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4.(화)

밥을 안쳐 놓고 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취사 버튼을 눌렀나 불안해져서 확인하고 왔다. 밥을 안치기 전까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보고 있었다. 어제 (《스파이더맨》에 이어) 보다 말기도 했고, 오늘 팝콘이 생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카페에 다녀오는 길에 노방전도 하는 이에게서 받은 팝콘이다. 낯선 이가 주는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이 교회에서 주는 물티슈를 그간 탈 없이 써왔고, 평소와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가 팝콘을 주면서 방금 만든 거긴 하지만 전문가들이 만든 것만은 못할 거라고 했으므로 믿기로 했다. 그가 교회 집사가 아닐 리 없이 생긴 것도 한몫했다.

카페에는 일하러 갔다. 정확히는 해야 할 일을 피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닌 일, 이므로 일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그마저도 진척은 별로 없었다. 되면 좋은 ― 돈이 생길 가능성이 생기는 ― 일이고 여전히 ‘일’은 하기 싫으므로 오늘내일은 그 일을 마저 해 볼 것이다. 며칠을 일을 잡고 괴로워하다가 어제오늘은 내려 놓았더니 마음이 가뿐하다. 그렇다고 달리 의욕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밥도 귀찮아서, 오늘 저녁은 버섯만 볶아 간단히 먹을 참이다. 먹다 남은 레토르트 국물 약간과 함께. 지난 사흘간 먹은 것 중 서너 끼가 같은 메뉴였고 한 끼는 레토르트, 한 끼는 시판 소스만 넣어 만든 스파게티, 나머지는 식당 밥이었다.

일을 피하려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나 일기 쓰기도 귀찮다. 버섯이나 볶아야지. 버섯은 어제 도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사 온 것이다. 집 앞 마트에는 팔지 않는 고기느타리. 고기랑 어울리는 느타리라는 건지 고기맛이 나는 느타리라는 건지, 전에 한 번 사먹으면서 확인했었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맛이었는지도.

2023.02.16-17.(목-금)

어제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2022)을 보려다 실수로 ≪쥬라기 월드≫(2015)를 보았다. 요새 늘 ≪도미니언≫을 보라고 추천이 뜨던 곳에 어젠 어째선지 ≪쥬라기 월드≫가 떠 있었는데 제대로 안 보고 눌러버린 탓이다. 5분쯤 보고서야 깨달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보았다. 그리고는 영화가 끝나자 또 추천으로 뜬 ≪쥬라기 공원 3≫(2001)를 이어서 보았다. 이 편이 끝나고는 ≪고질라≫(1998)가 떴지만 그건 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오늘까지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쥬라기 공원 2: 잃어버린 세계≫(1997),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2018), ≪쥬라기 공원≫(1993)을 줄지어 보았다. 그 사이엔 ≪고질라≫(2014), ≪콩: 스컬 아일랜드≫(2017), ≪램페이지≫(2018)이 추천으로 떴다. 실은 어젠 ≪명탐정 코난: 할로윈의 신부≫(2022)도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이틀을 보낸 셈이지만 새로운 일은 아니다. 최근엔 ≪소년탐정 김전일≫ 애니메이션을 무한반복하다시피 재생시켜 두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전엔 ≪놀라운 토요일: 도레미 마켓≫이었고 그 전엔 ≪명탐정 코난≫ TV판이었다. 얼마 전부터 ≪가재가 노래하는 곳≫(2022),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 ≪더 랍스터≫(2015)를 보기로 맘먹고 있는데 ≪가재가 노래하는 곳≫만 이십 분 정도 보았다. 아니, 쓸데 없이 ≪도굴≫(2020), ≪도둑들≫(2012), ≪스파이더맨 2≫(2004)도 보았다.

어제는 ≪명탐정 코난: 할로윈의 신부≫을 틀어두고였나, 톱질을 조금 했다. 십여 년 전에 주워 이런 저런 용도로 써 온 비교적 만듦새가 좋은 와인 상자를 썰어 크기를 줄였다. 작아진 상자엔, 얼마 전에 고향집에서 가져 온 차를 그간 두 군데에 나누어 보관하던 차들과 함께 모아 넣었다. 오늘은 아주 잠깐 집 앞 저수지를 산책했다. 겨우내 거의 산책을 않다시피 했고 마지막으로 갔을 때 공사용 가림막이 둘러져 있었는데 그새 단장을 마친 모양이다. 영문 모를 돌무지와 “댓바람길 bamboo road” 같은 말을 새겨 넣은 바윗덩이가 생겨 있었다. 산책로 정비도 했을 텐데 어두워서 알아볼 수는 없었다. 저수지 위로 뻗은 목재 데크는 전보다 좀 더 상해 있었다.

내일은 반드시 한다 일.

