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Sarah O’Neal, “Gaza’s Queer Palestinians Fight to Be Remembered,” The Nation, 2023.11.16.
온라인 플랫폼 〈지도를 퀴어하게Queering the Map〉를 통해, 퀴어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는 영원토록 살아간다. 온 세상을 향해 그들의 존재를 외친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계속되면서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지워져 간다. 일가족의 가계도가 뿌리째 뽑혀 불탄다. 이런 소멸은 사람들의 몸을 물리적으로 상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후세에 지식, 이야기, 관습, 문화를 물려주지 못하게 만든다. 다른 인종학살들에서도 그렇듯, 이 말소의 목적은 사람들의 목숨은 물론 집단의 기억까지도 지워버리는 것이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것이 사라진다. 이미 사회의 주변부에 놓여 있는 가자의 퀴어, 트랜스들에게 이 같은 말소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부는 실은 전 세계 동성애혐오 세력과 공조하면서도 이스라엘국을 — 퀴어는 하루도 살아남지 못할 팔레스타인과는 다르다며 — LGBTQ의 안식처로 내세운다. 이 “핑크워싱pinkwashing”은 퀴어 팔레스타인인들의 존재를 지우는 이스라엘 프로파간다의 일환이다.
팔레스타인해방을위한워싱턴대행진에서 퀴어 참가단과 함께 행진한 스티븐 스래셔Steven Thrasher는 《몬도와이스》에 이렇게 적었다.[역주1]
하지만 이 거짓된 도덕적 우월성은 이스라엘이 LGBTQ 팔레스타인인들이 (또한 갈수록 합중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탁할 뿐더러 10월 7일 전에도 아파르트헤이트 하에 있었던 그들의 끔찍한 현실을 은폐한다. 이스라엘과 합중국의 핑크워싱은, 자기네 정부와 광신자들의 치명적인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는 없는 일인 양 굴면서, 팔레스타인을 생래적으로 동성애혐오적, 트랜스혐오적인 곳으로 비난한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은 LGBTQ 팔레스타인인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은 그들이 사는 거기에서는 도저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 다시 말해 보다 “문명화된” 사회, 즉 백인적이고 유럽적인 사회로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는 — 함의를 풍긴다.
하지만 LGBTQ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그들 주위의 세계를 파괴하는 가운데에서도 이런 서사들에 맞서고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길들을 찾아 낸다. 그 중에 상호작용형 웹사이트 〈지도를 퀴어하게〉가 있다. 이용자가 세계 어느 곳에든 자신의 퀴어하고 트랜스한 경험들에 관한 사연과 기억을 기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사이트는 뤼카 라로셸Lucas LaRochelle이 퀴어들이 올린 글을 모아 전 지구적 퀴어 기억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2017년에 연 곳이다.
이런 게시물이 있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걸 죽기 전의 기억으로 남겨 두고 싶어. 나는 무슨 일이 생겨도 집을 떠나지 않을 거야. 제일 후회되는 건 이 남자한테 키스하지 않은 거야. 그는 이틀 전에 죽었어. 서로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야기했지만 키스를 하기엔 내가 끝내 너무 부끄러웠어. 그는 폭격으로 죽었지. 나의 커다란 일부도 같이 죽어버린 것 같아. 그리고 나도 곧 죽겠지. 유누스, 천국에선 너에게 키스할게.

이런 것도 있다.
늘 우리가 햇볕 아래 함께 앉아 있는 상상을 했어. 마침내 자유롭게, 손을 잡고서. 우린 갈 수 있다면 어디에 갈 건지, 온갖 곳 이야기를 했었지. 그런데 이젠 네가 떠나버렸어. 쏟아지는 포탄이 너를 앗아갈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기꺼이 온 세상에 말했을 텐데. 겁쟁이라 미안해.
몇 줄 안 되는 글로, 이 익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사람이 스러질 때 잃게 되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게시 일자는 표시되지 않지만, 이런 글들이 가자에 올라와 있다.
이스라엘은 2022년 내내 가자 지구를 공습했다. 2022년 8월의 사흘짜리 공습은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46명, 부상자 350명을 냈다.
