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밤에 잠들기가 어렵다. 몸은 극도로 피곤한데도, 낮에까지 내내 잠이 오는데도, 정작 밤이면 잠이 달아난다. 어제는 끙끙거리다가 5시가 넘어 겨우 잠들었는데, 오늘은 그조차도 되지 않을 것 같아 잠들기를 포기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다로 메타블로그를 뒤지다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mi-ring이라는 생소한 블로그 목록을 발견했는데, 그곳을 통해 들른 어느 블로그에서 엄마와 가사노동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블로그의 주인인 필자가 가사노동에 대한 견해를 필자의 엄마와 나누던 중 엄마가 표한 불편함에서 글은 시작했다.
문든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니, 꽤 오랫동안 종종 떠오르던 것이 또 한 번 떠올랐다. 당시에는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후에 내내 가슴에 걸리는 일들이 있다. 늦었지만, 뭐라고 짧게라도 변명해야 할 어떤 사건이 말이다. 나 역시 지난 23년을 살면서 그런 일들을 몇 개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또 떠오른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2005년, 나는 내가 속한 난장반의 모임인 "주체적인 인간들의 공동체"에 가입했다. 약칭인 ‘주인공’으로 불리던 그 모임은, 주제를 정해 영화를 보고 그에 관해 멤버들끼리 토론을 하는 공간이었다. 지금 변명하려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메커니즘과 인간"이라는 주제의 텀을 진행하며 영화 <효자동 이발사>를 보고 세미나를 하던 중이었다.
옅은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효자동 이발사>에서 송강호 분의 이발사는 문소리 분의 이발사 보조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 임신시킴으로써 결혼을 성사시킨다. 방으로 들어간 후의 상황은 생략되었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이발사가 이발사 보조의 몸을 보며 군침을 삼키는 장면은 생략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이발사 보조가 느끼는 감정은, 약간의 당혹스러움 이외에는 표현되지 않았다.
세미나의 원래 초점은 유신 정권 하에서 개인의 삶이 체제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류의 것이었지만, 위의 장면 역시 주요하게 다루어졌던 것 같다. 세미나의 형식은 자유로운 편이었고, 적지않은 멤버가 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덕일 것이다. 한 친구가, 이발사가 이발사 보조를 ‘강간했다’는 말을 꺼냄으로써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 뒤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종종 떠올라 가슴에 걸리고, 십 몇 분 전에 누군가의 글을 읽음으로써 또 다시 떠오른 한 장면은, 그의 발화에 이어 튀어 나온 나의 한마디였다. 나는, "덮쳤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간했다"고 표현한 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표현을 반복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표현이 다를 수 있음을 지적했고, 이야기의 초점이 그 행위에 대한 평가보다는 그런 상황 속에서의 여성의 삶에 관한 것으로 맞추어진 탓에 나와 그가 설전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서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애써 잊은 채 다음 화제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 상황이 4년이나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은, 내가 선택한 "덮치다"라는 표현이, 이발사의 행위에 대한 옹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발사의 행위를 옹호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 판단이 약화된’ 단어를 굳이 고른 나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지만, 나의 선택이 성폭행이라는 행위에 대한 가치 판단 자체를 유보하거나 혹은 약화시키는 데에 일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덮친다는 모호 단어를, 그것도 굳이 강간했다고 표현한 사람의 말을 자르며 들이댄 것은 이발사가 아닌 이발사 보조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의 표현―나의 가치 판단이 단순히 이발사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이발사 보조의 상황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상대방의 의중을 따지지 않고 무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운 이발사의 행위를 비판, 혹은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를 구시대적이고 마초적인 소시민이라 부르는 것도,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강간범이라 부르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의 행위 뿐 아니라 그의 인격 자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데에도 크게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강간했다’는 표현은 시대를 앞서 나가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한 것 이외에는 죄가 없는 이발사 보조의 삶까지를 흔들어 놓는다. 세상 물정 모른 채 서울에 와서 일하다가, 이발사가 밀어 붙이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애엄마가 되었지만 그래도 크게 괴롭지 않은 삶을 살아 온 한 인간―여성의 삶을, 극단적인 객체인 ‘피해자’의 것으로 한순간에 바꾸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 대고 당신이 피해자였음을, 객체였음을 인정하라고 외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마디 쉬운 말로 그의 지난 수십년 삶을 부정하고 붕괴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온전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 감히 시도를 꿈 꿔 볼 수 있는 일일지는 몰라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상대를 앞에 두고 함부로 내뱉아도 좋은 일은 절대 아니다.
물론 이야기를 꺼낸 그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었다. 1년이라는 짧은 대학생활 중에도 수없이 보고 또 들었던, 대학생의 입바른 소리들, 너무나도 쉽게 지껄여지는 그 말들에 대한 염증이 그 순간 거부반응이 되어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가 당시의 상황이나 나의 말을 기억하고 있을는지, 나처럼 가슴에 담아 두고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이 글을 과연 그가 보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혼자서 이렇게 주절거린다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변명을 해보고 싶었다.
변명에 또 변명을 덧붙이자면, 이 변명은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아니, 이것이 나를 위한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발사의 행위를 보며 분노했던 그에게, 당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가 그 이발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님을, 나 역시 당신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음을, 그러니 당신은 혼자가 아님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입으로 감히 그런 말을 하지는 못 할 테니, 우연히라도 그가 이 글을 볼 수 있기를, 그래서 이 글이 나만을 위한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본 블로그의 글은 2008년 7월이 것이며, 그 블로그의 마지막 글이다. 다시 말해 그 글을 쓴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또 그 글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기에 여기에 링크를 걸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