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4.(화)

도배. 도배. 도배. 했다.

제목을 입력하며 2021까지 썼다가 고쳤다.

원래는 스터디가 있는 날이지만 도배를 먼저 하기로 하고 스터디는 내일로 미루었다.

오전에는 별 일 하지 않았다. 느지막히 일어나기도 했고, 일어나보니 두어 시 경에 벽지가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기도 했다. 방에 있던 가구며 이불이며를 거실로 옮기고 커튼을 뗐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으므로, 남은 시간은 쉬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더 쉬고 있자니 누가 문을 두드렸다. 대답하니 택배라고 했다. 문을 열어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 상자 하나만 덩그러니. 벽지를 꺼냈다. 상자 속을 보니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10장 이상을 사면 헤라와 여분 풀과 장갑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10장 당 1장 추가 이벤트도 하고 있었는데 길이 220cm 미만은 제외라고 했다. 210cm 12장을 주문했다.[1]모자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한 장이 남았다. 풀이 발린 상태이므로 어디 둘 수는 없고, 마침 한 장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중고 거래 앱에 … (계속) 헤라 등도 220cm 조건이 있는 걸까, 100cm 10장을 사도 주는 걸까 궁금했는데 안 주는 모양이었다. 아니었다. 박스를 기울이니 어둠 속에서 헤라와 비닐봉투 두 개가 흘러 나왔다.

네 시간쯤 걸렸나보다. 그렇게 오래 걸린단 느낌은 없었는데. 방은 작디 작지만 벽에 어느것 하나 멀쩡한 구석이 없어서, 그리고 도배는 생전 처음이라서,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다. 네 벽 모두 ‘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평평하지도 않고 수직수평도 잘 안 맞다. 문이 있는 두 벽에는 턱도 있다.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상자 모양으로 튀어나온 곳도 하나 있다.[2]이 부분 도배를 하며 의자에 올라서다 오른쪽 눈썹 윗부분으로 여기에 헤딩했다. 실제 벽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원래 발라져 있던 벽지의 모든 모서리가 둥글다. 한쪽 벽은 거의 전체 면이 벽지와 벽 사이에 1-2cm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그 위에 덮었으므로 지금도 그렇다.

대부분의 시간은 뗐다 붙였다 하며 최대한 수평을 맞추고 여러곳을 재단해 가며 붙이는 데에 썼다. 몇 군데를 찢어먹었고 몇 군데는 울었다. 바르게 붙이기 어려울 것은 예상했지만 젖은 벽지를 자르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몰랐다. 도배용 칼이란 걸 파는 걸 보았는데 젖은 벽지를 찢어지지 않게 자를 수 있는 칼일까. 위아래를 곧게 자르는 용도일 거라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그 정도는 대강 만들어서 할 수 있다. 애초에 벽이 곧지 않으므로 어떤 도구를 쓰든 도구의 힘만으로 곧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도배. 도배. 도배. 아무튼 일단락. 마른 후에 풀자국을 털어내고 걸레받이쪽 마무리 재단 — 이 역시 마른 후에 하기로 했다 — 만 하면 된다. 밀가루풀이라서 대충 걸레로 닦아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괜히 종이든 비닐이든 쓰지 말고 몸을 써서 걸레질을 하자, 는 생각으로 맨바닥에서 했는데 생각보다 안 닦인다. 가구는 아직 안 넣었고 우선 커튼을 다시 다느라 그 아래만 닦아 봤다. 행운이 있기를.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시내에 다녀왔다. 어처구니 없는 착각으로, 괜히 다녀만 왔다.

1 모자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한 장이 남았다. 풀이 발린 상태이므로 어디 둘 수는 없고, 마침 한 장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중고 거래 앱에 “나눔”으로 등록해 둘 생각이다.
2 이 부분 도배를 하며 의자에 올라서다 오른쪽 눈썹 윗부분으로 여기에 헤딩했다.

