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Tariq Dana طارق دعنا, “Merchants Of Death: Israel’s Permanent War Economy,” Jadaliyya, 2024.05.31.

전례 없는 규모의 파괴와 그에 따른 종말적인 인도적 위기를 낳은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은 이스라엘 전쟁 경제 체제의 섬뜩한 본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전시 상황에 일시적으로 가동되는 방어 기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전쟁 경제는 이스라엘의 정착자-식민 정체성의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시온주의의 팔레스타인 식민화 초기부터 그랬다. 기실, 전쟁 경제는 이스라엘 식민국가/정착자사회 기획의 근간이며, 군사화된 사회 계약의 결정적 속성으로 기능한다. 또한 다양한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도 기능한다. 점령의 기반구조에 연료를 대고, 영토 확장을 가능케 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존재를 지우도록 조장하고,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며,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야욕에 힘을 실어준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전쟁 경제가 전시에 잠깐 나타나는 데 반해, 이스라엘의 전쟁 경제는 국내에서는 식민적 현상태를 유지시키고 국제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세력권을 넓히는 영구적·총체적 체제를 구성한다.
현재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이스라엘 경제의 토대가 되는, 그리고 —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중대한 함의를 갖는 — 이 체제의 작동·유지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네 개의 근간을 드러낸다.
첫째, 이스라엘 사회-정치적 담론 내 극단주의적 군사주의의 뚜렷한 부상. 이는 ‘제2의 나크바’[1]나 심지어는 가자에의 핵폭탄 투하를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인종학살적 수사가 확산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폭력적 망상들은 꾸준히 이스라엘 대중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최근 조사들에서는 유대계 이스라엘인 상당수가 이런 극단적 입장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도 없는, 비인간화하는 군사적 선택지가 적법한 정책으로 내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전에는 물론 작금의 맹공 중에도 확고하게 계속되고 있는, 사실상 폭격에 돈을 대고 휴전을 위한 노력을 좌절시키는, 합중국의 외교적·물질적 지원이다. 합중국 하원은 이스라엘에 추가로 145억 달러를 지원하는 안을 신속히 승인했다. 그런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비상 프로토콜을 가동해 15일이 소요되는 의회의 검토를 건너뛰고 서둘러 텔 아비브로에 무기를 보냈다. 이에 더해 합중국은 2023년 9월 12일,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워싱턴은 가자에서는 이스라엘의 파괴를 부채질하고 국제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책임을 면하도록 비호한다.
셋째, 전례 없는 민간인 대상 AI 기반 자율 무기 체계 사용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신무기 시험 활용은 포위 당한 가자를 최첨단, 살상 기술들을 시험할 지붕 없는 실험실로 활용해 온 유구한 패턴의 연장이다. 여러 조사를 통해 기술·무기 제조기업들이 가자에 갇혀 있는 인구를 세계 시장에의 판매에 앞서 제품을 개선하는 데 이용하고 반복되는 포위를 홍보 기회로 활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2]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군사 기업들은 이 대대적 파괴의 뒤를 잇는 수출 및 제휴의 급증을 기대할 수 있다. 이전의 공격들이 대규모 신규 거래를 터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무기망은 직접적인 재정적 횡재에 그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공식적으로 관계 맺기를 주저하는 나라들과의 외교적 이면 통로과 사실 상의 동맹을 제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연성 권력 이해관계에 기여한다. 본질적으로, 무기 및 군사 기술의 확산은 “강성 권력” 전력 증강자와 “연성 권력” 정치적 가교라는 두 역할을 모두 하면서 이스라엘 전쟁 경제의 기능을 더더욱 공고히 한다.
국가 수립 이전 시온주의 전쟁 경제
이스라엘 전쟁 경제의 기원들은 국가 수립 이전 시온주의의 팔레스타인 식민화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당시 군사력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고국을 설립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여겨졌다. 제에브 자보틴스키, 다비드 벤-구리온, 하임 바이츠만 등 영향력 있는 시온주의 지도자들이 이 군사주의적 접근의 틀을 잡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자보틴스키의 “철의 장벽” 독트린은 시온주의 기획을 지킬 가공할 만한 군사 역량을 요청했고 벤-구리온은 유대 국가 건설의 근간으로 군사적 우월성 정책을 주창했다. 그에 더해 바이츠만은 시온주의 대의에 대한 서구의 후원을 강조하면서 군사적 구상에 선진적인 과학과 기술을 통합하는 데에 집중했다.
