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가 지났고 아흐레가 남았다. 엿새 전에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Web발신]
[대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서 안내드립니다.
현재 대한적십자사에서 진행 중인 「헌혈자용 해피머니 상품권」의 교환을 ’24년 11월 30일에 종료함을 알려드립니다.
‘24년 12월 1일부터는 해당 해피머니 상품권 교환이 불가하오니 보관중인 상품권은 기한 내에 헌혈의집에서 다른 기념품으로 꼭 교환하시기 바랍니다.
※ ‘혈액관리본부 헌혈캐릭터(나눔이)’ 디자인이 된 헌혈자용 해피머니 상품권만 교환 가능
※ 자세한 내용은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공지사항’ 참조
※ 해당 문자는 이미 상품권을 교환한 대상에게도 발송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내게는 “‘혈액관리본부 헌혈캐릭터(나눔이)’ 디자인이 된 헌혈자용 해피머니 상품권” 삼만오천 원어치가 있다. 아흐레가 지나면 정말로 종잇조각이 되어버릴 것이다. 아흐레 안에 교환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므로.
마침 얼마 전에 헌혈을 하고 오기도 했다. 이번에는 팔천 원짜리였나 오천 원짜리였나 도서상품권을 받았다. 어느 대형 서점의 선불카드 형태였다. 다음 헌혈은 달포 후에나 가능하다. 헌혈을 하기 전에 저 메시지를 받았더라면 들고 갔을까. 일곱 장이 아니라 한 장 쯤이었다면 쭈뼛쭈뼛 내밀어 보았을까.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지 알려주었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면 ― 언제 가도 있으므로 필시 교환 대상에 들 영화 관람권이나 여행용 비누 세트 같은 것은 딱히 쓸모가 없지만 혹시라도 도서교환권으로 바꿀 수 있다면 탐이 안 나지는 않는데 ― 한 번은 더 생각해 보았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면이 안 서니까.
물론 이런 일기를 쓰는 것도 그다지 면이 서는 일은 아니지만 일기에 체면을 차릴 이유는 없으니까.
물론 모르는 사이인 헌혈의 집 직원에게 체면을 차릴 이유도 없기는 하지만.
한 달 좀 넘게 지났으려나, 지갑을 주웠다. 베갯보로 쓰곤 하는 누빔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족히 기백만 원은 든 듯했다. 파출소에 가져가니 무언가 양식을 채우고 가라고 했다. 이름과 주소, 연락처 따위를 적고 다음 줄을 보니 소유권 주장 여부를 표시하게 되어 있었다. 양식을 내어 준 이에게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고로 귀속할지 내가 가질지를 쓰라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돈이 꽤 돼서 아마 주인이 나타나긴 할 거라고도 덧붙였다. 국고에 넣는 데엔 불만이 없지만 정권이 정권이다 보니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주장하지 않겠다는 칸에 체크 기호를 적어 넣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굶어 죽는다면 그건 체면 차리다일 거라고.
처음 한 생각은 아니다.
가져본 적 없는 소유권을 미리 포기하는 기분은 묘했다.
길에서 거듭 넘어지는 취객을 보고 혹은 아예 길에 대 자로 누운 취객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을 때는 무언가 문자 메시지가 오곤 했었는데 이번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이었나 이튿날 낮이었다, 경찰 유실물 센터 웹사이트를 확인했으나 지갑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날이었나 이튿날이었나, 지금이라도 다시 가면 양식을 새로 작성할 수 있을까 궁금해 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찾아갈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