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로드, 여성작가회의 《차이의 언어》 기조연설(호주, 1985)

원문: Audre Lorde, A Keynote Address on “The Language of Difference” at a Women’s Writing Conference held at Melbourne, Austrailia in 1985.
Audre Lorde, “August 10, 1985,” A Burst of Light: Living with Cancer in A BURST OF LIGHT and Other Essays, New York: Ixia Press, 2017에서 재인용.

여러분의 초대로, 흑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차이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러 여기에 왔습니다. 우리는 빅토리아 주 ― 인종주의, 파괴, 빌려온 동일성 위에 지어진 주 ― 의 150주년을 기념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말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몇 주동안이나 제게서 여러분을 찾으려,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을 우리가 공유하는 바를 알아보려 애썼습니다. 언어가 더없이 비슷해지면, 언어는 더없이 위험해집니다. 차이가 눈에 띄지 않고 지나쳐져 버리게 되니까요. 선의를 품은 여성들로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낭만도 죄책감도 없이 차이의 언어를 쓰는 단호한 투신을 통해서만 차이의 언어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도, 여성으로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깊은 지식을 반영한 것도 아닌 공통의 언어를 갖고 있기에 우리의 말은 종종 똑같이 들리곤 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말 너머에 있는 역사와 특수한 정념들을 검토하기로 뜻을 모으지 않고서 우리가 같은 경험, 같은 책무, 같은 미래를 말한다고 믿는 것은 오산입니다.

제가 흑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가 아프리카계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유색인 여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북미의 아메리카 인디언, 치카나, 라티나, 아시아계 미국인 자매들과 공동의 대의를 진다는 뜻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아이들이 충분히 쓸 물을 찾는 데 보내는 에리트레아Eritrea 여성들과, 또한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아이들의 반수를 땅에 묻는 남아프리카 흑인 여성들과 공동의 대의를 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흑인 자매들,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이게 해 준, 인종말살적 정복에 역사와 아이들과 문화를 유린당한 이 땅의 원주민Aboriginal 여성들과도 공동의 대의를 집니다.

우리가 나눌 수 있을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제 깊숙한 곳까지를 파고 들었습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 땅에 뿌려진 제 원주민 자매들의 피에 혀가 짓눌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진정한 차이의 언어가 말해지기는 아직 이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 언어를 말하는 것은 저의 원주민 자매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운명을 공유하지만 여러분 대부분은 그 목소리나 언어를 들어 본 적 없는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딸들의 몫입니다.

백오십 년 전, 빅토리아 주가 백인 정착자들의 재산으로 선언되었을 때, 지금 빅토리아라 불리는 이 땅에는 아직 만오천 명의 흑인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곳에서는 한때 부룬졔리Wurundjeri 여성들이 꿈을 꾸고 웃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이 땅을, 고무나무와 아카시아를 돌보았고 그로부터 돌봄 받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 딸들은 보이지 않는군요. 이 여성들은 어디에 있나요?

그 어머니들의 피가 제게 비명을 지릅니다. 여러분의 의사당 건너에 있는 윈저 호텔에 머무는 저의 꿈에, 그 딸들이 밤마다 찾아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마음을 파고들고 용감하고 슬픕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가슴을 열고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여러분이 가장 듣고 싶다고 했던 그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가 저의 역사입니다. 백인 이주민 정착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부룬졔리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비소와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일 때 북미에서는 백인 이주민 정착자들이 일곱 살 난 아프리카인 소녀들을 한 사람 당 35불에 팔았습니다. 바로 그 이주민 정착자들이 북미 선주민,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천연두균을 묻힌 죽음의 담요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자신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목적을 갖고서 오늘 여기에 왔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주 집중해서, 시급히, 그 일에 임하기를 촉구합니다. 여러분이 여기 앉아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데에, 너무도 많은 부룬졔리 여성들의 피가 흘렀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의 향연을 일으키려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차이의 언어를 발굴하고 쓴다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의미일 수 있을지를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차이의 언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고 그저 안전한 토론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기는 제 자리가 아니니까요. 저는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나라의 흑인 원주민 여성들의 언어를 듣고 느끼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글과 여러분의 삶은 그 언어와 교차하기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작품이 어느 여성mistress에게 복무해야 할지를 정하게 될 것입니다.

