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은 뒹굴거리며 보냈다. 늦게 먹은 점심은 또 (메밀)콩국수. 카페에 앉았지만 일은 딱히 하지 않았다. (대기업) 수퍼에 가서 잡화를 이것저것 샀다. 왜 하나씩 나눠서 사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싱크대 청소용 솔을 샀고 이로써 드디어 욕실과 주방 청소 용품을 모두 갖추었다. 먹을 것도 조금 샀고, 저녁으로는 빵을 먹었다. 크라상 헤리티지. 밑도 끝도 없이 “프랑스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짐 정리를 아주 조금, 했다. 몇 년째 열지 않은 상자 하나의 내용물을 이사로 생긴 깨끗한 상자로 옮겼다. 말라 붙은 곰팡이와 벌레 사체는 옮겨 담지 않았다. 새 상자엔 그저께 비운 서랍에 들어 있던 최근 몇 년간 받은 편지와 선물을 넣어 둔 참이었다. 낡은 상자의 내용물은 그 전의 십여 년간 받은 선물들과 편지들, 선물의 포장지들. 옛 연애의 흔적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잠깐 마음이 아팠다.
집 앞 마트에 가서 욕실에 달 선반을 샀다. 어디에 달기에도 욕실은 마뜩잖은 구조다. 새로 단 휴지걸이에 걸어 둔 휴지는 수시로 젖는다. 수건걸이는 샤워를 하면 물이 가장 많이 닿는 곳에 달려 있다. 옮겨 달 자리가 마땅치 않다. 선반은 결국 아직 달지 않았다. 욕실장도 아직 주문하지 않았다.
칫솔은 이사 후에 새로 꺼낸 것 같은데 그새 엉망이 되었다. 이가 이상해 진 건지 팔이 이상해 진 건지. 급한 대로 언젠가 모텔에서 챙긴 일회용 칫솔을 꺼냈는데 그것도 하루만에 엉망이 되었다. 수퍼에서 산 물건 중엔 칫솔도 있다.
여전히 돈을 보내지 않았다. 택배도 하나 보내야 하는데 비가 오네, 큰 문제는 아니지만 괜히 미루게 된다. 오늘은 원고 마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