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해방을 위한 혁명 헌장을 제안하며 (공동성명, 2026)

원문: Ghassan Abu Sittah et al., “Toward a Revolutionary Charter for Comprehensive Liberation,” Al-Akhbar, 2026.03.10.

  • 아랍어 원문은 이것인 듯하다. 영어본에 흐름이 매끄럽지 않은 곳이 종종 있어 시험 삼아 원문의 몇 단락만 번역기에 넣어 비교해 보았는데 아마 원문을 요약해 번역한 것 같다. 하나 하나 비교해 보지는 않았고, 짐작을 섞어 번역했다 (단어를 끼워 넣거나 뺀 부분을 모두 표시하지는 않았다). 본문 외에도, “인식론적 매판꾼 노릇을 비판하고 내일을 위한 ‘투쟁’ 전략으로서의 항복을 거부하며” 쯤 되는 부제가 있고 대표로 서명한 인물로 아래에 열거된 네 명 외에 사이프 다나Saif Dana가 언급되는 등의 차이가 있다.

1987년 라말라, 스프레이로 쓴 제1차 인티파다 구호들. 팔레스타인미술관 디지털 아카이브 나흘라쿠라컬렉션Nahla Qourah Collection.

서구의 승인을 우선 순위로 놓기를 그만 둘 때가, 유화의conciliatory 틀을 추종하기를 그만 둘 때가, 저항 전략을 낡은 것 취급하기를 그만 둘 때가 왔다. 대신 우리는 해방을 위해 불굴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대중과 함께해야 한다.

아래는 가산 아부 시타Ghassan Abu Sittah, 스베이 스베이Sbeih Sbeih, 윗삼 알-파카위Wissam Al-Faqaawi, 살라 함무리Salah Hammouri 등 팔레스타인 및 아랍의 선구적 사상가들이 낸 공동성명을 번역한 것이다.

전 지구적 남부의 해방 운동이 피식민 민중들의 관점을 반영한 새로운 정치적 언어를 형성하던 시기, 지식인과 교육 받은 엘리트가 대중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는 치명적인 약점임을 알아본 이들 중에 아밀카르 카브랄Amílcar Cabral이 있었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전대미문의 인종학살에 세상이 침묵하고 배신하는, 그리고 여러 아랍·무슬림 체제들이 공모하는 현재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맥락에서 카브랄의 경고가 새삼 날카롭게 다가온다. “어용functionary” 지식인들이 식민 핵심부에서 학자연하느라 대중의 유기적 투쟁에서 물러나는 만연한 경향은 저항의 참호를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살롱과 맞바꾸어 버렸다.

아랍 지식인들, 특히 팔레스타인 지식인들은 오직 ― 진정한 저항의 주된 요람이자 그 궁극 적 지평인 ― 대중과 유기적으로 함께함으로써만 자신의 역사적 민족적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지식인은 최근의 절멸 전쟁들에서 현대사에 비견할 데 없는 불굴의 의지와 희생정신을 보여준 대중의 어마어마한 잠재력과 도덕적 저력을 조직하고 그 나아갈 길을 여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지식인들은 유화적, 패배주의적 틀을 정상화하면서 서구의 맘에 들 만한 태도를 퍼뜨리려 든다. 그들은 ― 적절한 용어인 “무장 해제”를 두고 ― “무기 규제” 같은 용어를 끌고 들어와서는 무장 투쟁에서 해방적 성격을 빼앗고 그것을 절차나 안보의 문제로 고쳐 적는다.

이는 오슬로 당국의 “안보 카오스” 담론, 제국의 혹은 시온주의의 통제를 받지 않는 모든 무기를 위협으로 치부하는 담론과 공명한다. 무기가 대중 저항의 영역에서 국제적 의무의 구속을 받는 관료주의적 기관들의 품으로 넘어갔다. 이는 무기를 길들이고 저항에 있어서 그 역할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거 오슬로 협약이라는 명분 하에] 항복했을 때도 벌어졌던 일이다.

그것은 전체 전략의 일부[일 뿐이며 그것 자체가 전략이 될 수는 없]다. “무기 규제”를 지지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 어떤 포괄적 저항 전략도 내어 놓지 못한다. 현장 투쟁 대신 국제 연대를 내세우고 저항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팔레스타인 민중은 수십 년째 실현되지 않고 있는 세계의 각성을 그저 기다리는 수동적인 피해자로 강등시킨다. 본말이 전도된 격이다. 현장의 저항이 제일의 동력이며 연대는 그 뒤를 따르는 것이다. 저항을 연대로 대체하는 것은 대중의 주체성을 약화시키고 무수한 희생으로 흐른 피를 경멸하는 일이다.

