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으로 이사 오던 시점에 제천에 대해 갖고 있었던 유일한 구체적인 정보는 영월과 ― 영월군 주천면과 ―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으므로 지금이라고 딱히 이렇다 할 정보를 갖게 되지도 않았지만.) 그러므로 구체적인 계획도 딱 하나 있었다. 주천에 다녀오기. 주천면에서는 두어 해 전에 ‘한 달 살기’를 했다. 스무닷새쯤 어느 민박집에서 지냈다. 매일 평균 두 시간을 걸었다. 안 걸은 날도 있고 다섯 시간을 걸은 날도 있다. 다섯 시간을 걷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주천에 가기, 주천강변에 적당히 앉아 물소리 들으며 하늘 보다 오기. 그것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이사 270일을 넘겨, 드디어 다녀왔다.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못 가기도 했지만 근처만 걸어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흥이 덜 나기도 했다. 가을에도 가지 않은 것은 아마 그래서. 얼마 전에는 날짜까지 정하고 맘을 먹었는데 하필 비 소식이 있었다. 그날은 버스를 탈 생각으로 일찍 일어나기까지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또 미루고 말았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대개 무리라 어지간하면 자전거로 갈 것이었다. 자전거는 거의 270일 내내 아파트 자전거 거치대에 묶여만 있다. 거의, 인 것은 근처에서라도 몇 번 탔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 한동안은 실내에 두었기 때문이다. 아마 한 번도 풀지 않았다. 봄이 오면 영월에 가겠다며 2월 말에 펌프를 샀는데 아직 바람도 넣지 않았다.
아마 오늘 처음으로 자물쇠를 풀었다. 하지만 이내 채웠다. 그저 자물쇠를 바꾸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다른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영월에. 드디어. 자전거는 그제 중고로 산 것이다. B의 집 ― 서울 ― 에 두려고 샀다. 이미 자전거가 있으므로 가격 상한선을 낮게 잡았고, 오로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제천에서 샀다. 다음 서울행 때 버스에 싣고 가야 한다. 3만 원. 물론 중고 자전거는 서울에 훨씬 많지만 그곳엔 사려는 사람도 많으므로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이런 가격에 나오는 걸 사긴 힘들다. 우연히 1분 전에 알람이 뜬 걸 보고 열어봐도 이미 예약중이라고 떠 있게 마련이다. 그들도 우연히 30초 전에 뜬 알람을 본 거라고 생각하는데 합당하겠지만, 기분대로 말하자면, 분명히 있다. 전화기만 바라보며 매물을 기다리고 올라오자마자 살펴보지도 않고 거래 약속을 잡는 사람이.
자전거를 산 건 3년쯤 만일까. 그 전 것, 그러니까 밖에서 먼지만 맞고 있는 저것도 중고로 샀다. 아마 25만 원. 특별히 좋은 걸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쁘지 않은 로드바이크면 됐는데, 내 키에 맞는 것 중 제일 싼 것이 그 가격이었다. 저가형은 ‘표준 체형’에 맞춰서만 나온다. 중앙대 앞에서 샀고 곧장 팔당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하고 나서야 기어와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자전거는 삐걱대고 나는 길을 잃고 ― 분명 한강을 따라 달렸는데 정신 차려보니 양재천을 따라 서초구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 한 통에 팔당은 가지 못하고 하남까지만 다녀왔다. 서울에서도 자주 타지는 않았다. 서울을 도무지 못 견딜 쯤이 되면 한 번씩 서울을 벗어나는 데 쓰는 것, 최근 몇 년 간의 자전거는 그런 것이었다. 여기는 못 견딜 게 없으므로 쓸 일이 더 없다. 그런데도 굳이 서울에 둘 것을 또 산 건 놀이를 위해서다. 말하자면 데이트 같은 것.
이번 자전거도 기어와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번엔 판매 글에 미리 적혀 있었다. 낡긴 했지만 이만큼 싼데도 오히려 품질이 낮은 자전거들보다 오래 안 팔리고 있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어는 직접 조정하면 되고 브레이크도 사둔 것이 있다. (저번 자전거 때문에 기어 고치는 법을 배웠고 브레이크도 사뒀다.) 그러니 괜찮았다. 그래서 샀다. 그런데 30% 정도만 사실이었다. 기어는 안 되던 걸 전혀 안 되지는 않는 선까지만 고쳤다. 선을 갈아야 할 모양이다. 브레이크는 세트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체용 패드만 여분이 있었다. 일단은 브레이크와 바퀴 간격을 조금 좁혀서 급한 대로 설 수는 있는 정도로만 해두었다. 선과 브레이크를 사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어는 조금 뻑뻑하지만 아무튼 작동은 하게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바퀴를 허공에 두고 돌릴 때만 그랬다. 종종 안 된다는 건, 이번에도 역시, 출발한 후에야 알았다.
여기서 주천면소재지까지는 17㎞. 지도 앱의 계산으로 한 시간 이십 분 정도가 걸린다. 집 근처에서 두어 번 꺾어 송학주천로 ― 제천시 송학면과 영월군 주천면을 잇는 도로 ― 에 들어서면 쭉 직진하면 된다. 물론 옆길로 빠지지 않고 큰길을 따라 가면 된다는 것일 뿐 길이 곧은 것은 아니다. 낮은 산들 사이를 구불구불 가는 길이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다. 급경사는 없지만 나는 조금만 오르막이어도 자전거에서 내려 버리고 만다. 기운이 없기도 하지만 기어를 바꾸어도 못 오를 정도로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쉼없이 패달을 저으며 느리게 가는 건 너무나 지루한 일이므로, 그냥 걷기로 하고 만다. 한 시간 반 가량 걸려서 도착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늘 하던 대로 담배는 챙기면서 마실 건 안 챙겨서 괴롭게 갔다. 물론 수퍼 같은 건 없는 길이다. 주유소를 발견해 반색했지만 매점은 흔적만 있었다. 면사무소 옆 마트에 도착해서야 아이스크림과 이온음료로 목을 축였다.
