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페에서

고장난 휴대전화 수리를 위해 집 근처의 서비스 센터에 갔다. 꽤 높은 층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어두운 정장들 사이에서 홀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나는 그 사람과 부딪혔는데, 그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정확히는, 내가 그와 부딪히고 그의 옆에 있던 좁은 구석으로 들어가는 동안 그는 전혀 움직여 주지 않았다.
창구에 전화기를 맡기고 순서를 기다리며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 뒤에 있는 공용 컴퓨터에 앉은 누군가가 작지 않은 목소리로 일행과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들렸다. 집중을 방해할 만큼 컸던 그 목소리는, 이요원이 뭐가 예쁘나, 비쩍 마르기만 해서, 나는 홍수아가 좋더라, 홍수아는 말랐는데도 몸매가 좋다, 그런데 너 남자들이 홍수아 좋아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아느냐, 그건 운동을 잘하기 때문이다, (운동? 하고 되묻는 여자 목소리)그래, 운동, 홍수아가 시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거의 투수급이다, 라는 내용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은 신기하게도, 지하철에서 부딪혔던 그 사람이었다.

박종주 고객님,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자기 자리에서 한참을 걸어 나온 서비스 기사가 나를 맞는다. 나를 자리로 안내하고 전화기를 고치는 내내 그의 태도는 수리 기술자라기보다는 영업직 서비스 직원에 가까웠다. 오래 기다리셨죠, 라는 인사와 함께 나를 자리에 앉히고는 손수 사탕 통을 열어 내 손에 사탕 한 알을 쥐어 주고는 핸드폰의 상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사실 핸드폰은 이미 여러번 분해해 본 터라 필요없는 설명이었지만.
수리하는 내내 그는 친절하게 작업 하나하나와 남은 시간을 설명해 주었고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자신이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설명을 해 주었다. 수리가 끝난 시점에서는 잘 쓰시라는 인사와 함께 서비스 만족도를 확인하는 전화가 오면 잘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나를 마중했던 자리까지 따라 나와 배웅 또한 했다. 잘 가시라는 인사를 하며 그는 내게 마스크팩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수리를 받으러 가면서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며 문서들이며를 펼쳐 두고 갔었는데, 수리를 받고 있던 중에 누군가가 그 테이블에 앉은 것이 보였다. 내 짐들을 치워 주려고 다가가서 보니 손님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청소 용역 업체 직원들이었다. 내가 치우면 자신들이 손댈 것을 걱정한 것으로 오해할까봐 신경이 쓰였지만 이미 내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 후였고 그들 또한 궤념치 않는 듯했다. 그들은 노트북을 챙기는 내게 가격과 성능을 물어 보더니, 자기들의 집에 있는 아들이나 며느리 소유의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수리를 마친 후에는 근처 카페로 갔다. 서비스 센터 근처에 살았던 후배에게 전날 미리 물어 두었던 조용한 곳이었다. 사실 그리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대화하거나 음악이 큰 소리로 재생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간이 좁은 탓에 믹서기를 비롯한 여러 기계들의 소리가 여과없이 들렸고 한사람만 큰 소리를 내도 카페 전체가 울리는 탓이었다. 자리를 잡은 후 카운터로 가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했다.
잠시 기다린 후에 나온 음료를 받아들고 나는 자리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들린 카라멜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라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보니 서비스 센터에서 부딪혔던 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음료를 받아 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요원과 홍수아를 논하던 이는 어디 갔는지 그는 혼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얼마쯤 내가 글을 쓰고 그가 책을 읽은 후에 그의 일행이 도착했다.(서비스 센터에서 그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간간히 그가 영어로 무언가를 읽는 소리가 들렸지만 서비스센터에서처럼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진 않은 덕분에 나는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좁은 카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주로 테이크 아웃 커피를 사들고 나가는 그 가게의 손님들은 연령대가 꽤나 다양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에서부터 중년의 남녀까지 적잖은 사람이 그곳을 드나들었다. 그 중 눈에 띈 것은 가게 가운데에 있던 기둥 옆자리에 자리 잡은 한 노인이었다. 부시시한 머리에 수수한 차림을 하고 있던 그는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점원은 그에게 종이컵과 머그잔 중 고를 기회를 주었고(내게는 주지 않았다.) 그는 머그잔을 택해 한참을 마셨다.
꽤 긴 시간동안 천천히 커피를 마시던 그는 점원에게 샌드위치가 있으냐고 물었다. 점원은 샌드위치는 없고 베이글이라는 빵이 있다며 그에게 샘플을 보여주었다. 베이글을 먹어 본 적이 없는 듯 그는 그것이 얼마나 단지, 얼마나 딱딱한지를 물은 후 그거 하나 주세요, 라고 추가 주문을 했다. 그가 베이글을 먹는 모습은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는, 자신의 컴퓨터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용역 업체 직원들을 떠올렸다. 기둥 뒤의 그 역시 컴퓨터를 가져 본 적은 없을 성 싶었지만, 그는 베이글을 가졌다. 용역 업체 직원들이 무엇을 가졌을지 나는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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