이런 경향은 의존의 체제들,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저항을 서구와 시온주의가 용납할 수 있을 만한 양식에 가두어 두려는 자유주의적 틀들과 궤를 같이 한다. 투쟁을 협상으로 해결할 인권 문제로, “무기 규제”라는 미명 하에 무장해제와 항복을 지성인의 태도로 탈바꿈시킨다. 그런 서사들은 인도적 위기를 틈타 정치의 청산을 독려하고 문화 엘리트들에게서 식민 억압의 구조적 본질에 맞설 책임을 면제해준다.

지난 수십 년간, 특정 아랍 체제들은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테러리즘”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오늘날, 일부 지식인들은 그런 입장을 그대로 따라하며 가자의 고통을 이용해 역사 속 분쟁은 이제 끝났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패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간 흘린 피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그 민족적 기획에 충의를 다해야, 대중의 불굴의 의지를 ―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시온주의 정착자 식민주의는 대중의 저항과 지지를 소진시키면서 계속해서 최종 해결책 식의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치적, 문화적으로 더없이 불굴의 의지가 필요한 순간에 그런 패배주의적 주장을 펴는 것은 저런 전략을 강화하는 일이다.

최근의 출간물, 학술행사, 문헌들은 시온주의 집단Zionist entity [즉 이스라엘]과 그것이 아랍 체제들과 맺고 있는 관계의 인종학살적, 정착자 식민주의적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 용어들이 오용되면서 피상적이고 오해를 유발하는 담론을 생산한다. 이런 목소리들은 ― 민족의 열망을 고쳐 빚어 지배 권력에 복무하게 만들기 위해 설계된 ― 강제적 이데올로기 구축물인 “새 시대”를 이론화 한다. 이는 문화적 쇠락과 정치적 실패가 긴밀히 이어져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내일” 사고방식은 심오한 실존적 의미가 있는 개념들의 왜곡을 토대로 하며, 그 개념들을 인위적이고 천박한 맥락으로 축소한다. 정치적 쇠퇴는 필연적으로 지적, 문화적 쇠퇴를 낳는다. 전 지구적 남부 곳곳의 해방 운동에서 익히 확인된 바다. 식민주의와 인종학살에 대한 비교 연구 분야가 왜곡되어 저항에 적대적인 의제들에 봉사하고 있기에, 개념적 선명성을 확보하는 일이 절실하다.

그런 논의들은 문화적 쇠락 이상을 폭로한다. 시온주의, 미국, 그리고 순응적인 아랍 당국들이 명하는 미래의 구도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항 운동의 부고를 쓰려 드는 그런 사고는 사실상 아랍 지식인들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엄청난 굴종과 분열 행위로써 옹호하는 문화적 흐름에 대한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팔레스타인의 지식인, 정치인들이 종종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를 거론하지만 기껏해야 그 말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 심지어는 합중국 전 대통령 중에도 그 말을 쓴 사람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현 상황을 아파르트헤이트로 설명하는 것은] 진단으로서 유용할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분명하며 지엽적이고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인종분리는 대부분의 정착자-식민 체제가 실행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이 동의하듯 시온주의 기획을 규정하는 요소인 구조적인 대규모 절멸 논리를 따르지는 않는다.

시온주의 정착자-식민주의가 가하는 실존적 위협은 그저 인종분리 정책에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종학살적인 그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의 복사판이 아니며, 남아프리카를 모델로 제시하는 것은 호도다. 인종분리 체제는 북미부터 호주까지에서 볼 수 있다. 그런 경우와 시온주의를 구별 짓는 것은 바로 구조적 절멸 메커니즘이다. 이 충돌을 아파르트헤이트의 일종으로 축소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그와는 무관한 역사적 맥락들을 토대로 한 해법을 장려하는 일이다.

시오니즘을 아파르트헤이트의 렌즈를 통해 보면 남아프리카의 세 세기에 걸친 식민사라는 원인을 삭제한 채 결과만을 보게 된다. 장기간의 식민 지배를 정상화하고 국제 연대, 법적 조치, 보이콧만을 “해법”인 양 제시하게 된다. 이런 단순화는 시온주의 정착자-식민주의의 인종학살적 본질을 가리고 지금까지의 연대 운동을 곡해하고 저항을 범죄화하는 일이다.