시온주의의 팔레스타인 식민화는 군사화된 제도 건설을 수반했다. 이 과정에는 후일 이스라엘 전쟁 경제의 초석이 될 다섯 개의 핵심 영역이 있었다.
첫째, 최전선에서는 1948년에 — 하가나, 레히, 이르군 등 나크바 시기에 팔레스타인 마을들에서 종족 청소를 저지른 여러 시온주의 군사 조직들에서 유래한 — 이스라엘군이 창립됐다. 해당 군사 조직들은 유럽에서의 수입, 팔레스타인 내 영국군 기지 무기 전용, 현지 생산 등을 통해 첨단 무기를 확보했다. 둘째, 1920년대, 1930년대에 비공식적으로는 타아스TAAS라 불리며 시온주의 군사조직들에 경무기와 탄약을 제공했던 비밀 공장들을 거쳐, 무기 제조업이 태동했다. 타아스는 후일 국유 기업 이스라엘군사산업Israel Military Industries(IMI)으로 진화했다.[역주1] 셋째는 첩보·군사 기술 통합의 강조다. 하가나의 첩보기관 샤이Shai에서는 정탐과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고 나중에 라파엘첨단방어체계유한회사Rafael Advanced Defense Systems Ltd.로 탈바꿈한 과학부대에서는 무기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이스라엘 기술 부분과 군사 전략의 공생 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넷째, 이런 군사화적 틀 속에서 민간 기관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 테크니온, 하다사병원 등 대학들, 병원들이 시온주의 군사 조직 지원에 깊숙이 연루되어, 미래 국가의 군사 기반을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에는 외부의, 특히 1921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 식민 행정부의 지원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 영국은 정치적, 군사적 엄호를 통해 시온주자의자들이 군사적 기반구조를 구축하고 강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스라엘의 전쟁 경제는 이상의 영역들이 닦은 길을 통해 수립되고 성장했으며, 차츰 군사, 정보, 민간의 활동을 거대한 군사-산업 복합체로 융합 시켰다.
이스라엘 전쟁 경제와 군사-산업 복합체의 진화
1948년에 이스라엘이 만들어지면서, 국가 수립 이전 시기에 수립된 군사 기반 구조가 제도화되었다. 이스라엘군은 금세 이 정착자-식민 국가의 정체성과 전략적 방향성을 형성하는 1차적 추동력이 되었다. 중앙집중적 국가 계획은 군사적 필요에 맞추어 공공, 사기업, 노동 부문을 조정하면서 신흥 군사-산업 복합체를 조직했다. 군사적 고려사항들을 사회 조직 전반에 적용했으며 이것이 경제 정책, 사회 구조, 중산층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이스라엘에서 군사의 대두는 그 경제적 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의 정책들은 점차 군사 중심 경제 모델을 중심으로 삼게 되었으며, 이는 전쟁 대비 태세 유지를 위한 대규모 군비 지출과 상당한 해외 원조를 요했다. 이스라엘 GNP의 상당 부분이 군사 지출에 배정되어, 초기에는 10%였던 것이 1968년에는 20%로 늘었다.[3] 이 같은 경제 전략은 군사적 급선무가 산업의 우선 순위를 지정하는, 군사적 필요를 산업 발전과 긴밀히 결합시키는 공생적 순환으로 이어졌다. 산업 부문이 군사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진화하면서 이 관계는 피드백 루프를 형성, 산업계에 군사적 목표들을 한층 더 확고히 부과하고 이스라엘의 경제 및 산업 전반에 대한 군의 영향력을 배가시켰다.
군수 생산이라는 요충지는 이스라엘군수산업(IMI),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srael Aerospace Industries(IAI) 등의 국유 기업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군사 산업화를 진두지휘하고 세수, 고용,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1960년대에는 엘비트시스템즈유한회사Elbit Systems Ltd. 같은 회사들화 함께 사기업 부문이 생겨나, 여전히 국가가 주도하는 틀 안에서이기는 했지만, 전자전, 정보 기술 등의 영역에서 틈새시장을 개척했다.[4] 이스라엘 군사-산업 복합체의 또 한 가지 측면으로 히스타드루트Histadrut 노총도 들 수 있다. 히스타드루트는 군사 기업들에 [재정적, 인적으로] 막대한 투자를 해 노동자 및 노동조합을 군사-산업 복합체에 통합시키는 연결망을 형성했다.
