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가 속한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었고, 나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내가 속한 다른 단체―나와 그가 일하고 있던 단체에 속해 있는―의 대표를 맡지 않겠냐고 권해 왔다. 물론 그가 내게 그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맡을 마음을 내가 먹고, 실현을 위해 어느 정도의 애를 써야 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대표라는 자리를 맡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그는 내게 한참 이야기했다. 내가 대표라는 자리를 맡아 보기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배운 것과 같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그는 바란다고 했다. 나는 한참을 고사한 끝에, 결국은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는 몸이 아팠다. 그가 끝내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대표 자리를 그만둔 시기, 그리고 활동 일선에서 물러나 요양을 시작한 시기는 내가 그렇게나 고사했던 자리를 맡게 된 시기와 거의 비슷했다. 나를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나 길게 이야기했던 그 근거가, 그에게서 사라져 버린 즈음에야 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다른 이들을 만나면서 가끔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농담조로 이야기하곤 한다. 나에게 대표를 맡으라고 두 시간을 내도록 이야기해놓고, 정작 내가 일을 시작할 때 자기는 쉬러 가버렸다고. 딱히 그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의 농담은 어느 정도 그를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나름의 사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에게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 먼저 연락해서 그의 안부를 물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어쩌다 가끔 우연히 마주칠 때쯤에나 몸은 괜찮으냐는 말을 던졌을 뿐. 내가 묻지 않은 그 안부를, 다른 이들은 한번쯤 물었을까. 내가 그를 책하며 술을 마시고 웃던 때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