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느릿느릿 벽지 아랫단 잘랐다. 벽지와 바닥에 붙은 풀거스러미를 대강 털어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는 좀 미적거렸던가. 점심은 중국집에서 먹었다. 햄을 뺀 볶음밥과 짬뽕국물 대신 계란국. 귀가해서는 또 좀 미적거렸던가. 컴퓨터를 챙겨 집앞 카페로 옮겼다.
읽던 책과 원래 읽으려 했던 책을 모두 미루어 두고 전날 들어온 일 때문에 봐야 하는 책(의 일부)을 읽었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하루 더 생각해 보기로.
귀가해서는 바닥을 닦았다. 풀자국이 있어 힘을 주어야 했다. 청소기에 딸린 걸레 기능으로는 모자랄 것 같아 처음부터 손걸레질을 시작했다. 악력은 약하다. 손으로도 썩 충분하진 않았다. 손이 아프도록 힘주어 눌러가며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닦았다. 그리고는 행거를 세우고 옷을 걸고 책꽂이와 수납장과 상을 들였다. 원래와는 조금 다르게 배치했다. 이불을 깔았다. 그 사이 언젠가 저녁을 해먹었다. 상했을 줄 알았던 콩나물과 두부가 멀쩡하길래 콩나물국을 끓였다. 마지막으로는 짐을 내어 놓았던 거실을 정리하거나 곧장 눕는 대신 거실에 앉아 〈스파이더맨 2〉(2004)를 봤다. 주연 토비Tobey의 성이 맥과이어McGuire가 아니라 매과이어Maguire란 건 겨우 하루이틀 전에 알게 되었다.
최근엔 얼마 전에 본 시트콤 ― 아마 여기에 제목을 쓰진 않았을 텐데, 《프렌즈》(1994-2004) ― 의 클립이나 비하인드 영상이 종종 소셜미디어 추천게시물로 뜬다. 지난 해에 출연진을 모아 이런저런 걸 찍은 모양인데 그 영상도 드문드문 끼어있다. 겨우 한 달 전쯤까지, 그것도 200화 넘게(게다가 대부분은 나로서는 오직 여기에서만 본 배우들이다), 청년의 얼굴로 만난 이들이 어느새 초로의 얼굴이 되어 있어 기분이 묘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토비 매과이어를 봤을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또 그 이상으로.
제주 사는 친적이 15kg짜리 상자 가득 담아 보내준 귤을 마지막 세 개를 남기고 다 먹었다. 상해서 버린 것이 여섯 알. 이 상자 전에는 5kg짜리를 두 상자 먹었다. 이래저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번 겨울에는 강정평화상단의 귤을 맛보지 못했다.
매일 쓰는 일기는, 여기까지. 7월 9일에 이사해 반 년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