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6-17.(일-월)

2022.10.17.(일)

저녁에 장을 보러 가면서 마트와는 반대 방향을 향했다. 낮에 일하러 카페에 가는 길에 보고 지나친 카세트 플레이어를 줍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 주워다 집에 두고 다시 나설 요량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대로 있었다. 집에 들렀다 마트로 가서 시리얼과 우유, 두부와 감자와 버섯,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 소스를 샀다.

집에 돌아와 시리얼을 먹은 후 카세트 플레이어를 닦고 분해했다. 스피커 유닛이 양쪽으로 하나씩 두 개가 들었지만 모노 출력만 되는 모델이었다. 인두로 납을 녹여 기판과 왼쪽 스피커를 잇는 두 개의 선과 양쪽 스피커를 잇는 두 개의 선을 떼었다. 총 네 곳. 그리고는 스피커마다 두 가닥씩 다른 선을 땜질해 붙였다. 다시 네 곳. 이 선은 지난번에 선풍기를 분해해 버리면서 떼어 둔 것이다.

카세트 플레이어 겸 라디오 수신기 기판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전선 네 가닥의 다른 쪽 끝을 밖으로 뽑고 다시 조립했다. 뽑은 선은 한 동안 안 쓰고 있던 앰프에 연결했다. 언젠가 선을 다시 이으면 작동할지도 모를 카세트 플레이어를, 당분간은 스피커로 쓰기로 했다. 음질이 좋지 않지만 고음과 저음의 볼륨을 각각 조절하니 귀에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 소리가 난다. 스피커의 질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2022.10.18.(월)

역시 낮에는 카페에 가서 일했다. 아닌가. 일은 십 분 정도 했다. 나머지 시간은 책을 조금 읽었다. 내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손님들이 다 일어서서 카페는 조용했지만 할로윈을 맞아 해둔 온갖 장식에 정신이 사나웠다. 그리 오래 읽지 않고 돌아왔다. 한동안 누워 있다가 어제 사 온 재료들을 썰어 된장찌개를 끓였다.

찌개가 끓는 동안 ― 저가 잡화점에서 사온 냄비는 광고와는 달리 열전도율이 떨어지는지 끓는 데 한참이 걸린다 ― 중고로 사온[1]2022.03.10-11.(목-금) 카오디오를 정비했다. 대충 테이프로 감아 뒀던 전원 입력부를 납땜과 수축튜브로 정리하고 스피커도 바꾸어 연결했다. 김사월의 《Heaven》 CD를 재생시키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는 빈둥거리다가 앰프를 거실에서 침실로 옮기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재생했다. 누가 연주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간밤에는,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도 아침에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어느 단체에서 나를 정책상무로 초빙하고 싶다고 했다. 상무라니 직함이 이상하네,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사무실을 방문하기로 했다. 엉뚱하게도 문재인이 나와 면접을 진행했다. 좋아하는 단체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역시 책임질 수 없는 무게를 지지 않기로 하고 고사했다.

10m쯤 되는 거대한 전갈을 만난 게 면접에 가는 길이었을까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을까. 가는 길에는 누군지 모를 친구와 동행했는데 중간에 그가 어느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대마 땅콩을 파는 곳이라고 했다. 먹어보지는 못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디선가 전갈의 일행과 싸워 길을 뚫어야 했다. 카페에서 전자광선이 나가는 창 같은 무기를 얻어다 (전갈은 나를 위협했지만 나머지는 그러지 않았음에도) 이족보행을 하는 괴물들 중 하나를 겨누었다.

광선을 발사하는 버튼을 누르자 평범한 물총 정도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괴물은 잠시만 멈춰 보라며 내게 다가와 하소연을 했다. 자신은 아키타 우라는 작가가 보내서 온 것일 뿐 공격하거나 싸울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잠에서 깨어서는 아키타 우라는 작가가 정말로 있는지를 찾아 보았다. 지지난 세기에 태어나 지난 세기에 세상을 떠난 아키타 우자쿠秋田 雨雀라는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수리와 파란꼬리도마뱀

원문: David Starr Jordan, The Book of Knight and Barbara: Being a Series of Stories Told to Children Corrected and Illustrated by the Children, New York: D. Appleton and Company, 1899, pp. 138-40. (데이비드 스타 조던, 『(아이들이 직접 정리하고 그림을 그린) 나이트와 바버라의 책: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수리와 파란꼬리도마뱀The Eagle and the Blue-Tailed Skink