2021.01.03.(월)

어제는 침실 치수를 쟀다. 벽지를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으로 벽지를 주문했다. 저번에 대강 쟀을 때보다 한 장 적게 나왔다. 그대로 주문했다. 모자랄까봐 겁난다. 귀찮다. 풀은 미리 발린 채로 온다. 아주 큰 일은 아니다. 이러나 저러나, 2년 계약으로 들어와서는 반 년만에 도배라니 이게 무슨 짓일까. 내일은 도배를 할 것이다.

여덟 시쯤 한 번 깼을까. 열 시가 넘어서 한 번 더 깼는데 그러고는 그냥 누워 있었던가 또 잤던가.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하루를 시작했다. 두 번을 꿈을 꾸다 깼는데 두 번째 꿈만 기억난다. 우연히 만난 친구를 따라 커다란 낡은 상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더니 친구네 집이 나왔다. 복층이었고 침실 ― 침실이라기보단 그 자체로 침대에 가까운 위층 ― 로 가는 계단이 가파랐다. 친구가 계단을 향해 가길래 따라 올라가려는데 친구가 멈췄다. 계단이 서랍이었다. 친구는 서랍을 열어 실내화를 꺼내주었다. 고무 재질에 발걸이가 듬성듬성한 그물 같은 모양이었는데 그물코가 대부분 끊어져 있었다.

깨서 전화기를 보니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벽지 업체였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대한통운 택배파업으로 △△택배로 발송되는데 택배비 3000원 추가됩니다 // △△택배 발송 원하시면 입금부탁드립니다 // ○○은행 ××× ×××× ×××× □□□입니다”[1]미리 알지는 못했다. 대한통운 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고 오는 6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파업의 원인은 … (계속) 계좌번호는 휴대전화 번호 같았는데 발신자 번호와 달랐다. 애초에 무슨 택배가 온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한참 생각한 끝에 벽지를 주문했단 걸 떠올렸고 이윽고 메시지 끝에 벽지 업체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보았다. 택배비를 입금하고 답장을 보냈다.[2]지금 메시지를 옮겨 적으며 확인해 보니 발신자 번호와 계좌 번호가 같다.

된장찌개를 끓여 먹으려던 전날의 계획을 폐기하고 근처 분식집에 가서 오징어덮밥을 먹었다. 종종 그렇듯, 북한 출신 주민들이 등장하는 종편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화면을 보기 전에 목소리와 말투만 들은 상태에서 어떤 얼굴이 떠올랐는데 고개를 돌려 보니 말하는 이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의 얼굴일까 한참 생각했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기분이었지만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런 경험은 없었다. 밥을 반쯤 먹고서야 떠올렸는데, KBS 〈안녕하세요〉 출연자의 얼굴이었다. 남편이 북한식 감자볶음만 먹고 다른 건 좀체 먹지 않으려 한다는 고민을 들고 나온 이였다. 남편은 처음에는 그저 감자볶음이 맛있어서라고 눙치다 아픈 가족사를 이야기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짐을 좀 정리했고 그 후론 종일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제 표시해둔 논문 열 편을 다운로드했다. 열어보지는 않았다. 친구가 쓸 USB-HDMI 젠더를 검색해 주문했다. 여기엔 시간을 좀 들였다. 그 외엔 주로 괜한 웹서핑을 했다. 토비 맥과이어가 출연한 〈스파이더맨〉을 보았다.[3]어젯밤엔 서브모니터도 설치했다. 오늘은 모니터 하나엔 영화를 띄워 놓고 나머지 하나로는 웹서핑을 했다. 앞의 절반은 어제 본 것 같다. 일기를 몰아서 쓰다 보니 많은 것을 잊는다. 지난 며칠간은 띄엄띄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도 보았다. 얼마 전 극장에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일기에 쓴 재미없음이 아니라, 토비 맥과이어의 얼굴이었다. 〈스파이더맨〉 이후로는 적어도 의식하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십수 년을 늙어버린 채 갑자기 마주하게 된 얼굴.

