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4.(수)

낮은 더우니까 짐정리는 저녁에 조금씩, 이라는 계획엔 큰 헛점이 있으므로 어제는 아침 일찍 책꽂이 하나를 정리했다. 저녁엔 대개 기운도 의지도 없으니까. 역시나 대충 책꽂이 앞에 놓여 있는 것들을 집어들었는데 지난번에 이어 페미니즘, 퀴어, 장애 관련 서적들과 시집, 비판철학서 일부를 꽂았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은 아마도 거의 다 꽂은 셈일 것이다. 사진집이나 전시도록 같은 것들이 남아 있지만.

그리고는 또 저번과 같은 카페에 가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키고 발제 준비를 했다. 얼마나 했지, 진도가 빠르진 않았던 것 같다.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간에 먹었으므로 저번처럼 점심을 거르고 저녁까지 이것저것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 와서 멈췄다. 어제의 보리밥집 ― “보리밥 친구들” ― 을 지나 처음 가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사하며 갔던 곳에서는 2인분부터만 팔아서 먹지 못했던 옹심이를 1인분 단위로 파는 집이 있어 그리로 정했다. 칼국수로 상 받은 집, 이었는데 다들 콩국수만 시켜댔다. 타당한 결정이었다. 나는 옹심이칼국수를 먹었고 땀에 젖었다.

도서관 구경이나 할까, 하고 검색해 보니 15분 거리에 시립도서관, 10분 거리에 (아마도 역시 시립인) 어린이도서관 하나가 있었다. 후자로 정했다. 외관만 구경했다. 역시 처음 가보는 구역에 있었다. 아파트 단지 뒤의 주택가라고 해야 할까, 높은 건물이 없는 곳이었다. 하늘이 파랬다. 구름이 희고 두터웠다. 모르는 길을 조금 걸어, 여전히 가보지 못한 힙한 카페 앞에 이르렀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이리저리 걸으며 통화를 했다. 카페와는 멀어졌다. 통화가 끝날 즈음엔 의림지를 오가며 지난 큰길가에 섰다. 논밭과 자그마한 공군 비행장이 보이는 위치. 1층은 가구점, 2층은 카페라는 건물에 들어섰다. 가구점은 구경하지 않았다. 카페도 가구점에서 운영하는 것이어서 앉지 말라는 경고문과 기백만 원 가격이 적힌 소파가 두엇 있었다. 장식장 같은 것도. 카페용으로 쓰는 테이블과 의자는 평범한 것들이었다. 통창으로 하늘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발제 번역을 계속했다. 저녁 시간. 밥을 해먹기도 사먹(을 곳을 찾)기도 귀찮아서 중간을 택했다. 토마토소스를 사다 파스타면을 삶았다. 소스와 면, 기름 약간만 넣었다. 배불리 먹었다.

식사 앞뒤로 시간을 좀 흘려보냈다. 대충 털고 일어난 것은 이미 어둑해진 때였다. 기분이 별로여서 걷기로 했다, 가 이내 돌아왔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마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시간 정해 놓고 각자의 일에 바짝 집중하기, 를 같이 하기로 했다. 나선 김에 편의점에 들러 담배와 술을 샀다. 두 캔을 사면 얼음컵을 준다는 술을 골랐는데 시스템에 증정 이벤트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주인은 이벤트가 취소되었나보다며 이건 그냥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미 입력된 얼음컵 가격을 빼는 걸 잊고 그대로 결제했다. 늘 그렇듯 다시 말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나왔다.

열두 시까지 일하기로 했지만 열한 시 조금 지나까지만 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좀 했다. 씻고 누웠다. 한 시 반쯤 잠들었으려나, 세 시 반과 여섯 시에 한 번씩 깨고 여덟 시 좀 전까지 잤다. 엉뚱한 꿈을 꿨다. 배두나 실종사건 쯤 되는. 마지막 행적은 ―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친하지도 않고 오히려 평소에도 찝찝하게 여겼다는 ― 동료 연예인 ― 누구인지 기억나지만 적지 않았다 ― 과의 약속. 다들 그 혹은 그의 회사에서 벌인 납치극이라고 확신했다. 협박전화 같은 것은 오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이 일들을 언론보도로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아마 배두나 소속사의 관계자였던 것 같다.

파스타를 사면서 치약도 샀다. 닷새, 이사를 오고 그만큼을 치약 없이 물로만 양치했다. 몇 군데를 몇 번이나 뒤졌지만 치약이 어딨는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칫솔과 같이 있지는 않았다. 짐 정리가 더딘데가 영영 안 나올 수도 있으므로 그냥 사기로 했다. 아마도 2008년을 전후로 서너 해는 세제 없이 살았다. 샴푸, 비누, 주방세제, 치약 모두 쓰지 않았다. 여전히 (거의) 안 쓰는 것은 샴푸 뿐이다.

