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 인밸리드, 「장애 정의의 10가지 원칙」

원문: Sins Invalid, “10 Principles of Disability Justice”확장판.
모든 각주는 역주.

장애 정의의 10가지 원칙

신스 인밸리드Sins Invalid[1]신스 인밸리드는 장애인, 유색인, 퀴어 작가를 중심으로 ‘장애 정의’에 입각해 섹슈얼리티와 미美를 탐색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펼치는 단체다. … (계속)

신스 인밸리드에서 우리는 장애 정의의 틀과 실천을 함양한다. 이 새로운 틀에는 열 가지 원칙이 있으며 그 각각은 운동을 건설을 기회를 제공한다.

1.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간단히 말하자면 이 원칙은 우리는 다양한 것으로 구성되며 그 모두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우리는 단순히 장애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연령, 종교적 배경, 지리적 위치, 이주민 신분 등 구체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맥락에 따라, 우리 모두에게는 억압을 경험하는 영역 뿐 아니라 특권의 영역이 있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가 1989년에 제안한 “교차성”은 인종차별racism과 성차별sexism을 특수하게 경험하는 흑인 여성의 경험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이 원칙이 우리의 삶에 가져다주는 뉘앙스를,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제시하는 관점들에 부여하는 형태를 기꺼이 끌어안는다.

2. 당사자 주도LEADERSHIP OF THOSE MOST IMPACTED

정상신체중심주의ableism, 인종차별, 성차별과 트랜스여성혐오transmisogyny, 식민화, 경찰 폭력 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학자나 전문가가 무엇이 무엇인지 말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 우리는 우리가 맞서는 체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the most impacted의 관점을 발굴하고 듣고 읽고 따르고 강조한다. 당사자들의 주도를 중심에 둠으로써 현실 세계의 문제에 토대를 투고 창의적인 저항 전략을 찾을 수 있다.

3. 반자본주의 정치학ANTI-CAPITALIST POLITICS

자본주의는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일부(백인 지배 계급)를 위한 부의 축적을 토대로 삼으며 생존 수단으로서 경쟁을 획책한다. 우리네 장애 심신our disabled bodyminds은 본성상 자본주의 문화에서 “규범적인” 수준의 생산성에 순응키를 거부하며 우리의 노동은 노동을 정상신체적인abled-bodied, 백인 우월주의적인, 젠더규범적인 기준으로 정의하는 체제에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지 않다.

4. 운동간 연대CROSS-MOVEMENT SOLIDARITY

장애 정의의 잠재력은 인종 정의, 재생산 정의, 퀴어/트랜스 해방, 감옥 철폐, 환경 정의, 경찰 테러 반대, 농인 행동주의Deaf activism, 비만 해방fat liberation 등 정의과 해방을 위한 여러 운동과 함께 하는 식으로만 발현될 수 있다. 인종차별을 두고 백인 장애 공동체에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운동들에 정상신체중심주의에 맞서라는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운동간 연대를 통해 우리는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5. 전체성의 인식RECOGNIZING WHOLENESS

사람은 저마다 역사와 삶의 경험으로 가득하다. 저마다가 고유의 사유, 감각, 감정, 성적 판타지, 지각, 개성quirks이 만드는 내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장애인은 전인적 존재whole people이다.

6.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우리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으로서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경험이 주는 가르침을 가치롭게 여기며 이를 중요한 지침이자 참조점 삼아 서두르지 않고 깊고 느리고 변혁적이며 멈출 수 없는 정의와 해방의 물결 속으로 나아간다.

7. 장애간 연대의 중시COMMITMENT TO CROSS-DISABILITY SOLIDARITY

우리는 우리 모든 공동체 성원들의 소중한 통찰과 참여에 경의를 표한다. 정치적 대화에서 늘상 배제되곤 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또한 특히, 그러하다. 우리는 신체적 손상physical impairments이 있는 이들, 아프거나 만성 질환이 있는 이들, 정신과 생존자psych survivors[2]정신과 질환이나 정신 장애가 아니라 정신과를, 즉 강제 치료를 비롯한 정신의학의 권위주의와 폭력을 경험한 이들, 혹은 환자권리운동 등을 통해 … (계속) 정신건강 장애mental health disabilities가 있는 이들, 신경다양인neurodiverse people[3]자폐, ADHD 등 흔히 병이나 장애로 여겨지는, 신경학적으로 비전형적인 특성이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일련의 병/장애를 탈병리화하려는 관점의 … (계속), 지적·발달장애가 있는 이들, 농인, 맹인, 환경 피해나 화학물질 민감증environmental injuries and chemical sensitivities이 있는 이들, 그리고 정상신체중심주의나 우리의 집단적 해방을 갉아먹는 고립을 경험하는 모든이들이 따로 고립되지 않게 하는 운동을 건설한다.

