝찝한데다 문이 망가지기까지 한 욕실장을 갈고 물이 안 튈 수 없는 곳에 달린 휴지걸이를 옮기고 욕실용 선반을 달고 세면대 배수관을 갈고 ― 물살을 잘 이기고 있으므로 이제 실리콘을 발라야겠는데 화장실은 늘 젖어 있으므로 마땅치가 않다 ― 식기건조대를 갈고 싱크대 틈에 실리콘을 새로 채우고 거울에 가려지게 된 전등 스위치를 옮긴 것이 그렇다. 전선 몇 군대를 새로 이을, 침실을 도배할, 욕실 문틀에 페인트를 칠할 예정인 것도 그래서다.

다만, 기능에 문제가 없고 딱히 찝찝하지도 않은데도 그저 보기 흉해서 손을 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 하나가 바로 전등이다. 거실에는 두 개의 형광등이 달려 있는데 등기구의 생김새도 설치한 매무새도 모두 흉하다. 침실등 역시 비뚤게 달려 있다. 침실등을 거실로 옮겨달고 침실에는 좀 더 어두운 등을 달 생각이다. 남은 거실등 하나는 그대로 두거나 새것을 사다 달 것이다. 침실과 거실에 달(지도 모를) 것을 검색했다. 주문하지도 확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컴퓨터를 끄고 황정은의 『일기』를 마저 읽었다. 어제 반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삼분지이 가량이 남아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세월호나 산업재해에 관한 문장들이 종종 나왔다. 성소수자에 관한 말도 있었다. 책꽂이나 갈피표에 관한 문장도. 열두 시 반까지 읽기로 하고는 시계를 보지 않고 책을 읽다 이쯤이면 됐겠다 싶어 책을 덮었는데 뒤늦게 확인하니 아직 이십 분이 남아 있었다.

다시 폈다가 금세 덮었다.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세가 꺾인 탓이었는지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클래식 기악곡 너머로 카페 스피커의 음악이 혹은 건너편 테이블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온 탓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건너편 이들의 대화는 잊었다. 저 시점에 카페 스피커에서 나온 음악은 Juanjo & Amigos의 “Cosas de Amor”라고 했다. 원래 알던 곡은 아니다. 정확히는 지금도 모른다. 휴대전화의 소리 인식 기능으로 검색했더니 저 곡목이 떴는데,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곳은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다.

집까지 걸었다. 중간에는 오던 길을 돌아가 잡화점에 들렀다. 80ml짜리 페인트와 세탁조 세정제를 샀다. (페인트만 기억나고 나머지 하나는 기억나지 않았는데 페인트 옆에 아무것도 없어 방을 한참 살폈다. 페인트 옆에서 찾았다.) 면도날도 살 생각이었는데 그만 잊어버렸다.

집에 와서는 곧장 엎드렸다. 한 시간 좀 넘게 시트콤을 보다가 그제 야식으로 먹다 남아 (그제 일기에는 빼먹은 것 같다) 얼려 둔 피자를 데워 먹었다. 바나나도 두 개 먹었다. 다시 누워서 시트콤을 보다 다섯 시쯤 일어나 이불을 걷고 청소기를 돌렸다. 가진 이불의 전부이자 침실에 깔려 있는 이불의 전부 ― 홑이불 둘과 솜이불 둘, 메시 소재 매트의 커버 ― 와 베개 커버를 챙겼다. 솜이불만으로 커다란 트렁크가 가득 찼다. 나머지는 등가방에 넣었다.[1]나는 대개 등가방이나 배낭이란 말을 쓰는 것 같다. 백팩이란 말도 안 쓰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등가방이란 말은 잘 안 쓰는 것 같다. 배낭과 백팩은 … (계속) 대용량 세탁기 한 대를 쓸 생각이었으나 하나뿐인 25kg급 세탁기에는 이미 빨래가 돌아가고 있었다. 25분이 남았다고 했다. 그 정도면 기다릴 수도 있지만, 지난 번엔 밤에 온 터라 의식하지 못했던 세탁소 카운터가 운영중이어서 주인인지 점원인지가 앉아 있었으므로 곧장 빨래를 시작하기로 했다. 20kg급 세탁기에 솜이불 두 채를 넣었다. 거의 늘 표준코스만 쓰지만 실질적인 용량을 초과한 것 같았으므로 ― 안내문에는 이불 두세 채를 돌릴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 시간과 물과 돈이 조금 더 드는, 그리고 온수를 쓰는, 이불 코스로 돌렸다. 역시 세탁기가 버거워 보였다.

홑이불은 얼마 전에도 빨았으므로 그냥 되가져 가려다 몇 분 후에 맘을 바꾸어 세탁기 한 대를 더 돌렸다. 이번에는 시간과 물과 돈이 조금 덜 더는 쾌속코스를 택했다. 세탁기 세 대가 돌아가는 소음 속에서 『일기』를 마저 읽었다. 어디부터를 여기서 읽었더라,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고 쓴 글이 조금 버거웠다. 어떤 글이었는지를 요약하는 것도, 이렇게 두리뭉술 넘기는 것도 부적절해 보이는 글이었다. (어차피 부적절하다면, 고됨을 핑계 삼아, 문장을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세 대가 동시에 탈수를 한 어느 시점은 아주 시끄러웠다. 그래봐야 기계음일 뿐이므로 큰 중단 없이 독서를 마쳤다.

