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의 용기

  • 페이스북페이지 “경계없는 페미니즘”에 게시함(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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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길을 가는데 누군가 팔을 뻗어 길을 막았다. 그는 남성으로 보였고, 덩치가 컸고, 옷이 더러웠으며, 말을 더듬었다. 이런 흔한 표지들 앞에서 나는 긴장했다. 그는 그 팔을 움직여 나를 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를 자세히 살핀 것은 그 다음 순간의 일이다. 옷에 묻은 것은 물감이나 페인트 쯤 되어 보였다. 그곳은 공방이며 작업실이며가 모여 있는 골목 근처였다. 그저 지저분한 작가일까, 하는 데에 생각이 닿자 긴장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제서야 그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여전히 말을 더듬고 있던 그는 문장은커녕 단어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라이터를 원하고 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뀐 것은 없었다. 그는 여전히 남성으로 보였고 덩치가 컸고 옷이 더러웠으며 말을 더듬었다. 달라진 것은 내가 그에게 어떤 편견을 투사했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는 여전히 나를 때릴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어쩌면 나를 때리고 싶어 하는 작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노숙인에게 난데 없는 (그로서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욕지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삿대질을 했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에게 정말로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노숙인이 몰려 있는 구역을 지날 때면 움츠러들지만, 다행히 나는 온전히 겁에 질리지는 않았다. 내게 말을 붙여 오는 몇 명의 노숙인과 대화를 해 본 적이 있다. 겨우 몇 분 담배를 주고 받은 사람도 있고, 삼십 분 넘게 인생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예의 그에게 두들겨 맞지 않은 덕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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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에 대해 생각한다. 십여 년 전 소위 ‘활동’이라는 것을 시작할 때, 내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남들이 자연스레 여기는 일을 비판하고, 그 비판을 위해 통상적인 인생의 길에서 벗어나고(예컨대 기업에 취업하지 않는다든지), 때로는 전경과 맞서고, 이런 일들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계를 바꾸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늘 나 자신을 바꾸는 일이었다.
필요한 용기는 한 가지가 아니었다. 활동이라는 길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타자들 ― 나 역시 이 사회의 ‘타자’이겠지만 ― 을 대하는 데에는, 전경과 몸싸움을 하는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했다. 비정규직 철폐니 주거권 보장이니 하는 그들의 요구를 지지했지만 그들의 삶을 온전히 지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성별분업이나 나이주의 같은 일상의 권력 구도에 익숙해 져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과 같은 공간에 앉아 대화하는 것은 종종 두려운 일이었다.
현실 제도만 비판하고 대의만 외칠 것이 아니라면, 내 곁의 삶들을 관통하고 있는 소소한, 그러나 강력한 권력 구조까지를 바꾸고자 한다면, 그러나 그들과의 대화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들은 왜 나와는 다른 문화와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서는, 그들에게 말을 건넬 수 없었으니 말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를 바꾸기 위해, 나와 그들의 관계를 바꾸기 위해, 우리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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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에 대해 생각한다. 타자의 자리에 다가갈 용기. 그것은 때로는 세상이 내 기대만큼 아름답지 않음을 확인하는 데에 필요한 용기이며, 때로는 내게 가해질 어떤 피해들을 감수하는 데에 필요한 용기이다. 그 용기 없이는 아무런 대화도 불가능했다. 미디어가 그리는 그들의 모습은 순전한 피해자이거나 무질서한 폭도이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으므로, 그들이 어떤 힘들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여전히 긴장한다. 노숙인들이 누워 있는 어둑한 터널을 지날 때, 중년 남성들이 다수인 노조를 방문할 때만이 아니다. 여성들이 모인 공간에서도, 장애인들이 모인 공간에서도, 청소년들이 모인 공간에서도, 교수들이 모인 공간에서도, 나는 긴장한다. 이미 알고 있다. 그들 안에도 권력 관계가 있으며 그것은 종종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연을 끊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전부일 리야 만무하지만, 시작점에서는 언제나 용기를 내어야 한다.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없고, 그래서는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페미니스트의 용기란 그런 것일 테다. 정부를 상대로, 혹은 내가 속한 문화권을 상대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용기.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알기 위해, 기꺼이 나의 안전망 바깥으로 나아갈 용기. 가장 위험한 곳에 다가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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