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코앞에서 투표를 하기는 처음이다. (부재자 투표를 놓쳐서 서울에서 김해까지 갔던 한 번을 빼면) 투표소가 크게 멀었던 적이야 없지만 이만큼 가까운 적도 없었다. 아파트 정문께에 있는 경로회관에서 투표했다. 투표소에 도착해서, 문 앞에 놓인 손 소독제를 보면서야 누구를 찍을지 정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멈춰서 고민을 해보려다 또 하나 깨달았다. 공약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음을. 결국 이를테면 전략 투표, 를 했다. 3번을 찍었다. 심상정.
정의당에 표를 준 적이 없지는 물론 않다. 구의원이나 시의원쯤 되는 선거에서다. 저번 대선 땐 누굴 찍었더라. 심상정에게 후원금을 보냈던 건 기억 난다. 방송토론 마지막 1분 발언을 성소수자 인권을 말하는 데에 쓴 것을 보고서였다. 민주당을 찍은 적도 있다. 김해에 적을 두었을 때엔 민주당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 두 당의 공천 경쟁에서 밀려난 무소속 후보 중에서 골라야 하곤 했다. 제천의 선거 ― 국회의원 선거구로는 제천시·단양군 ― 에는 곧 처음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곳의 총선에는 2004년에 녹색사민당 후보가, 2008년에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했다. 시장 선거에는 그나마도 없었던 듯하다.
대통령 선거나 서울시장 선거, 어지간한 당에서는 다 후보가 나오는 규모의 선거에서는 한때 적을 두었던 사회당이나 몇 년 전에 꽤 관심을 가졌던 녹색당의 후보를 찍었다. 김소연과 김순자 중 한 명을 찍었던 것도 같고. 내가 찍는 후보의 당선에는 물론 선거라는 형식 자체에도 큰 희망을 두지 않으므로 그다지 열정적이지는 않았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전의 투표들이라고 소신 투표라기엔 민망하다.
3번, 정의당, 심상정을 찍는 게 전략 투표라니 배 부른 소리겠지. 기본소득당의 오준호 후보와 노동당의 이백윤 후보를 조금 살펴 보았다. 전자는 사회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다. 그나 그가 함께 하는 ― 나와 함께 했던 ― 이들을 응원하고 기본소득이라는 구상을 지지하지만 기본소득당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노동당에 대해서도 이백윤에 대해서도 역시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출마했다는 것은 안다. 이들 사이에서 고민, 을 하려다 말고 심상정을 찍었다.
심상정과 정의당에 대해서는 조금은 더 알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소위 노심조(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를 비롯한 사람들이 의회주의에 빠져서 통합진보당으로 옮겨갔다. 결국 총선이 끝나자마자 통합진보당은 완전히 깨졌고, 진보 정치 세력은 파국과 절멸을 맞이했다”는 것을, 줄곧 많은 것을 접어 두고 있다는 것을 안다.[1]인용한 것은 홍세화의 말이다. 윤지연, 「홍세화, “이백윤에 던진 표는 사회주의 씨앗이자 변화의 가능성”」, 《참세상》, 2022.03.04. 심상정이 아니라 다른 후보였다면 아마도 정의당에 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번엔 성소수자 인권에, 이번엔 장애인 인권에 마지막 발언 기회를 쓴 사람이자 여성 정치인인 이에게 표를 준 것이다. 선거에 관한 그나마의 관심은 주로 그 마지막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있으므로 전자는 그럴싸한 이유는 못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 후보를 낸 당에 표를 주었다. (그런 당이라면 진보당도 있고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사건에는 약간의 부채감도 있지만 진보당과 나는 멀다.)
다시, 배 부른 소리에 관하여. 윤석열보다야 이재명이 나을 것이다. 당연히. 그러나 그것이 희망이 될 정도 혹은 희망이랄 정도는 되지 않는다. 당연히. 지난 정권 때 그랬듯 ‘복지 예산’이 즉각 삭감된다면 곧장 타격을 입게 될 ― 목숨에까지도 ― 이들이 있음을 안다. 문화 관련 예산이 줄어들거나 한다면 내게도 곧장 타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닐 것이므로, 배 부른 소리다. 그래서 배가 부르냐고. 전혀 아니다. 나도 가난해서가 아니라, 노무현 정권 당시 경찰에게 맞아 죽은 이들과 현 정권 하에서 가난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기에. 이재명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을 수는 없을 뿐이다.
전략 투표.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장기적인 효과를 바라며, 예컨대 당장은 그렇다 하더라도 진보의 입지를 지키는 것이 이곳의 우경화를 늦추고 희망컨대 사회를 왼쪽으로 이끌 수 있으리는 마음으로, 한 투표 같은 것이 아니다. 배 부른 자의 비관에서, 회의에서, 비롯된 일일 뿐이다. 아무런 소신도 없으므로 적당히. 정확히는, 어느 당 어느 후보가 나오는지와 상관 없이, 애초에 내 소신과는 겹치는 곳 없는 세계이므로 적당히.
주
↑1 | 인용한 것은 홍세화의 말이다. 윤지연, 「홍세화, “이백윤에 던진 표는 사회주의 씨앗이자 변화의 가능성”」, 《참세상》, 2022.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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