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내기, 시간 들이기 (존 케니, 2021)

원문: John Kenney, “Making and Taking Time,” Medium, 2021.

말을 더듬는 이들을 위한 온라인 지지 모임 몇 곳에 나가고 있다. 며칠 전엔 한 사람이 발표를 망쳐서 사람들 시간을 버렸다는 이야길 했다. 그렇게 주눅든 건 발표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발표를 하면서 말을 더듬은 탓이었다. 그 일로 하루를 망쳤다.

그런 일이 있은 사람이 많아서 다들 경험을 나누고 응원을 해주었다.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이 났다. 처음엔 우리가 우리의 말더듬을 어떻게 보는지나 우리가 거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얼마나 심하게bad 더듬어요?”나 “저 심하게 더듬어요” 같은 대화나 “걔 끔찍하게awful 더듬는데 잘 자제했어” 같은 평을 듣는 일은 드물지 않다. 말더듬을 “심하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말더듬과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도치 않게 말더듬을 부정적인 틀에 가두는 사고 방식을 강화할 수 있다.

발표의 긍정적인 면도 있을지가 궁금했다. 다르게 존재하고 발음하면서 남들 앞에서 발표하기로 한 용기 같은 것. 의도된 메시지가 전달되었는가? 발표자와 청중의 입장에서 그로부터 배운 바가 있었는가? 그런 것들이 우리의 말더듬과 관련해서 생각나고 느껴지는 다른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축하할 만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그와 관련해, ‘사람들의 시간을 버렸다’는 말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팟캐스트 《이런 미국식 삶This American Life》의 “시간 도적Time Bandit“이라는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출연자는 제제제제제롬 엘리스JJJJJerome Ellis로, 참가자들이 2-3분 정도 낭송이나 공연 같은 걸 하는, 뉴욕시에서 하루 종일 진행된 어떤 행사에 나갔던 사람이다. 제제제제제롬은 무대에 서서 준비한 걸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규칙을 어겼다. 어떻게였느냐고? 말을 더듬고 시간을 한참 넘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규칙이 무슨 의도로 만들어졌으며 과연 공평한지를 물었다.

제제제제제롬은 먼저 통신사가 말이 틈이 있거나 유창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50% 할인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브라질 어느 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자신이 그날 거기서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사의 형식에 관해 말했다.

처음에 이 멋진 행사에 참여해달라는 초대를 받았을 때, 2분이라는 시간 제한에 충격을 받았어요. 나중에 2-3분 제한으로 바뀌었죠. 이 시간 제한이 최대한 비위계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의도란 건 직관적으로 알았죠.
하지만 시간 제한은 하나의 위계를 없애면서 다른 위계를 들여 와요. 시간 제한엔 모든 사람이 말할 때 비교적 평등하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전제가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죠. 말더듬은 굉장히 예측불가해요. 저도 얼마든지 여러 번 연습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말하기 전까진 말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실은 몰라요.

제제제제제롬의 공연은 “심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 정 반대였다.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힘 있는 연설이었다. 시간적 접근성temporal accessibility과 장애가 있는 말하기disabled speech라는 문제를 심오하면서도 통렬하게 제기했다. 마지막엔 갈채를 받았다.

그는 흑인 페미니스트 학자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다른 것을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는 일은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취급하는 일만큼이나 많은 불평등을 자아 낸다.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더 많이 드는 사람이 있다.

제제제제제롬은 자신을 말을 더듬는 아프리카계 카리브인 작곡가, 시인, 퍼포머로 소개한다. 그날 방송을 위해 한 인터뷰에서 그는 말더듬이 흑인이라는 것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간략히 이야기한다. “흑인으로서 저는 시간과 시간에 대한 접근성이 인종적으로 어떻게 굴절되는지도 생각해요. … 세상에는 유색인에게 말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순간이 많이 있죠.”

그는 전통적인 노래 구성 방식들과 기대에 대한 저항 행위로서의 재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박자, 길이와 구조, 인종적·사회적 정의에 있어서 재즈가 펑크보다 더 펑크일 거라고.

그리고 제제제제제롬은 자기 소개에 “제롬Jerome”을 자신이 말할 때 소리 내듯 적어서 다른 이들이 어느 쪽으로든 철자를 되새겨 보게 한다 (말을 더듬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자기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는 마찬가지로 관습에 맞서는 일인데, 이번에는 보다 효과적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 제 이름에 대한 경험과 자신은 어떻게 말하는지 … 그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규칙, 구조, 구성 방식과 그런 것들이 우리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과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얼마나 힘이 되는지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때로는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바꿀 수 없다고 예단할 수도, 혹은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가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현실과 잠재력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규칙, 구조, 구성 방식을 견디고 따라야 한다는 짐을 지우게 된다.

우리가 자신과 서로에게 가하는, 순응하고 따르라는 ― ‘정상적’으로 존재하고 보이고 소리 내라는 ― 압박은 때로 끝도 없을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로 사람들을 장애화하거나 배제하고 있는가? 긍정적인 방향에서 말해보자면, 우리는 규칙, 구조, 구성 방식을 어느 정도로 공평성, 포용, 접근성을 위해 설계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양성 있고 포용적이고 접근성 있게 살기be 위하여 시간을 내고 또 들이고 있는가? 그저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개선할 수 있기에 해야 하는 일이다.

말더듬이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다. 시간을 들이고 시간을 내시라. 자신과 사회를 위해 보다 공평하고 포용적이며 접근성 있는 규칙과 구조를 이야기해 준 제제제제제롬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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