8. 상호의존INTERDEPENDENCE

서구의 확장이라는 대규모 식민 기획이 있기 전에, 우리는 우리네 공동체에 깃들어 있는 상호의존의 본성을 알았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와 대지의 해방이 우리 공동체의 해방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여긴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행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방을 향한 여정에서 서로의 필요needs에 부응하려 노력한다. 이에 있어 우리는 국가적 해법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국가적 해법이란 필연적으로 국가가 우리의 삶을 더욱 깊숙이 통제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9. 집단적 접근성COLLECTIVE ACCESS

흑인, 선주민, 퀴어 불구Black and brown and queer crips로서 우리는 유연하게 그리고 창조적 뉘앙스를 두며 서로를 만난다. 정상신체적이고 신경전형적인 규범을 넘어서는 일들을 행할 길을 만들고 또 탐색한다. 접근성에 관한 필요access needs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 우리 모두는 맥락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기능한다. 접근성에 관한 필요가 구체화되고 충족되는 방식은 개개인의 필요, 욕망, 또한 모임의 역량에 따라 사적일 수도, 집단을 통할 수도, 혹은 공동체 차원의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접근성에 관한 필요를 함께 책임질 수 있고 우리의 필요가 우리의 통합성integrity을 약화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총족되도록 요구할 수 있으며 공동체에 속하면서도 자율성의 균형을 잡을 수 있고 우리의 취약성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강점이 존중될 때 그러하다.

10. 집단적 해방COLLECTIVE LIBERATION

능력이 다양한[장애 여부 및 유형이 다양한]mixed abilities, 다인종적인multiracial, 다성적인multi-gendered, 계급이 다양한mixed class 이들로서 우리는, 그 어떤 심신도 빼놓지 않는 전망을 갖고서, 성적인sexual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운동한다.

이것이 장애 정의이다. 우리는 순응하지 않는 몸과 정신을 가진 우리 모두의 자산인 회복력과 저항resilience and resistance이라는 유구한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 장애 정의는 아직 폭넓은 기반을 갖춘 대중적인 운동은 아니다. 장애 정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전망이자 실천, 우리의 다양성들multiplicities, 역사들 속에서 우리의 선조, 미래의 후손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지도, 모든 몸과 정신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세계를 향한 운동이다.

1 신스 인밸리드는 장애인, 유색인, 퀴어 작가를 중심으로 ‘장애 정의’에 입각해 섹슈얼리티와 미를 탐색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펼치는 단체다. 공동 창립자 패트리샤 번Patricia Berne에 따르면 신스 인밸리드, 즉 ‘부당한 죄악[부당하게 죄악이라 불리는 것 혹은 그에 내려지는 벌]’이라는 이름은 “비규범적인 신체”를 “아버지의 죄악으로 아들에게 내려진 벌”로 여기는 “부당한 틀”에서, 그리고 장애인, 병약자 등을 가리키는 인벌리드invalid라는 말에서 착안한 것이다.(Cory Silverberg, “When it Comes to Sex, Are Your Sins Invalid?,” Huffpost: The Blog, 2011.) 정식 명칭은 “신스 인밸리드: 비가시성 앞에서 부끄럼 없이 미를 주장하다Sins Invalid: An Unshamed Claim to Beauty in the Face of Invisibility”이다.
2 정신과 질환이나 정신 장애가 아니라 정신과를, 즉 강제 치료를 비롯한 정신의학의 권위주의와 폭력을 경험한 이들, 혹은 환자권리운동 등을 통해 정신의학의 개혁을 요구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3 자폐, ADHD 등 흔히 병이나 장애로 여겨지는, 신경학적으로 비전형적인 특성이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일련의 병/장애를 탈병리화하려는 관점의 용어로, 이에 대응해 기존에 ‘정상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을 ‘신경전형인neurotypical people’으로 칭한다.

2022.01.08.(토) ― 最終回

오전에는 느릿느릿 벽지 아랫단 잘랐다. 벽지와 바닥에 붙은 풀거스러미를 대강 털어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는 좀 미적거렸던가. 점심은 중국집에서 먹었다. 햄을 뺀 볶음밥과 짬뽕국물 대신 계란국. 귀가해서는 또 좀 미적거렸던가. 컴퓨터를 챙겨 집앞 카페로 옮겼다.