오히려, 알제리 모델이 팔레스타인과 분석적으로 더 가깝다. 그 대의는 수사적인 비탄에 머물기보다는 드러내 놓고 무장 투쟁을 옹호했다. 구조적 식민주의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해방을 위해서는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알제리의 사례는 해방을 이룩하는 방법은 강제되는 제약 속에서의 협상이 아니라 무장 투쟁임을 역설함으로써 지배적인 담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반복해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끌고 오면 서구 대중들은 정착자-식민 국가 자체는 무시하고 개별 범죄자나 극단주의자 정착자에 초점을 맞추는 단순화된 관점을 갖게 된다. 문제의 핵심에 맞설 정치적 용기가 없는 팔레스타인인들, 아랍인들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다. 비판을 아파르트헤이트에 국한하는 것은 국제 인권 틀의 법률주의적 사고방식을 재생산하는 일, 곧 식민 주권은 건드리지 않고 “억압”만 규탄함으로써 부지중에 현 체제를 정당화하는 일이다.

대중에게 돌아가자: 혁명적 지식인 동맹을 요청한다

기니비사우·카보베르데아프리카독립당African Party for the Independence of Guinea[-Bissau] and Cape Verde을 창당한 아밀카르 카브랄은 해방은 민중이 몸소 경험하는 현실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원천으로의 회귀”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이것은 향수어린 표현이 아니라 전략 차원의 원칙이다. 카브랄에게는 대중이 ― 그들의 진정한 문화와 고귀한 희생이 ― 저항의 최전선이자 가장 중요한 전선이었다.

그 같은 카브랄의 관점의 중심에는 지식인 엘리트층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식민화된 사회에서 소부르주아지는 아슬아슬한 위치를 점한다. 사회를 운영할 지식과 수단을 갖고 있는 한편 사회적, 문화적으로 식민 체제의 중개자로 복무하도록 조건 지어져 있는 것이다. 카브랄은 그들에게 혁명을 배신하거나 대중의 투쟁에 뛰어들어 지적, 계급적으로 스스로를 급진적으로 재편하거나 하는 양자 택일을 요구한다.

팔레스타인의 맥락에서 이 딜레마[ 앞에서 지식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분명하다. 많은 지식인들이 매판 정권과 제국의 편에 붙어, 풀뿌리 투쟁에 합류하는 대신 민족 기획을 외세의 이익에 맞추어 변질시켰다. “모두의 혁명적 해방을 위한 헌장”을 제안하며 우리는 팔레스타인 및 아랍의 지식인들 ― 교수, NGO 활동가, 연구자, 정치·군대 관료 ― 들에게 이 역사적 국면을 용기와 윤리적 신념으로 마주하기를 요청한다. 할 일은 분명하다. 가자, 레바논, 예멘에서 볼 수 있는 원천으로 돌아가기 ― 저항을 지속시키는 밑바탕, 평범한 이들이 비범한 희생을 해내는 그곳으로 돌아가기. 민족을 희생시켜 사익을 취하는 지식인들과는 극명히 대조되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전 지구적 남부의 지식인들은 “식민 계몽”의 지배에 속박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저항을 서구의 렌즈, 계급과 개인적인 우선 순위의 영향을 받는 렌즈를 통해 보면서 대중의 혁명적 잠재력을 두려워 한다. 그런 이들에게 해방은 식민 구조의 해체가 아니라 사소한 양보를 요구하는 일이 된다. 뿌리로 ― 난민촌, 마을, 도시, 전통적 사회 관계망, 지역의 저항 실천들 ― 로 돌아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로, 식민적 근대성과 개인의 출세라는 거짓된 약속을 위해서라면 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된다.

순응적인 지식인들이 미치는 해악은 그들이 저항을 식민 감수성에 맞게 “근대화”하고 “문명화”하려 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들은 해방 운동을 ― 투쟁에 기반한 내용을 걷어내고 ― 자유주의적 제도 체계에 맞게 뜯어고친다. 많은 이들이 기층의 혁명적 잠재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 혹은 비웃으면서 ― 피해자와 점령자를 “동등한 시민”으로 취급하는 등의 자유주의적 환상을 수입하려 든다. 현실은 인종학살, 종족 청소, 전방위적 파괴인데 말이다.

