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와 이리의 서사시 (가산 카나파니, 1972)

원문: Ghassan Kanafani, “The Epic of the Goat and the Wolf,” The New York War Crimes, n.d. (original work published in 1972).[역주1]

카나파니가 베이루트에서 열일곱 살 조카딸과 함께 모사드 요원들에게 암살 당하기 몇 달 전에 출간된 말년의 글 중 하나이며 영어로는 이 지면에서 처음 번역된 이 글에서, 팔레스타인의 저술가이자 혁명가인 그는 서구 언론과 그 팔레스타인 “보도”를 읽는 것이 얼마나 분노가 치미는 일인지 보여준다.

아랍인들은 외국인들과는 — 특히 이스라엘인들과는 — 다른 것으로 만들어져 있음이 틀림 없다. 다비드 엘라자르는[역주2]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습 중에 민간인 사상자를 낸 데에 매우 정중한 어조로 “불가피한 일이 벌어진” 것에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이스라엘에서 널리 쓰는 “좋은 아랍인은 죽은 아랍인”이라는 슬로건의 연장선 상에 있다.

나도 지난 주 내내 문학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대신 신문을,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보도들을, 외교 언어의 달인들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에서 한 연설들을 읽느라 바빴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에 가장 알맞는 문학 작품은 어린 시절에 배운 염소와 이리에 관한 짧은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 뿐만 아니라 적어도 1200만 아랍인들도 그럴 것이다. 정중한 늑대가 마실 시냇물을 더럽혀 흙탕물로 만들었다는 — 정작 염소는 늑대가 터를 잡은 전략적 요충지의 하류에서 물을 마셨는데 — 안쓰러운 염소 이야기 말이다.[역주3] 적어도 1967년 이래로 점령이 바로 이런 형국이다.

첫 번째 로드 공항 사건, 두 번째 로드 공항 사건, 그 뒤를 이은 이스라엘의 공격들에 대한 신문 기사와 그들의 논평을 읽었다.[역주4] 이보다 더 어리석을 수는 없는 세상에 분통이 터져 신문을 덮었다. 석기 시대로부터 수백만 년이 지났는데도 황금률은 여전하다. 제일 큰 돌을 든 놈, 제일 굵은 몽둥이를 든 놈, 제일 못된 불량배 — 그 놈이 곧 정의다!

이스라엘 군사 논리 전문가 제브 시프는 이스라엘이 사베나 항공기를 납치한 투사 알리 타하Ali Taha가 그 일을 통해 상상도 못할 용기를 보여주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날 나는 제브 시프가 인정했으니 사베나 납치 작전이 결국은 성공한 것일지 아니면 그의 말이 실은 아흔아홉 줄에 걸쳐 사자가 얼마나 용맹하고 강한지를 묘사하고는 백 번째 줄에서 사자를 죽여버리는 옛 아랍의 모욕 시 같은 것일지를 궁금해 했다.

신께서는 내게 한 달을 참게 하셨으나 이런 논리가 밀고 들어와 로드 공항을 습격한 투사들을 겁쟁이들이라 한다! 신께 찬양 올리리! 조금 더 기다리고 있자니 — 세상에나 — 똑같은 사기꾼놈들이 데이르 엘 아샤예르Deir el Achayer에는 새총 하나조차 없는 것을 알면서도 스카이호크나 팬텀을 타고 흙벽돌 집들에 2,500 라틀짜리 폭탄을 투하한 이스라엘 조종사들의 “용맹함”을 칭송한다.

이 모든 것을 두고 프랑스 신문 《렉스프레스L’Express》 편집자들은 저항 투사들의 공격을 “아랍 세계의 정통파들은 이슬람의 영향을 너무 받아서 이제 점령지에 평화롭고 조용하게 앉아 있는 온순한 민간인들에게 야만스러운 행위를 자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나는 홀로 뇌까렸다. “서구의 정신은 얼마나 망가졌길래 이다지도 더럽고 비겁하단 말인가. 히틀러나 로젠베르크 같은 치들이아 할 말이 아닌가?” 《렉스프레스》에서는 [레바논] 남부의 힘 없는 마을사람들에게 쏟아진 죽음의 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흉폭한 작전을 “군사적 대응”이라 칭하는 쪽을 택했다.