글을 올린 이들의 연인이나 그들이 짝사랑했던 이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이스라엘의 어떤 미사일인지는 알기 힘들다.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당하는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남기는 트라우마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또 이런 글도 있다.
내가 내 첫 [짝사랑 상대]에게 키스했던 [곳]. 가자에서 게이로 사는 건 힘들지만 재밌기도 했다. 동네 남자아이들 여럿과 입을 맞추었다. 다들 어느 정도는 게이였던 것 같다.

물론 많이들 두 개의 정체성을 공존시키느라 애를 먹는다. 〈지도를 퀴어하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팔레스타인 게시물 캡처본에는 이런 질문들이 달리기도 한다. “정체성을 들키면 바로 교수형인 걸 알면서 어떻게 퀴어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해?” “팔레스타인에 가서 사형감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 ‘죽인다Slayyyyy’ 하고 외치면 다들 좋아할 걸.”
이런 댓글들은 더 가까이에 닥쳐와 있는 처벌, 가자지구, 서안, 심지어는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인으로 산다는 데 대한 집단 처벌을 애써 무시한다. 10월 7일 후로 아동 4,000명 이상을 포함해 11,200명 이상이 살해 당했다. 이런 댓글들은 이스라엘이 백린 같은 불법 화학 무기로 쉼 없이 가자를 공습하면서 15분에 한 명씩 사형 당한다는 사실에는 눈을 돌린다. 인종주의적 수사에 의지해,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이 당하고 있는 폭력에서 주의를 돌린다. 주류 언론에 하마스가 아기들의 목을 베었다는 미검증 보도 — 나중에 백악관에서 [그런 사진을 본 적이 있다고 했던 대통령의 발언을] 철회했던 — 가 돌았을 때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에 청신호를 주었던 수사들, 현재 가자에서 벌어지는 민족 청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수사들에 말이다. 사람들이 가자에서 목이 잘리는 것은 퀴어라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이라서다.

성적 다양성을 위해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시민사회 단체 알-카우스Al-Qaws에서는 이렇게 적었다.[역주2]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이들이 퀴어 팔레스타인인을 거론하는 것은 오직 팔레스타인은 후진적이고 이스라엘은 진보적이라는 이분법을 강화하는 개별적 희생자화 구도를 그리기 위해서다. 그런 구도에는 팔레스타인 사회는 병적인 동성애혐오로 고통 받고 있다고, 그곳에서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는 얼마 살아남지 못한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 핑크워싱은 퀴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결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해방될 길은 자신의 공동체를 탈출해 식민자들의 품으로 달려오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본질적으로 동성애혐오적이라는 이런 구도에서,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퀴어 해방에 반하는 것으로, 반면 이스라엘의 점령은 일종의 퀴어 구원으로 제시된다. 실제로는, 퀴어 팔레스타인인들을 겁 먹게 해 끄나풀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들을 위협하고 아우팅하는 전술을 이스라엘 보안군에서 인정한 바 있다.
합중국 유색인 공동체들은 트랜스혐오, 동성애혐오적 희생양 만들기의 결과를 이미 안다. 유색인은 종종 선천적으로 백인보다 동성애혐오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흑인 트랜스들이 전국 각지에서 살해 당하고 벌은 아무도 받지 않을 때, 혹은 정부가 트랜스 아동이 있는 가족들이 집을 떠나 더 안전한 도시로 이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반트랜스적] 정책들을 통과시킬 때, 우리는 그런 폭력적인 관점을 이유로 들어 해당 지역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전 지구적 남부 사안이 아닐 때면 트랜스혐오적, 동성애혐오적 폭력이 전체의 문제가 아님을 더 잘 이해하곤 한다.