이스라엘의 군사-산업 기반은 1967년까지는 서구, 특히 프랑스와 나중에는 합중국의 군사 원조에 의존했다. 서구 열강들에 있어 이 지원은 냉전 시기 아랍 민족주의 및 공산주의에 대응하고 이스라엘을 서구의 이해관계 편에 서는 역내 대리자로 확립하는 두 가지 전략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때 이스라엘의 군비 지출은 사상 최고 수준인 GDP의 31%에 달했다. 이 변화는 여러 가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군사 관련 고용이 치솟은 노동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에는 이스라엘 노동력의 절반 가량이 직간접적으로 군사 산업에 관여했다.[5] 동시에, 연구·개발 재정지원(R&D) 분야에서 군사적 목적의 자원 할당이 극명하게 두드러졌다. 총지출의 약 65%를 군사 부문에서 가져갔고, 반대로 민간 산업에는 겨우 13%만이 배정되었다. 합중국 정부회계감사국 보고서에서 지적된 대로, 합중국-이스라엘 동맹이 강화되면서 이스라엘은 구조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기술적 지원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1980년대 중반에 신자유주의 경제로 전환했고, 여러 국영 산업체가 대대적으로 사유화[민영화]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군사 기업들에 대해, 그리고 군사 부문의 사유화 과정들에 대해 상당한 통제력을 유지했다. 이 과정은 또한 전쟁 경제의 틀 내에서 시장 원칙들을 전략적으로 조율해 가면서 선별적으로 진행되었다.
9.11. 이후 시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들에서의 경험을 활용해 도시 군사주의와 안보화의 모범을 자처했다.[6] 이스라엘의 안보 기업들은 합중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과 새로 부상한 반란진압 및 감시 패러다임에 가세하면서 실전에서 확인된 기술들을 수출해 호황을 누렸다. 이스라엘이 도시전 및 반란 집안 기술 전문가로 이미지를 바꾼 것은 그저 시장 주도적 현상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의 식민 경험을 동시대 세계 안보 패러다임에 맞춘 전략적 재편이기도 했다.
군사주의와 민족주의
이스라엘의 사회적·민족적 정체성은 특유의 군사주의, 민족주의 혼합체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군대는 결코 그저 군사력이라고만은 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 사회 전체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면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스라엘의 징병제는 민간 생활과 군 생활이 얽혀 있음을 더더욱 잘 보여준다. 유대계 이스라엘 시민은 거의 모두가 의무 복무에 임하며, 예비군 제도는 그들을 40세가 될 때까지 군사 활동에 붙잡아 둔다.
이 영향은 전통적인 민-군 경계를 넘어선다. 정치적 사회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교육, 언론, 경제 개발, 유대 이민자 통합 등 다양한 영역에 관여한다. 군사주의는 그저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유대인의 집단적 의식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초석이다.[7]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나라들 중 하나다.
예컨대 교육과 학술 분야에 군사주의가 통합되어 있어, 어린 시기부터 제도적 문화들이 군사주의적 태도를 정상화, 영속화한다. 대학은 전투 기술 및 군사 훈련법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이 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맡는다. 탈피오트Talpiot와 하바찰로트Havatzalot 같은 전문 프로그램들이[역주2] 군사·안보 기술 스타트업에서 일할 학생들을 양성함으로써 전쟁 경재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한다.
상당 부분이 군사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나는 이스라엘의 첨단기술 산업은 이스라엘 경제의 핵심적인 근간으로, GDP의 18.1%, 고용의 약 14%를 담당한다. 조달 계약, 협력 사업, 기술이 잠재적으로 다용도로 쓰일 수 있기에 들어오는 투자 등 군과의 연계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내면서 신생 스타트업과 기성 군사·안보 기업들을 아우르는 약동하는 생태계를 성장 시킨다.
합중국의 군사적 후원
합중국-이스라엘 관계의 중심에는 —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합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보조하고 그 대가로 상당한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받는 — 후원자-고객 역학이 있다. 이 관계는 두 나라 사이에 상호 강화적인 아제국적 관리자 체제sub-imperial stewardship를 형성한다.