당시엔 친구와 함께 살았고 빨래를 함께 돌렸으므로 세탁세제는 썼다. 지금은 쓰지 않는다. 매 끼니 해먹지 않게 되자 오래 방치된 그릇에서 설거지 덜 된 티가 나기 시작했으므로 주방세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노폐물이 많이 쌓이는지 머리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비누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 몇 개에 구멍이 나고 이따금 통증이 올라오게 되어 치약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구멍은 세 개. 몇 년 전에 갔던 교내 병원에서는 금을 씌우면 총 60만 원이 든다고 했다. (더 간단한 치료로도 무언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남겨두고 있긴 했지만) 바깥에 비해 훨씬 산 가격인데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가기도 했으나 치료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그대로다.

사지 않은 것들이 여럿 있다. 싱크대에 둘 수세미받이는 며칠째 생각만 하고 있다. 다이소에서도 어제 마트에서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싱크대에 수세미를 그대로 두는 성격은 되지 못하고 임시변통할 것을 찾기도 어려운 난장판이므로 수세미 없이 손으로만 설거지를 하고 있다. 있지만 (싱크대에 수세미를 올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쓰지 않을 욕실장, 휴지걸이, 수건걸이도 사야 한다. 얼렁뚱땅 피하고 있다. 면도기도 찾지 못했다. 오늘은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커튼도 아직이다. 베란다와 실내를 가르는 문과 창문에 방충망도 설치해야 하는데 역시나 아직이다. 어젠 벌레를 여럿 보았다. 그제까지는 베란다에도 벌레가 딱히 없이 사방을 활짝 열어두었는데 어제부터 날벌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진 화장실에서 거미와 집게벌레를 본 것이 전부였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전등에 날파리가 잔뜩 모여 있었다. 기어다니는 작고 검은 벌레도 보았다. 바퀴벌레 약충인가 싶어 잔뜩 긴장했으나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시 봐도 의심을 온전히 거둘 수는 없었다. (아직 보진 못했으나 이 집엔 바퀴벌레가 있다. 그저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이라고 해도 될 만큼 바퀴벌레를 싫어하고 바퀴벌레는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지만 알고도 결국 이 집으로 정했다. 달리 선택지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은 며칠 더 흘려 보내겠지만, 아마 오래지 않아 약을 칠 것이다. 잠깐은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제 집을 나선다.

2021.07.13.(화)

아침저녁으로 화상회의가 있었다. 아침 회의는 열 시. 일어나서 어제 먹은 것을 설거지하고 커피를 내렸다. 서울에서 산 원두가 애매하게 남아서 평소보다 많이 내렸다. 부엌에서 짐을 받치고 있던 작은 책상과 의자를 침실로 ― 짐을 아직 정리하지 않아서 거실엔 공간이 없다 ― 옮기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의자도 들였다. 회의는 한 시간 좀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스터디 발제용 번역을 조금 했나, 그리곤 나가서 점심을 먹었다. 지나간 적은 있지만 어떤 식당이 있는지 살펴본 적은 없는 길. 코다리 어쩌고 하는 집이 있길래 들어가려 했으나 화요일은 휴무라고 했다. 조금 더 가서 나온 골목에서 보리밥집을 발견했다. 칠천 원, 서울에서 나올 법한 양의 두 배가 나왔다. 오늘도 맛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스크를 벗자 오래된 식당의 퀴퀴한 냄새가 잠시 코를 찔렀던 것만 기억난다. 손주인지가 자주 오는 곳이었을까, 초로의 한 사람만 일하고 있었다. 장난감이 여럿 있었다.

번역을 마저 했, 어야 했지만 조금 하다 말고 친구랑 노닥거렸다. 딱히 웃음이 나올 법한 처지는 아닌 그와 잡다한 이야길 하며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는 잠시 누워 있었다. 여섯 시 십오 분쯤, 퍼뜩 회의 생각이 났다. 일곱 시까지 돌아오려면 무얼 먹어야 하지, 분식집을 찾아 라면을 주문했다. 김치 두 가지가 반찬으로 나왔다. 먹고 있자니 취나물을 내어 주셨다. 주인의 말을 많이 듣지는 않았는데 경상도 말씨인 것 같았다. 강원도 어디의 말일지도 모른다.

십 분쯤 남기고 돌아왔다. 서울에서 친구가 선물해 준 원두를 뜯어 커피를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알고 보니 회의는 일곱 시 반부터였고, 삼십 분은 별 일 하지 않고 흘려 보냈다. 회의는 두 시간을 했고 자기소개 외엔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오전 회의 때도 비슷했다. 대부분의 회의에서 그런 식이다.

아침엔 저녁 회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엔 짐을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손도 대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고는 산책을 나섰다. 딱히 걷지는 않고 물가에 앉아 개구리 소리나 들을 요량으로. 하지만 고요했다. 삼십 분쯤 논 사이를 걸으며 드문드문 조용조용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 거의 집앞으로 돌아왔다가 방향을 틀어 이십 분쯤 더 걸은 후에 처음에 갔던 물가에 다시 이르렀다. 개구리가 울고 있었다. 한 시간쯤 벤치에 누워 있다 들어와 씻고 이 일기를 쓴다.

