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가 있었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다가, 정확히는 행진을 하려다가, 경찰에 막혀 한참을 싸우고 얻어 맞았던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에 이어진 행사였다. 이번에는 청와대를 향하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1월 14일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없었다. 12월 5일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있었다.) 차벽도 없었다. 몇 개의 차선을 쓰느냐, 차도의 차들을 보내느냐 마느냐를 두고 약간의 승강이가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큰 탈 없이 서울광장에서 혜화동까지 행진했다. 혜화동, 11월 14일 살수차의 물줄기에 맞아 의식을 잃은 백남기 씨(사회자들은 줄곧 '백남기 농민'이라고 부른)가 입원한 병원이 있는 곳이었다.
한겨레는 <2차 민중총궐기, ‘차벽’ 사라지니 ‘평화’가 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물론 표면상 이것은 사실이다. 막는 이가 없으니 싸울 일도 없었고 싸울 일도 없으니 집회는 잠잠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나는 의아했다. 왜 저들은 막지 않았을까? 잠잠히 끝나면 그것은 평화인 것일까? 이번에도 청와대를 향했다면 어땠을까? 청와대를 향한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행진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
행진 코스를 서울광장에서 혜화동까지로 정한 것은 물론 기획단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간 셈이다. 그러나 그곳이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이었을까? 정부를 상대로 요구안을 제시하는 집회와 백남기 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말하자면) 기도회가 뒤섞인 집회의 모습은 꽤 기묘했다. 아마도 모두가 백남기 씨의 쾌유를 바라고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화동으로 행진하는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아마도 혜화동으로 행진한 것은 저들에게 싸울 빌미를, 때릴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혜화동을 향한 길이 막힌다면 저들이 과잉진압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막히지 않는다면 '평화 집회'가 성사되고 이쪽의 명분을 살릴 수 있다. 그런 계산은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아마도 정말로 가고 싶은 곳에 가지는 못한 셈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했는데, 도무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그것을 두고 평화라고 해도 좋은 걸까. 그것이 나의 고민이다. 무력 충돌이 없는 것이 평화라면 집회를 안 하는 게 최선 아닌가, 케케묵은 말이다. 길을 막는 것조차도 누군가에게는 폭력이다. 그날도 행진으로 좁아진 길을 급히 달려가는, 그러나 갈 틈을 찾지 못해 곤란해 하는, 앰뷸런스가 있었다.
얼마 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위는 언제나 폭력 시위고 진압은 언제나 과잉 진압이다. 시위는 위력을 보인다는 뜻이다. 위력을 보이려면 언제나 무언가를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공장 설비건 교통이건 간에, 기존의 힘에 맞설 힘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 시위다. 그런 점에서 시위는 언제나 폭력 시위다. 그것을 막는 것이 진압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뜻을 내보이려는 이들을 막는 것은 언제나 과잉이다. 책임자를 만나려는 이들의 길을 막는 것은 언제나 과한 처사다. 그런 점에서 진압은 언제나 과잉 진압이다.
나는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것도, 경찰자를 망가뜨리는 것도, 혹은 상가에 불을 지르는 것도 마뜩지 않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시위를 하고 싶다. 기껏해야 길을 막거나 어딘가를 점거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 시위 운운하는 것은 더욱 마뜩지가 않다. 최근에 이런 말도 한 적이 있다. 파괴 없는 시위에 무슨 파괴력이 있을까. '평화'를 위해 가고 싶은 곳을 가지 않는 것이 평화일 수는 없다. 억압하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 그것이 평화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