2023.02.11.(토)

십여 년만에 주남저수지를 다녀왔다. 조류독감 예방 조치로 주남저수지는 폐쇄되어 있었고, 붙어 있는 동판저수지를 둘러 보았다. 여기에 쓰는 일기엔 아마 처음으로 사진을 몇 장.

고향집에서 저수지까지, 20여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오갔다. 지난번에도, 그러니까 2010년에도 자전거를 탔지만 이번엔 대부분의 구간을 그사이 — 정확히는 그즈음(부터) — 만들어진 자전거도로로 이동했다. 당시엔 차도와 농로를 오가며 이동했고 여러번 멈춰 표지판을 확인하거나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이번엔 휴대전화 지도에 기댔다. 자전거도로는 대개 낙동강에 접해 있었지만 이따금 마을을 통과했고 그러던 중에 이런 사진도 하나 찍었다.

몇 년 전에는 2010년에 — 안동과 인근 지역의 낙동강 유역을 —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이런 메모를 썼다.

2010년 8월, 고속버스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었다. 나도 같은 버스에 탔다. 안동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안동댐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었다. 이튿날, 자전거를 타고 강을 따라 달렸다. 강에서 가까운 도로를 탄 것이므로 강이 보이지 않는 시간도 많았다. 그날 밤은 ‘실천단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낙동강 순례를 하고 있던 친구들의 숙소에서 묵었다. 사흘째 되던 날에는 그 친구들과 함께 강을 돌았고, 오후에는 다시 홀로 자전거를 타고 움직였다. 밥을 먹지 못한 채 한참을 달리다 현기증에 기진맥진해질 무렵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가서 찜질방에서 하루를 잤다. 그곳에서였나, 태풍 소식을 접해 다음날에는 다시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고향집으로 갔다. 태풍은 만 하루만에 걷힌 작은 것이었다. 고향집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주남저수지를 찾았다.
카메라는 두 대를 갖고 있었다. 메모리카드도 두 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지도 않고 방치했는데, 너덜거리던 차였던 메모리카드가 말썽을 일으켰다. 사진이 읽히지 않았다. 그대로 또 한참을 방치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열어보니, 사진들은 이상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주남저수지는 생태 습지로 나름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실은 대규모 토목 공사로 만들어진 그곳은, 그저 농업 용수 확보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뜻하지 않게 철새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망가진 사진들은 뜻하지 않게 마음에 드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2023.01.10.(화)

피자는 잘 받아 먹었다. 일정 금액 이상을 주문하면 준다는 음료수가 올까 안 올까 궁금했는데 ― “서비스를 선택하시지 않으면 리뷰 신청이 안 된다”는 안내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서비스 메뉴 선택지 같은 게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 오지 않았다. 지금 다시 보니 조금 더 상세한 안내가 있긴 한데 역시 뭘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고 애초에 내가 주문한 금액은 버팔로윙이나 치즈스틱을 주는 구간이었다. 업체가 바뀌었으니 아마 레시피도 바뀌었겠지만 맛에는 무관심하여 차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지난 번 업체 고유의 것일 줄 알았던 와사비를 섞은 소스가 이번에도 왔다. 피자는 몇 달 전에 사 둔 맥주와 함께 먹었다. 피자는 다섯 조각을, 맥주는 반 캔 정도를 먹었다.

이번 쿠폰에는 10장 오븐구이, 15장 R사이즈 피자, 라고 적혀 있다. 과연 무언가 받아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쿠폰을 주는 업체를 종종 이용하지만 카페를 제외하고는 쿠폰을 실제로 쓰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자주 가지 않고 업체는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닐 땐 3년인가 4년을 다니고도 미용실 쿠폰에 도장 열 번을 채우지 못했고 결국 그 자리엔 다른 미용실이 개업했다. 지금 집 앞 마트에서는 1년 반 동안 적립금 천 원 정도가 쌓였다. 제일 많이 적립해 본 건 아마도 파리바게트에서 모은 해피포인트일 텐데 ― 지난 번 집에 산 3년 동안 끼니를 챙길 여유가 없을 때 종종 거기서 빵을 사 먹었다 ― 최근에 노동 조건 불량, 노조 탄압 문제가 불거지면서 발길을 끊었고 서비스도 탈퇴했다. 이만 원 조금 넘게 모인 포인트는 해피포인트 쇼핑몰에서 세간을 사는 데 썼다.