이런 지식인들이 내세우는 “모든 시민을 위한 국가”, 제도 개혁, 자유 민주주의, 혹은 그런 틀들 내에서의 민족 단결 같은 발상에는 희생으로 투쟁을 이끌고 있는 대중이 빠져 있다. 수십 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도, 그런 제안들은 해방이 아니라 외교적 정리를 지향한다. 문화적 권위를 저항이 아닌 협상의 도구로 탈바꿈시켜, 정착자-식민주의, 제국주의 기획의 구조적 잔혹성을 숨기는 데 동원한다.

그들은 일부러 빙빙 돌려 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기부자 친화적으로 말함으로써, 자신들과 전선에서 몸바치고 있는 행위자들 사이에 지식 격차를 형성한다. 이는 계급을 위장하기 위한 것, 순응적인 엘리트들, 아랍 체제들, 식민 핵심부가 한통속임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스스로의 해방 투쟁을 이끌고 있는 대중들은 배제되고 실존적 충돌은 학문적 훈련으로 축소된다.

역사 속 행위자들과 현장의 행위자들을, 특히 무장 저항 투사들을 무시하면 그 어떤 민족적 기획이라도 혁명적 핵을 잃고 만다. 그저 엘리트의 권위를 위한 수단이 되고 만다. 반대로 진정한 이데올로기는 공모하는 문화 앞잡이들이 강제하는 겹겹의 착취를 해독할 수 있게 하는 실천적 힘이다. 학문적 추상화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 해방 운동에서 대중의 힘을 빼고 해방 운동을 식민·매판 국가에 힘을 싣는 지식 활동으로 축소하는, 근본적으로 [해방 운동과] 대립되는 계급적, 정치적 입장이 진짜 문제다.

팔레스타인이 성공하려면 [식민 권력에] 종속된 국가 장치들과 식민 체제들을 구조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혁명가라면, 투사라면, 지식인이라면, 매판의 ― 식민 핵심부부터 부역하는 체제들까지 ― 기구들과 절연하고 대중의 주체성을 되살려야, 진정한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

모두의 해방을 위한 헌장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의, 그리고 범아랍 민족의 일원으로서, 학자, 연구자, 지식·문화노동자로서 우리는 인종학살적 정착자-식민 체제 하의 계급 구조, 부역, 문화적 배경이 초래한 심각한 실존적 곤경을 통감한다.

이에 우리는 대중의 선택, 그들의 역사적 투쟁, 제諸 영역에서의 폭넓은 저항에 전적으로, 흔들림 없이, 함께 할 것임을 선언한다. 아무리 큰 대가가 따르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단호히 확언한다.

본 성명은 아랍 지식인들에게 우리와 함께 거간꾼 노릇을 하는 어용 지식인의 종언을, 저항하는, 유기적이고 참여적인 지식인, 지식과 문화를 호사나 전문 영역이 아니라 모두의 해방과 단결을 향한 우리 민족, 우리 나라의 투쟁에 가장 중요한 무기로 보는 지식인의 탄생을 선언하기를 촉구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을 확인한다.

첫째: 해방과 민족 기획의 구상은 저항의 실제 물적 조건들 ― 난민촌, 마을, 감옥, 참호, 땅굴 ― 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우리는 수입된 자유주의적 틀과 매판 세력, 식민 핵심부의 선호와 이익에 맞추어 맞들어진 기성의 공식을 거부한다. 이런 모델들은 ― 적은 계속해서 가차 없이 제 목표를 끝까지 추진하는데도 ― 아랍의 사회·정치 세력들이 진짜 투쟁에 나서지 못하도록 묶고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진정한 해방은 인식론적 식민주의를 해체하는 데서 출발하며, 이는 완전한 해방의 전제 조건이다.