그저께 넌 빨래는 오늘 아침까지도 마르지 않았다. 어제 아침엔 해가 뜨지 않았다. 창을 열어 두었지만 바람도 그다지 불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열 시가 지나서야 볕이 났다. 점심께쯤 만져 보니 겨우 다 말라 있었다. 걷지는 않았다. 아직 행거를 설치하지 않았으므로 걷어도 둘 곳이 없다. 침실 통창에 커튼도 달지 않아 건너편에서 안이 들여다 보이므로 빨래건조대로 창을 가려두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친구가 커튼을 선물해주기로 했는데 아직 창 치수도 주소도 알려주지 않았다.

저 친구가 주소를 물어와서 뒤늦게 알았다. 전날 주소를 물은 이가 선물을 보내려고 그랬다는 것을. 계약서를 써야 하는 참이라 별 생각 없이 주소를 전했는데 역시나 선물을 보내왔다. 커피잔. (커피잔인지 홍찻잔인지 실은 잘 모르지만, 속에 그림이 없으면 커피잔이라고 배웠다.) 저녁 회의 땐 그 잔으로 커피를 마셨다. 주소를 물은 이가 하나 더 있지만 역시 알려주지 않았다.

밤에 걸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아파트가 여럿 있으므로 주위가 아주 어두운 편은 아닌데도 별이 꽤 보였다.

2021.07.12.(월)

이상한 꿈을 꿨다. “길을 걷다 손에 들고 있던 200ml 우유팩을 놓쳤는데 그게 (어떻게?) 멀리 날아가 축구선수들 쪽으로 갔고 그 중 한 명이 지체없이 받아 차서 날려 버렸다. 분노한 (왜?) 나는 누가 찬 것인지를 알아내어 그에게 가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는 소송을 걸겠지만 900원 손배이니 너무 겁먹지는 말라, 다만 벌금이 나올 순 있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 무리가 크게 반성과 사과를 표하기 시작… 하였는데 그 순간 나는 내가 낚시TV 리포터임을 깨닫고 스포츠와 매너에 관한 방송멘트를 시작했다. (몰래카메라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왠지 모를 직업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낚시에 대해 아는 게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곤 깬 것 같다. (친구에게 꿈을 설명한 메시지를 조금 정리한 것이고, 그래서 괜히 따옴표를 붙여 보았다.)

몇 시에 일어났지, 열 시쯤 책 한 권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어제 못 간 ‘힙한 카페’. 열한 시 오픈이라고. 뒤로 돌아 어제 간 카페를 향했다. 열 시 반쯤 도착했다. 거기도 열한 시 오픈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미 영업 중이었다. 오늘도 꽤 긴 시간을 혼자 앉아 있었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키고 사라 아메드의 『행복의 약속』 1장을 읽기 시작했다. 두어 달 전에 사서 서론만 읽고 덮어 둔 책이었다. 저자의 이름만 보고 산 거나 마찬가지인 책이다. 저자의 다른 글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이 책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는, 사라 아메드가 왜 각광 받는지 잘 모르겠다는 평을 들었다. 1장을 다 읽은 즈음 커피를 한 잔 더 시켰다. 2장까지 읽고 자리를 나섰다.

카페에 오기 전에 인터넷 설치 신청을 해 둔 터였다. 당일 설치로 예약했다. 두 시는 넘어야 올 거라고 했고, 그게 두 시 오 분일지 여섯 시일지는 몰랐다. 한 시 반쯤 되었으므로 일단 집으로 향했다. 얼마 후 전화가 울렸고 짧은 통화를 마치고 또 얼마가 지나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바닥을 가득 채운 짐 사이를 지나 창가로 가며 그는 이삿짐부터 정리하시는 게 좋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급하게 인터넷이 필요해서요 ― 사실이다, 내일 오전에 화상회의가 잡혀 있다 ―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멋쩍게 웃었다.

베란다와 거실을 나누는 벽의 창틀에 뚫은 구멍으로는 아파트 밖에서부터 랜선이 들어와 있었다. 그걸 뽑고 동축케이블을 넣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실리콘을 많이 발라놔서 ― 틈새로 벌레가 많이 들어온 거겠지 ― 안 빠진다고 했다. 호기롭게 새로 뚫자고 했다가 창틀이 깨질 수도 있대서 포기했다. 베란다 창틀엔 실리콘 없이 선만 들어와 있었으므로 인터넷모뎀은 베란다에 설치하기로 했다. 랜선을 끊어버리고 그리로 케이블을 넣었다. 그는 손이 느렸지만 큰 탈은 없이 설치를 마쳤다. 다만 중간중간 자른 케이블 조각을 창밖으로 ― 아파트 뒤 풀밭으로 ― 던지는 것이 마뜩잖았다. 그가 간 후엔 다른 랜선 하나를 잘라 베란다에 남은 것에 이었다. 실리콘을 채운 구멍을 통해 거실 창틀로 들어오는 그 선이다. 공유기는 거실에 설치했다.