전쟁의 시대에 〈지도를 퀴어하게〉를 보고 있노라면 합중국 전쟁 프로파간다에 맞서 스스로를 정의해야 했던 이가 만든 다른 지도 하나가 떠오른다. 2010년, 이라크 작가 와파 빌랄Wafaa Bilal은 〈계속 집계 중and Counting…〉이라는 퍼포먼스 작업을 했다. 자신의 등에 합중국에 살해 당한 이라크인 수만큼의 점을 문신으로 새겨 이라크전이 고조된 가운데 재앙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이라크인들이 생명을 잃는 데에 무감각한 미국에 이의를 제기하는 퍼포먼스로, 뉴욕시의 한 갤러리에서 24시간 동안 공연되었다. 등에 자리가 모자라 살해 당한 이라크인 100,000명에 (보수적으로 추산한 것이다 — 1,000,000명에 가깝다고 하는 이도 있다) 해당하는 점을 다 새길 수가 없었다. 빌랄은 고인들을 추모하는 동시에 미국인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대개 그저 통계치로만 보는 고인들과의 관계를 자문케 하고자 했다. 그는 그 숫자들과 거리를 두는 호사를 누릴 수 없었다 — 그의 형제 하지 빌랄Haji Bilal 역시 2004년 합중국의 공습에 살해 당했다.
와파 빌랄이 문신으로 새긴 지도는 이라크 각지에서 새겨진 다른 종류의 문신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것이기도 했다. 미군의 엄청난 대학살로 인해 이라크인들, 특히 젊은 남성들은 몸에 자신의 이름과 여러 가지 신원을 새겼다. 때가 되었을 때,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시신을 보다 쉽게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10월에는 유성 마커로 제 몸을 지도 삼아 이름을 쓰는 작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영상이 돌았다. 들이라크 젊은이들이 장사 지낼 시신의 잔해들을 찾으며 가족들이 견뎌야 할 심적인 고통을 덜어주려 문신을 새겼던 데서 착안한 것이었다. 짦은 생의 끝을 생각해야만 하는 그 어린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는 영상이 가슴을 찢는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 팔에 길게 이름이 적혀 있는 아이들의 시신이 비통하기 그지없다.

아동 수천 명이 용인가능한 “부수적 피해”로 여겨지는 전쟁에 사람들이 계속 동의하게 만드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 아동들이 제 팔뚝에 자신과 어린 동생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되도록, 누군가에게 반해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는 날까지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손을 잡을지 말지 고민할 때 손 끌이 얼얼한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될 때까지. 온갖 사랑을 다 경험해 보고 어쩌면 퀴어 아카이브에 자신의 기억을 기록할 수도 있도록.
〈지도를 퀴어하게〉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제 삶의 끝도 임박한 듯하게 느껴지는 퀴어들의 기억을 남기는 활동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가자 팔레스타인인들의 기억은 나 같은 이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반하고 사랑에 빠져 보았으며 수많은 이유로 그것을 숨겨야 했던 이들 사이를 연결해 준다.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사지가 잘리는 모습을 보는 끔찍한 충격보다도 더 강력하게.
간절한 손끝으로 자판을 눌렀을 그들 생각에 슬픔에 잠긴 채 이 이야기들을 읽는다. 합중국이 돈을 대는 이스라엘의 공습 속에 그들이 살아 남았을까 궁금해 한다. 이 퀴어 지도에 그들이 새 글을 올릴 수 있을지를. 사랑과 기억을 담아 마음 속 가자를 다시 지을 수 있을지를. 언젠가 점령의 이동 제한에서 자유로워져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퀴어 공동체들의 박동을 경험하고 가자에 돌아가 친구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를. 어떤 파티에 가고 누구와 키스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퀴어한 추억을 만들었는지를. 혹은 이미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랑을 적었을까. 함께 깍지를 끼고 폭탄의 지도에 오르지 않은 가자의 해변을 걸을까.
어떻게 보면, 〈지도를 퀴어하게〉에 이야기를 올린 익명의 가자 사람들은 우리에게 목격 이상을 요청한다. 그들의 사랑 또한 사랑하기를.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를. 그들을 사랑하기를. 아끼기를. 그리하여, 이렇게 되도록 우리가 내버려둔 것들을 잊지 못하게 되기를.[역주3]
↥역주1 Steven W. Thrasher, “A view from the Queer bloc to Free Palestine,” Mondowiess, 2023.11.06.
↥역주2 링크된 주소는 현재 접속되지 않으며, 플레저파이, 김보영·허주영 번역,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퀴어의 외침》, 접촉면, 2024, 19-22쪽에 요약번역본이 실려 있다. 같은 제목의 게시물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역주3 위의 책 14-17쪽에, 이 글에 소개된 것 일부를 포함해 〈지도를 퀴어하게〉의 팔레스타인 게시물 몇 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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