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7.(화)

침실은 조용, 하다는 건 순전한 착각이었다. 자려고 눕고 보니 거실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크게 들렸다. 귀마개 삼아 커널형 이어폰을 꽂았다. 종일 물을 틀어 둘 리는 없고 물이 새는 것 같지도 않고 환풍기도 아닐 테고 대체 뭘까. 온수 매트를 새로 산 걸까 생각하며 몇몇 제품의 소리를 찾아 들어 보았다. 역시 아닌 듯했다. 꼭 소음 때문은 아니지만 꽤 늦게 잠들었다.

맥없이도 그저 수도를 틀어 두어 나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적당히 일어나 밥을 해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다. 청소는 순전히 집에 사람을 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수도관이 지나는 벽도 있다고 했다. 확인을 요청했더니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내일 오전에나 올 수 있다고도 했다. 빨래만 끝나면 카페에 가서 일을 해야지, 했는데 세탁기가 또 오류음을 냈다.

그저껜가 세탁기 방향을 바꾸어 둔 덕에 이번엔 배수구를 살필 수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긴 ― 지난 번 집에서는 세탁기 두는 곳과 하수구가 통상적인 경우보다 훨씬 멀어서 설치 기사가 자기가 갖고 있던 중고 호스를 달아 주었다 ― 배수구가 말려 있는 탓에 안에 고인 물이 언 모양이었다. 물 두 주전자를 끓여다 부었지만 다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호스를 더듬어 얼음이 시작되는 위치를 찾아 가위로 잘랐다. 이 집에는 충분하지만 다른 집에 가면 짧을 수도 있는 길이가 된 배수관으로 물이 쏟아져 나왔다.

관리사무소에서 온 부재중 전화 기록이 있었다. 걸어보니 지금 바로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온 이는 소리를 잠시 들어 보더니 무어라 중얼거렸다. 옆 라인인데…였음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그가 와 있는 잠깐 동안은 웅웅거리는 소리만 나서, 이렇게 종일 웅웅거리고 이따금 수도를 튼 듯한 소리가 나다 말다 한다고 설명했다. 그냥 수도를 틀어둔 걸 수도 있어요, 동파 때문에. 그렇게 말한 그는 누수 피해는 없음을 확인하고는 돌아갔다. 잠시 후 벽 너머에서 수도를 여닫는 듯한 소리가 몇 번 나더니 고요해졌다. 그가 따로 연락을 주지는 않았다. 한창 추울 땐 안 틀어 두고 왜 날이 좀 풀리자 만 이틀을 꼬박 틀어 둔 걸까. 추운 동안에 얼어버렸고 겁이 나서 이후로 내내 틀어두기로 한 걸까. 알 수 없다. 이제 밤인데 여전히 조용하다.

방해 요소는 사라졌지만 기왕에 나가기로 했으므로 그냥 카페로 가서 잡무를 하다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또 일을 마저 하고. 그렇게 밤이 되었다.

낮에 온 그는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부동산중개사무소나 택시 같은 데서 이따금 사장님이라 불릴 때면 그냥 손님이라고 하면 좋을 텐데, 생각했다. 그와의 사이엔 무슨 대안이 있을까. 입주민님, 같은 말을 만들어 내는 건 이상하다. 선생님, 이 흔한 대안이겠지만 나는 그 말이 영 편치 않다. 가진 것 없이 ― 자격 없이 ― 이따금 좁은 의미의 ‘선생님’으로 일하기 때문, 과도한 권위와 권한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를 불러야만 하는) 다른 직종에선 어떤 호칭을 쓰더라. 의사들은 환자분, 이라고 했던 것 같다. 변호사들은 뭐라고 할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분명 봤을 텐데 기억나는 게 없네. 의뢰인님일까.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는 나도 의뢰인이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의뢰인이라기도 애매하다. 아닌가. 분명 출장을 의뢰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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