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Dom Kelly, “There is no disability justice without a Free Palestine,” Mondoweiss, 2025.06.08. [, ]로 표시한 문구와 각주는 역자의 것.
나는 장애인이자 반시온주의자 유대인이며,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보게 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또한, 가자에 대해 침묵하면서 장애 권리 혹은 정의 활동을 한다는 이들은 실은 그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돔 켈리Dom Kelly

나는 장애인이자 반시온주의자 유대인이다. 아버지 쪽으로는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손자이자 영국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이들의 후손이다. 어머니 쪽으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이자 동유럽 전역에서 박해에 시달렸던 유대인의 후손이다. 특히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 온 사람으로서, 억압에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해방에 몸 바치는 것이 내 필생의 과업이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아무런 단서 없이,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보게 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또한, 가자에 대해 침묵하면서 장애 권리 혹은 정의 활동을 한다는 이들은 실은 그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합중국이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인종학살을 자행하기를 스무 달째, 이미 수십 년의 포위 당하고 쫓겨나고 점령당해 온 인구에 대한 고의적인 장애화, 민족 청소, 대량 학살을 무시하면서 장애 정의를 위해 활동한다고 할 수는 없다. 2023년 10월이 되기 전에 가자의 장애인은 약 58,000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이번 인종학살 초기에 쫓겨난 이들의 약 15%가 장애인이 되었다. 지금의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훨씬 높을 것이다.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당했고, 그 중 다수가 여성과 아동이다. 신체적으로 부상을 입거나 불구가 된 이들은 훨씬 많다. 아동 수천 명이 사지를 잃었고, 역사상 가장 큰 소아 절단장애인군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현실 말고도, 트라우마 역시 장애를 가한다. 생존자 하나하나가 종종 보이지 않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체적, 심리적, 감정적 폭력에 따른 장애와 함께 살아가야 하게 될 것이다.
이 중 어느 것도 유대인을 지키기 위한 일이 아니다. 이 중 어느 것도 그저 부수적 피해가 아니다. 이는 인종학살의 의도된 결과이며, 너무도 많은 이들이, 특히 유대인 공동체와 장애 공동체 양쪽 모두에 속한 이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
뇌병변 장애인으로서 나는 지난 해 초에 가자에서 사망한 열 살짜리 아이, 야잔 알 카파르네의 사진을 외면할 수 없다. 나와 같은 장애가 있었던 야잔은 앙상해 진 몸으로 죽음을 맞았다. 증인이 되기를 거부한 세상이 그를 굶기고 버렸다. 그 사진이 퍼졌을 때 나는 장애계에서 격렬한 항의가 터져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24세 남성 무하메드 바가 IDF 군견의 공격으로 죽었을 때 나는 주류 장애계에서 뭐라도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지난달, 이스라엘이 난민촌에서 휠체어이 앉아 있었던 열두 살 아흐메드 아부 알 루스를 살해했을 때, 나는 이번에야 말로 우리네 장애계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낼 거라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성명서는 어디로 갔는가? 접근성, 구호, 민족 청소 종식에 대한 요구는? 언론, 학교, 정부에서 정상신체중심주의를 거침 없이 비판하는 수많은 이들이 어느 나라가 바로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의수족 센터를 폭격하고 고의로 마지막 하나 남은 병원을 조준하고 장기적으로 쓸 수 있는 의료 용품의 전달을 가로막는데 갑자기 아무 말도 안 하는 꼴을 우리가 왜 보아야 하는가?
침묵은 공모다.
장애 정의는 교차성, 집단적 접근성, 운동간 연대라는 원칙에 뿌리 내리고 있다.[1][역주] 이 글의 확장판 국역본 참고. 이 개념을 확립한 장애인 흑인, 갈색인, 퀴어들은 모두가 해방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음을 알았다. 장애 팔레스타인인도 마찬가지다. 가자도 마찬가지다. 폭격, 기아, 봉쇄, 트라우마로 장애를 입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지워진 모든 영혼들이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가자 점령은 장애인도 그냥 두지 않았다. 사실, 장애인을 겨냥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2020년 보고서에는 수십 년째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 통제가 오랫동안 어떻게 장애인이 의료 기구, 약품, 필수적인 지원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가자의 의료체계가 사실상 완전히 붕괴되고 영아를 포함해 수천 명이 식료품에 접근하지 못하는 지금, 인종학살이 계속된다면 남은 이들 대부분을 기다리는 일은 죽음뿐이다.
가자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서안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군과 정착민 양쪽으로부터 장애를 가하고 목숨을 앗아가는 폭력, 보건의료 접근성을 제약하고 집과 재산을 파괴하고 지금까지 1,700명이 넘는 이들을 쫓아낸 폭력을 당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서안의 장애인들에게도 끔찍한 상황을 만들었으며, 나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직접 목격하면서 10년 전에 팔레스타인 해방에 헌신하게 되었다. 생득권 사업Birthright을[2][역주] 유대인 정체성 강화를 위해 18-26세 재외 유대인 청년을 대상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각지 무료 견학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 (계속) 통해 처음으로 방문하고 3년 후 2015년에 두 번째로 그곳을 찾았을 때,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보고 들었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비인간화를 보면서 겁에 질렸다. 서안과 불법 정착촌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검문소를,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규칙들을 목격했다. 그 여행은 나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 후로 10년, 장애 해방을 진지하게 여긴다면 반드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분명히 해 두자. 팔레스타인의 자유 없이는 그 어디에도, 그 어떤 장애 정의도 없다. 아파르트헤이트에 침묵하면서 집단의 [인권, 정의 등에 대한] 접근성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부에 대한 점령을 승인하면서 모든 인간의 온전성wholeness에 동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의 가치들이 합중국 국경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연대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런 운동에 함께 한다면서 인종학살을 무시하는 것은 우리가 옹호한다는 가치들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메디케이드를 지키는 데에 수천 명을 모을 수 있다면 ― 당연히 할 수 있고 실제로 하는 일이다 — 전 인구가 우리 눈 앞에서 장애화 당하고 파괴 당할 때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때로 약해지기도 하지만, 나의 희망은 우리 운동들이 함께 연대하는 순간들에 뿌리 박고 있다. 다인종적인, 종교를 초월한, 장애 여부에 구애되지 않는 연합이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는 순간들에. 우리가 이미 해 본 일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가자에서 합중국이 돈을 대는 인종학살을 멈추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장애 이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