2022.12.27.(화)

침실은 조용, 하다는 건 순전한 착각이었다. 자려고 눕고 보니 거실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크게 들렸다. 귀마개 삼아 커널형 이어폰을 꽂았다. 종일 물을 틀어 둘 리는 없고 물이 새는 것 같지도 않고 환풍기도 아닐 테고 대체 뭘까. 온수 매트를 새로 산 걸까 생각하며 몇몇 제품의 소리를 찾아 들어 보았다. 역시 아닌 듯했다. 꼭 소음 때문은 아니지만 꽤 늦게 잠들었다.

맥없이도 그저 수도를 틀어 두어 나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적당히 일어나 밥을 해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다. 청소는 순전히 집에 사람을 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수도관이 지나는 벽도 있다고 했다. 확인을 요청했더니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내일 오전에나 올 수 있다고도 했다. 빨래만 끝나면 카페에 가서 일을 해야지, 했는데 세탁기가 또 오류음을 냈다.

그저껜가 세탁기 방향을 바꾸어 둔 덕에 이번엔 배수구를 살필 수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긴 ― 지난 번 집에서는 세탁기 두는 곳과 하수구가 통상적인 경우보다 훨씬 멀어서 설치 기사가 자기가 갖고 있던 중고 호스를 달아 주었다 ― 배수구가 말려 있는 탓에 안에 고인 물이 언 모양이었다. 물 두 주전자를 끓여다 부었지만 다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호스를 더듬어 얼음이 시작되는 위치를 찾아 가위로 잘랐다. 이 집에는 충분하지만 다른 집에 가면 짧을 수도 있는 길이가 된 배수관으로 물이 쏟아져 나왔다.

관리사무소에서 온 부재중 전화 기록이 있었다. 걸어보니 지금 바로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온 이는 소리를 잠시 들어 보더니 무어라 중얼거렸다. 옆 라인인데…였음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그가 와 있는 잠깐 동안은 웅웅거리는 소리만 나서, 이렇게 종일 웅웅거리고 이따금 수도를 튼 듯한 소리가 나다 말다 한다고 설명했다. 그냥 수도를 틀어둔 걸 수도 있어요, 동파 때문에. 그렇게 말한 그는 누수 피해는 없음을 확인하고는 돌아갔다. 잠시 후 벽 너머에서 수도를 여닫는 듯한 소리가 몇 번 나더니 고요해졌다. 그가 따로 연락을 주지는 않았다. 한창 추울 땐 안 틀어 두고 왜 날이 좀 풀리자 만 이틀을 꼬박 틀어 둔 걸까. 추운 동안에 얼어버렸고 겁이 나서 이후로 내내 틀어두기로 한 걸까. 알 수 없다. 이제 밤인데 여전히 조용하다.

방해 요소는 사라졌지만 기왕에 나가기로 했으므로 그냥 카페로 가서 잡무를 하다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또 일을 마저 하고. 그렇게 밤이 되었다.

낮에 온 그는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부동산중개사무소나 택시 같은 데서 이따금 사장님이라 불릴 때면 그냥 손님이라고 하면 좋을 텐데, 생각했다. 그와의 사이엔 무슨 대안이 있을까. 입주민님, 같은 말을 만들어 내는 건 이상하다. 선생님, 이 흔한 대안이겠지만 나는 그 말이 영 편치 않다. 가진 것 없이 ― 자격 없이 ― 이따금 좁은 의미의 ‘선생님’으로 일하기 때문, 과도한 권위와 권한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를 불러야만 하는) 다른 직종에선 어떤 호칭을 쓰더라. 의사들은 환자분, 이라고 했던 것 같다. 변호사들은 뭐라고 할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분명 봤을 텐데 기억나는 게 없네. 의뢰인님일까.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는 나도 의뢰인이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의뢰인이라기도 애매하다. 아닌가. 분명 출장을 의뢰하긴 했다.

2022.12.26.(월)

종일 벽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난다. 적어도 — 잠에서 깬 — 점심께부터는 줄곧. 옆집과 맞닿은 벽이지만 옆집에서 나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업소용 환풍기를 돌리는 게 아니라면 이만한 소리가 나기는 힘들다. 처음엔 냉장고가 유독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벽 속을 지나는 수도관 — 혹은 다른 관 — 에서 나는 소리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종일 소리가 난 적이 있지도, 이런 소리가 — 물이 새는 소리가 아니라 관 속을 흐르는 소리가, 그리고 중간중간에 수도를 연 듯한 소리가 섞여 — 종일 날 만한 일이 떠오르지도 않지만. 혹시나 싶어 보일러를 끄거나 켜 보고 수도도 틀었다 잠갔다 해 보았지만 소리에는 변화가 없다.