옛날에 파란꼬리도마뱀 한 마리가 살았어. 한날은 나무토막에 걸터 앉아 햇빛을 즐기고 있었지. 그런데 저기 나무 위에 커다란 흰머리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어. 수리는 나무토막에 걸터 앉아 햇빛을 쬐는 파란꼬리도마뱀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잡아먹기로 하고는 날쌔게 내리덮쳤지. 수리가 날아 오는 걸 본 파란꼬리도마뱀은 얼른 몸을 날렸지만 꼬리를 붙잡히고 말았어. 파란꼬리도마뱀은 잡으려고 하면 꼬리가 떨어져 버린단다. 타고나길 그렇게 되어 있어. 그렇게 파란꼬리도마뱀은 수리 발톱 사이에 꼬리만 넘겨주었지. 수리가 꼬리를 먹는 동안 도마뱀은 나무 옆쪽으로 무사히 도망쳤어.

파란꼬리도마뱀이 나무 위를 올려다 보니 저 높이 가지 사이에 수리 둥지가 있었어. 둥지에는 알이 네 개 있었고. 파란꼬리도마뱀은 재빨리 나무를 타고 올라 둥지로 갔지. 수리는 아직도 나무토막에 앉아 꼬리를 먹고 있었어. 도마뱀은 수리가 낳아 둔 알 네 개를 다 먹어버리곤 이렇게 말했지. “이 알에 든 고기면 꼬리를 새로 만들기에 충분하겠어.”

나무 위 둥지에 앉아 있는 파란꼬리도마뱀을 본 수리는 날아올라 잡으러 왔어. 하지만 파란꼬리도마뱀은 반대편으로 도망쳐 버렸지. 둥지로 돌아와 알이 전부 사라진 걸 본 수리는 이렇게 말했어. “방금 먹어치운 그 도마뱀 놈 꼬리 고기면 알 네 개를 새로 낳기에 충분해.”

도마뱀은 파란 꼬리가 새로 돋을 때까지 나무토막 아래 그늘에 숨어 있었어. 꼬리가 다 자라자 나무토막 위로 올라가 햇빛을 쬐었지. 둥지에 알 네 개를 낳은 수리가 파란꼬리도마뱀을 발견하고는 얼른 잡으러 갔어. 꼬리 끄트머리를 붙잡자 꼬리가 떨어졌지. 파란꼬리도마뱀은 도망을 쳤어. 수리가 아그작아그작 씹을 때마다 꼬리가 꿈틀대는 모습이 보였어. 도마뱀이 나무 위 수리 둥지로 가보니 알 네 개가 있었어. 그래서 알들을 먹어치웠지. 수리는 꼬리를 먹고 파란꼬리도마뱀은 알을 먹고, 둘은 끝없이 먹고 먹혔단다. 꼬리에는 알 네 개를 낳기에 충분한 고기가, 알 네 개에는 파란 꼬리가 돋아나기에 충분한 고기가 있었으니 말이야.*

* “파란꼬리도마뱀이 꼬리를 영영 잃는 일은 없었겠네.” ― 바버라.


아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전략) 나는 먼저 그가 쓴 동화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동화가 도덕적 가르침을 가장 노골적으로 펼쳐놓는 형식일 테니까. 〈독수리와 파란 꼬리 스킹크〉라는 단편동화(스컹크를 생각하지 마시라. 스킹크는 도마뱀이다)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날쌔게 날아 내려와 파란 꼬리 스킹크의 꼬리를 잘라 먹는다. 상처 입은 스킹크는 복수를 위해 독수리의 둥지로 종종걸음으로 올라가 독수리 알을 여러 개 집어 삼키고는 ‘이 알들에는 새 꼬리를 만들기에 딱 충분한 만큼의 고기가 들어 있어’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둘의 행동은 계속된다. 독수리는 내려와 새로 난 꼬리를 잘라 먹고 도마뱀은 둥지로 돌라가 알들을 먹어치우는 일이 계속된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완전히 패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꼬리에는 더 많은 알을 만들 고기가 충분하고, 알에는 또 하나의 파란 꼬리를 만들 고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게 이 이야기는 복수의 헛됨에 대한 명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리학에서 가장 빼도 박도 못할 법칙인 질량보존의 법칙―질량은 결코 창조될 수도 파괴될 수도 없다―을 가장 잔인하게 묘사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그가 쓴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우주의 차가운 법칙을 피해갈 수 없는 폐쇄공포증적 세계를 그린다. (후략)

룰루 밀러, 정지인 역,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곰출판, 2021, 123-4쪽.

