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식주의자다.
생선과 알, 유제품을 먹으니 채식인이라기엔 좀 부족할지 몰라도, 채식주의자임은 틀림없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지만(물론 심적으로만 가깝고 경제적으로는 반대쪽 정점 가까이에 있다) 틀림없이 반자본주의자인 것처럼.
2008년 늦봄에 육류를 끊었으니 채식도 어느덧 만 3년이 다 되어 간다. 실수로 몇 번쯤 입에 육류를 대었고, 닭고기를 먹은 일이 두 번 있었다.
그리고 최근, 닭을 한 번, 돼지를 두 번, 소를 한 번 먹어 보았다. 양념 치킨에 편육, 동파육 그리고 불고기까지 다양하게.
오랜만에 먹어보니 꿀맛, 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없더라. 반갑지도 시원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처럼, 그냥 평범한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약간 생소했을 뿐.
하지만 어떻든, 스스로의 규칙을 깨고 몇 차례 육류를 먹은 후 생활이 다소 바뀌었다. 말하자면, 어차피 고기도 먹었는데 뭘, 하는 식의 태도가 생겼달까. 덕분에 실수로 먹게 되는 육류에 훨씬 관대해졌다든가 하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육류가 든 줄 모르고 주문한 메뉴를 버리지 않고 골라 내고 먹는다거나, 동행이 먹다 남긴 육류가 든 음식을 조금씩 먹는다거나 하게, 혹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으로선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조금의 육식을 하게 된 대신 그만큼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게 되었으므로.
비누의 사례를 생각하면 조금 걱정스럽다. 채식을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세제도 끊었다—비누와 치약, 주방 세제 모두를. 그러다가 지난 겨울 길어 버린 머리를 주체할 수 없어 비누를 쓰기 시작했는데, 머리를 자른 지금도 때로 비누를 쓰고 종종 주방세제를 쓰기도 한다.
느슨해진 채식이 아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비누를 생각하면 조금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