짐정리와 청소를 하는 게 현명한 일이겠지만 다른 잡다한 일을 했다. 베란다 방충망의 안팎이 반대로 되어 있길래 돌려 달았다. 청소업체에서는 안쪽만 청소하고 갔으므로, 안을 향하게 된 바깥쪽 면엔 먼지가 잔뜩 붙어 있다. 한국전력(일단은 공기업)과 서울도시가스(사기업)에 전화해 살던 집의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정산했다. 어제 내버려둔 변기 커버를 설치했고 연결부위가 빠져 있어 사방으로 물이 튀던 세면대 하수관을 끼웠다. 변기 커버는 (설치를 미룬 것과 마찬가지로 변기에 손을 대기 싫다는 이유로) 나사로 고정하는 모델 대신 고무 날개가 달린 봉을 눌러 끼우는 모델로 샀는데 생각보다 약해서 여닫을 때마다 덜렁거린다. 세면대 물은 더 이상 튀지는 않지만 하수관 끝은 여전히 하수구로 연결되지 않고 화장실 바닥에 닿도록 노출되어 있어 물이 넓게 흐른다. 부품 하나를 사서 하수구로 바로 들어가도록 하고 싶은데 일단은 좀 더 참아 보기로 했다.

이 집은 이상하게도 화장실 문엔 둥근 손잡이가, 방문엔 레버형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게다가 방문엔 방향을 거꾸로 달아서 바깥에서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문이 딱 맞지 않아서 조금만 힘주어 밀어도 맥없이 열리므로 감금에 쓸 수는 없지만. 젖은 손으로 손잡이를 잡는 것을 싫어하므로 두 문의 손잡이를 바꾸어 달았다. 손등이나 손끝, 최소한의 접촉면적으로 화장실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네 시쯤 길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하나 사먹었다. 목적지는 어제 못 간 의림지. 큰 호수라는 것만 알았다. 의림지역사박물관인가가 있다는 것도 알기는 했다. 어떤 인물의 근거지거나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곳이려니 했는데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라고 했다. 박물관엔 들어가보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역사적 일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컸지만 썩 아름답지는 않았다. 오리배가 떠 있었고 데크 형식의 산책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5월에 군산에서 쓰고 열 컷쯤 남은 필름이 든 카메라를 가져 갔고, 그만큼을 다 쓰고 돌아왔다. 길건너에 있는 우륵샘이란 데도 들렀지만 물을 마시지는 않았다.

여섯 시가 조금 지나 집에 돌아와서는 잠깐 앉아 있다가 샤워를 하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아홉 시가 넘도록. 누워서는 대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싱크대 앞에 쌓여 있는 물건을 조금 밀고, 몇 개의 봉투를 열어 냄비와 수저와 식용유 따위를 꺼내어 씻었다. 냉동실에서 명란젓을 꺼내 녹였다. 명란오일파스타, 를 했는데 좀 싱거웠다. 먹을 만은 했다. 명란이 점점이 남은 냄비를 싱크대에 넣고 물을 채웠다.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이불 위에 엎드려 이것을 썼다.

2021.07.11.(일)

열한 시쯤 하루를 시작했다. 세 시쯤에 잠들어 (여덟 시쯤 한 번, 여덟 시 반쯤 한 번 잠깐씩 눈을 떴지만) 열 시쯤까지 잤다. 일곱 시간을 잤고 한 시간을 더 누워 있었다. 길게 잔 편이다. 최근에는 잠을 적게 잤다. 바빠서 혹은 불면증이 도져서는 아니다. 컨디션이 좋아서에 가깝다. (아무렇게나 말하자면) 나는 뇌 리셋에 필요한 수면 시간과 체력 회복에 필요한 수면 시간이 꽤 차이난다. 전자가 훨씬 짧다. 대개는 서너 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하지만 적어도 일고여덟 시간은 자지 않으면 체력이 달린다. 기분이 안 좋아서 잠이 느는 시기가 아니면, 그러니까 정신이 컨디션이 괜찮은 시기에는, 잠을 적게 잔다. 할 일이 많을 땐 곤란하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았으므로 적게 자고 잘 지냈다. 이사로 지친 탓일 것이다. 다섯 시간을 자고 깼다가 두 시간을 더 자고 또 한 시간을 마저 누워 있었던 것은.

잡다한 생필품을 사러 나섰다. 욕실에 둘 변기 커버나 비누받이, 칫솔꽂이나 수세미 ― 칫솔꽂이는 (쓸 수 있는 것을) 버리고 왔다 ― 따위 잡다하게 필요한 것이 많았다. 식사하고 장보고 카페에서 일기를 쓰고, 모두를 집 근처에서 할 요량이었다. (저번에도 그랬는데) 왠지 집 근처 식당들은 다 문이 닫혀 있었다. 어제 친구와 했던 대화 ― 둘 다 채식주의자이고 둘 다 일정한 상황에서 순대국을 먹는다 ― 가 생각나 순대국을 먹기로 했다. 식당은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곳에 있었다. 맛있지는 않게, 식사를 마쳤고 쇼핑은 그 근처 다이소에서 했다. (변기 커버는 커다라므로) 커다란 봉투에 담아 들고 집 근처로 돌아와 봐두었던 카페에 갔다.