2022.04.07.(목)

제천으로 이사 오던 시점에 제천에 대해 갖고 있었던 유일한 구체적인 정보는 영월과 ― 영월군 주천면과 ―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으므로 지금이라고 딱히 이렇다 할 정보를 갖게 되지도 않았지만.) 그러므로 구체적인 계획도 딱 하나 있었다. 주천에 다녀오기. 주천면에서는 두어 해 전에 ‘한 달 살기’를 했다. 스무닷새쯤 어느 민박집에서 지냈다. 매일 평균 두 시간을 걸었다. 안 걸은 날도 있고 다섯 시간을 걸은 날도 있다. 다섯 시간을 걷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주천에 가기, 주천강변에 적당히 앉아 물소리 들으며 하늘 보다 오기. 그것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이사 270일을 넘겨, 드디어 다녀왔다.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못 가기도 했지만 근처만 걸어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흥이 덜 나기도 했다. 가을에도 가지 않은 것은 아마 그래서. 얼마 전에는 날짜까지 정하고 맘을 먹었는데 하필 비 소식이 있었다. 그날은 버스를 탈 생각으로 일찍 일어나기까지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또 미루고 말았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대개 무리라 어지간하면 자전거로 갈 것이었다. 자전거는 거의 270일 내내 아파트 자전거 거치대에 묶여만 있다. 거의, 인 것은 근처에서라도 몇 번 탔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 한동안은 실내에 두었기 때문이다. 아마 한 번도 풀지 않았다. 봄이 오면 영월에 가겠다며 2월 말에 펌프를 샀는데 아직 바람도 넣지 않았다.

아마 오늘 처음으로 자물쇠를 풀었다. 하지만 이내 채웠다. 그저 자물쇠를 바꾸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다른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영월에. 드디어. 자전거는 그제 중고로 산 것이다. B의 집 ― 서울 ― 에 두려고 샀다. 이미 자전거가 있으므로 가격 상한선을 낮게 잡았고, 오로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제천에서 샀다. 다음 서울행 때 버스에 싣고 가야 한다. 3만 원. 물론 중고 자전거는 서울에 훨씬 많지만 그곳엔 사려는 사람도 많으므로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이런 가격에 나오는 걸 사긴 힘들다. 우연히 1분 전에 알람이 뜬 걸 보고 열어봐도 이미 예약중이라고 떠 있게 마련이다. 그들도 우연히 30초 전에 뜬 알람을 본 거라고 생각하는데 합당하겠지만, 기분대로 말하자면, 분명히 있다. 전화기만 바라보며 매물을 기다리고 올라오자마자 살펴보지도 않고 거래 약속을 잡는 사람이.

자전거를 산 건 3년쯤 만일까. 그 전 것, 그러니까 밖에서 먼지만 맞고 있는 저것도 중고로 샀다. 아마 25만 원. 특별히 좋은 걸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쁘지 않은 로드바이크면 됐는데, 내 키에 맞는 것 중 제일 싼 것이 그 가격이었다. 저가형은 ‘표준 체형’에 맞춰서만 나온다. 중앙대 앞에서 샀고 곧장 팔당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하고 나서야 기어와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자전거는 삐걱대고 나는 길을 잃고 ― 분명 한강을 따라 달렸는데 정신 차려보니 양재천을 따라 서초구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 한 통에 팔당은 가지 못하고 하남까지만 다녀왔다. 서울에서도 자주 타지는 않았다. 서울을 도무지 못 견딜 쯤이 되면 한 번씩 서울을 벗어나는 데 쓰는 것, 최근 몇 년 간의 자전거는 그런 것이었다. 여기는 못 견딜 게 없으므로 쓸 일이 더 없다. 그런데도 굳이 서울에 둘 것을 또 산 건 놀이를 위해서다. 말하자면 데이트 같은 것.