저녁엔 된장찌개를 끓였다. 그제였나 사온 감자가 아니라, 있는 줄 몰랐던 감자를 썼다. 싹 여러 개를 도려내니 반밖에 안 남았다. 싹난 감자를 쓸 때마다 궁금해 한다. 요즘도 감자싹엔 솔라닌이 있을까. 씨없는 수박을 그렇게나 공들여 만드는데 독 없는 감자가 없다는 건 이상하니까. 하지만 한 번도 찾아보진 않았다. 싹과 그 주위의 초록색을 띠게 된 부분을 도려내면 간단히 제거할 수 있고 그다지 강하지도 않은 독, 이라면 굳이 없앨 노력은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수박을 먹는 이의 폭보다는 감자를 손질해야 하는 이의 폭이 훨씬 좁으니까. 다만, 색맹인 탓에 늘 궁금하고 무섭다. 초록색으로 변한 부분을 잘 도려내고 있는 걸까. 도통 모르겠다. 배탈이 난 적은 없다.

식사를 마치고는 화장실 세면대에 실리콘을 둘렀다. 일전에[4]10월 27일의 일이다. 배수구 덮개도 아직 바꾸거나 개조하지 않았는데, 이건 아무래도 영영 안 할 것 같다. 배수관을 바꾸느라 긁어내고는 여태 그냥 두었다. 표면이 마른 상태에서 작업하고 마른 채로 한참을 두어야 하는데 화장실이 그럴 때란 좀처럼 없으니까. 이번엔 맘먹고 말리고 닦았다. 실리콘이 다 마를 때까지 안전히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있던 실리콘이 너무 엉성하게 마감되어 있어 ― 아마도 전문가였을 ― 작업자를 탓했는데, 여러모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세면대와 바닥 사이의 틈은 넓고 세면대는 곡면에 바닥은 기울러져 있고 타일 사이에는 틈도 있다. 겨우 마쳤고 (실은 이미 조금 들떴다) 전문가가 해서 그나마 그 정도였던 걸까, 하는 생각만 남았다. 하는 김에 벽면 타일 사이 마감이 제대로 안 된 곳 두 군데 ― 전문가였다면, 작업자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 와 못자국 두 군데도 실리콘으로 매웠다.

도배. 도배. 도배.


당일에 써도 까먹네. “겁 없이 끼기로 한 낯선 이들과의 […] 스터디”의 단체대화방이 오늘 개설되었다. 안면이 있는 이 몇과 이름만 아는 이 몇이 있다. 이번에도 (셰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 말고는 다 전문가인 모임에 끼게 되었다. 다음주에 첫 모임을 하게 될 성 싶다.

1 미리 알지는 못했다. 대한통운 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고 오는 6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파업의 원인은 지난해 1월과 6월 두 차례 이뤄진 사회적 합의문에 대한 해석 차이다. 택배사, 영업점, 과로사대책위, 정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는 지난해 △택배 분류작업은 택배기사의 업무가 아니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0시간 이내로 한다 △별도의 분류 인력을 위해 택배 원가를 개당 170원 인상할 수 있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170원 인상’이란 부분을 두고 노조 측은 이 돈을 택배기사 처우 개선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롯데와 로젠, 한진은 인상분 170원을 모두 기사 처우 개선에 쓰고 있는데, CJ대한통운만 인상분의 60%인 100원만을 내놓고 있다”며 이를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CJ대한통운은 170원이란 숫자 자체는 의미 없다는 논리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타사에 비해 그만큼 자동화 설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을 반영했다”며 “어차피 전체 택배비 중 50%가 수수료로 기사들에게 배분되기 때문에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몫도 커진다”고 반박했다.
이런 해석 차이 외에도 궁극적으로는 총파업을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소통 움직임이 없다는 문제가 더 크다. 노조는 이번 파업만큼은 끝까지 가겠다고 하고 사측은 택배기사와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니 교섭할 일은 없다는 원론만 반복하고 있다. 회사와 택배기사가 중간에 대리점을 끼고 있는 형태라 노사협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했는데, 사회적 합의가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는 얘기다.”(hankookilbo.com/News/Read/A2022010314190000117)
2 지금 메시지를 옮겨 적으며 확인해 보니 발신자 번호와 계좌 번호가 같다.
3 어젯밤엔 서브모니터도 설치했다. 오늘은 모니터 하나엔 영화를 띄워 놓고 나머지 하나로는 웹서핑을 했다.
4 10월 27일의 일이다. 배수구 덮개도 아직 바꾸거나 개조하지 않았는데, 이건 아무래도 영영 안 할 것 같다.