집 근처에 힙한 카페가 있더라, 고 친구에게 전한 곳이었다. 일요일은 휴무라고 했다. 오는 길에 발견한 “가비”니 “여시”니 하는 말들이 적혀 있는 카페로 갔다. 왠지 와이파이 안 될 것처럼 생긴 곳, 이라고 친구에게 전한 곳이었다. 큰 볼륨으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길래 조금 더 돌아가 다음 카페로 갔다. 역시 휴무. 또 조금 더 돌아가 들어간 곳에서 앞의 일기를 썼다. 테이블이 대여섯 개, 의자가 스무 개쯤 있는 곳이었지만 한동안은 혼자 앉아 있었다. 일기 쓰기를 마쳐갈 무렵 다른 객들이 들어 왔고 시끄러워졌다.

집으로 돌아와 세면대에 비누받이와 칫솔꽂이를 얹어 두고 짐을 정리했다. (맨손으로 변기를 만지고 싶지 않아 커버는 아직 갈지 않았다.) 책꽂이 하나를 채웠다. 책꽂이 근처에 놓여 있는 것들을 대강 꽂았는데 우연히도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있었다. 페미니즘 책들, 음반들, 그리고 선물 받은 소설들. 책꽂이는 총 여섯 개가 있고 책은 그 중 네 개 반 정도를 채울 만큼 들고 왔다. 책꽂이 말고도 짐이 많다.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 한 주 정도가 지나 대강의 정리를 마치게 될 것이다.

시간도 체력도 남았지만 마음이 다해 또 한 동안 누워 있었다. 인터넷 설치 문의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지만 모든 상담원이 통화중이라는 말이 몇 번인가 반복되고는 끊어졌다. 아까 돌아올 때쯤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제법 굵어졌다. 잦아들 때까지,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빨래를 돌리고 산책을 나섰다. 단지 출구를 나서 다른 단지 하나를 지나면 큰길이 나온다. 길가 편의점에서 우유를 한 병 사 들이켜고 길을 건너 논밭 사이 길로 접어들었다. 솔방죽이라는 작은 저수지에 이것저것을 설치한 생태공원이라는 데를 슬쩍 둘러 보고 조금 더 길을 가자 꽤 넓고 길게 만들어 놓은 산책로가 나왔다. 촘촘히 박혀 있는 낮은 가로등마다 스피커가 붙어 있었고 끈적하거나 감상적인 가요가 흘러 나왔다.

아무 방향으로나 걷다가 지도를 보니 곧 큰 호수가 나온다고 했다. 의림지. 지도를 넣고 대강 그 방향으로 걸었다. 멀리서 전광판이 번쩍이길래 호수공원 입구인가 했는데 웬 교회만 있어서 돌아 왔다. 가는 길에 지나친 정자를 다시 만나 누웠다. 지도를 확인하니 교회 뒤로 돌아가면 호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다시 가지는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내일도 산책을 나올 테니까.

이십 분쯤 누워 있었다. 이미 주위가 어두웠다. 대충 집이 있겠다 싶은 방향으로 걸었다. 아파트가 좀 많아 보이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풀벌레 소리를 듣고 청개구리를 보았다. 낯선 큰길가에 이르렀다. 집에서 도보로 25분 거리. 큰길을 따라 집까지 걸었고 중간 지점 쯤에서 ― 놓친 집이 있는 단지 근처에서 ― 분식집에 들러 밥을 먹었다. 집앞 마트에서 욕실 앞에 둘 발매트와 생수 한 병, 파스타 면 한 봉지를 샀다. 발매트는 다이소에서 사려 했었지만 다이소 물건엔 늘 알 수 없는 그림이 박혀 있으므로 사지 못하고 나왔었다. 무늬 없이 하얀 것을 골랐다.

짐을 뒤져 빨래 건조대를 조립했다. 부품이 세 개의 봉투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이전 집에서는 부엌에 놓고 썼는데 통로가 좁아 반만 펼쳐 두었더랬다. 쓰지 않았던 쪽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이번엔 베란다에 둔다. 이번에도 역시 양쪽 날개를 다 펴면 길이 막히지만 베란다는 빨래 너는 데밖엔 쓰지 않을 것이므로 상관 없다. 휴지를 적셔 먼지를 닦고 빨래를 널었다. 아침이 되면 볕이 들 것이다. 비가 오므로 창은 닫아 두었다. 리모델링 하면서 (아마도 보일러 배관을 새로 설치하느라) 바닥을 높인 집인데 베란다 바닥은 합판으로 얼기설기 만들었다. 퀴퀴한 냄새가 난다. 집을 보러 왔을 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알지 못했다. 환기를 자주 하면 되겠지,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씻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이 일기를 쓴다.

쉰 시간을 빼면 집을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 보는 데에 하루를 보낸 셈이지만 서울을, 정확히는 두고 온 것들을 많이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달고 온 것들을. 물리적으론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여전히 겹치는 삶을 살 것이므로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그러나 어떻게 해야 잘 겹칠 수 있을지 모르는 것들을.

