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깼다. 여덟 시쯤. 아홉 시까진 뒹굴거렸다. 씻고 나섰다. 시내 언저리 어느 주택가를 향했다. 어제 잡은, 중고 카메라 거래 약속이 있었다. 샀다. 지난주엔가 오만 원에 올라온, 썩 필요하지는 않은 컴팩트 필름 카메라다. 영 안 팔렸는지 몇 번 가격이 떨어져 삼만오천 원이 되었길래 냉큼 사기로 했다.
안내받은 주소의 집 앞에 도착해 메시지를 보냈는데 엉뚱한 곳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아침에 켜 보니 배터리가 다 됐길래 사러 다녀왔다고 했다. 거의 카메라에만 쓰는 배터리였고, 당연히 동네 잡화점에는 없었다.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큰 매장에 가보려던 차라고 했다. 그의 차 조수석에 앉아 처음 가보는 동네까지 갔다. 그곳에도 없었다. 배터리는 내가 인터넷으로 사기로 했다. 배터리가 오면 확인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환불받기로 하고는 켜지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귀가했다. 집 근처까지, 역시 그의 차 조수석에 앉아 이동했다.
왕복 이십 분 정도를 둘만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판매 게시물에 아이들 키우느라 몇 번 사용 못 했는데 아이들은 어느덧 많이 컸다, 고 적어두어 사오십 대의 인물이 나오려니 했는데 그는 칠십 대쯤 되어 보였다. 이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가 먼저 많이들 놀란다는 말을 꺼냈다. 한때 수석을 모았고 그걸 정리하느라 인터넷 장터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자식들이 동네 사람들이랑 거래하는 앱이 있다고 알려주어 안 쓰는 물건들도 팔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의 계정에는 아흔 개가량의 거래 내역이 있다. 자전거부터 실습용 반도체 기판까지 다양하다. 수석도 몇 점 있고 잡다한 문구 몇 개를 이삼천 원에 올려둔 것도 있다. 앱을 쓴지는 반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오는 길에는 애호박과 버섯과 근대를 샀다. 애호박을 썰고 어제 냉장고 구석에서 발견한 팽이버섯, 양파와 함께 볶았다. 같이 있던 애호박은 색이 변했길래 버리기로 했고 오늘 산 버섯은 뜯지 않고 냉장고에 넣었다. 근대로는 된장국을 끓였다. 두부를 잘게 썰어 넣었다. 서울 살 적에 동생네에 갔다가 얻어 온 호래기젓 ― 꼴뚜기젓 ― 과 함께 먹었다. 잠시 여유를 피운 후 집을 나섰다.
편의점에 들러 복권을 샀다. 그다음에 나온 편의점에서는 택배를 부쳤다. 앞의 편의점도 택배 취급점일지도 모르는데, 택배 보낼 거리를 들고 있음을 미처 생각지 못해 확인조차 않고 복권만 사고 나왔다. 카페에서는 곧 써야 할 글에 참고할 글 두 편을 읽었다. 짧고 어렵지 않은 글이었지만 영어였으므로, 늘 그렇듯 집중엔 곤란을 겪으므로, 시간은 꽤 걸렸다. 카페 근처의 식당에서 곤드레밥을 먹고 귀가했다.
가방을 내려놓고는 얼른 세탁기를 돌리고 산책길에 올랐다. 조금 걷다가 문득 장을 보기로 했다. 사십 분쯤 걸어 대형마트에 갔다. 샐러드거리와 올리브유, 단호박, 요거트, 휴지, 냉동 채소… 꽤 이것저것 샀다. 계획 없이 나온 터라 장바구니가 없었으므로 쓰레기봉투를 달라고 했는데 없다고 했다. 대신 장바구니를 판다고. 오백원짜리 장바구니를 샀다. 녹색 배경에 곰이 그려져 있고 함께 가자는 문장이 적혀 있다. 친환경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물론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그냥 두꺼운 비닐 가방일 뿐이다. 알 수 없는 정책이다.
짐을 싸들고 집까지 걸었다. 갈 때는 시내를 지났지만 갈 때는 논밭 사이를 걸었다. (길을 잃었던 날) 가본 적이 있는 구간인데도 길이 낯설어 입구를 찾지 못했다. 휴대전화 지도 덕에 겨우 탈 없이 귀가했다. 가로등 없는 길을 한 시간 조금 넘게 걸었다. 별이 많이 보였다. 집을 나설 적에 서쪽에 낮게 걸려 있던 초승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집에 와서는 별 것 하지 않았다. 시간은 많이 흘렀다. 배를 하나 깎아 먹었고 빨래를 걷었고 새 빨래를 널었다. 그 사이 당첨번호가 발표됐을 복권을 맞춰보려 했는데 사라지고 없었다. 샤워를 했다. 샤워 전에는 재활용품을 내어놓으러 나갔는데 빈손으로 나가고 말았다. 이제 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