이 파트너 관계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기반구조를 떠받치는 합중국의 원조다. 1949년부터 1922년까지, 이스라엘은 합중국으로부터 1,580억 달러가 넘는 군사 원조를 받았다. 이 원조는 이스라엘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국가 예산 총액의 3%, GDP의 약 1%, 국방 예산의 20%, 군 예산의 40%, 그리고 조달 예산의 거의 전부에 해당한다. 제2차 인티파다와 2023년 대가자 전쟁에서 볼 수 있듯, 합중국의 원조는 위기 시에 늘어나곤 한다. 이런 지원은 주로 대외군사재정지원Foreign Military Financing(FMF) 프로그램과 합중국 국방부의 공동 프로젝트 펀딩을 통해 제공된다. 이 이스라엘 원조에는 지원 받은 재정의 25-30%를 국내 무기 구매에 쓸 수 있다는 독특한 조항이 있다. 다른 수령국들에 적용되는, 합중국제 상품만 구매할 수 있다는 표준적인 조건과는 뚜렷이 대비된다.[8] 의회 보고서는 이 원조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병력을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정교한 군대 중 하나로 만드는 데에 기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원조의 핵심 동력은 이스라엘의 질적 군사 우위Qualitative Military Edge를 유지하려는, 즉 역내 다른 행위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월성을 확고히 하려는 합중국의 정책이다.
합중국-이스라엘 전략적 동맹은 1948년 이스라엘 수립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 관계가 현저히 깊어진 것은 1967년 전쟁 이후의 지정학적 분위기 속에서다. 닉슨 행정부는 이스라엘을 범아랍주의와 역내 소비에트 영향력에 대한 중요한 대항마로 보고 합중국의 지원을 대폭 늘렸다. 이 변화는 합중국의 군사 원조가 1968년 3억 6천만 달러에서 11억 5천만 달러로 치솟고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직전에는 8배로 증가한 22억 달러로 정점에 이른 데서 확인할 수 있다.[9]
레이건 행정부는 이스라엘을 “주요 비나토非NATO 동맹”으로 분류해 이 관계를 한층 더 강화했다.[10] 이 시기 합중국은, 특히 공동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이스라엘의 군사-기술 역량에 크게 기여했다. 이 파트너 관계는 기술 발전을 가속했을 뿐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이 합중국 군사 기술에 의존하는 구조로 이어졌다. 애로우Arrow 탄도 미사일 요격 체제, 라비Lavi 전투기, 메르카바Merkava 탱크, 아이언 돔Iron Dome 미사일 방어 체계 등의 사업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모두 합중국제 부품을 쓰거나 합중국의 대대적 재정 지원을 받아 공동으로 생산한 것들이다.
합중국의 이스라엘 군사 원조는 2016년 오바마 행정부 하에서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원을 크게 늘리는 획기적인 협약을 맺은 것이다. 이로써 합중국의 군사 원조는 연간 31억 달러에서 10년 간(2019-2028) 매년 38억 달러, 총 380억 달러로 늘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이것이 “합중국 역사상 단일 규모 최대의 양자간 군사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재정 지원은 이스라엘 국방 예산의 1/5을 상회한다.
합중국 군사 체제에의 의존은 이스라엘 군사 기업들의 경쟁 구도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기업들은 GPS, 내비게이션, 훈련 프로그램, 광학 장비, 사이버 안보 솔루션 등 특수 전자 요소를 중심으로 하청을 받아 합중국에서 제작된 시스템을 증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관계는 합중국 기업들이 조건을 설정하고 이스라엘을 합중국 군사-산업 복합체에 속하는 종속적 행위자로 만드는 권력 역학을 반영한다.
실험실로서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은 살상 기술의 주요 생산자이자 수출자이다. 그런 기술들을 가자, 서안, 레바논, 시리아 등지에서 사용한 후 “실전에서 시험했다battle-tested”며 수출한다. ‘실전 시험’이라는 말은 원래 실제 전투에서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 상업적으로 호소력 있는 주장이다 — 뜻이지만 이 경우에는 붙잡혀 있는 민간인 인구를 대상으로 살상 기술을 시험하는 잔학한 일을 두고 쓰인 것이다.[11]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의 근저에는 반란대응 독트린의 철두철미한 진압 전략이 있다. 이 전략은 압도적인 힘을 써서 민족 권리에의 열망을 억누르며, 점령지, 특히 가자를 군사·안보 기술을 실제로 시험하는 장으로 삼는다.