~ 2021.07.1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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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살았던 서울을 떠났다. 충북 제천으로 이사했다. 최초의 계획보다는 꽤 여러 해가, 최근의 계획보다는 2개월쯤 늦어졌다. 지금껏 한 이사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이동 거리를 기준으로 하든 짐 양을 기준으로 하든 집에 들인 돈을 기준으로 하든 이사에 들인 돈을 기준으로 하든, 어떤 면에서나 최대규모다. 그만큼 해야 할 일도 고민할 것도 많았지만 대부분 하지 않았다. 생략할 수 없는 몇 가지는 모두 외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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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2009년부터 5년쯤 노동조합 같은 데서 ― 운동단체 중에서 그나마 급여를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 일하다 돈이 조금 모이면 시골로 이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무리 사기업이나 국가 기관이 아니라 해도 애초에 매일 출근하는 일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인간이란 걸 알지 못했다. 대학원에 입학할 줄도 몰랐다. 같이 계획을 세웠던 (딱히 그에게 시골이 흔쾌하진 않았겠지만, 그다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지만) 연인과 헤어질 줄도 몰랐다. 여러 해를 미루며 두어 번의 연애를 더 했고 친구도 몇 명 더 생겼다. 없는 감상을 섞어 말하자면, 그 기억들을, 그리고 어떤 가능성들을 뒤에 두고 떠난다.

졸업 후에는 작은 언론사의 기자가 되었다.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날 없이, 대충 따지자면 한 주에 이틀이나 사흘 정도, 그나마도 종일이 아니라 하루에 몇 시간 정도씩만, 일하는 자리였다. 만 이년을 일했다. 후에는 매일 출근하는 (그러나 사무실을 혼자 썼으므로 실은 종종 결근했던) 일을 두 해 했고 역시 주 사흘 쯤, 일 8시간 기준으로는 이틀 쯤 근무하는 일들을 한 해 정도씩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는 단발성으로 일했다. 하루나 이틀쯤 혹은 한주쯤 하는 일이 많았다. 한 달쯤을 꼬박 들여야 하는 일도 몇 번인가 했지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게으르게 벌었고 겨우 두어 달 생활비만 있어도 금세 일을 그만두고 새 일을 얼른 구하지도 않았으므로 돈은 모이지 않았다. 2017년부터였나, 돈 안 받고도 해 온 일들 ― 구경하고 읽고 쓰기 ― 에 얼마간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창작지원금이나 연구지원금 같은 이름으로 정부에서 주는 돈이었다. 덕분에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들을 줄일 수 있었고, 그러고도 해마다 몇백 만원씩은 저축이 생겼다. 지난해엔 좀 더 마음을 먹고 저축을 시도했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2000만원짜리 전세를 구했다.

2018년이었나 2019년이었나, 동료들과 더덕주를 담으며 각자가 2021년에 이룰 일을 병에 써붙이기로 했다. 대학원생이었던 이들은 대개 졸업이나 진학 같은 것을 썼다. 나는 “학교탈출(≠졸업)”이라고 썼다. 이룬 셈이다. 살던 집의 계약 기간에 맞추어 올해 5월에 떠나기로, 지난해 말쯤 정했으나 게을러서 두 달이 늦어졌다. 봄에는 집주인에게 7월 12일에 방을 빼겠다고 말해두었다. 7월 9일, 드디어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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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시내 외곽의 낡은 아파트 ― 40년 전에 지어진 5층짜리 아파트 ― 로 이사했다. 길을 건너면 논밭이 있다. 아주 넓지는 않아서, 논밭 너머로 또 아파트가 보인다. 고속터미널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다른 방향으로 그만큼 걸으면 커다란 호수가, 이어서 그만큼을 더 걸으면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 곳이다. 또 다른 방향으로 한 시간 반 가량 자전거를 타고 가면 좋아하는 경치가 펼쳐진다. 강원도 영월의 산과 강.

그 경치가 맘에 들어 영월로 이사할까 했었다. 그게 어렵다면 다른 시골마을이라도 좋았다. 다만, 인터넷으로 매물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영월에선 세 나온 데를 찾지 못했다. 평창과 김제, 군산 등에서 몇 곳을 찾았다. 전세로 2000만원 내외면 갈 수 있는 곳도 있었고 몇천만 원 정도는 대출을 받아야 하는 곳도 있었다. 사진이 없거나 외부 사진만 있는 곳들이었다. 최소한도 확인하지 않고 겨우 그 한 채 보러 가기에는 너무 멀었고 나는 차도 없는데다 너무 게을렀다. 이사 시기를 조정해 바쁜 시기를 피하면 태워다 주겠다는 친구가 있었지만 이미 너무 오래 미루었으므로 고사했다.