읽던 책과 원래 읽으려 했던 책을 모두 미루어 두고 전날 들어온 일 때문에 봐야 하는 책(의 일부)을 읽었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하루 더 생각해 보기로.

귀가해서는 바닥을 닦았다. 풀자국이 있어 힘을 주어야 했다. 청소기에 딸린 걸레 기능으로는 모자랄 것 같아 처음부터 손걸레질을 시작했다. 악력은 약하다. 손으로도 썩 충분하진 않았다. 손이 아프도록 힘주어 눌러가며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닦았다. 그리고는 행거를 세우고 옷을 걸고 책꽂이와 수납장과 상을 들였다. 원래와는 조금 다르게 배치했다. 이불을 깔았다. 그 사이 언젠가 저녁을 해먹었다. 상했을 줄 알았던 콩나물과 두부가 멀쩡하길래 콩나물국을 끓였다. 마지막으로는 짐을 내어 놓았던 거실을 정리하거나 곧장 눕는 대신 거실에 앉아 〈스파이더맨 2〉(2004)를 봤다. 주연 토비Tobey의 성이 맥과이어McGuire가 아니라 매과이어Maguire란 건 겨우 하루이틀 전에 알게 되었다.

최근엔 얼마 전에 본 시트콤 ― 아마 여기에 제목을 쓰진 않았을 텐데, 《프렌즈》(1994-2004) ― 의 클립이나 비하인드 영상이 종종 소셜미디어 추천게시물로 뜬다. 지난 해에 출연진을 모아 이런저런 걸 찍은 모양인데 그 영상도 드문드문 끼어있다. 겨우 한 달 전쯤까지, 그것도 200화 넘게(게다가 대부분은 나로서는 오직 여기에서만 본 배우들이다), 청년의 얼굴로 만난 이들이 어느새 초로의 얼굴이 되어 있어 기분이 묘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토비 매과이어를 봤을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또 그 이상으로.

제주 사는 친적이 15kg짜리 상자 가득 담아 보내준 귤을 마지막 세 개를 남기고 다 먹었다. 상해서 버린 것이 여섯 알. 이 상자 전에는 5kg짜리를 두 상자 먹었다. 이래저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번 겨울에는 강정평화상단의 귤을 맛보지 못했다.

매일 쓰는 일기는, 여기까지. 7월 9일에 이사해 반 년을 채웠다.

2022.01.07.(금)

오전엔 안산. 한의원. 오후엔 서울. 카페에서 독서. 어제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백 쪽 정도 남아서 마저 읽고 자려고 했는데 아마도 그냥 잘 듯하다. 초반부보다 좀 더 재밌지만 여전히 특별하진 않다. 전후반에는 반 반半 자를, 초중종반에는 반상 반盤 자를 쓴다는 걸 안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카페에서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일이 들어 왔는데 일정을 비롯해 몇 가지 문제가 있어 내일 하루쯤은 고민해 보아야 할 성 싶다. 고민만으로 되는 건 아니고 무언가를 읽어야 한다. 그렇잖아도 읽어야 할 것이 쌓여 있어 도서관에 갈 생각이었는데 여유가 될지 모르겠다.

벽지가 대강 말랐으므로, 우선은 청소로 시작할 것이다. 마르면서 두 군데가 울었는데 ― 자신할 순 없지만 ― 아마도 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엔 우선 창을 열어 풀냄새를 빼고 남은 부분 재단, 풀자국 청소 따위를 해야 한다. 얼마나 일찍 일어나 얼마나 일찍 끝내는지에 따라 고민을 위한 읽기만 할지 도서관에도 갈지가 정해질 것이다.