라디오 런던은 신사들의 생각을 건드리지 않는다!

혼잣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타임》지는 《렉스프레스》나 《누벨 옵세르바퇴르Nouvel Observateur》 수준까지 떨어지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기사를 읽다 이런 문장들을 마주쳤다. “그저 아랍인들이 유대인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어째서 일본인들이 푸에르토리코 순례자들을 살해해야 하는가?” 이상도 하지! 그 필자는 정말로 적어도 “… 단지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서로 싫어한다는 이유로”라고 쓸 수도 없었던 것일까? 그런 거라면, 《타임》이 원한 것은 가짜 객관성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는 “어쩌면 라디오 런던은 보다 합리적일 거야…” 하고 말했다. 하지만 들어보니 더더욱 고약했다. 영어 방송을 할 때 라디오 런던은 런던에 사는 신사들의 생각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남레바본 공격 중에 이스라엘의 비행기에서 떨어진 폭탄으로 사망한 수백 명에 관해 아무것도,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뉴욕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르 피가로》, 《르 몽드》, <라 스탐파La Stampa》, 《디 벨트Die Welt》로 넘어갔다. 모두들 속에 똑같은 슬로건을, 요즘 널리 통용되는 슬로건을 품고 있다. “좋은 아랍인은 죽은 아랍인 뿐이다” 말이다! 어제 라디오 런던은 무덤덤하게 “B-52기가 후에Hue시 곳곳에 폭탄 20톤을 투하했습니다.” 그냥 이런 식이다. 이게 끝이다!

혼잣말을 한다. “오, 처량한 아랍인들이여!” 로드 [공항] 투사들이 한 일이라고는 그곳에서 2분 동안 각각 총알 백 발을 쏘고 수류탄 한 두 개를 던진 게 전부다. 피점령지의 심장부에서, 전략적인 위치에서, 우리에게 매 순간 죽음을 맛보게 하는 적을 향해…. 이것은 폭력, 야만, 살인, 도륙, 만행이라 불린다. 반면에 무수한 베트남 가옥들 위로 다섯 시간도 안 되는 사이 쏟아진 저 2천 톤 — 다시 말해 수백만 킬로그램의 죽음 — 은, 두세 달을 붙잡고 고문하며 수이 죽여주지도 않는 플라스틱[원문 그대로임] 파편을 날리는 폭탄들은… 해방이 아니라 점령을 목표로 하는 이 집단 범죄는 신문과 방송사의 어휘록에서 “전략적 공습Strategic Raid”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투사 말고 전투기! 오, 처량한 아랍인들이여!

하지만 — 투사 세 사람이 아니라 — B-52 전략 폭격기 세 부대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하찮은 기관총이 아니라 — 한 시간에 2000톤을 쏟아 붓는 충분한 화력이 있었더라면, 당신도 《렉스프레스》, 《뉴욕 타임즈》, 라디오 런던 같은 사고방식을 갖게 되리라. 그리고 발트하임이,[역주5] 그의 명민한 사고방식 대로, 당신의 말을 들어주리라. 허나 애석하도다! 바른 사고방식이 병균에 시달리고 거짓된 사고방식이 수천 킬로그램의 근육으로 무장할 때에는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있은 후에 텔아비브를 대표해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한 요제프 테코아는[역주6] 세계가 “가치가 덜하기라도 하다는 듯, 유대인의 피”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제 아무리 역사가 뻔뻔함으로 가득하대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테코아는 공직자들이 반복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히 이스라엘인 한 명이 아랍인 백 명에 맞먹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하는 나라를 대표한다. 게다가 그들은 그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행동한다. 그들의 계산기는 키리아트 시모나 정착촌 바주카포 공격으로 나온 사상자 수에 맞추려면 남부 마을사람들의 피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쉬지 않고 계산한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을 읽은 후에 — 특히 정부의 영리한 “대응”을 꼼꼼히 살피고 우리의 문화적 지형을 짚어 본 후에 — 나는 우리가 염소, 이리, 냇물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있는 듯해서다. 금후로, 그리고 우리의 몸들이 투쟁의 태세를 갖춘 근육으로 터져 오를 때까지, 염소와 이리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문학의 힘이 우리의 유일한 서사시가 될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가 듣는 아랍 지도자들의 공식 발언은 전부 그저 우는소리다!