이번 자전거도 기어와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번엔 판매 글에 미리 적혀 있었다. 낡긴 했지만 이만큼 싼데도 오히려 품질이 낮은 자전거들보다 오래 안 팔리고 있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어는 직접 조정하면 되고 브레이크도 사둔 것이 있다. (저번 자전거 때문에 기어 고치는 법을 배웠고 브레이크도 사뒀다.) 그러니 괜찮았다. 그래서 샀다. 그런데 30% 정도만 사실이었다. 기어는 안 되던 걸 전혀 안 되지는 않는 선까지만 고쳤다. 선을 갈아야 할 모양이다. 브레이크는 세트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체용 패드만 여분이 있었다. 일단은 브레이크와 바퀴 간격을 조금 좁혀서 급한 대로 설 수는 있는 정도로만 해두었다. 선과 브레이크를 사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어는 조금 뻑뻑하지만 아무튼 작동은 하게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바퀴를 허공에 두고 돌릴 때만 그랬다. 종종 안 된다는 건, 이번에도 역시, 출발한 후에야 알았다.

여기서 주천면소재지까지는 17㎞. 지도 앱의 계산으로 한 시간 이십 분 정도가 걸린다. 집 근처에서 두어 번 꺾어 송학주천로 ― 제천시 송학면과 영월군 주천면을 잇는 도로 ― 에 들어서면 쭉 직진하면 된다. 물론 옆길로 빠지지 않고 큰길을 따라 가면 된다는 것일 뿐 길이 곧은 것은 아니다. 낮은 산들 사이를 구불구불 가는 길이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다. 급경사는 없지만 나는 조금만 오르막이어도 자전거에서 내려 버리고 만다. 기운이 없기도 하지만 기어를 바꾸어도 못 오를 정도로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쉼없이 패달을 저으며 느리게 가는 건 너무나 지루한 일이므로, 그냥 걷기로 하고 만다. 한 시간 반 가량 걸려서 도착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늘 하던 대로 담배는 챙기면서 마실 건 안 챙겨서 괴롭게 갔다. 물론 수퍼 같은 건 없는 길이다. 주유소를 발견해 반색했지만 매점은 흔적만 있었다. 면사무소 옆 마트에 도착해서야 아이스크림과 이온음료로 목을 축였다.

원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새벽 늦게 잠들었고 오전 느지막히 일어나 뭉그적대기까지 하여 두 시가 지나 출발하였으므로 자전거를 타고 안쪽 동네로 들어갔다. 영월군 무릉도원면 요선암 돌개바위. 이름을 아는 곳들 중에서 제일 좋아한 곳이다. 이름을 모르는 곳을 더 좋아했는데 그건 좀 더 멀어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너럭바위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일어나서는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갔다. 생산된지는 20년이 넘었고 내가 갖고 있은지도 15년은 된 물건이다. 언제부턴가 날이 추우면 자동초점 기능이 말썽을 부려 쓰지 않고 넣어두었다. 수리점 세 군데쯤을 갔는데, 수리점은 모두 따뜻했으므로, 문제 없이 작동했다. 이런저런 검사만으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밖에 나가서 작동해 봤을까. 그래봐야 밖에서는 검사 장비를 쓸 수 없으니 도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강을 따라 동네를 조금 돌고 다시 면사무소 부근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그 사이 새로 생긴 펜션과 새로 생긴 벤치를 지났다. 밥을 먹고는 카페에 들어갔다. 주천에서 지낸 당시에도 있었지만 가보지 않은 곳이다. 여섯 시 십구 분에 들어갔는데 영업 마감이 여섯 시라고 했다. 전에 종종 갔던 다른 카페로 갔다. 잠시 외출중이라며, 여섯 시 오십 분에 돌아 온다고 적혀 있었다. 결국 그 사이 새로 생긴 카페 하나를 찾아 거기서 쉬었다. 일곱 시까지 영업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일곱 시 십오 분에 나오기까지도 문을 닫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나오고 나서야 주인인지 직원인지가 청소를 시작하는 듯했다. 안에는 다른 손님이 있었다.

오는 길도 똑같이 17㎞. 속도를 내는 데에도 유지하는 데에도 애초에 관심이 없지만 ― 평지에서는 대개 잠시 페달을 밟아 속력을 높인 후에 그대로 한참 미끄러지고 멈출 때쯤 다시 발을 놀리기를 반복한다 ― 귀갓길에는 유독 세월아 네월아 하는 성격이라 잔뜩 긴장했다. 다리가 지치기도 했고. 가는 길에야 해 지기 전에 도착해야 사진이라도 몇 장 찍는다, 같은 동기가 있지만 집에야 언제 들어가든 딱히 상관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을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상관이 있다.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세 번 중 한 번 정도만 쉬며 왔다. 속도는 갈 때랑 비슷해서 한 시간 반이 조금 안 되게 걸렸다.