늦은 저녁무렵부터 주방 온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별 기대없이 틀어보았는데 조금씩 물이 흘렀다. 온수 온도를 올리고 몇 분간 물을 틀어 놓았더니 평소 유량이 돌아왔다. 화장실 온수 수도가 녹은 것은 그보다 두어 시간 전이다. 당연히 아직 얼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수도꼭지 바로 앞까지도 얼어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수도 꼭지를 뽑았다가 잠시 난리를 겪었다. 예상치 못하게 물이 콸콸 나왔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수도를 전부 잠가 버리면 되지만 밸브가 어디 있는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 위층쪽에 하나, 아래층쪽에 하나가 있고 어느쪽도 딱 이거다 싶은 위치는 아니다. 결국 뿜어져 나오는 물과 싸우며 겨우 수도 꼭지를 다시 달았다.

그런 후에는 장을 보고 왔다. 30분쯤 온 집을 뒤지며 지갑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발견했다. 채소 서너 가지와 마라훠궈 소스를 샀다.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서 오는 길에 먹었다. 왕복 사십 분쯤, 장을 본 시간을 포함해도 한 시간이 좀 못 되게 걸었는데 살짝이지만 땀이 배어 나왔다. 실내에 들어서니 피부가 따끔거렸다. 밥을 안치고 설거지를 하고 재료를 썰고 볶고 끓였다. 이때까지는 주방에 온수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모두 찬물로 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잠시 빈둥대다 책을 몇 쪽 읽었다. 두어 해 전에 친구 R이 짐을 정리한다길래 얻어 온 책이다. 요 며칠, 하루에 한 장 정도씩 읽고 있다. 그 사이에는 역시 두어 해 전에 샀지만 펼쳐 본 적 없는 책 한 권을 가볍게 훑었다.

며칠을 책을 읽다가 티비를 보다가 누웠다가 집안일을 하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자연히 시간 감각이 흐트러진 상태다. 온수가 나오는 게 며칠 만일까. 며칠 전에 한 번 녹았던 수도는 이틀날이 되자 맥없이 다시 얼어버렸다. 보온재를 덮은 건 효과가 없었다. 워낙 부실하기도 했지만 수도관이 노출된 구간이 생각보다 — 정확힌 멋대로 왜곡해 기억했던 것보다 — 꽤 길기도 했다. 손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불량인가 싶을 정도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서너 개가 모두 불량일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 그저 너무 추워서였을 것이다. 결국 단열재를 사 왔고, 녹으면 감으려다가 하루이틀을 기다려도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냥 감았다. 아마 어제나 그제의 일일 것이다.

단열재를 사러 가면서는 마스크를 깜빡했다. 그걸 이십 분쯤 걸어서 잡화점 앞에 도착하고서야 깨달았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다행히 쫓겨 나지는 않았다. 우선 마스크를 집어다 쓰고 나가면서 같이 계산하라고 했다. 고무장갑을 샀다. 고무장갑은 순전히 손이 시려서. 안에 천이 덧대어져 있는 걸 사는 게 좋았겠지만 관리가 성가실 것 같아 평범한 걸 샀다. 지난 해에 이 매 장에서 산, 솔을 바꿔 쓰는 손잡이 달린 수세미의 교체용 솔도 사려고 했는데 없었다. 이 매장에만 안 들어오는 걸지 단종된 걸지 모르겠다. 손잡이는 이렇게 쓰레기가 되는 걸까. 같이 산 쇠수세미가 마침 두 개들이라 하나를 얼기설기라도 달아 볼 생각이다.

고무장갑을 껴도 손은 꽤 시렸다. 손이 떨어질 것 같은 정도는 피하게 되었지만 딱히 보호 받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서울 살 땐 물이 아무리 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도 한창 추운 — 작년 이맘 때보다도 더 추운 — 지금을 빼면 이 정도는 아니다. 덜 추워지면 찬물로 설거지를 할 때도 아마 장갑은 쓰지 않을 것이다. 손이 덜 시린 건 좋지만 촉감으로 그릇 상태를 확인할 수 없어 영 답답하고 찝찝하다.