이사한 곳을 비롯해, 소도시 구도심 외곽의 낡은 아파트 몇 곳을 검색했다. 제천에서는 이곳과 30년 된 아파트 하나를 보았다. 뒤의 단지에 딸린 집들이 전세가 500만 원, 1000만 원쯤 비싸고 좀 더 좁았지만 시설이 좀 더 나았다. 전세 2500만 원짜리를 골랐다. 부동산중개소에서 확인해 보니 집주인이 월세만 받는 걸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했다. 이틀쯤 더 고민했다. 생계 대책 없이 하는 이사이므로 잔고를 전부 써버리면 곤란했지만 결국 3000만 원짜리로 다시 정했는데 그 사이 나가 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지금의 집에 오게 되었다. 아마도 여러 달 비어 있었던 모양이다. 부동산중개소와 통화한 후 1주일 뒤에 계약서를 쓰러 가겠다고 했는데 가계약금을 걸라고도 하지 않았다. 낡은 집이지만 고향집을 나온 후 지금까지 산 곳 중 가장 넓다. 한두 명과 함께 살았던 곳들을 포함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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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달을 비어 있은 집은 지저분했다. 먼지가 많이 쌓였고 집을 보러 온 이들의 발자국도 가득했다. 죽은 벌레도 몇 있었고 곰팡이도 조금 있었다. 아주 심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사람이 사는 동안은 괜찮을 터였지만 스스로 청소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청소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므로 효율도 떨어질 터였지만 포기하지 않을 자신도 없었고 내 청소를 믿고 맘편히 살을 댈 자신도 없었다. 결국 업체에 청소를 의뢰하기로 했다.

전세 계약은 부동산중개사무소에, 청소는 이사청소 업체에, 이삿짐 포장과 운반은 운수업체에 맡겼다. 집을 보러 제천을 두 번 다녀가면서는 지하철과 고속버스를 탔다. 이사 당일에는 예의 친구가 태워다 주었다. 오가는 길의 식사는 식당에서 했다. 잡다하게 필요했던 물건들은 근처 가게에서 샀다. 상당한 규모의 일을 벌였지만 스스로 한 것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인터넷 검색과 두 아파트 단지의 서너 집을 둘러본 것이 전부다. 청소업체나 이사업체 가격을 조사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각각 한 곳씩에서만 견적을 받았고 주워들은 시세와 큰 차이가 없어 그대로 계약했다.

청소업체는 인터넷으로 구했다. 의뢰사항을 올리면 업체에서 견적을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서너 곳에서는 자동답장 기능으로 상세 문의를 달라는 연락을 해 왔고 한 곳에서는 156,000원이라는 액수를 보내 왔다. 12.7평에 156,000원. 평당 12,000원을 조금 넘는다. (식사를 했는지 말았는지 모르지만) 식사 시간을 포함해 9시간 가량이 걸린 모양이다. 시간만 17,000원을 조금 넘는다. (돈을 받고 하는 일들만 계산하면) 내가 받는 통상적인 시급보다 적은 돈이다. 나는 가지 않았고 청소 전후 사진만 받았다. 아마도 한 사람이 다녀갔을 것이다. 업주인지 피고용인인지는 모른다. 업체 주소는 강원도 원주로 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오간 것이라면 출퇴근에만 한 시간 넘게가 더 들었을 것이다. 스스로 청소하기는 애초에 포기해서 제대로 보지 않은 곳에서 곰팡이가 발견되었고, 약제비로 20,000원을 추가로 청구받았다. 인건비는 추가되지 않았다.

이사비용은 3년 전의 이사를 맡긴 업체에 문의했다. 당시엔 내가 먼저 짐을 싸두었고 기사님과 함께 상하차만 하는 방식이었다. 겨우 언덕 하나 넘으면 되는 거리였다. 트럭 한 대, 비용은 13만 원. 그후로 세탁기와 냉장고를 샀고 책꽂이도 몇 개 늘었다. (침대도 샀었지만 이사를 앞두고 미리 폐기했다.) 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이번엔 포장부터 전부 맡기기로 했다. 기사님 두 분이 오시고 트럭 두 대 분량을 포장해 옮기며 사다리차까지 사용하면 82만원이 든다고 했다. 이사 일주일 쯤 전의 계산이다. 짐을 줄여보기로 하고 일단 한 대 기준으로 계약하되 당일에 다시 판단해 필요하면 한 대를 추가하기로 했다.

9일 아침, 기사님 두 분이 오셨다. 두 대 분량으로 계산할 정도는 아니지만 짐이 많은 편이라고 하셨다. 포장엔 두 시간쯤 걸릴 거라고 하셨는데 실제론 세 시간이 걸렸다. 짐을 넣은 상자들로만 트럭 한 대가 찼고, 책꽂이와 식탁, 세탁기 등 큰 가구들이 또 한 대를 채웠다. 계산법은 잘 모르겠지만 한 대 기준 비용을 청구 받았다. 새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사다리차를 쓰기로 했는데 하필 내가 살 곳이 있는 라인만 그게 어려운 구조였다. 기사님 두 분은 결국, 사다리차만 믿고 책으로 가득 채운 무거운 상자들을, 계단으로 옮기셨다. 출퇴근에 들인 시간을 빼고도 상차와 운송, 점심식사와 하차에만 열 시간 가까이가 들었다. 사람 두 명 트럭 한 대 기준 기본 비용에 더해 사다리차에 쓸 예정이었던 돈을 추가 인건비로 드렸다. (운전을 하지 못해 나는 모르는) 유류비 같은 것을 빼도 내가 받는 시급보다는 높을 것 같지만, (청소에 엄두가 나지 않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나로서는 하지 않을 일이다.