둘째: 우리는 우리는 그 출처를 막론하고 모든 형태의 매판 세력 기반 자금 지원을 거부한다. 그런 지원은 정치적 조건을 달며 그 목표는 여러 층위에서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의식을 길들이는 것이다. 진정하고 혁명적인 민족 기획을 수립하려면, 중개 기구들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아랍 지식인, 관료들이 기부자, 출자자에게 달라붙어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를 거부해야 한다. 민족 활동, 저항 활동을 제국 열강이나 매판 체제들이 자금을 대는 NGO, 정부 기구, 연구소에 딸린 일자리로 만드는 것은 민족 기획을 필연적으로 패배와 패망으로 이끌 더없이 위험한 구조적 허점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혁명에 있어서 전적으로 투명하기를, 외부 자금 지원 일체를 거부하기를 촉구한다. 강령과 행동의 유일한 기준은 저항을 향한 그 가치여야 하며, 자금 제공자나 기부자가 부과하는 조건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본 헌장은 또한 아랍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중립이라는 허상을 일체 거부한다. 지식인은 중재자도 중립적 제삼자도 아니다. 맞서고 저항하는 참호에서 민중과 함께하거나 적진에 속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개량주의적 언어로 인종학살을, 전면적 저항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담론은 전부 공모다.

셋째: 현장의 행위자들을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참조점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민족 기획은 저 멀리 제국이나 매판 체제들의 수도에서 지휘할 수 없다. 마땅한 정치적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은 무기를 드는 이들, 현장에서 식민 기계를 직접 마주하며 쉬지 않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이들이다. 하루하루 피와 목숨을 바치는 그들의 진정한 현지 문화가 민족 기획의 도덕적, 실존적 방패다.

넷째: 매판 부르주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해체해야 한다. 지식인은 해외 기관이나 종속적인 어용 기구에 달린 학문적 명망이나 경력을 추구하기를 의식적으로 그만두어야 한다. 지식과 지식 생산은 난민촌, 마을, 대중 저항 세력 등 저항적 사회 구조에 복무해야 한다.

다섯째: 계급 노선을 확립하고 지식을 물적인 힘으로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든 아랍 학자·지식인에게 식민 핵심부와 매판 체제들이 하사하는 특권에 굴종하기를 멈출 것을 촉구한다. 그들의 연구 수단과 기술적 지식은 저항의 총탄이 되어야 한다. 참호와 전장에서 이해되지도 쓰이지도 않는 지식은 무의미할뿐더러 역사적으로 민족 기획에 적대적이다. 자기 민족의 해방에 헌신하는 진정한 지식인은 관찰에서 참여로 자리를 옮겨야, 분야를 불문하고 기술적·지적 전문성을 아무 조건 없이 저항의 기층에 내어주어야 한다.

여섯째: 우리는 식민 핵심부와 아랍의 매판 앞잡이들의 부역자 노릇을 멈추지 않는 지식인, 학자들을 폭로하고 보이콧하기를 촉구한다. 이것은 사적제재의 문제가 아니다. 개개인보다 중요한 민족 기획에서 매판이라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해방의 노정에 필수적인 구조적 정화의 문제다.

최근의 절멸 전쟁들은 수십 만의 순교자와 부상자를 낳았다. 가자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서안에서는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지금 팔레스타인, 레바논, 아랍권 어디에서든, 침묵은 곧 그 피를 배반하는 일이다.

우리는 거간꾼, 하수인 노릇을 그만 두지 않은 모든 이들의 지적, 정치적 가면을 벗길 것을 촉구한다. 뜻 있는 지식이라면 식민자의 언어를 가져다 쓰는 담화들을 감시하고 기록해 문화적 배반의 실례로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는 또한 아랍 사회들, 특히 팔레스타인 사회에 대한 정상화 및 강화講和 의제를 부과하는 기관이나 연구소로부터 받는 조건부 자금을 폭로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우리는 식민 핵심부와 매판 체제의 편을 택한 엘리트들을 축출하고 보이콧할 것을, 나아가 어떤 자리에서도 그들이 민족 기획을 대변하지 못하게 할것을 촉구한다. 확립해야 할 원칙은 분명하다. 저항하지 않는 자가 대표해서는 안 된다. 유일한 자격 요건은 혁명적 정당성이다. 그 정당성은 오로지, 저항을, 참호와 땅굴과 옥중 투쟁을 지지하는 곳들에서 나온다.

이상을 토대로, 우리는 민족 기획과 그 요구에 헌신하고 참여하는 지식인으로 구성된 독립 대중 기구 해방문화위원회Observatory for Liberation Culture의 설립을 요구한다. 모두의 해방을 위한 헌장에 입각해 문화적, 정치적 기관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것이 그 임무가 될 것이다.

대안적 저항 문화

이 헌장의 목적은 비판만이 아니다. 또한 도덕적, 민족적, 역사적 책무로서의 실존적, 지적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는 인식론적 지배를 무너뜨리고 대안적 저항 문화를 세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적 저행, 집단적 투쟁의 현장에 뿌리 내린 참여적 지식장으로서의 저항의 인식론을 채택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아래 원칙들을 확인한다.