2022.01.01-02.(토-일)

내일부터 일주일가량은 가급적 매일 쓸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가급적 매일, 이 방침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매일을 기록하는 일기는 이사 만 6개월이 되는 날까지만 쓰기로 했다.

2022.01.01.(토)

누워서 두 시간 넘게 딴짓하다 잤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여덟 시에 일어날 작정이었으나 세 시쯤에 포기하고 예약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 현재 시각 새벽 세 시, 이것은 예약 메시지이다, 이것이 간다면 나는 실패한 것이니 나를 버려라.

열 시 반쯤 깨고 열한 시쯤 하루를 시작했다. 논밭 사이를 한 시간 정도 걷고 식사를 하고 들어오기로, 하였으나 아뿔싸, 마스크를 두고 나가고 말았다. 지퍼를 잠그면 얼굴이 반쯤 가리는 옷이고 어차피 길에 사람도 얼마 없으니 산책은 할 수 있지만 식당에 가는 건 불가능했다. 밥을 할 시간을 벌기 위해 삼십 분 정도만 걷고 귀가했다. 전날 저녁과 같은 메뉴를 해먹었다. 마스크가 없으면 장을 보러 갈 수도 없으니까.

남은 하루의 대부분은 스터디에서 발제할 글을 번역하는 데에 썼다. 마침 책이 끝난 금요일 스터디는 쉬고 화요일 스터디는 계속한다. (친구가) 미리 번역해 둔 것이 쌓여 있어 이 글을 더하면 1월 한 달 동안은 발제 부담은 없이 진행할 수 있을 듯하다. 겁 없이 끼기로 한 낯선 이들과의 ― 바쁘다고 미루거나 빠질 수 없는 ― 스터디 하나가 아마 1월에 시작될 것 같은데 아직 확정되진 않은 모양이다.

중간에는 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하장을 써 보려 했는데 한 자도 쓰지 못했다. 어느 친구에게 어느 엽서, 그러니까 어떤 그림이 있는 엽서를 쓸지도 정하지 못했다. 이미 해가 바뀌었으니 이건 입춘대길을 기원하는 카드 정도로 여기라, 같은 시답잖은 말만 떠올랐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물론 연하장 같은 게 아니어도 다른 경로로 안부는 늘 확인하고 있다.

저녁에는 마트에 다녀왔다. 500g짜리 된장과 감자 두 알을 샀다. 된장은 일전에 다 먹은 것의 용기를 버리지 않고 두었다. 비닐봉투에 든 리필용을 살 생각이었다. 용기에 든 것보다 오백 원이 채 싸지 않았다. 용기에 든, 천 원 가까이 싼 다른 브랜드의 제품도 있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리필용을 샀다. 두 가지가 있었고 그 중 백 원쯤 싼 것을 골랐다. 집에 있는 것이 어느 브랜드인지는 모른다.

2022.01.02.(일)

비슷하게 누워 비슷하게 잠들고 비슷하게 일어났다. 씻고 된장찌개를 끓이기로 마음을 먹고 화장실로 갔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주방도 마찬가지. 날이 추우니 수도를 틀어두란 말을 무시하긴 했지만 더 추웠던 날에도 얼지 않았는데.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곧 알아냈다. 전날 환기를 시키려고 베란다 창을 열어 놓고는 깜빡하고 닫지 않은 것이다. 수도관은 확인할 수 없지만 세탁기 입수관은 고무 호스라 만져 보면 알 수 있다.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얼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도관의 일부가 바로 옆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속이 얼어 있을 것이었다.

드라이어로 급히 녹여볼까 하다 기온이 영상인 걸 ― 영상 1도였지만 ― 믿고 잠시 두어 보기로 했다. 베란다 문을 닫고 보일러 설정 온도를 조금 높이고 나가서 점심을 먹고 들어 왔다. 물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 뒤쯤이었던 것 같다. 주방 수도를 틀어보니 평소보다는 조금 약하게, 물이 나왔다. 화장실 수도 역시 그랬다. 몇 초 후 평소의 수압이 돌아왔다. 주방도 그랬다.

