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임에도 그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에서 약속이 있었다. 지하철 봉천 역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방앗간 삼거리’에서 내리라 하기에, 일단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웬걸, 버스 노선에는 방앗간 삼거리는커녕 방앗간도, 삼거리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기사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아직 멀었으니 가서 앉아 있으란다.(하지만 버스는 초만원이었다.) 무학 초등학교 지나서라고만 하고, 초등학교 지나서 어느 정거장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자리에 돌아와 다시 노선표를 보다가, 반대쪽에 다른 노선표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노선표에는 앞의 노선표에 나와있지 않은 몇개의 정거장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방앗간’이 있었다. 저긴가보다 하며 고개를 내리는데,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께서 어딜 찾으냐신다. 방앗간 삼거리엘 간다 했더니 무학 초등학교 다음 정거장이고, 아직 좀 남았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간단히 인사한 후, 두 개의 노선표를 번갈아 보며 기사 아저씨와 그 할머니를 생각했다.
"다음 정거장은 방앗간 삼거리입니다."
드디어 내릴 곳에 당도했다. 이제 내려야지, 생각하며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집어 넣고 지갑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또 옆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나를 툭툭 치신다. 여기가 방앗간 삼거리니 지금 내리면 된다신다. 인사를 한 후 내리는 문을 향했다. 버스카드를 찍고 내리자 앞에 방앗간이 있었다. 가야할 곳은 문경 수퍼 골목 언덕을 100m쯤 올라가면 있다는 어느 성당.
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손을 잡고 다정히 이야기하며 내려오는 중년의 부부를 보았다. 동네 사람처럼 보였는데도 그들은, 전혀 옅어지지 않은 경상도 말씨로 대화하고 있었다. 봉천동의 지붕들은 신림동의 것들보다도 훨씬 낮았다. 높아가는 언덕의 옆으로, 좁은 마당들은 갈수록 낮아졌다. 이런 동네에도 습기가 안 차는 집이 있을까. 습기 가득한 집들에도, 낮은 천정 아래 허릴 숙인 사람들이 살겠지. 못사는 동네에 흔히 있는 허름한 점집과 낡은 교회를 지나, 나는 목적지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