이스라엘 전쟁 경제의 핵심 생산품 중 하나는 무인항공기unmanned aerial vehicles(UAVs), 즉 드론이다. 이스라엘은 드론 기술의 거물로, 2017년 현재 세계 드론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2025년에는 이스라엘 군사 하드웨어의 1/3이 무인 시스템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스라엘의 드론 기술 개발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의 시험 운용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드론은 이스라엘 군사 작전 거의 전부에 투입되며 가자를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데에도 쓰인다.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벌이는 전쟁들에서 특히 드론을 대규모로 활용해 수많은 공격, 피사일 폭격, 법외 처형을 일삼는다. 이런 처사는 가옥, 공공 건물, 병원, 학교 등 민간 기반시설의 광범위한 파괴를 야기하며, 심각한 윤리적, 인도주의적 우려를 자아낸다.
가자는 이스라엘의 전쟁 경제에서 두 가지 역할을 맡으며, 이를 통해 식민 폭력 및 전쟁의 행위들은 군사적, 상업적 목적에 종사하게 된다. 첫째, 가자는 새로운 죽음 기술들의 생명정치적 실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세계 최대의 드론 암살 및 대량 살해 시험장이 되어버렸다. 인간 실험체로서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잔인성이 상품화되는 끔찍한 현실을 보여준다. 가자에서 감시, 표적 확인, 공격 실행에 쓰는 드론의 활용폭은 군사적 교전에 국한되지 않고 폭력적인 집단 처벌과 종족 청소로 뻗어간다. 둘째, 가자는 이스라엘 군사 기업들의 “전시장” 노릇을 하며 기업들이 새로운 상품을 시연할 수 있게 해준다.[12]
2008년부터 2023년까지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에는 전부, 그 전략의 중심에 드론이 있었다. 스파이크Spike 자체 유도 미사일 등 첨단 기능을 탑재한 엘비트시스템즈의 헤르메스Hermes나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의 헤론에이탄Heron Eitan 같은 모델들이 공격의 핵심을 맡았다. 매번의 가자 공격은 이런 드론들을 위한 시험장이자 개발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드론 개선과 상업적 판매로 이어진다.
이 역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스라엘이 2014년 가자 군사 공격 때 헤르메스900 드론을 실전 투입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보호의 칼날” 작전으로 아동 500 명 이상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2,000 명이 살해 당했다. 드론의 살상력을 보여준 이 공격으로 드론 제조사들은 떼돈을 벌었고, 엘비트시스템즈 같은 기업들의 시장 가치가 크게 성장했다. 이 전쟁의 수익성은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에 방위 산업의 호재로 기록되었다. 이스라엘 전쟁 경제에서 끊임없는 군사 작전을 통한 신무기 시험과 상업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교로서의 무기 수출
지난 수십 년 사이 주요 무기 수출자로 떠오른 이스라엘은 개발한 군사 시스템의 70-80%를 해외에 판매한다. 이 같은 무기 수술은 이스라엘 산업 수출의 25% 가량에 해당한다. 무기 수출이 대외 무역 및 세입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부터 208년 사이, 이스라엘은 세계 무기 수출의 3.1%를 차지한, 세계 8위 무기 수출자였다.[13] 이스라엘의 무기 판매는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으며, 특히 새로운 아랍 국가 시장의 문을 연 2020년 아브라함 협정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다. 아랍 파트너들에의 판매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이스라엘의 군사 수출은 2021년 113억 달러, 2022년 125억 달라러는 기록을 세웠다.
전통적으로는 이스라엘 무기 수출은 국유 기업들 중심이었다. 하지만 사유 보안 기업의 참여가 늘고 있으며, 그 상당수는 군 출신 인사가 설립한 기업이다. 마갈보안시스템Magal Security Systems, 이스프라Ispra, 컴버스Comverse, 라다전자산업RADA Electronic Industries, 체크포인트Check Point 등, 이런 기업들은 대개 이스라엘에 본사, 합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지사를 둔다. 첨단 기술 회사로 분류되[어 군사 기술 개발 여부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이스라엘의 무기 수출은 금전적 수익성을 넘어, “무기 외교”라는 형태로 대외 정책의 전략적 도구로 기능한다. “무기 외교”는 정상화 촉진과 동맹 강화라는 두 가지 주요 목적에 초점을 두고 행해진다.