첫째: 지식의 뿌리를 현실에 두기

지식을 현지화한다는 것은 대중의 저항이 벌어지는 삶의 현장과 물족 조건들을 지적 활동 및 지식 생산의 제1 연구소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민족과 아랍의 해방에 헌신하는 유기적 지식인은 중립적 관찰자로 남거나 상아탑에 숨을 수 없다. 오히려, 방법론적 도구들을 저항의 역사적 원천 ― 투사, 농부, 노동자, 난민 ― 에 복무하는 실천적 도구로 바꾸어야 한다. 학자와 지식인의 핵심 역할은 전문화된 지식 격차에 다리를 놓아 저항 기획이 더 오래 가고 더 효과적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둘째: 지적 주권[의 확립]과 식민 어휘록의 해체

우리는 식민주의의 어휘록과 단호히 결별하고 저항을 위한 단결된 개념적 도구들을 개발해 진정한 지적 독립을 이룰 것을 촉구한다. 우리의 언어에서 제국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 중심부에서 형성된 개념들, 틀들을 씻어내는 것은 실존적으로 필수 불가결하다. 무장해제, 테러리즘, 통치, 신자유주의 개혁 같은 개념들은 민족 구조들을 조각 내고 투쟁을 약화하는 데 쓰이곤 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아랍 학계에 들어와 있는 서구화된 언어적 틀들을 해체해 대중 저항의 언어에 뿌리를 둔 어휘로 대체해야 한다.

학술적 명제나 지적 입장의 가치는 그것이 참호, 난민촌, 땅굴, 감옥에서 이해되고 소용될 수 있는지를 토대로 평가해야 한다. 저항에 몸바치는 지식인의 임무는 대중을 위한 전략적 나침반을 제공하는 것이지 정치적 소외를 심화시키는 추상적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 특히 우리 민족과 그 저항의 역사를 서술하고 평가함에 있어 ― 서구를 진실의 유일한 참조점으로 삼는 서구 중심주의를 거부한다.

셋째: 지식을 민주화하고 이데올로기를 물적 힘으로 전환하기

혁명 이데올로기는 구호 모음집이 아니다. 투쟁의 지정학적 차원을 분명히 하고 아랍 사회의 여러 부분을 제국 열강 및 시온주의 정착자 기획과 연결하는 상호 이해관계를 비롯한 구조적 착취를 폭로하는 틀이다. 동시에, 저항 현장은 지식인들에게 몸소 겪은 경험과 실천적 지식, 구체적인 사실을 제공해 이론이 해방 담론의 추상화에 빠지지 않게 한다.

투사와 지식인이 공동의 운명을 택하면 지식은 지적 사치가 아니라 물리적 무기와 함께 작용하는 상징적 무기가 된다. 이런 연결관계는 저항 행동에 역사적 의미를, 실존적 지평을,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본 헌장은 거간꾼, 하수인 노릇에 젖은 엘리트들에게서 민족의 의사결정권을 되찾아, 스스로를 희생해 저항을 이어가고 역사를 만드는 대중에게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 애원의 정치를 넘어, 식민 구조를 해체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대중의 지대한 희생 앞에서, 엘리트 특권과 지역적인 사익을 버리고 전적으로 저항 행동의 편에 서는 것은 아랍 지식인의 최소한의 윤리적 책무다. 우리는 끈질긴 팔레스타인 민중의 일원임이, 아랍 민족 정체성이, 전 지구적 남부라는 우리의 지적 뿌리가 자랑스럽다. 우리는 이를 토대로 우리의 인간적, 국제적 관점을 개진하며, 식민주의가 지우려 하는 역사를 되찾고자 한다.

우리는 서구 중심의 위계를, 결함투성이인 그 근대성 모델을 추종하는 환상을 거부한다. 우리는 굴종적인 모사품 노릇을 거절한다. 저항 지식만이 자유로운 아랍 인간, 우리의 땅에서 식민자를 내쫓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서 그 영향력을 뿌리 뽑은 인간이 태어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존 질서를 따를 수 없다. 저들의 힘이 얼마나 강하건, 그 토대를 무너뜨릴 것이다.

지식의 사슬을 끊고 승리를 향해 가자.

아랍 팔레스타인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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