다시 책을 펼까. 책을 덮은 건 순전히 벽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커서다. 책상은 벽에 맞닿아 있다. 같은 이유로 오후에는 잠시 카페에 앉아 잡무를 하다 들어왔다. 침실은 조용하지만 바닥에 앉아서 읽는 것도 눕거나 엎드려서 읽는 것도 몸이 잘 못 견딘다.

2022.12.20.(화)

바깥 수도가 얼어터졌다
참았던 말,
들어주지 않으니 손목을 그었다
혹한을 흘러내린 흰 피, 빙판이 되었으니
너무 오래 혼자 두었구나
울다 끈을 놓았구나
발목을 덮는 두께
차디찬 통곡이었을 것이다
그 위에 누워본다
등딱지가 얼음을 알 때까지 너는
용서하지 마라
차고 투명한 부적(符籍)

효험은 몸의 고난을 지나신다

「동파」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7.)

생각 나서 괜히 한 번 꺼내 읽었다. 딱히 ― 저런 의미에서도 평범한 의미에서도 ― 동파를 겪은 것은 아니다. 조금 얼었을 뿐이다. 그제는 최저기온이 영하 18도였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은 수도를 틀어두고 자기를 권한다. 영하 13도까지는 안 틀고 두었지만 이쯤 되면 나도 불안하므로 물을 흘리며 잤다. 관리실에서는 그렇게 받은 물을 사용하기를 권하지만, 그걸 차치해도 하수도도 얼 위험이 있으므로 흘려 보내지 않는 게 낫긴 하겠지만, 대야도 욕조도 없으므로 그냥 흘렸다. 아침에 확인해 보니 냉온수 할 것 없이 모두 잘 나왔다. 세면대는 그랬다. 세면대 옆에는 아마도 리모델링 전의 수도관을 살려둔 것일 성 싶은 수도꼭지 한 쌍이 더 있다. 그건 냉수만 나왔다. (그저 가열하지 않았을 뿐인 물을 냉수라고 부르는 게 마뜩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날씨에는 차디 찬 물이므로 그냥 두기로 한다.) 주방도 그랬다. 저 여분의 수도 꼭지와 주방 수도 꼭지를 잇는 수도관은 바깥 공기와 얇은 유리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다. 단열재로 감싸 두지도, 콘트리트로든 뭘로든 덮어 두지도 않았다. 하루를 그렇게, 찬물 설거지를 하며 보냈다.

질질 끌던 일을 점심께에 마치고 한동안 뭉그적 대다가 집을 나섰다. 문제의 수도관은 아파트 서쪽 벽에 붙어 있다. 곧 해가 기울어 그 벽에 볕이 들면 조금은 녹을 터였다. 헤어드라이어 같은 걸 쓰기엔 공간이 애매해서 핫팩을 덮어 열을 보태기로 했다. 나가기 전에 수도를 틀어 보았다. 역시 나오지 않았다. 읍내 잡화점에서 핫팩을 샀다. 사는 김에 락스도 하나, 걸레도 하나. 오는 길에는 집 앞 마트에서 이런저런 찬거리. 한 시간 정도 걸려 집에 돌아오니 화장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볕만으로도 언 수도가 녹아 온수가 콸콸 나오고 있었다. 욕실을 채운 김과 사방에 맺힌 물방울의 양으로 보건대 샤워에 쓰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그런 모양이었다. 얼른 물을 잠그고 허술하게나마 단열재를 덮었다. 작년 이맘때부터 생각만 하고는 한 번도 얼지 않아서 그냥 방치했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되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는 세탁기를 돌렸다. 베란다도 꽤 춥지만 이쪽 수도관에는 단열재가 둘러져 있다. 창을 열고 잤던 한 번, 수도 꼭지와 세탁기를 잇는 호스에 차 있던 물이 언 적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물은 무사히 흘러 나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세탁기가 멈춰 있었다. 에러 코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전원을 껐다가 다시 돌렸다. 문제 없이 작동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조금 전, 세탁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물이 가득 찬 해 멈춰 있었다. 에러코드는 OE. Out Error쯤 되는 말일까, 확인해 보니 배수 불능 상태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탁기 아래쪽 배수구 근처에 고여 있던 물이 언 모양이다. 세탁기가 비어 있다면 끄집어 내서 녹여 보겠지만 물이 가득 찬 지금으로서는 그저 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이 옷들은 며칠을 물에 젖어 있게 될까. 얼음이 녹는 게 빠를까, 내가 정신 차리고 건져서 세탁방에 가는 게 빠를까.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집은 건물도 허술한 샌드위치 패널인데다 마당에도 수도 꼭지가 있어 겨울이면 늘 얼어 붙었다. 서울에서 여기저기 ― 고향집만큼 낡았지만 그래도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의 셋방들을 ― 옮겨 다니며 살게 된 후로는 어느 옥탑에서 변기 배수관이 얼었던 것을 빼면 딱히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고. 그러니 꽤 오랜만이다. 이번에 언 수도관은 지난해에 녹이 가득 차서 물이 잘 안 나왔던 그 관이다. 설거지쯤 겨울에도 찬물로 하지, 생각하며 한동안 방치하다 겨울이 되자마자 고친 후로는 줄곧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했다. 그걸 빼도 찬물 설거지는 그렇게까지 오랜만은 아니다. 언젠가까진 겨울에도 대개 찬물을 썼다. 언제부턴가는 여름에도 늘 더운 물을 쓴다.