카페를 나와서는 문구점과 서점과 생활용품점에 들렀다. 외국 사는 친구들에게 보낼 연하장에 입춘대길 스티커라도 동봉해볼까 했는데 그런 것은 팔지 않았다. 서점에서는 책을 대강 둘러보는 척만 했다. 생활용품점은 두 곳에 갔다. 한곳에서는 립밤을, 한곳에서는 “두피 샴푸 브러시”라는 것을 샀다. 겨울이 되니 어김없이 입술이 튼다. 늦가을부터 왠지 이따금 비듬이 생긴다. 쇼핑을 마치고 거리를 배회하다 초밥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카드를 잃어버렸다. 고속버스 출발시각을 십 분 앞두고 지하철역을 나오려던 차에 알았다. 역무원 호출벨을 눌러 카드를 잃어버렸다고 말하자 카드 종류를 물었다. 신용카드에 딸린 후불교통카드라고 말하자 그냥 나가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정산을 해야 하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한참 후에 나타난 역무원에게 다른 카드도 현금도 없음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다 버스를 놓칠까봐 걱정했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후불교통카드는 제한시간이 넘도록 하차 태그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최고 요금이 부과되는 걸까.[1]이 조항이 적용되는 게 맞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방금 찾아보니 수도권 전철 1-8호선 여객운송약관 제 6 장 운임반환 및 보상의 제29조(개표 또는 … (계속) 선불교통카드였다면 저렇게 되었을까. 카드를 찍고 들어와 지하철을 타기 전에 주머니에 있던 잡다한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그때 같이 버린 걸까. 분리수거를 하느라 하나하나 살피며 버렸으니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럼 지하철 좌석에 떨어진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러 택배를 찾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턴어웨이: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저, 김보영 역, 동녘, 2021)이다. 물론 집으로 바로 받을 수도 있고 다른 ― 편의점에서 수령하기 옵션이 없는 ― 택배는 그렇게 받는다. 이사 온 직후에는 책도 그렇게 받았다. 여름에 카드를 잃어버렸을 때 (반년 사이 두 번째, 한 해 사이 세 번째 분실이다) 카드 배송원이 전화를 끊으며 “아이고 미치겠네” 하고 중얼거리는 걸 들은 후로는 이렇게 받고 있다. 그가 무엇에 힘겨워 했는지야 알 수 없지만,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이다. 집 앞에는 다른 택배 하나가 와 있었다.

1 이 조항이 적용되는 게 맞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방금 찾아보니 수도권 전철 1-8호선 여객운송약관 제 6 장 운임반환 및 보상의 제29조(개표 또는 집표가 되지 않은 승차권의 처리 등) ③항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승차권(우대용 1회권 및 우대용 교통카드 제외) 개표 후 집표 시까지 5시간이 초과되었을 경우에는 해당 승차권의 기본운임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 2호선에서 타서 3호선에서 내렸다.

2021.01.06.(목)

이유 없이 종일 졸렸다. 오전엔 자다깨다 했다. 느지막히 점심을, 많이 먹었다. (오후엔 그래서 졸렸을까.) 점심은 생선구이. 기본찬으로 미역국이 듬뿍 나왔다. 십여 년 전 어느 술집에서 역시 기본 찬으로 나온 미역국을 데워 준다고 가져가더니 큰 솥에다 붓고 휘휘 저어 다시 떠서 담아주었던 일을 생각했다. 서너 해 전 어느 횟집 셀프바에 있던 미역국을 뜨던 다른 테이블의 누군가도 생각했다. 그는 국자를 미역국 솥과 제 그릇에 번갈아 담갔다.

그리고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출간되자마자 사놓고는 한참을 펼쳐보지조차 않은 여러 권 중 하나다. 한 글자도 읽지 않은 채 친구들의 호평만 여러 번 들어 왔다. 1999년인가에 초판이 나온 책의 번역서다. 번역서가 나온 건 두어 해쯤 되었을까. 들은 만큼 흥미롭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재미 없는 책이란 건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커다란 호평만 반복해 들은 탓이다.

저녁에는 대개 누워 있었다. 책을 조금 더 읽고 잘 것이다.

2021.01.05.(수)

하루 미룬 스터디를 해야 하는 날이었지만 하지 않았다. 친구가 읽어야 하는 책을 같이 읽는 스터디인데, 친구의 사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마저 읽기는 하기로 했지만 당장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게 되어서 조금 늦추기로 했다.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잠깐이었고 거의 오후 내내 자다시피 했다. 점심은 파스타. 저녁도 파스타. 점심은 토마토, 저녁은 오일 베이스. 야식은 피자. 2차 야식은 김밥. 편의점에 채식 참치마요 김밥이 있길래 먹어보았는데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저녁엔 친구와 안부를 나누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다 말고 잠시 다른 일에 치이고 있)는 그의 안부를 주로 들었다. 밤엔 친구와 안부를 나누었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지 않기로 한 그의 안부를 주로 들었다. 앞의 친구와 나눈 이야기 중엔 교수의 성별 분업 — 남성은 ‘대외’ 활동으로 외유하는 가운데 여성은 과내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돌봄’을 도맡게 되는 — 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뒤의 친구와 나눈 이야기에도 이와 닿는 것이 있었다.

종일 한 자도 읽지 않았다. 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늦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