원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새벽 늦게 잠들었고 오전 느지막히 일어나 뭉그적대기까지 하여 두 시가 지나 출발하였으므로 자전거를 타고 안쪽 동네로 들어갔다. 영월군 무릉도원면 요선암 돌개바위. 이름을 아는 곳들 중에서 제일 좋아한 곳이다. 이름을 모르는 곳을 더 좋아했는데 그건 좀 더 멀어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너럭바위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일어나서는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갔다. 생산된지는 20년이 넘었고 내가 갖고 있은지도 15년은 된 물건이다. 언제부턴가 날이 추우면 자동초점 기능이 말썽을 부려 쓰지 않고 넣어두었다. 수리점 세 군데쯤을 갔는데, 수리점은 모두 따뜻했으므로, 문제 없이 작동했다. 이런저런 검사만으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밖에 나가서 작동해 봤을까. 그래봐야 밖에서는 검사 장비를 쓸 수 없으니 도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강을 따라 동네를 조금 돌고 다시 면사무소 부근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그 사이 새로 생긴 펜션과 새로 생긴 벤치를 지났다. 밥을 먹고는 카페에 들어갔다. 주천에서 지낸 당시에도 있었지만 가보지 않은 곳이다. 여섯 시 십구 분에 들어갔는데 영업 마감이 여섯 시라고 했다. 전에 종종 갔던 다른 카페로 갔다. 잠시 외출중이라며, 여섯 시 오십 분에 돌아 온다고 적혀 있었다. 결국 그 사이 새로 생긴 카페 하나를 찾아 거기서 쉬었다. 일곱 시까지 영업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일곱 시 십오 분에 나오기까지도 문을 닫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나오고 나서야 주인인지 직원인지가 청소를 시작하는 듯했다. 안에는 다른 손님이 있었다.
오는 길도 똑같이 17㎞. 속도를 내는 데에도 유지하는 데에도 애초에 관심이 없지만 ― 평지에서는 대개 잠시 페달을 밟아 속력을 높인 후에 그대로 한참 미끄러지고 멈출 때쯤 다시 발을 놀리기를 반복한다 ― 귀갓길에는 유독 세월아 네월아 하는 성격이라 잔뜩 긴장했다. 다리가 지치기도 했고. 가는 길에야 해 지기 전에 도착해야 사진이라도 몇 장 찍는다, 같은 동기가 있지만 집에야 언제 들어가든 딱히 상관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을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상관이 있다.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세 번 중 한 번 정도만 쉬며 왔다. 속도는 갈 때랑 비슷해서 한 시간 반이 조금 안 되게 걸렸다.
그렇게 말끔하게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실은 한 시간 사십 분이 걸렸다. 의림지 방향이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어 집 앞이네 이 길인가보다, 하며 그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짚 앞이라고 칭하긴 하지만 2㎞는 족히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그 길이 의림지까지 직선으로 뻗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거리는 1㎞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다만 오르막이 많았다. 괜히 크게 지쳐서 귀가했다.
요선암에서의 30분 정도를 위해 40㎞ 넘게 자전거를 탔다. 이상한 일이다. 무릉도원면과 주천면의 안쪽 마을을 돈 거리를 빼고 집과 면소재지를 오간 것만 쳐도 35㎞다. 이 길의 대부분은 특별히 볼거리는 없는, 교외의 차도다. 옆으로는 논이나 밭이나 산이 있지만 중간중간 공장이 있고 큰 차들이 다닌다. 종종 ‘혐오시설 반대’나 ‘도둑놈을 잡자’ 같은 플래카드도 있었다. (후자는 아마도 영농조합의 누군가가 횡령을 벌여 걸린 듯했다.) 그다지 유쾌한 길만은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혐오시설” 건립이 검토되지조차 않고 ― 물론 지금은 서울 도심을 떠올리고 있다 ― 결국 검토당한 이런 곳의 사람들만이 이기심으로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되고 마는 경로 같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길이다. 혐오시설이라는 것이 축사라면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인간과만 관계하는 곳이라 해도, 그곳의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건 평소에 생각해야 하지.
그러므로, 기진맥진했지만 오는 길이 훨씬 좋았다. 가로등 따위는 당연히 없다. 희끄무레한 하늘을 등지고 보이는 검은 산들 ― 산 너머에 읍내든 시내든 뭔가 있는 듯했다 ― 과 인가가 있는 곳에 드문드문 달린 불빛만 보이니까. 커다란 건물들의 그림자도 보이지만 공장인지 농작물 창고인지 알 수 없다. 애초에 그림자이므로 존재 자체가 덜 의식되기도 하고. 검은 것들에 둘러 싸여서는 달과 별을 보며 달렸다. 이런 건 그래도 즐겁지. 그래도, 인 건 그저 자전거 타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가깝다면 걸었을 것이다. 의림지와 의림뜰만이 가까우므로 그곳에만 다니는 것이다.
문제는 길도 안 보인다는 것. 전조등을 달고 달려서 큰 요철은 보였지만 굵은 모래가 흩어져 있지는 않은지 같은 건 알기 어려웠다. 그런 데서 브레이크를 잘못 잡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내리막이 많으니까. 한 번도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그러면 다음 문제는, 전조등으로는 코앞만 보인다는 것. 얼마나 이어지는지를, 끝나기는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꾸역꾸역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는 사소한 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