2022.12.07.(수)

시답잖은 꿈을 꾸다 깼다. 주웠는지 샀는지 아무튼 오디오 하나가 생겨서 살펴 보고 있었다. 꽤 커다란 것이었는데 대부분 빈공간이고 카오디오 ― 카오디오일 리 없는 하얗고 미니멀한 디자인이었지만 ― 를 꽂아두었을 뿐인 것이었다. 케이스를 열자 빈공간 가득 과자 봉지가 차 있었다. 뜯지도 않은 과자가 열 봉지쯤 나왔다. 과자 말고도 무언가 있었고 그것이 더 신기하면서도 맘에 드는 물건이었는데 뭐였는지는 잊었다.

이걸 어떡하나 생각하다 깼고 한동안 누워서 뒹굴거렸다. 주섬주섬 일어나 커피를 내려 반 잔쯤 마시고 샤워를 한 후 나머지 반을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는 내일 마실 원두를 갈았다. 내일 마실 원두, 라는 말은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게 쓰면 문장이 너무 길어진다. 원두는 핸드 그라인더와 전동 드릴로 갈았다. 그저께부턴가 이렇게 하고 있다. 핸드 그라인더 손잡이를 떼고 나사를 드릴에 물려 돌린다. 그제와 어제는 다 마친 후에 손잡이를 다시 달았는데 이번엔 그냥 두었다. 내일도 이렇게 갈겠지.

집을 나섰다. 오늘 신은 운동화는 오른발목쪽 안감이 닳아 내장재가 튀어나와 있다. 양말 목이 짧으면 발목을 긁힌다. 그래서 발목을 다 덮는 걸 신고 나갔는데 하필 늘어난 것이었다. 양말이 계속 아래로 말려 발목이 드러났다. 길가에 놓인 박스 더미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들어 종이를 찢었다. 발목에 댔다. 더는 긁히지 않았다. 곧 영월군 주천면행 버스를 탔다. 원래는 자전거를 탈 생각이었지만 추운 날 쓰는 머플러형 방한대를 찾지 못했고 자전거 정비도 미루고 미루다 끝내 하지 못했다. 며칠 전에 산 프레임 거치형 주머니만 뻘쭘하게 달려 있다.

주천까지는 한 사십 분 걸렸을까. 포털사이트 지도에 뜨는 시간보다는 짧았다. 면소재지에 내려 꼴두국수로 요기했다. 김치말이메밀칼국수쯤 되는 음식이다. 70년대부터 영업했다는 가게 벽면에 붙은 설명에 따르면,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제일 흔했던 메밀로 만들어 종종 먹던 것이라 꼴도 보기 싫다 하여 꼴두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꼴뚜국쑤 하나 주세요, 하고 나서야 그걸 보고는 꼴두국쑤라고 해야 했나 생각했는데 주문을 받은 사람도 ―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을 엄마라 부르던 ― 꼴뚜국쑤라고 발음했다. 강원도에서 꼴도를 과연 꼴두로 발음할까 궁금했는데 골뚜로 발음한다면 더더욱 의아하다. 강원도 말은 모르지만.

