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0.(화)

바깥 수도가 얼어터졌다
참았던 말,
들어주지 않으니 손목을 그었다
혹한을 흘러내린 흰 피, 빙판이 되었으니
너무 오래 혼자 두었구나
울다 끈을 놓았구나
발목을 덮는 두께
차디찬 통곡이었을 것이다
그 위에 누워본다
등딱지가 얼음을 알 때까지 너는
용서하지 마라
차고 투명한 부적(符籍)

효험은 몸의 고난을 지나신다

「동파」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7.)

생각 나서 괜히 한 번 꺼내 읽었다. 딱히 ― 저런 의미에서도 평범한 의미에서도 ― 동파를 겪은 것은 아니다. 조금 얼었을 뿐이다. 그제는 최저기온이 영하 18도였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은 수도를 틀어두고 자기를 권한다. 영하 13도까지는 안 틀고 두었지만 이쯤 되면 나도 불안하므로 물을 흘리며 잤다. 관리실에서는 그렇게 받은 물을 사용하기를 권하지만, 그걸 차치해도 하수도도 얼 위험이 있으므로 흘려 보내지 않는 게 낫긴 하겠지만, 대야도 욕조도 없으므로 그냥 흘렸다. 아침에 확인해 보니 냉온수 할 것 없이 모두 잘 나왔다. 세면대는 그랬다. 세면대 옆에는 아마도 리모델링 전의 수도관을 살려둔 것일 성 싶은 수도꼭지 한 쌍이 더 있다. 그건 냉수만 나왔다. (그저 가열하지 않았을 뿐인 물을 냉수라고 부르는 게 마뜩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날씨에는 차디 찬 물이므로 그냥 두기로 한다.) 주방도 그랬다. 저 여분의 수도 꼭지와 주방 수도 꼭지를 잇는 수도관은 바깥 공기와 얇은 유리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다. 단열재로 감싸 두지도, 콘트리트로든 뭘로든 덮어 두지도 않았다. 하루를 그렇게, 찬물 설거지를 하며 보냈다.

질질 끌던 일을 점심께에 마치고 한동안 뭉그적 대다가 집을 나섰다. 문제의 수도관은 아파트 서쪽 벽에 붙어 있다. 곧 해가 기울어 그 벽에 볕이 들면 조금은 녹을 터였다. 헤어드라이어 같은 걸 쓰기엔 공간이 애매해서 핫팩을 덮어 열을 보태기로 했다. 나가기 전에 수도를 틀어 보았다. 역시 나오지 않았다. 읍내 잡화점에서 핫팩을 샀다. 사는 김에 락스도 하나, 걸레도 하나. 오는 길에는 집 앞 마트에서 이런저런 찬거리. 한 시간 정도 걸려 집에 돌아오니 화장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볕만으로도 언 수도가 녹아 온수가 콸콸 나오고 있었다. 욕실을 채운 김과 사방에 맺힌 물방울의 양으로 보건대 샤워에 쓰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그런 모양이었다. 얼른 물을 잠그고 허술하게나마 단열재를 덮었다. 작년 이맘때부터 생각만 하고는 한 번도 얼지 않아서 그냥 방치했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되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는 세탁기를 돌렸다. 베란다도 꽤 춥지만 이쪽 수도관에는 단열재가 둘러져 있다. 창을 열고 잤던 한 번, 수도 꼭지와 세탁기를 잇는 호스에 차 있던 물이 언 적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물은 무사히 흘러 나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세탁기가 멈춰 있었다. 에러 코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전원을 껐다가 다시 돌렸다. 문제 없이 작동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조금 전, 세탁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물이 가득 찬 해 멈춰 있었다. 에러코드는 OE. Out Error쯤 되는 말일까, 확인해 보니 배수 불능 상태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탁기 아래쪽 배수구 근처에 고여 있던 물이 언 모양이다. 세탁기가 비어 있다면 끄집어 내서 녹여 보겠지만 물이 가득 찬 지금으로서는 그저 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이 옷들은 며칠을 물에 젖어 있게 될까. 얼음이 녹는 게 빠를까, 내가 정신 차리고 건져서 세탁방에 가는 게 빠를까.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집은 건물도 허술한 샌드위치 패널인데다 마당에도 수도 꼭지가 있어 겨울이면 늘 얼어 붙었다. 서울에서 여기저기 ― 고향집만큼 낡았지만 그래도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의 셋방들을 ― 옮겨 다니며 살게 된 후로는 어느 옥탑에서 변기 배수관이 얼었던 것을 빼면 딱히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고. 그러니 꽤 오랜만이다. 이번에 언 수도관은 지난해에 녹이 가득 차서 물이 잘 안 나왔던 그 관이다. 설거지쯤 겨울에도 찬물로 하지, 생각하며 한동안 방치하다 겨울이 되자마자 고친 후로는 줄곧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했다. 그걸 빼도 찬물 설거지는 그렇게까지 오랜만은 아니다. 언젠가까진 겨울에도 대개 찬물을 썼다. 언제부턴가는 여름에도 늘 더운 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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