오늘 아침은 (점심께에) 남은 피자 세 조각. 조금 덜 데워졌지만 그냥 먹었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 입고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녹은 눈 사진을 찍으며 논밭 사이로 난 길을 한 시간쯤 걷고 카페에서 일을 하다 근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귀가하는 계획이었는데 반쯤은 틀어졌다. 논밭에서 길을 잘못 들어 1/3쯤은 시내 도로변을 걸었고 카페는 역시나 길을 잘못 들어 지나쳐버린 데다 하필 휴무일이었다. 대강 근처 다른 카페를 찾아 갔으나 카페와 공방을 겸하는 자그마한 곳이어서 일할 만한 데는 못 됐다. 지난주에도 일하러 카페에 갔는데 휴무, 그래서 발길을 돌려 간 다른 곳도 휴무여서 맥이 빠져 일을 말았는데 오늘도 그렇게 두 군데를 본 후 포기. 장을 보고 버스로 귀가했다. 빈 냉동고를 채울 냉동야채와 꺼진 방바닥을 채울 퍼티, 녹슨 스테인리스 비누받이를 대신할 규조토 비누받이, 두부, 유통기한이 임박해 반값에 파는 레토르트 푸팟퐁 커리 세 봉지를 샀다. 냉동야채도 같은 이유로 반값이었다.

그렇게 돌아와서 점심은 밥. 어제 먹고 남은 순두부찌개로 반 그릇, 어제 해 둔 야채볶음으로 반 그릇. 저녁은 커리로 반 그릇, 야채볶음으로 반 그릇. 두 끼니 사이엔 뭘 했더라. 가구 위치를 조금 바꾸었다. 나머지 시간은 허송세월한 모양이다. 저녁을 먹은 후엔 일을 조금 했다. 좀 남은 분량을 마저 하고 잘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2023.12.09.(월)

어제는 냉동고를 열었다 당황했다. 속에 든 게 죄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며칠이나. 단단히 얼어 있는 건 보냉팩 둘 뿐이었다. 냉기가 없진 않아서 상해서 악취를 풍기거나 하진 않았지만, 썰어둔 파 — 근처에선 한 단 단위로만 팔아서 큰맘 먹고 사야 하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자가격리를 하며 배달로 주문했던 — 만 물러져 있었다. 버섯과 (역시 자가격리 때 멋모르고 주문한) 복분자, 아마 3년 전부터 얼어 있는 두부면 같은 것들은 녹긴 했지만 상하진 않았다. 그래도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결국 모두 버렸고 오랜만에 냉동실이 비었다. 지난주엔가 해 먹고 남은 마라탕은 반쯤 얼어 있어서 그냥 먹었다.

오늘은 느지막히 일어나 식당에서 보리밥을 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봤다. 냉동실을 채울 만큼은 아니고 당장 필요한 채소 몇 가지만. 장바구니를 계산대에 올리고 바코드 찍기를 기다리는데 캐셔 분이 애호박을 집어들고는 바꿔다 주겠다며 매대로 가버리셨다. 두어 개를 들어 비교해 보고는 하나를 가져다 주었다. 상했었냐고 물으니 그래도 깔끔한 거 가져가시는 게 좋잖아요, 남자 분들이 이런 건 꼼꼼하게 잘 안 보시더라고요, 했다. 저녁에는 애호박과 양파를 조금 썰어넣고 시판 소스로 순두부 찌개를 끓여 먹었다. 허기가 살짝 돌 무렵부터 밥을 하기 시작했고 중간에 먹은 거라곤 물 한 잔뿐이었는데도 밥이 다 된 즈음엔 배가 터질 듯이 불렀다. 잠시 미루다가 그냥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엔 양파와 애호박, 냉장고에 한참 들어 있은 파프리카를 썰어 볶았다. 양파와 애호박, 파프리카가 그래도 반 개씩 남았다.

여전히 배는 부른데 영 입이 허전하다. 한참 고민하다 피자를 주문했다. 전화주문을 할랬는데 쿠폰에 번호가 적혀 있지 않아 지역배달앱을 열었다. 지난 1년 반 조금 넘는 동안 여섯 번을 시켜 먹은 피자집이 나오지 않았다. 지도앱을 열어 확인해 보니 그 자리엔 다른 피자집이 서 있었다. 다시 배달앱에서 그 집을 찾아보니 주인은 그대로인데 가입한 프랜차이즈를 바꾼 모양이었다. 거기서 주문했다. 이전 상호로 발급한 쿠폰도 계속 받는다고 적혀 있었다. 다섯 개를 모으면 스파게티, 일곱 개를 모으면 핫윙을 준다는 쿠폰 다섯 개를 모으고도 쓰진 않고 여섯 번째 주문을 했었는데 그날 받은 쿠폰에는 일곱 개에 스파게티, 아홉 개에 핫윙이라는 새 방침이 적혀 있었다. 오늘 쿠폰은 아직 받지 않았다. 피자가 아직 안 왔다는 뜻이다. 피자가 오면 시답잖은 영화를 틀어 놓고 먹을 생각이다. 영화는 아직 고르지 못했다.

어젠 《헤어질 결심》을 종종 (속으로) 웃으며 보았다. 박찬욱은 좋겠네, 탑 배우들 모아놓고 하고 싶은 거 맘껏 해서, 하고 생각했다. 정말로 이게 그의 취향에 맘껏 충실한 건지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