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본 적 없는 곳 ― 레바논 난민촌에서 상상하는 팔레스타인 (사라 알 샬라데, 2026)

원문: Sarah Al Shaladeh, “A Place They’ve Never Seen: Imagining Palestine from Lebanon’s Camps,” Institute for Palestine Studies, 2026.06.03.

난생 처음 팔레스타인이 어떤 곳인지 묘사해 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2024년에 레바논에서 — 내가 지금 석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곳이다 — 히바Hiba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난민촌에서 자란 그녀가 나를 보며 물었다. 거의 지나가는 말 같이.

“넌 팔레스타인에서 왔잖아… 어떤 곳인지 말해 줄 수 있어? 실제로 어떤 곳인지 말이야.”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정말로 팔레스타인이라는 곳이 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느낌이야? 그것도 아니면 난민인 우리가 머리 속에 품고 있는 관념 같은 거야?”

답할 말이 없었다.

서안 출신 팔레스타인인으로서 나는 늘 팔레스타인을 사람들이 알고 몸소 겪는 무언가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깨달았다. 수많은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다르게 — 기억이 아니라 상상으로 — 존재한다는 것을.

레바논에서 지내는 동안 부르즈 엘-바라즈네Burj el-Barajneh 난민촌에 이끌리게 되었다. 그곳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는 이 물음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어떻게 어떤 장소가 사람들의 삶에 늘 존재하면서도 완전히 미지의 것으로 남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한 친구를 통해 난민촌에 사는 젊은 팔레스타인인 몇 명을 알게 됐고, 이 대화들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상상이 어떻게 그들을 오직 이야기를 통해서만, 멀리서만 아는 곳과 연결되게 하는지를 알고 싶었기에 젊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집중했다.

처음 찾아가 인터뷰 구상을 설명하자 다섯 명 모두 그 자리에서 참여하겠다고 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녹음본 속 목소리에서도 그저 질문에 대답하는 게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체에 대해서 말하려는 열의가, 일종의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팔레스타인을 묘사할 일을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아래의 인터뷰들은 레바논 난민촌들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청년들과 진행한 것이다. 주로 부르즈 엘-바라즈네에서 했고, 일부는 최근 전쟁으로 인한 피란 이후 트리폴리Tripoli에서 했다. 인터뷰이들을 열여덟 살에서 스물다섯 살 사이고, 학력과 직업은 다양하다. 여러 번 피란한 이도 있고 평생을 난민촌에서 보낸 이도 있다.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들이 상상하는 팔레스타인을 묘사해 달라고 청했다. 눈을 감으면 무엇이 보이는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에 소속감을 느끼는지, 가족들의 이야기나 언론, 먼 거리가 그런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가족의 사연, 소셜미디어, 국경 너머로 언뜻 본 것들, 때로는 심지어 침묵까지, 각자의 상상을 형성한 여러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국경 지대에 가서 팔레스타인이 보이는 거리에 서보았던, 그러나 팔레스타인에 갈 수는 없었던 경험이 있는 이가 여럿 있었다. 물리적 근접성과 전적인 접근불가능성의 이 같은 조합은 상상 속 팔레스타인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였다. 팔레스타인은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지만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먼 곳이었다.

부르즈 엘-바라즈네 난민촌에 사는 스물셋 모함마드 살림Mohammad Salim은 “팔레스타인은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학업을 그만두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한다.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 오직 영상 통화로만 본 사람을 사랑하는 거랑 비슷해요. 친밀감은 크지만 한 번도 실제로 같이 있어 본 적은 없는 거죠.”

많은 이들에게 상상은 아니라 감정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추상적이지 않다. 모함마드는 그곳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확신을 갖고 이야기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팔레스타인에 느끼는 연결감은 가족들의 이야기, 집단의 서사, 그리고 먼 거리를 통해 물려 받은 것이다.

“제가 본 것 전부가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제가 모르는 것들이 있음을 알아요.”

모두가 똑같이 이런 연결감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누르 미스바Nour Misbah는 스물다섯 살의 교사다. 전쟁 전에 유아 교육 학위 과정과 보육·유치원 교사 실습을 마쳤다. 지금은 나캅 센터Naqab Center 교육위원으로, 7-9학년 학생들에게 민족 문화를 가르친다. 최근에 트리폴리로 피란한 그녀의 팔레스타인 이야기에는 애정과 주저가 모두 있다.