거기에 한 끼 식사비 정도를 얹었다. 82만원을 다 드렸어야 했나, 계속 생각하고 있다. 청소 비용 지불은 중개업체 웹사이트의 안심거래인가 하는 기능을 이용했고 업체에 수수료로 5,000원 정도를 냈다. 그냥 계좌이체로 업체에 바로 지급했다면 그 돈을 아끼거나 팁으로 얹어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타지에 사는 집주인과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 받으며 계약서에 대신 도장을 찍었던 부동산중개사는 중개수수료로 10만 원을 받았다. 오며가며 쓴 돈을 빼면 100만원 조금 안 되게 들었다. 내 벌이나 씀씀이를 생각하면 꽤 큰 돈이지만 너무 적게 썼다고 느낀다.

외주에는 늘 죄책감이 따른다. 내가 적은 돈이나마 상대적으로 편히 ― 몸이 편할 뿐 아니라 어떤 수모를 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곳에서 ― 벌기 때문이기도,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맡기면서 주저 없이 하한선 이상으로 돈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시간 때문이다. 시급을 높인다고 맘이 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팔아 벌어 먹고 사는 삶이 여전히 불만이므로 타인의 시간과 수고를 사는 일은 기껍지 못하다. 매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똑같은 죄책감을 갖는다. 하지만 스스로 하는 일은 갈수록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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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를 마치고 (아침부터 나와 나를 태우고 체전까지 온 후 짐 정리를 도운) 친구의 차에 얹혀 다시 서울로 향했다. 살던 집을 청소해야 했다. 뜻하지 않게 (짐 정리를 미룬 탓으로) 전날 밤을 새어버려 도무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서 모텔에서 자고 이튿날 청소를 할까 했지만) 저녁에 서울로 도착한 즈음에는 오히려 몸이 가벼웠다. 하차를 조금이나마 도우며 몸이 풀리기도 했을 것이고 차에서 꾸벅거린 덕이기도 했을 것이다. 청소를 시작했다.

많이 버렸다. 읽지 않을 책들. 길게는 15년, 짧게는 5, 6년 전의 수업 자료들. 갖가지 고철들. 나무토막들. 사라졌던 자그마한 물건들을 여럿 보았다. 책꽂이 밑에 혹은 어느 상자 밑에 있었을 것이다. 가구를 받쳤던 동전들도 굴러 다녔다. 10원짜리 동전은 물론 평소라면 기를 쓰고 챙길 것들 ― 선물 받은 것들 ― 을 포함해, 대부분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았다. 분리수거에도 평소만큼 공들이지는 않았다. 기준이니 뭐니 하며 미루고 미루다 끝에 가면 늘 이런 식이다.

물건들, 을 겨우 다 치운 후 대강 비질을 했다. 그리곤 걸레질을 시작했다. 오로지 걸레 빨기를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 나는 양말과 속옷과 옷을 구분하지 않고 세탁기에 넣지만 걸레는 결코 넣지 않는다 ― 대개는 입주 때 한 번 퇴거 때 한 번, 이렇게 두 번만 집 전체를 걸레로 닦는다. 방바닥이야 무언가를 쏟거나 했을 때 부분적으로라도 닦은 적이 있지만 창틀은 입주 때도 닦지 않았으므로 이번에 처음 닦았다. (제대로 닦지는 않았다.) 거미가 사라지기 전에 거미줄을 걷은 것도 아마 이번이 처음이다. 3년 전엔 창틀과 벽지와 장판이 깨끗한 집이었는데, 이제 더는 그렇지 않았다. 청소를 마치고 나왔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다.

열한 시쯤이었나, 싸구려 밀대걸레의 손잡이가 부러졌다. 자그마한 공간이므로 손걸레질이라고 못할 거야 없었지만 애초부터 없던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대형폐기물 배출 신고를 해야 한다는 핑계도 있었다. 결국 인근 모텔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낮에 청소를 마쳤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저녁을 먹었다. 아홉 시 반 서울발 제천행 고속버스를 탔다. 짐이 좀 있어 터미널에서 집까진 택시를 탔다. 5분 거리를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 데에 30분을 썼다. 택시 요금은 3,900원.

아무렇게나 부려 둔 짐들 사이를 헤맸다. 어느 봉투에서 속옷을, 어느 상자에서 수건을 겨우 찾아 샤워를 했다. 덮고 깔 것은 전날 따로 빼 두었고, 책들 아래에 깔려 있던 상자를 찾아 베개를 꺼냈다. 봉투 하나를 더 털어 휴대전화 충전기를 찾았다. 냉장고에 물이 없었다. 캔커피를 마시고 누웠다. 7월 10일, 제천에서 첫 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