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스라엘 분탕꾼들은 수단과 DRC의 민중을 이용해 먹는다 (배리 말론, 2016)

원문: Barry Malone, “How pro-Israel trolls exploit the people of Sudan and the DRC,” Middle East Eye, 2026.05.28.

이스라엘의 가자 인종학살을 옹호하는 이들이 돌려쓰는 대본이 있다.

TV 뉴스 토론을 보든 이스라엘이나 서구 정치인들의 말을 듣든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익히 알게 된다.

“그들은 가자에서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쓴다”라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팔레스타인은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시작하면 안 됐다”도 있다. 제일 얼토당토 않은 대사로는 “이스라엘군은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다” 같은 것이 있다.

질문을 하기도 한다. “당신은 하마스를 규탄합니까?” “10월 7일에 일어난 일을 옹호하나요?” “이스라엘에 존재할 권리가 있습니까?” 전부 덫이다.

그런데, 조금 새롭고 가자와 피점령지 서안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춘 것도 하나 있다. 바로 이것이다. “수단과 콩고는 어쩌고?”

저의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싶어서 가자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만 시위에 나가는 거잖아.’ 그러면서 후렴처럼 투덜댄다. “유대인 없었으면 뉴스는 어떻게 할래?No Jews, no news.” 이것이 바로 이 비난의 핵심이다.

수단이나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DRC)에서의[역주1] 갈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반유대주의자다. 반서구 의제에 도움이 되니까 팔레스타인 사람들 일에만 움직이는 것이다.

소신 발언을 해보자면, 저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수단이나 DRC에서의 갈등에 쥐뿔도 관심이 없다. 그런 이들의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찾아보면 거의 하나 같이 둘 중 어느 쪽도 언급한 전적이 없다. 오직 젠체하며 친팔레스타인 운동을 비난할 때만 들먹이는 것이다.

이용 당하는 아프리카인들

저들이 수단과 DRC의 민중을 소환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정적을 공격하는 데에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그들을 내팽개친다. 그런 나라들에서 살해 당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을 그저 장기말 취급한다.

저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긴 하지만, 조소 어린 공격들 아래에 중요한 쟁점이 묻혀 있기는 하다. 수단과 DRC에서 — 혹은 예멘, 에티오피아, 아이티, 혹은 미얀마에서 — 벌어지는 참상들은 이스라엘이 두 해 반째 이어어고 있는 가자 파괴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런던과 뉴욕의 거리에 쏟아져 나와 자국 정부에 가자 인종학살을 지원하는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아프리카, 중동의 전쟁들에는 영미계 악당이 분명히 혹은 노골적으로 연루되어 있지는 않으며 서구 언론에서는 적어도 한 세기 동안 습관적으로 그런 전쟁들을 등한시해 왔다. 전에도 이 지면에 쓴 바 있듯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며, 특히 어떤 생명을 다른 생명보다 가치 있게 여기는 숨은 인종주의도 작용한다.

하지만 시위는 정치와 무관한 연민의 표출이 아니다. 서구 대도시에서 반인종학살 집회에 참여하는 수만의 사람들은 자국 정부가 내리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결정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합중국에서는 가자에서의 민족 절멸을 가능케 하는 토대인 자국 행정부에 항의한다. 정부에 대 이스라엘 무기 — 팔레스타인 여성·아동을 쓸어버리는 데에 쓰이는 — 공급 중단을 요구한다.

런던의 거리에 모인 시위대는 키어 스타머 정부에 F-36 전투기 부품 이스라엘 수출 중단을 요구한다. 왕립공군 정찰기가 2년 넘게 가자 상공에 떠 있는 이유를 묻는다.

영국, 합중국을 비롯한 각지의 시위대는 자국 정부에 자신들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외교적·물질적 인종학살 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서구의 위선

수단과 DRC를 들먹이는 이들은 이런 것이 묻히기를 바란다. 그들은 이 운동에서 정치를 지우려, 가자를 원인 없는 비극으로 그리려 한다.

수단과 DRC에서의 전쟁을 두고 활동가들이 자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바는 보다 불분명하다. 서구의 영향이 전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런 분쟁은 하나도 대기 힘들다), 불투명하고 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자와 달리 사람들이 현 상황과 자국 정부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도록 수많은 해설자, 팟캐스트, 서적이 도와 주지 않는다.

수단에서는 《미들이스트아이》에 보도된 대로 신속지원군이 — 이 군사조직의 주된 후원자이자 합중국의 긴밀한 동맹이기도 한 아랍에미리트에서 공급하는 — 영국군의 장비가 실전에서 쓰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전쟁을 조장하는 [DRC의 투치족 반군 조직] M23 수뇌부와 [M23을 지원한다는 혐의를 받는] 르완다군 관료 여러 명에 제재를 부과했지만 동시에 키갈리와의 유럽 기술·전기자동차·반도체 산업용 광물 거래를 중단하라는 압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또한 르완다와 DRC 사이의 평화 중재자를 자임했다 — 하지만 워싱턴은 킨샤사와 전략적 광물 파트너십을 맺어 합중국이 DRC의 중요 자원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새로운 세대

이런 자세한 내용들의 대부분이 일반 대중의 — 심지어는 가자를 계기로 이제 활동에 나서게 된 이들의 —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친이스라엘 악질 행위자들이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으니, 바로 그런 이들이 선의에 기반한 응답을 끌어내는 데 일조하는 듯하다는 점이다. 이제 인종학살 반대 행진에는 이런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들이 나온다. “팔레스타인 해방. 수단 해방. 콩고 해방.”

원인도 영향도 서로 다른,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세 충돌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꼭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진짜 시작이다.

가자 인종학살은 서구의 많은 이들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 올렸고,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정부가 “착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국제법은 오직 일부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한때 믿었던 언론 기관들이 실은 공범이라는 것을 안다.

수단과 DRC에서의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대규모 행진이 열리지는 않지만, 관심이 커져가고 있으며 새로운 활동가 세대는 자국 정부들의 세계 여러 곳에서 벌이고 있는 범죄 행위들을 이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수단과 콩고는 어쩌고?”는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똑같이 관심을 가져 달라고 간청하는 말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연대를 무너뜨리려는, 당신을 통과할 수 없는 도덕적 시험에 들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비판에 낙인을 찍으려는 것이다.


역주1 무잔 알닐, 〈수단 혁명을 놓치면 팔레스타인을 놓친다〉(2024) 참고.

코멘트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