그리고는 무릉도원면을 향해 걸었다. 영월에서 지낼 때 하루 걸러 하루씩은 걸었던 두 시간 반 정도 되는 코스를 돌기로 했다. 지난번에 갔던 곳 ― 요선암 돌개바위 ― 은 들르지 않고 그냥 큰길을 따라 걸었다. 사진을 여남은 장 찍었다. 중간이 필름이 다 돼서 새 걸 끼웠는데, 끼우고 보니 이 ― 셔터스피드가 최고 1/500초인 ― 카메라에 쓰기에는 감도가 너무 높은 것이었다. 필름을 빼고 렌즈 커버를 닫았다. 늘 하는 대로, 생각 없이 걷다 엉뚱한 길을 드는 바람에 네 시간을 걸었다. 나머지 하루 걸러 하루 중에서도 며칠에 한 번만 갔던 긴 코스. 조금 피곤하지만 실은 더 좋아하는 코스다. 덕분에 저번엔 못 봤던 숙소 앞도 지났다. 아직 영업 중인 듯했다.

다시 면소재지에 도착해 카페에 들렀다. 그래놀라를 사려고 했는데 잠시 생산이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그냥 거기 앉아서 커피를 마셔도 되었을 것을 굳이 지난번에 갔던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정기휴무일이었다. 결국 영월에서 지낼 때 종종 갔던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그러고는 제천시 버스 앱으로 버스 정보를 확인했는데 20분 뒤면 도착한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 지도는 50분 뒤라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이쪽이 옳다. 애초에 포털 사이트에는 실시간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시에서 API를 공개하지 않는 것인지 포털사이트에서 군소도시 정보는 굳이 받아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 앱에서는 실시간 정보는 볼 수 있지만 발차 시각은 볼 수 없다. 하루에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있는 노선이므로 대개는 “운행 중인 버스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마주하게 된다. 포털 사이트에는 첫차, 막차 시각이 뜬다. 최종적으로는 시 교통정보 웹사이트에서 PDF로 제공하는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아주 어렵지야 않지만 처음 보면 당황할 법한, 세 개의 축을 따져 찾아야 기종점과 주요 경유지 한 두 곳의 발차 시간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표다. 커피를 반은 남기고, 가져간 책은 한 번 꺼내보지도 못한 채, 얼른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돌아오는 데 다시 오십 분. 딴짓을 하다 내릴 곳을 지나쳐 몇 정거장 더 걸었다. 딴짓이란 팟캐스트 《흉폭한채식주의자들》의 42화 〈코미디의 무늬〉 듣기. 그 전까진 얼마 전에 녹음한 B의 노래를 들었다. 네 시간을 걷는 동안에도, 낮에 제천에서 영월로 가면서도 그걸 들었다. 총 30분 남짓 되는 몇 곡의 노래를 다섯 시간 좀 넘게 돌려 들었다. 〈코미디의 무늬〉를 마저 들으며 집으로 걷는데 식당마다 냄새가 어찌 그리 진하던지. 하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귀가해 밥을 안치고 냉장고에 넣어둔 ― 시판 양념에 채소와 두부만 썰어 넣은 ― 강된장을 꺼내 데웠다. 조금 많다 싶었지만 두 번에 나눠 먹기만 애매한 양이어서 전부 비벼 조금 짜게 먹었다.

종이가 충분치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종이를 댔기 때문이었는지, 발목 아래, 뒤꿈치 바로 위에 물집이 잡혔다.


주천면 도원리 구석을 걷다가 흙에 파묻힌 채 녹이 슬어 있는 LED 헤드 랜턴 하나를 주웠다. LED만 떼어 쓰려고 했는데 방금 보니 몸통만 남아 있다. 버스를 타기 전에 한 번 떨어뜨렸는데 그때 떨어져 나간 모양이다. 몸통을 분해해 플라스틱과 금속과 전지를 나누어 분리수거함에 담았다. 제천 시내를 걸으면서는 압축 스펀지 조각 하나를 주웠다. 며칠 전에 필요한 일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주웠는데 그게 뭐였는지 도통 생각이 안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