“저는 팔레스타인을 사랑해요. 팔레스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죠. 하지만 제가 팔레스타인이라는 장소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그녀의 상상 속에서 팔레스타인은 고요하고 열려 있는 모습이다. 풍경은 푸르르고 사람들은 친절하다. 환대가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먼 거리가 그런 상을 가로막는다.

“한 번도 거기 살아 본 적은 없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똑같이 그곳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누어의 말은 여러 참여자들과의 대화를 감도는 긴장 —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물려 받은 열망이라는 — 을 보여준다. 평생을 산 레바논에 대한 연결감과는 달리, 팔레스타인에의 관계는 상상으로써 빚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애착은 깊이 감정적인 동시에 불확실하다. 그녀가 열망하는 팔레스타인은 스스로의 경험이 아니라 이야기들, 이미지들, 가족의 역사를 통해 존재하며 이는 강력하지만 흔들리는 소속감을 형성한다.

팔레스타인이 보다 선명하고 직접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이들도 있다.

스무 살 모함마드 엘 아슈와Mohammad El Ashwah는 부르즈 엘-바라즈네 난민촌 주민이다. 호텔경역학을 공부했지만 기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알-아크사예요. 그 다음은 푸른 들이고요.”

그가 아는 바는 대부분 가족 대대로 물려 받은 것이다.

“할머니가 그들이 어떻게 우리 땅을 빼앗고 당신들을 집에서 내쫓았는지 들려주셨어요.” 하지만 그도 무언가 빠진 것이 있음을 알고 있다. “제가 본 적은 없죠.”

그는 국경 가까이에 서 본 일이 있다.

“두 걸음이면 닿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넘어갈 수 없었죠.”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상상되는가 하는 데의 중심에는, 그 거리, 물리적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극복할 수 없는 그 거리가 있다.

열여덟 릴리야Lilya에게 팔레스타인은 구석구석 생생하다. 그녀는 부르즈 엘-바라즈네 난민촌에 살고 생물학을 공부하며 나캅 센터에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한다.

“저는 전부 다 상상돼요. 집들, 사람들, 심지어는 소리까지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녀의 연결감은 주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

“학교와 스카우트 활동에서 노래, 깃발,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해 배웠죠.”

그렇게 자세히 알지만 여전히 무언가 모자란 느낌이다.

“흐릿해요. 아무리 많이 알아도, 무언가 빠져 있어요.”

그 틈을 채우는 데에 소셜미디어가 도움이 된다.

“더 가까워지게 해주죠. 그래도 완전히는 아니예요.”

언제나 미지로 남는 영역이 있다.

스물다섯 마르와 알-마스리Marwa Al-Masri는 팔레스타인을 다른 곳에서 접근한다.

티베리아스 출신의 팔레스타인계 시리아인인 그녀는 2013년에 전쟁으로 레바논으로 피란하기 전까지 시리아에서 자랐다. 지금은 부르즈 엘-바라즈네 난민촌에 살고 홍보학 전공 4학년생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마저 묵직해요. 상상도 해보기 전부터 무언가 느끼게 되죠.”

어릴 때는 팔레스타인을 난민촌으로 상상했다. 텔레비전, 특히 《알-타그레바 알-팔라스티나Al-Taghreba Al-Falastinia》를 보며 생긴 이미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지 자체는 달라졌지만, 모호하기는 여전하다.

“저에게 확실한 건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 것이 무엇인가 하는 거예요. 그곳에 사는 것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는 불확실해요.”

마르와에게 상상은 수동적인 일이 아니다. 그녀는 읽고, 듣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애쓴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예요. 누가 대신 할 이야기가 아니에요.”

동시에, 그녀는 온라인에서 보는 것들에 비판적이다.

“소셜미디어는 표면만 보여줘요. 현실은 그보다 더 깊죠.”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속감은 절대적이다.

“전 그저 팔레스타인의 일원이 아니에요. 저는 팔레스타인이에요.”

결국, 이 대화들을 통해 본 팔레스타인의 이미지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누군가에게 팔레스타인은 사랑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억이다. 많은 이들에게, 불완전하면서도 확실한 것이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팔레스타인은 파편들 — 집집마다의 역사, 상상 속 풍경들 — 을 통해 지어진다. 대대로 물려져 내려오며 계속해서 새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팔레스타인은 그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깊이 아는 곳이다. 기억되는 곳이 아니라 상상되는 것이다. 사는 곳이 아니라 품고 있는 곳이다.

모함마드 살림은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갈 수 있다면 저는 잠을 자지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는 말을 멈춘다. “여전히 내 나라예요.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 해도.”

코멘트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