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 도배. 도배. 했다.
제목을 입력하며 2021까지 썼다가 고쳤다.
원래는 스터디가 있는 날이지만 도배를 먼저 하기로 하고 스터디는 내일로 미루었다.
오전에는 별 일 하지 않았다. 느지막히 일어나기도 했고, 일어나보니 두어 시 경에 벽지가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기도 했다. 방에 있던 가구며 이불이며를 거실로 옮기고 커튼을 뗐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으므로, 남은 시간은 쉬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더 쉬고 있자니 누가 문을 두드렸다. 대답하니 택배라고 했다. 문을 열어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 상자 하나만 덩그러니. 벽지를 꺼냈다. 상자 속을 보니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10장 이상을 사면 헤라와 여분 풀과 장갑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10장 당 1장 추가 이벤트도 하고 있었는데 길이 220cm 미만은 제외라고 했다. 210cm 12장을 주문했다.[1]모자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한 장이 남았다. 풀이 발린 상태이므로 어디 둘 수는 없고, 마침 한 장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중고 거래 앱에 … (계속) 헤라 등도 220cm 조건이 있는 걸까, 100cm 10장을 사도 주는 걸까 궁금했는데 안 주는 모양이었다. 아니었다. 박스를 기울이니 어둠 속에서 헤라와 비닐봉투 두 개가 흘러 나왔다.
네 시간쯤 걸렸나보다. 그렇게 오래 걸린단 느낌은 없었는데. 방은 작디 작지만 벽에 어느것 하나 멀쩡한 구석이 없어서, 그리고 도배는 생전 처음이라서,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다. 네 벽 모두 ‘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평평하지도 않고 수직수평도 잘 안 맞다. 문이 있는 두 벽에는 턱도 있다.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상자 모양으로 튀어나온 곳도 하나 있다.[2]이 부분 도배를 하며 의자에 올라서다 오른쪽 눈썹 윗부분으로 여기에 헤딩했다. 실제 벽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원래 발라져 있던 벽지의 모든 모서리가 둥글다. 한쪽 벽은 거의 전체 면이 벽지와 벽 사이에 1-2cm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그 위에 덮었으므로 지금도 그렇다.
대부분의 시간은 뗐다 붙였다 하며 최대한 수평을 맞추고 여러곳을 재단해 가며 붙이는 데에 썼다. 몇 군데를 찢어먹었고 몇 군데는 울었다. 바르게 붙이기 어려울 것은 예상했지만 젖은 벽지를 자르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몰랐다. 도배용 칼이란 걸 파는 걸 보았는데 젖은 벽지를 찢어지지 않게 자를 수 있는 칼일까. 위아래를 곧게 자르는 용도일 거라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그 정도는 대강 만들어서 할 수 있다. 애초에 벽이 곧지 않으므로 어떤 도구를 쓰든 도구의 힘만으로 곧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도배. 도배. 도배. 아무튼 일단락. 마른 후에 풀자국을 털어내고 걸레받이쪽 마무리 재단 — 이 역시 마른 후에 하기로 했다 — 만 하면 된다. 밀가루풀이라서 대충 걸레로 닦아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괜히 종이든 비닐이든 쓰지 말고 몸을 써서 걸레질을 하자, 는 생각으로 맨바닥에서 했는데 생각보다 안 닦인다. 가구는 아직 안 넣었고 우선 커튼을 다시 다느라 그 아래만 닦아 봤다. 행운이 있기를.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시내에 다녀왔다. 어처구니 없는 착각으로, 괜히 다녀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