오후에는 짐 정리를 조금 했을 뿐인데 하루가 금세 갔다. 날이 저물어 버렸네. 읽어야 할 논문 몇 편을 찾아 표시해 두고 일주일쯤 밀린 가계부를 정리했다. 올해 지출이 생각보다 ― 그리고 잔고를 토대로 역산하면 나오는 숫자보다 ― 너무 적어서 깜짝 놀랐는데 알고보니 스프레드시트 수식을 허술하게 해 둔 탓이었다. 시트를 여는 날짜를 기준으로 계산되는 항목이 있는데 연도 설정을 하지 않아 2021년 1월 2일 기준으로 엉뚱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날짜가 반영되지 않도록 수식을 고치니 숫자가 맞아 들었다.

2021년에는 생각보다는 더 벌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20년만큼. 그리고는 대강 번 만큼 썼다. 이사다 뭐다 크게 나간 돈이 있는데도 그 정도면 훌륭하지. 스물세 가지 일을 했다. 대부분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였으니 너댓 가지라고 해도 되지만. 지출은 1899건이었다. 카드 내역상으론 두 개인 것을 하나로 합쳐 적은 경우 ― 커피를 사서 마시다 말고 쿠키를 결제한 경우나 버스 요금과 지하철 요금이 따라 기재되는 후불교통카드 대금 같은 경우 ― 가 있으니 실제론 좀 더 많을 것이다.

2022년 가계부에 쓸 양식을 만들어야겠다.

2021.12.27-31.(월-금)

2021.12.27.(월)

점심은 중국집 볶음밥. 이번에는 탈 없이 고기 빼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주차장에서 뭔가 흥미로운 장면을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점심을 전후해서는 아마도 금요일 스터디에서 읽을 글을 번역했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친구랑 스터디. 읽어야 할 것도 시간도 좀 남은 상태에서 예정보다 일찍 끝냈다. 저녁은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보냈다.

2021.12.28.(화)

낮에는 금요일 스터디 번역을 마저 했고 오후에는 월요일 스터디를 마저 했다. 저녁에는 또 번역. 밤에는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이 만나는 자리에 끼어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의 친구들은 몇 년 전에 업무로 알게 되어 안면은 있는 사이, 정도. 몇 마디 안 했는데 그 중 한 마디가 “괜찮아요?”였고 (한 명이 휘청했다) 말하는 게 “장수원 같다”는 평을 들었다. 친구가 전해주기로, 거의 말을 않고 듣기만 하는 내 모습을 친구의 친구 중 하나는 “닌자같이” 있다 갔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2021.12.29.(수)

오후에는 안산의 모 한의원에 다녀왔고 저녁에는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 농성장에 잠깐 들렀다. 전자에는 십여 년 전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 앉으면 온몸이 아프고 서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 나를 치료해 준 선배가 근무한다. 꽤 이것저것 추가한 건강검진으로도 아무것도 알 수 없던 차에 침을 맞고 약을 먹고 지압점을 배우고 하며 금세 꽤 나아졌다. 친구들에게 당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그 선배를 명의라 칭한다. 최근 몸이 안 좋아 고생하는 친구를 데려가 명의에게 맡겼다. 선배는 근무 중이었으므로, 아주 짧게 안부만 나누었다.

후자에서는 셰어의 동료들이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제천 오는 막차는 아홉 시이므로 오후에 들러 저녁 프로그램 ― 차별 없는 섹스 토크농성장 라이브 ― 을 시작하는 일곱 시쯤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예정보다 늦게 안산에 도착했고 예정보다 늦게 안산을 출발한 탓에 여섯 시 반에 도착해 삼십 분 정도, 역시 짧게 안부만 나누었다. 하필 이어폰을 안 가져가서 잠깐 고민하다 편의점에서 만 원짜리 이어폰을 ― 다른 곳에서는 오천 원이면 살 수 있을 품질인 데다 쓸 일도 딱히 없고 그런 이어폰이 이미 여러 개 있으므로 ― 눈물을 머금고 샀다. 결과적으로는 이어폰값 아깝지 않게 즐거이 들었다.