첫째, 무기 수출은 이스라엘이 국제 관계, 특히 기존에 공개적 수교를 피했던 정부들과의 관계를 확장하는 수단이다. 이 전략의 최근 모습으로 일부 걸프 연안 아랍 국가와의 군사-안보 무역 확대를 들 수 있다.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은밀한 관계에서 보다 공공연한 파트너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에 총] 30억 달러 규모의 이스라엘 군사·안보 기술을 이전하기로 한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이 군사 기량을 활용해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지정학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역내 정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다.
둘째, 이스라엘은 내적 위기나 외적 위협을 마주 하고 있는 동맹 체제들을, 종종 스스로의 지정학적 이해 관계에 맞추어, 지원하는 데에 무기 수출을 활용한다. 1970년대, 198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 중앙 아메리카의 군사 정부는 이스라엘 무기 수출의 주요 상대로, 이 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판매한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를 비롯해 우익 군사 독재 정부나 그 학정에 공모하는 운동들을 지원했다.[역주3]
냉전 이후 시기에 이스라엘의 무기, 안보 기술은 계속해서 여러 분쟁 및 전쟁 범죄와 이어졌다. 예컨대 1994년 르완다 인종학살 당시 이스라엘 군사 기업들은 레이더, 교통 수단, 공격용 소총 등 군사 장비를 투치족 학살에 가담한 르완다 극단주의 세력에 판매하는 데 연루되었다. 2013년 수단에서 이스라엘 무기가 남수단 군사조직들에 넘어가 사람들을 처형하고 마을들을 통째로 파괴하는 데 쓰인 사례도 있다. 보다 가까이는, 미얀마군에서 2016-2017년에 로힝야족 종족청소에 이스라엘제 소총과 미사일을 사용했다. 이스라엘 군사 기술은 반대파를 억압하는 체제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최근의 페가수스Pegasus를[역주4] 비롯해 이스라엘 기업들이 국내외 반체제 인사를 노리는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하는 사이버 첩보전 제품을 통해서다.
결론: 이스라엘의 전쟁 도구와 팔레스타인 및 그 너머에의 위협
2023년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적 가자 공격은 이스라엘 정착자 식민주의에 내재하는 상시적 폭력과 추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인종학살 공격은 결코 외떨어진 사건이 아니며, 1948년 나크바 이후 확립된 역사적 패턴의, 그 뒤를 이은 수많은 전쟁과 폭력적 충돌의 일환이다. 이런 행태를 떠받치는 것이 바로, 정착자-식민적 시도를 용이하게 할 뿐 아니라 그로부터 수익을 내는, 이스라엘의 전쟁 경제다.
이처럼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이스라엘 전쟁 경제의 영향은 팔레스타인의 맥락을 넘어 역내 안정, 세계 평화, 자기결정과 정의라는 국제적 규범들에 크나큰 위협을 가한다. 앞날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의 정착자 식민주의와 그 억압·파괴 수단의 생산 및 수출에 저항하는 것은 그저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사회의 진지한 고민이 되어야 한다.
* 이 글은 2024년 1월 29일에 《맥락으로 보는 안보》에 먼저 실렸다.
↥1 “나크바”는 “재앙”을 뜻하는 아랍어로, 1948년에 시온주의 군사조직들이 일으킨 일련의 종족청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 일로 팔레스타인 인구 대다수가 자신들의 집과 땅에서 쫓겨났으며, 뒤이어 팔레스타인 도시·마을의 폐허 휘에 이스라엘이 만들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Bishara, A. (2022). Palestine: Matters of Truth and Justice. Hurst Publishers., Pappe, I. (2007). 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 Simon and Schuster 등을 참고하라.
↥2 예로 다음을 보라. Loewenstein, A. (2023). The Palestine Laboratory: How Israel Exports the Technology of Occupation Around the World. Verso Books. Dana, T. (2020). A cruel innovation: Israeli experiments on Gaza’s great march of return. Sociology of Islam, 8(2), 175-198. Zureik, E., Lyon, D., & Abu-Laban, Y. (Eds.). (2011). Surveillance and Control in Israel/Palestine. Routledge.