역주1 아랍어 원문은 이것인 듯하다. 아랍어는 읽지 못하는데, 기계번역본에 따르면 “가산 카나파니가 1972년 7월 8일에 암살 당하기 얼마 전에 쓴 이 글은 1972년 7월13일에 레바논 잡지 《알-사야드Al-Sayyad》에 실렸다. 원래는 그가 언론에 글을 실을 때 썼던 필명인 “파리스 파리스Faris Faris”라는 가명으로 발행될 예정이었다.” 1996년에 발간된 가산 카나파니의 풍자문 선집에 실렸다.

역주2 당시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역주3 이솝우화에서는 이런 이야기다.
 
어린 양 한 마리가 개울가에서 갈증을 풀고 있다. 그런데 그와는 좀 떨어졌지만 샘 가까이에서 늑대가 역시 물을 먹고 있다. 늑대가 어린 양을 보자마자 소리친다.
“너는 무슨 심사로 내가 마시려고 하는 물을 흐려 놓느냐?” 그러자 어린 양이 조심스럽게 대꾸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나는 여기 아래쪽에 있고 당신은 멀리 위쪽에 있는데요. 개울물이 당신 있는 곳에서 내 쪽으로 흐르고 있어요. 저를 믿으세요.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에게 못된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거 봐, 너는 지금 네 애비가 6개월 전에 하던 짓을 하고 있어.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데, 그 때 너도 함께 있었지. 하지만 내가 남을 비방한 대가로 네 아비의 가죽을 벗길 때 간신히 달아났지!” 그러자 어린 양은 벌벌 떨면서 애원한다.
“아이고 늑대님! 나는 이제 태어 난지 겨우 4주 밖에 안 되는데요.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셔서 저는 아버지를 전혀 모릅니다. 어떻게 제가 아버지 대신에 보상하죠?”
“이런 뻔뻔한 놈 같으니! 죽느냐 사느냐. 나는 네 온 종족이 나를 미워하는 것을 알지. 그래서 나는 복수를 해야겠다.” 늑대는 화가 잔뜩 난 척 이빨을 드러내면서 말을 마친다.
주저하지 않고 늑대는 어린 양을 물어뜯어 먹어 버렸다.
양심이란 아주 대단한 악한에게서도 미동한다. 악한도 악한 행동을 할 때 양심을 달래기 위한 핑계거리를 찾는 법이다.”
 
(이규영, 「‘늑대와 어린 양’ 우화에 관한 비교 연구 — 이솝, 파에드루스, 라 퐁텐, 루터, 레싱을 중심으로」, 116-117쪽, 『독일어문학』 14(4), 2006, 113-132쪽.)

역주4 1972년 5월 8일, 검은구월단 소속 4인이 브뤼셀발 텔아비브행 사베나 571호기를 납치해 로드 공항에 착륙시킨 후 이스라엘에 승객과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맞교환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협상에 응하지 않고 알리 타하 등 두 명을 사살하고 두 명을 체포했다. 그 과정에서 인질 한 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30일,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의 요청으로 일본의 적군파 활동가 3인이 공항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해 24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두 명은 현장에서 자폭했고, 한 명은 이스라엘에 체포되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근거지로 지목된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했고, 아래에 언급된 데이르 엘 아샤예르의 경우 250명 가량의 주민 중 아동을 포함해 16명이 사망했다.

역주5 쿠르트 발트하임. 오스트리아의 정치인으로 당시 국제연합 사무총장이었다.

역주6 당시 국제연합 주재 이스라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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