쾌속코스가 끝나고 얼마 후 이불코스도 끝났다. 25kg급 세탁기의 세탁이 가장 먼저 끝났지만 주인인지 점원인지가 탈수를 ― 아마도 헹굼을, 이라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 ― 한 번 더 돌려달라고 했다며 한 코스를 추가했으므로 최종적으로는 내 것이 먼저 끝났다. 25kg급 건조기에 옮겨 넣고 말리기 시작했다. 『일기시대』를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달포 전에 도입부의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다. 방에서 일어나는 일만 쓴 책인가 했는데 뒤를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15분쯤 지나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세탁물을 맡기면 업소에서 세탁기를 돌려주는 방식으로도 하나보다 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25kg급 세탁기에 든 빨래의 주인이었다. 아직 안 끝났냐고 묻자 (세탁방의) 주인인지 점원인지가 지금 막 끝났다고 답했다. (빨래의) 주인들이 직접 건조기로 옮겨 넣고 동전을 넣은 후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내 것이 돌아가고 있던 건조기를 보며 용량 이야기를 한 모양인지, (세탁방의) 주인인지 점원인지가 나를 가리키며 저 분이 쓰고 계시는데 시간이 좀 남았다고 하는 게 들렸다. 집에서 빨아 와서 건조만 돌리시는 거, 라고 덧붙이는 것도 들렸다. (빨래의) 주인들은 다시 어딘가로 가버렸다.

건조가 6분인가 남았길래 건조기를 열어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꽤 축축했다. 9분을 추가했다. 다시 4분인가가 남은 시점에 또 한 번 확인했다. 축축한 정도는 아니지만 물기가 있었다. 9분을 추가했다. 이때 빨래를 뒤적이다 뜨거운 것이 손에 닿아 무언가 봤더니 지퍼 손잡이였다. 솜이불 둘 다 솜을 꺼낼 수 없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하나는 다만 지퍼가 잘 안 보이는 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여러모로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부질없는 후회를 했다. 몇 번이고 솜이불이란 말을 쓰면서, 이 솜이란 것이 실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이번에는 문을 열지 않고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그냥 두었다. 이미 기운이 다해 반 정도를 읽은 『일기시대』를 덮은 뒤였고 배도 너무 고팠다. 솜이불들 봉투(플라스틱 재질이다)에 넣고 봉투를 트렁크(역시 플라스틱 재질이다)에 넣었다. 가방에 그냥 담아 왔던 나머지는 세탁방에서 500원을 주고 산 봉투(또한 플라스틱 재질이다)에 넣어 가방에 넣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이들의 빨래도 건조가 끝났다. 시간에 맞춰 빨래를 찾으러 온 것은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식당을 향했다. 고기가 들지 않은 메뉴가 있는 곳 중 제일 가깝다, 고 생각한 베트남국수집을 향해 걸으며 고깃집 여럿을 ― 약간은 갈등하며 ― 지나쳤다. 집과는 반대방향이었다. 곧장 집을 향해 갔더라면 분식집에서 무어라도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극심한 허기로 집에서 밥을 해먹겠다는 계획을 엎고 식당을 가는 중이었으므로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실수다. 토할 것 같이 배가 고팠다. 비유가 아니다. 토를 하지는 않으므로 과장일 수는 있겠다. 아무튼 나는, 허기가 심해지면 식도와 목구멍에서 토하기 직전과 똑같은 불쾌감이 느껴진다.

식당에서는 팟타이를 시켰다. 잠시 기다려 음식을 받고는 셀프바에 반찬을 가지러 갔다. 뚜껑 없이 놓여 있는 찬통에 날파리가 빠져 있었다. 주인인지 점원인지에게 알리고 반찬은 뜨지 않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집게로 잠시 휘적거리다 손가락을 넣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찬통도 집게로 휘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찬통을 바꾸는 ― 적어도 부엌으로 들이는, 그러니까, 바꾸는 척이라도 하는 ―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팟타이는 평소보다 맵고 짜고 질겼다. 휴대전화에 눈을 둔 채 보지 않고 먹다가 나뭇가지 같은 게 씹혀서 질겁했는데 평범한 마른하늘고추였다. 결제를 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따져 묻지는 않았다. 다시 가지도 않을 것이다.

친구와 통화를 하며 귀가했다. 집에 와서 꺼내어보니 이불 모퉁이에서 물기가 느껴진다. 이불을 깔고 보일러를 켰다. 원래는 보일러를 켜지 않고 잘 생각이었는데. 그리고는 일기를 쓴다. 썼다, 고 해도 좋겠다. 지금 시각은 오후 여덟 시 삼십삼 분. 샤워를 하고 누울 것이다. 누운 채로 (아마도 시트콤을 보며) 시간을 조금 보낸 후 열 시를 전후해 잠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페인트를 산 것은 화장실 문틀을 칠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이 오늘 저녁의 원래 계획이지만, 내일 아침으로 미루기로 했다.

1 나는 대개 등가방이나 배낭이란 말을 쓰는 것 같다. 백팩이란 말도 안 쓰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등가방이란 말은 잘 안 쓰는 것 같다. 배낭과 백팩은 용례가 갈리는 것 같은데 단순히 세대나 취향의 차이인지 실제로 두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다른지는 (혹은 전과 달라졌는지는) 모른다. 가끔 룩색이나 륙색이라고 쓰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지만 이건 글로만 봤지 입으로 뱉어 본 적은 없는 말이라 잘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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