그렇게 말끔하게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실은 한 시간 사십 분이 걸렸다. 의림지 방향이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어 집 앞이네 이 길인가보다, 하며 그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짚 앞이라고 칭하긴 하지만 2㎞는 족히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그 길이 의림지까지 직선으로 뻗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거리는 1㎞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다만 오르막이 많았다. 괜히 크게 지쳐서 귀가했다.

요선암에서의 30분 정도를 위해 40㎞ 넘게 자전거를 탔다. 이상한 일이다. 무릉도원면과 주천면의 안쪽 마을을 돈 거리를 빼고 집과 면소재지를 오간 것만 쳐도 35㎞다. 이 길의 대부분은 특별히 볼거리는 없는, 교외의 차도다. 옆으로는 논이나 밭이나 산이 있지만 중간중간 공장이 있고 큰 차들이 다닌다. 종종 ‘혐오시설 반대’나 ‘도둑놈을 잡자’ 같은 플래카드도 있었다. (후자는 아마도 영농조합의 누군가가 횡령을 벌여 걸린 듯했다.) 그다지 유쾌한 길만은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혐오시설” 건립이 검토되지조차 않고 ― 물론 지금은 서울 도심을 떠올리고 있다 ― 결국 검토당한 이런 곳의 사람들만이 이기심으로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되고 마는 경로 같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길이다. 혐오시설이라는 것이 축사라면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인간과만 관계하는 곳이라 해도, 그곳의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건 평소에 생각해야 하지.

그러므로, 기진맥진했지만 오는 길이 훨씬 좋았다. 가로등 따위는 당연히 없다. 희끄무레한 하늘을 등지고 보이는 검은 산들 ― 산 너머에 읍내든 시내든 뭔가 있는 듯했다 ― 과 인가가 있는 곳에 드문드문 달린 불빛만 보이니까. 커다란 건물들의 그림자도 보이지만 공장인지 농작물 창고인지 알 수 없다. 애초에 그림자이므로 존재 자체가 덜 의식되기도 하고. 검은 것들에 둘러 싸여서는 달과 별을 보며 달렸다. 이런 건 그래도 즐겁지. 그래도, 인 건 그저 자전거 타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가깝다면 걸었을 것이다. 의림지와 의림뜰만이 가까우므로 그곳에만 다니는 것이다.

문제는 길도 안 보인다는 것. 전조등을 달고 달려서 큰 요철은 보였지만 굵은 모래가 흩어져 있지는 않은지 같은 건 알기 어려웠다. 그런 데서 브레이크를 잘못 잡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내리막이 많으니까. 한 번도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그러면 다음 문제는, 전조등으로는 코앞만 보인다는 것. 얼마나 이어지는지를, 끝나기는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꾸역꾸역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는 사소한 절망.

2022.04.06.(수)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며, 쓴다. 조금 전에 사 온 것이다. 네 캔 만 원, 을 잠깐 고민하다 삼천오백 원짜리 한 캔을 샀다. 네 캔을 사면 기약 없이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할 테니까. 집을 나섰는데 먼발치서 실랑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해 혀가 굳은 듯한 중노년 남성들. 노래방을 가네 마네 하는 중이었다. 셋. 한 명은 지금 노래방에 갔다가 집에 가면 열두 신데 내일 할 일이 있으니 그냥 파하자고 했다. 한 명은 딱 한 시간만 놀다 가자며 택시를 부르면 된다고 했다. 한 명은 여자 부르지 마, 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다들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그가 제일 많이 반복했다.

택시를 부르면 된다는 사람은 아름답게 놀고 가자고도 몇 번 말했다. 한 시간 놀고 택시 타고 얼른 집에 가자, 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택시를 불러 노래방에 가자는 말이었다. 아름답게, 우리끼리 깔끔하게, 놀자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역시 아니었다. 여자 부르지 마, 그건 아니지, 하는 말들은 모두 그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막무가내로 택시를 불렀다. 어디어디 편의점 앞으로 와달라고 했다. 그들이 선 곳은 아파트 후문. 편의점은 바로 옆 건물. 그 건물에는 노래방도 있다. 노래연습장. 그건 아니지, 한 사람이 저기 노래연습장 있잖아, 하니까 그는 연습은 안 되지, 했다.

