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전엔 잤다. 점심은 샐러드. 이틀 전이었나 마트에서 사 온 샐러드용 야채 묶음을 씻고 역시 마트에서 산 드레싱을 둘렀다. 역시 마트에서 산 버섯을 볶고 또 마트에서 산 두부를 부쳤다. 버섯을 볶는 데엔, 서울 생활 말미에 산 간장 풍의 조미료도 넣었다. 마트에 산 단호박을 반 통 썰어 전자렌지로 익혔다. 다 먹은 후엔, 아마도 4월 쯤에 산, 유통기한이 아마 5월까지였던 (유통기한은 상자에 적혀 있었는데 상자 째로 냉장고에 두었더니 습기를 머금길래 오래 전에 버렸다) 치즈도 (밀봉 포장을 뜯어 보니 멀쩡하길래) 썰어 먹었다. 무슨 치즈였는지는 잊었다. 익숙한 맛이었다.
그러고는 좀 누워 있다가 산책을 갔나. 아무튼 집 근처 공터 ― 공군 비행장 ― 을 걷고 옆 동네 양과자점에 들렀다. 연휴니까, 열려 있으면 간식을 먹으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여기기로 ― 휴뮤라면 오늘은 간식을 먹지 않기로 ― 했는데 영업 중이었고 마를렌과 휘낭시에를 샀다.
그러고 보니 산책 전에는 빨래방엘 갔다. 먼지 먹은 무릎담요 두 장과 커튼으로 쓰던 얇은 패브릭 포스터, 천가방 몇 개를 빨았다. 빨래방에 가기 전에 담요를 털었더니 먼지구름이 피어 올랐다. 세탁기를 돌려 놓고는 옆 빵집에 앉아 『아프면 보이는 것들: 한국 사회의 아픔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를 조금 읽었다. 빨래가 끝나고 냄새를 맡아보니, 저번과 마찬가지로, 담요에서는 (먼지 냄새는 아닌) 나쁜 냄새가 났다. 한 번 더 빨아야 한다.
산책을 마치고는 또 조금 누워 있었다. 평소라면 저녁 식사를 마쳤을 시각 즈음에 일어나 마늘을 다지고 부추를 썰고 숙주를 손질해 볶았다. 양파와 감자와 애호박과 버섯과 두부를 썰어 된장찌개를 끓였다. 냉장고에서 김치와 호래기젓을 꺼냈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해먹은 한식이다. 밥은 많이 먹었지만 카레나 짜장에 비벼 먹었고, 외국에서 온 것을 곁들이지 않고 먹은 밥은 물에 말아 김치와 먹은 한 끼가 유일했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는 또 산책했다. 논밭 사이를 걷고 먹구름 사이로 뜬 달을 보았다. 집에 오는 길에는 1층 계단에서 꼽등이를 마주쳤다. 집에 들어와 담배를 챙겨 다시 나가 한 개비 피우고 들어왔다. 나가는 길에 보니 꼽등이는 계단을 내려와 106호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들어올 때 보니 없길래 그새 어딜 갔지 했는데 내가 옆 라인으로 들어가 108호 문 앞을 본 것이었고, 실은 여전히 106호 앞에 앉아 있었다. 들어와서는 잠시 앉아 시간을 보내다 산책 전에 돌리고 나간 빨래를 널었다. 샤워를 하고 앉아 일기를 쓴다. 오늘은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 않고 잘 것이다. 내일은 철야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