2021.12.30.(목)

아침에는 간만에 영화관에서 영화 봤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신작. 조조 상영이라 사람이 적었다. 거리두기 정책 덕에 두 자리 걸러 한 자리씩 비우니까 어느 자리에 앉은 양쪽 중 한 쪽은 반드시 비기도 한다. 빈자리에 가방과 외투를 두고 앉았다. 히어로물에 대체로 흥미가 없는 걸 생각하면 〈스파이더맨〉은 나름 각별하다. 전편을 다 보았다. 수많은 히어로 캐릭터 중 스파이더맨에만 어느 정도나마 관심이 가는 건 가진 힘도 마음도 소박하다는 점, 그럼에도 꽤 큰 적을 만나 고난을 겪는데 그게 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종류의 고난이라는 점 때문이다. 갈수록, 특히나 어벤저스와 엮이는 이번 시리즈는, 덜 재밌다는 뜻이다. 최신기술로 만든 수트, 만 해도 재미가 떨어지는데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마법까지 나오다니, 하며 보았다.

오후에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을 절반쯤 보았다. 그리고는 낮잠을 잤던가. 저녁은 집이랑 아주 가깝지만 반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안 가본 식당에서 먹었다. 가지 않았던 것은 바지락칼국수집이어서이고 간 것은 멀리 가기 귀찮아서이다. 조개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면은 다 먹었고 국물은 일부 먹었고 바지락은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음식을 남기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으므로 어느 정도 들었을 땐 참고 먹는데 한참 먹어도 티가 안 날 것 같은 양이어서 감히 덤비지도 않았다.

저녁에는 톰 홀랜드의 첫 〈스파이더맨〉을 보았다. 이걸로 다 보았다, 고 생각했으나 전편 시놉시스를 살펴보니 이야기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재생했더니 내가 중간지점까지 보고 닫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앞으로 돌려 대강 살펴본 후 나머지를 마저 봤다. 마지막 장면은 본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대개 거창한 전투신이었고 낯설었다. 전투신을 눈여겨 보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한 번을 보았고, 두 번째로 보다가 그 대목에서 흥미를 잃고 닫은 모양이다.

스터디용 번역을 좀 하고 잤을 것이다.

2021.12.31.(금)

열 시쯤 일어났을까, 열한 시쯤 전날 싸 둔 짐을 들고 길을 나섰다. 택배를 보내야 했다. 집앞 편의점에서 부칠 수도 있지만 그러면 하루 이틀 후에나 출발하니까. 이튿날 도착할 수 있게 멀리 갔다. 우체국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예수님 믿으세요, 하며 전단과 핫팩을 건넸다. 전단에는 지압이 어쩌고 건강이 어쩌고 하는 말과 마사지 받는 발을 클로즈업한 사진이 실려 있었다. 자기 사업 홍보하는 김에 전도도 같이 하는 걸까, 했는데 업소명 같은 건 없었다. 뒷면에는 교회와 목사의 이름 따위가 있었고 펼쳐보니 한쪽엔 발 지압점 목록이, 다른 한쪽엔 이런저런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우체국에서는 내일은 배송을 안 해서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들어갈 거란 말을 들었다. 다시 토요일 배송을 중단했나, 속으로만 생각했다.[1]내가 기억하는 것은 (검색해 보니) 2014-15년간의 일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는 오는 [2015년 9월] 12일부터 토요일 우체국택배를 … (계속) 공휴일인 건 생각지 못했다.

전단의 구성부터가 괴이한 데다 어느 교단 소속인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 페티시 있는 목사가 운영하는 이상한 곳일까 생각했다. 교회 이름을 검색해 보니 지압에 관한 정보는 없었고 특별할 것 없는 교단 소속이었다. 나름의 전략인 걸까, 아니면 그저 지압을 좋아하는 어느 신자가 개인적으로 만든 전단일까 생각했다. 이 이야길 들은 친구는 전도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고 발마사지를 내세운 거라면 예수 믿으세요 하며 건네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점심으로 보리밥을 먹었다. 먹으며, 귀가하며, 귀가한 후에 잠깐,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을 마저 보았다.