↥역주1 2018년에 엘비트시스템즈에 매각되었다.
↥3 Carmi, S., & Rosenfeld, H. (1989). The emergence of militaristic nationalism in Israel. International Journal of Politics, Culture, and Society, 3, 5-49.
↥4 Hever, Shir (2017). The Privatization of Israeli Security. London: Pluto Press.
↥5 Mintz, A. (1985). 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American concepts and Israeli realities.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29(4), 623-639.
↥6 Zureik, E., Lyon, D., & Abu-Laban, Y. (Eds.). (2011). Surveillance and Control in Israel/Palestine. Routledge.
↥7 예로 다음을 보라. Bresheeth-Zabner, H. (2020). An Army Like No Other: How the Israel Defense Forces Made a Nation. Verso Books. Kimmerling, B. (2001). The invention and decline of Israeliness: State, society, and the military. Univ of California Press.
↥역주2 고등학교 졸업자 중 우수 인재를 선발해 대학 학비를 지원하는 전문 장교 양성 프로그램. 선발자는 관련 전공 이수와 동시에 군사 훈련을 받은 후 장교로 복무한다. 전자는 과학기술 전문 장교, 후자는 정보 전문 장교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는 (기존 과학기술전문사관 제도에 더해) 탈피오트를 벤치마킹한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를 2028년에 개교할 예정이다. 카이스트 교수진이 과학기술 교육, 국방대학교 교수진이 군사 교육을 맡으며, 졸업생은 국방과학연구소 및 각 군 연구기관에서 복무하게 된다.
↥8 Hever, S. (2018). The privatization of Israeli security. London: Pluto Press.
↥9 Wenger, M. (1990). US Aid to Israel: From Handshake to Embrace. Middle East Report, (164/165), 14-15.
↥10 Cobban, H. (1989). The US-Israeli Relationship in the Reagan Era. Journal of Conflict Studies, 9(2), 5-7.
↥11 Loewenstein, A. (2023). The Palestine Laboratory: How Israel Exports the Technology of Occupation Around the World. Verso Books.
↥12 Musleh, A. H. (2018). Designing in Real-Time: An Introduction to Weapons Design in the Settler-Colonial Present of Palestine. Design and Culture, 10(1), 33-54.
↥13 Wezeman, P. D., et al. (2020). Trends in International Arms Transfers, 2019. SIPRI Fact Sheet.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March 2020.
↥역주3 “1970년대, 80년대 동안 이스라엘은 합중국의 대리자 노릇을 하며 라틴아메리카 남부와 중앙아메리카에서 권위주의 체제들과 처형 부대들에 반란 진압 전술을 교육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독재정부들, 그 군대들과 전략적 동맹을 맺은 데에는 정치적 목적 뿐만 아니라 경제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1980년대 이스라엘 무기 수출의 1/3이 이 지역을 상대로 행해졌다. 역사학자 헤라르도 레이브너가 지적하듯, 이스라엘의 협조는 이 체제들에 외교적, 정치적 비호를 ― 또한 아마도 첩보를 ― 제공했다. [후략]” 마리아 란디, 〈얄라, 얄라, 아비야 얄라 ― 라틴아메리카의 팔레스타인 연대, 그 역사와 미래〉, 《몬도와이스》, 2025.
↥역주4 “오늘날 상용되는 가장 진보한 스파이웨어 기술은 아마 이스라엘의 페가수스일 것이다. NSO 그룹에서 개발한 페가수스는 사용자가 무언가 하지 않아도 ― 메시지, 이메일, 사진, 위치 정보에 전부 접근할 수 있도록 ― 스마트폰을 몰래 감염시키며 심지어는 원격으로 마이크나 카메라를 켤 수도 있다.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에 살해 당하기 전에 그의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전화기에서 페가수스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에서 국가 부패와 카르텔 범죄를 조사하던 언론인, 활동가, 인권 옹호가들에게도 사용되었다. 팔레스타인 활동가들, NGO 직원들의 기기에서도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타리크 케니-샤와, 〈21세기에 혁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네이션》, 2025.
↥14 Bahbah, B., & Butler, L. (1986). Israel and Latin America. In Israel and Latin America: The Military Connection. Palgrave Macmilla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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