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ow Many Relationships Has HIV Stigma Destroyed?”(Neal Broverman, PLUS, 20.04.27.)
십여 년 전, 나는 남자친구―여기선 데니스라 부르기로 하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잘생기고 재밌고 정열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장벽이 많았다. 그는 직업이 불안정했고 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나는 남자친구가 절실했다. 우리를 갈라놓은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는 HIV 양성이었다.
HIV 음성이었던 나는 바이러스에 집착해 줄곧 어떤 성적 행위가 위험하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불안을 표했다. 그가 공포를 덜어주길 바라며, 걱정을 속에 담아두지 않고 종종 데니스에게 쏟아부었다. 나의 HIV 불안증이 데니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그가 더럽고 바람직하지 않다(undesirable)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는 것을―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 넣은 것은 그의 HIV가 아니라 나의 무지였다.
얼마 전 캐나다 뮤지션 디즈(Dizz)를 인터뷰하면서 문득 데니스가 생각났다. 디즈는 지난 9월에 HIV 진단을 받았다. 이 소식을 전하자 그의 파트너는 디즈를 안아주며 HIV가 자신들의 관계를 흔드는 일은 없을 거라 약속했다. 디즈의 파트너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하게 반응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2010년 이후의 변화와 닿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출되지 않으면 전파되지 않는다'(undetectable equals untransmittable), 그러니까 U=U 개념 말이다.
미검출=전파불가[1][역주] 한국에서 U=U 슬로건은 “미검출은 전파불가” 혹은 “미검출은 감염불가” 등으로 번역된다. 자세한 내용은 이 게시물 등을 참고.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HIV 감염인(people with HIV)는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없다는 뜻으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지지하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항(consensus)이다. 단정하고 깔끔했던 데니스는 HIV 약도 꼼꼼히 챙겼다. U=U를 알았더라면 나는 걱정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낙인이 아니라 앎을 택할 수 있는 길이 있었더라면 우리의 삶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지금 혈청학적으로 불일치하는(serodiscordant) 관계를[2][역주] sero-는 혈청을 뜻하는 접두사로 흔히 혈액 속의 HIV 등 바이러스를 가리키는 데에 쓰인다. 혈청학적 불일치, 혹은 혈청불일치는 … (계속) 헤쳐가고 있는 사람들, 혹은 온라인에서 연인을 찾는 이들(여기에서 훌륭한 디지털 데이트 팁을 참고하라)은 아마도 그때의 나보다는 훨씬 정보를 잘 갖추고(informed) 출발할 것이다. 여전히 U=U에 관한 논의가 너무 적기는 하지만, 분명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 성인영화 배우 케이든 그레이(Kayden Gray)는 신작 《검출 안 되면 전파 안 되는 섹스(Undetectable Equals Fucking Untransmittable)》를 집필하고 출연도 했다. 물론 하드코어 섹스가 나오는 영화지만 쾌락의 신음들 사이에 U=U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로 알려진 비앙카 델 리오(Bianca Del Rio)가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하는 《UEFU》는 HIV를 겁낼 이유가 없음을 모두에게 알릴 훌륭한 터다.
우리가 이토록 멀리까지 나아 왔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최초의 “게이 암(gay cancer)” 기사들이 주류 언론에 실리고 40년이 지나, 정치부 편집차장 트루디 링(Trudy Ring)은 당시에 활동했던 몇몇 언론인, 활동가, 의사들에게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음을, 또한 동성애혐오가 언론의 반응에 미친 영향을 고백했다. 언론인 사라 슐먼(Sarah Schulman)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방대한 저서 『기록이 보여주게 하라: 1987년에서 1993년까지, 액트업 뉴욕의 정치사(Let the Record Show: A Political History of ACT UP New York, 1987-1993)』에 대유행 이후의 연년를 기록했다. 프라이드 미디어(본지의 모기업) 팟캐스트 국장 제프리 매스터스(Jeffrey Masters)가 최근 슐먼과의 대담에서 이 책과 여성이 HIV 논의에서 종종 지워지는 이유를 논했다.
또한 본지 객원편집자 존 케이시(John Casey)는 ‘매일 복용’(Daily Dose) 칼럼에 놀라운 인스타그램 에이즈 추모관―에이즈 합병증에 스러진 이들에 관한 사진과 이야기를 모은 아름다운 보고(寶庫)―에 대해 썼다. 이 온라인 추모관은 케이시가 HIV로 힘들었던 스스로의 관계와 자신이 1980, 90년대에 그 병에 걸린 모든 이들을―그저 건강 상의 두려움 뿐만 아니라 자기혐오와 내면화된 동성애혐오로 인해서―어떻게 피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과거와의 화해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데니스에게 그렇게 대했던 것을 전에도 사과한 적이 있지만 아무리 더 해도 부족할 것이다. 데니스,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