맥주를 산 것은 독서를 위해서다. 독서를 시작하기 위해서. 낮에는 조금 읽었다. 우선은 집 앞 카페에 갔다. 이곳의 소소한 장점 하나는 카페가 거의 언제나 한산하다는 것. 오늘도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지도 않았다. 지난여름부터 얼마 전까지 대개 비어 있었던, 그래서 혼자서도 앉고 둘이서도 앉았던 육인용 테이블에 요새는 종종 여섯이 앉아 있다. 거리두기정책이 완화된 후의 일이다. 원래는 구석에 있던 것을 가운데로 옮기기까지 해서, 그런 날이면 카페 어느자리에 앉든 소음에 방해를 받고 만다. 오늘도 그랬다.

조금이나마 더 집중해 보겠다고 전화기도 집에 두고 나간 터라 거의 허공만 보다시피 하며 조금 앉아 있다가 카페를 나왔다. 집을 지나 건너편 저수지를 향했다. 물가 벤치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읽었다. 가는 길에는 제천에서의 첫 뱀을 만났다. 뭔가 꿈틀거리길래 커다란 지렁이인가 했는데 작은 뱀이었다. 고왔지만 금세 도망쳐버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벤치에는 흙먼지가 쌓여 있었다. 새똥의 흔적도 있었다. 개의치 않고 누웠다, 고 쓰고 싶지만 그런 성정은 못 되어서, 그나마 제일 말끔한 것을 고르고 맨살이 닿는 ―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으므로 ― 곳엔 가방을 깔았다. 마침 그곳이 볕이 제일 잘 드는 곳이어서 뜻하지 않게 일광욕을 했다. 하필 그곳이 볕이 제일 잘 드는 곳이어서 종종 맨눈으로 햇살을 받았다.

오래지 않아 책을 덮었다. 물수제비를 뜨려 했는데 납작한 돌을 찾을 수 없었다. 납작한 게 아니더라도 돌을 전혀 찾지 못했다. 나름대로 산책로로 정비해 둔 곳이라 보도블록과 고운 흙과 마른 풀만 있었다.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괜히 물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는 물에 던져 넣었다. 마르면서 둘둘 말린 나무껍질 하나도 주워 물에 던져 넣었다. 다시 누워 책을 읽기 시작하자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잡은 데만 빼고 책장이 계속 넘어갔다. 슬슬 화장실도 가고 싶어져서 미련 없이 귀가했다.

그리고는 뭘 했더라. 책을 읽지는 못했다. 달리 무언가를 한 건 아니니까 카페에서와 비슷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려 산책을 나가 한참을 걸었다. 마침 가볍게 장도 봐야 해서 논밭으로 가지 않고 인가 사이로 난 크고 작은 길을 걸었다. 지나간 적은 있으나 어디인지는 잘 모르는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5분 전쯤 지난 곳을 또 지났을 때, 그러니까 길을 잃었을 때, 전화기를 꺼내 길을 확인했다. 곧장 집을 향했다.

오는 길에는 최근에는 잘 안 다닌 길 하나를 지났다. 몇 달째 비어 있은 ― 정확히는 마른 풀 같은 것들로 덮여 있었던 ― 곳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사유지 경작 금지 표지판은 뽑혀서 옆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인구가 늘 동네는 아닌 것 같은데 아파트는 계속 생긴다. 이곳은 아주 크지는 않다. 560세대쯤. 아주 크지는 않다, 는 건 서울에서 본 광고들에 비교해서이므로 실은 여기 기준으로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아파트 단지 몇과 멀지 않은 곳이다. 학교가 있었던가, 학원은 많이 있다. 이 아파트 이름인지 슬로건인지에는 에듀 어쩌고 하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돌아와서는 배가 고파져 밥을 해 먹었다. 최근에는 냄비밥을 해 먹는다. 전기레인지는 화력을 조절해도 식거나 달아오르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다소 성가시다. 점심에는 조금 설익은 밥을 먹었다. 이번에는 잘 됐다. 밥을 먹고도 책을 펼 기미가 보이지 않아 편의점에 다녀왔다. 맥주는 마시기 시작했지만 책은 아직이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며, 늘 그렇듯 할 일을 미루며, 썼다.