그다음에는 스터디. (함께) 읽기 애매한 짧은 글 몇 편을 생략하기로 했다. 이날로 책 한 권을 마쳤다. 내가 바빠서 1월은 쉬고, 2월부터는 친구 혼자 발제를 맡아 새 책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발제를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친구가 받아들일 거란 생각은 못해서, 2월도 바쁠 가능성이 높아서, 3월부터 할까 하였으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저녁에는 송년 모임. 길게 수다를 떨었다. 두 시쯤 누웠다.

1 내가 기억하는 것은 (검색해 보니) 2014-15년간의 일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는 오는 [2015년 9월] 12일부터 토요일 우체국택배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2014년] 7월12일부터 집배원들의 주 5일 근무 보장과 업무부담 경감 차원에서 우체국택배 토요배달을 쉬기로 해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이후 농산물 주말 직거래를 하는 농어민, 중소 인터넷 쇼핑몰업체, 주말 부부 등을 중심으로 토요일 배달을 원하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상황이다. 또한 서비스 경쟁력 약화로 매출과 택배 이용고객 등이 감소했다는 설명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국민 편익과 공익성이 우선이라는 인식으로 전국우정노동조합과 협의를 통해 토요 배달을 제기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혔다.”(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07246.html) 지난해부터는 “집배원의 과중한 업무가 논란이 되자 택배를 위탁하는 우정사업본부 산하 ‘물류지원단’의 택배기사 인원을 늘려, ‘월-금’ ‘화-토’로 근무일을 이원화하는 방식으로 주 5일제를 확대”해 주 6일 배송, 주 5일 근무 체제를 수립했다고 한다.(hankookilbo.com/News/Read/A2020102009520003474)

2021.12.26.(일)

여덟 시쯤 깼나. 금세 다시 잠들어서는 점심때가 다 돼서 일어났다. 얼려두었던 시금치를 꺼내 시금치 된장국을 끓였다. 지지난 주 서울 가기 전에 먹고 남은 것이다. 된장은 마지막 남은 한 숟갈을 썼다. 조금 부족해서 간장풍 조미료를 더했다. 다 끓은 국을 그릇에 붓고는 냄비에 계란을 부쳤다. 전기렌지를 전원만 끄고 냄비를 내리지 않았더니 잔열에 아래가 살짝 눌었다.

산책을 나갔다가 금세 포기하고 귀가했다. 크게 춥지는 않았으나 손이 너무 시렸다. 자리에 앉아 밀린 일기와 가계부를 썼다. 잠깐 정신 팔고 보면 한참씩이 지나 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산책을 시도했는데 이번엔 추워서 포기했다. 한 시간쯤 할 생각이었던 산책을 포기했으므로, 계획보다 한 시간쯤 일찍 황태김치국을 해 먹었다. 이번엔 전자렌지로 계란찜을 해 곁들였다. 그러고 언젠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왔는데, 온도는 더 떨어졌을 텐데도, 춥지 않았다. 허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또 뭘 했더라. 티브이 예능 한 편을 봤고 애니메이션도 몇 편 봤다. 군데군데 청소기를 돌렸다. 〈무용수-되기〉 후기를 썼다. 내일 스터디에서 볼 논문을 2/3쯤 읽었다. 보통은 스터디에서 전문을 강독하니까 예습을 하진 않는다. 내일은 전문을 미리 읽고 가서 발췌문을 함께 보기로 했다.

자정쯤, 배가 고파져서 남은 고구마 한 알을 쪄 먹으려 했는데 이미 상해 있었다. 편의점에 다녀왔다. 추웠다. 추울 만한 시간이었으므로, 그저 추울 만한 기온이었던 건지 허기 때문이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배를 채우고 논문을 마저 읽을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사십 분쯤이 지나 곧 한 시다. 누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