2022.03.19.(토)

오전에는 셰어 스터디 화상 모임. 무려 “미라클 토요일”(실은 오전 열 시)에 “연구자 네트워킹”인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신청했다. 첫날이라 운영 방식 안내와 자기 소개 정도만, 하였으나 한 시간 반 가량. 점심은 뭐 먹었더라. 아, 라면 먹었다. 어느 분식집 갔다가 주문이 많이 밀려 있대서 다른 분식집 갔다. 낮에는 카페에서 일했다. 몇 달 내리 놀다시피 하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참이다. 꾸준히 해야 하지만 아주 바쁘지는 않다. 주말이라고 카페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어서 네 번째로 들어간 곳에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앞의 셋에도 빈자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콘센트를 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카페 2층의 계단 옆자리. 난간 대신 유리벽이 서 있는 곳이었다. 격자 형태로 철제 기둥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그리고 전기가 흘러드는 모양이었다. 손끝을 대면 의식하지 않고서는 모를 정도였지만 팔꿈치가 스치면 찌릿, 전기가 튀었다. 테이블에 앉으면 팔꿈치 바로 옆으로 기둥이 있었다. 10cm 쯤 테이블을 밀면 됐겠지만 그냥 앉아 있었다. 서너 시간 동안 서너 번 전기를 맞았다.

저녁에는 중고 거래. 유통기한 지난 필름과 고장난 카메라 한 대를 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터리가 없어 작동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카메라. 작동 여부를 모른다는 말은 고장났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 으로 여긴다. 그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정황상 그럴 것이 분명한 경우도 많고.

이것은 아주 이상한 마음이다. 고장난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마음 말이다.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도, 고치면 쓸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다. 필름값을 빼면, 고장난 카메라를 만오천 원쯤 주고 산 셈이다. 전자식이라 직접 고칠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고 수리를 맡기면 결국 멀쩡한 걸 살 만한 돈을 치르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비슷한 성능에 가격은 같은 멀쩡한 매물도, 심지어는 아주 싸게 나와서 되팔면 돈을 남길 수 있을 만한 매물도 있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어느쪽이든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는 모델들이다. 자동카메라에는 관심이 없다.)

사이즈가 맞는 드라이버가 없어 잡화점에도 다녀왔다. 카메라 값과 드라이버 값을 합치면 만팔천 원. 그리고 분해 시작. 수리설명서는 찾지 못했다. 나사를 다 풀어도 몸통이 분리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밀고 당기고 한 끝에 겨우 분해법을 알아냈다. 분해를 하고 나서야. 억지로 여느라 몇 군데를 부러뜨렸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수리에 성공했다면 원통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국 고치지는 못했다.

최근에 즉석카메라를 분해해 수리했지만 완전분해는 하지 않았고 이전에 완전분해해 고친 카메라는 순 기계식이었다. 이리저리 전선이 얽힌 걸 이만큼 연 건 처음이거나 아주 오랜만이다. 그리하여 잊고 있었던 사실을 수리하던 중에 떠올렸다. 플래시가 있는 카메라는 함부로 열면 안 된다는 사실. 배터리를 분리해도 콘덴서에 고압 전기가 충전되어 있어서 감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떠올린 직후, 과장 없이 1초쯤 후, 손가락이 콘덴서 다리에 닿았다. 카페에서랑은 비교도 안 되게 강한 전기가 흘렀다. 오른손 약지에 작은 물집이 생겼다. 절연장갑은 따로 없어서 고무장갑을 꼈다. 며칠 전 청소로 너무 더러워진 한 짝은 버린지라 오른손에만. 결국 왼손도 한 번 감전. 여긴 물집은 안 생겼다. 한참 후에야 플래시 접점을 찾아 방전시켜 가며 작업했는데 그 후로는 한 번도 손이 닿지 않았다.

문제가 있는 위치를 대강은 알아냈다. 모퉁이의 작은 기판. 다이오드니 콘덴서니가 탄 것 같지는 않았다. 회로가 끊어졌거나 합선되는 듯했는데 얇은 플라스틱 필름형 기판이라 알아보기도 어려웠고 애초에 정확한 위치를 안들 고칠 도리도 없었다. 필름을 휘었다 폈다 하던 중에 몇 번인가 잠깐 정상작동 상태가 되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

나름대로 귀엽게 생긴 모델이라 장식품으로 세워 두었다. 오천 원이나 만 원쯤에 내어놓으면 장식품으로 팔릴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고친 즉석카메라를 이만 원에 되팔면 즉석카메라 값 오천 원, 이것 값 만오천 원을 벌충할 수 있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파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