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6.(토)

오랜만에 긴 산책을 했다. 얼마나 오랜만인지는 모르겠다. 얼마나 길었는지는 안다. 왕복 세 시간 정도 걸었다. 반환점은 대형 마트. 자전거 펌프와 밀대걸레를 사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원래는 집앞 논밭을 가로질러 이미 몇 차례 가 본 마트를 갈까 했는데 언젠가 자전거 펌프가 없는 걸 본 기억이 떠올라 다른 마트로 정했다. 거리는 비슷하다. 가 본 적은 없는 곳이다. 그 옆에 있는 잡화점에는 가 봤다. 중고 카메라를 산 날, 판매자의 차에 실려서 배터리를 구하러.

펌프는 봄맞이에 필요하다. 슬슬 날이 풀리므로, 자전거를 정비해 영월에 다녀올 생각이다. 밀대는 물론 걸레질에 쓸 것이다. 이사 온 후로 쓰던, 물걸레 기능이 있는, 무선 청소기를 처분해 필요해졌다. 엊저녁에는 오랜만에 유선청소기를 썼다. 무선청소기를 처분하고는 씻어둔 ― 실외처럼 여기는 베란다를 청소하는 데 써 왔다 ― 헤드를 끼우고 전선도 꽂았다. 전선을 신경 쓰며 움직이는 것도 여기저기 콘센트를 바꾸어 가며 꽂아야 하는 것도 성가셨지만 집이 좁으므로 큰일은 아니다. 저번 집보단 꽤 넓어서 방바닥에 쌓여 있는 물건도 많지 않고. 간만에 듣는 커다란 모터소리가, 공기역학적 설계니 뭐니 하는 것 없이 오직 모터 출력만으로 이루어진 저가형 청소기의 흡입력이,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마트를 오가는 산책은 집에서 출발해 시내 끄트머리쯤 되는 길을 조금 걸은 후 교외가 나오면 천川을 따라 쭉, 이라는 구상이었는데 실패했다. 제방 공사 정도는 되어 있지만 따로 산책로가 있지는 않은 지천의 지천쯤 되는 작은 천이라 평행으로 난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잠시 딴생각을 하다 갈림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논밭과 공업사와 아파트 같은 것들이 보이는 차도를 한 시간 가량 걸어 마트에 이르렀다. “달리는 고물상”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과 “염소탕에서 업종을 변경하여 두부집으로 영업합니다”라는 안내문구가 붙은 곳을 지났다. 어딘가에서는 홀쏘hole saw 날을 하나 주웠다.

가는 길에는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이어폰 너머로 작가세요? 하고 묻는 말이 들려 왔다. 내 행색이 그 정도인가, 생각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더니 그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커다란 필름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나온 참이었다. 아뇨, 취미로요, 하고 답했다. 아들이 사진과를 나와서 카메라를 보면 그냥 넘겨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취미 갖고 계시네요, 하고 덧붙였다. 아들은 쉰이라고 했다.

마트에 도착해서는 밀대 구색을 확인만 하고 집어들지는 않은 채 펌프를 찾아 나섰다. 종종 그렇듯 공구 코너에 발이 멈춰 한참을 구경했다. 늘 그러듯 공구 코너로 들어서서 바로 옆의 조명 코너와 자동차 용품 코너까지를 돌았다. 자동차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동차 코너는 못 생기고 편리한 물건들이 많아서 재밌다. 선반 여섯 줄을 꼼꼼히 훑은 후엔 정신을 차리고도 한동안 뭘 사러 가던 중이었는지를 곱씹어야 했다. 펌프가 있는 코너를 찾는 데에도 실패했다.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매장 한 바퀴를 돌고도 찾지 못해 직원에게 자전거 용품이 있는지를 물어보니 스포츠 코너로 가보라고 했는데 물론 이미 본 곳이었다. 한 번 더 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또 공구 코너에 멈추었고 결국 등 하나를 샀다. 살까 말까 하던 차였던 30cm 정도 길이의 가느다란 LED 등이다. 인터넷 최저가보다 천 원이 비쌌지만 배송비를 더하면 이쪽이 천 원 샀다. 그리고는 밀대 코너로 가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일 싼 거였나, 두 번째로 싼 거였나. 꽤 크다. 바로 옆 잡화점 물건의 두 배나 되는 ― 6, 7000원쯤 비싼 ― 가격의 물건이다. 잡화점에는 손잡이가 플라스틱인 것이나 가느다란 금속제인 것이 구비되어 있다. 후자의 것을 사서 쓰다 부러진 적이 있다.

펌프는 잡화점에서 샀다. 인터넷으로 사면 배송비를 포함해도 몇천 원 차이로 훨씬 좋은 걸 살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특별히 좋을 필요가 없기도 하고 택배를 피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봐야 어제는 해외에서 오는 물건을 주문했다. 국내에는 팔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유효한 변명은 아니다. 헤드폰 귀덮개 스펀지를 산 것인데, 그래봐야 단순한 물건이므로 전용 제품이 없다 해도 적당히 사이즈가 맞는 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뒤져보지는 않았다.

산 것들은 배낭에 넣었다. 펌프는 정수리쯤까지, 밀대는 그보다도 한 뼘쯤 더 솟았다. 잡화점 앞에 쌓여 있는 상자에서 테이프를 뜯어 돌돌 말아 끈을 만들었다. 펌프와 밀대 양쪽에 하나씩 위태로이 놓인 힘 없는 지퍼 손잡이 ― 이건 이름이 따로 있을까? ― 를 묶었다. 튀어나온 것들이 전신주나 행인을 치지 않도록, 그리고 천을 또 놓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걸었다. 지천의 지천은 워낙에 작은 데다 겨울이라 유량이 적고 중간중간에 공사까지 하고 있어 돌아가는 길의 풍경도 온 길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오리를 아주 많이 보았다.

원래는 장을 봐서 귀가해 요리를 할 생각이었지만 이 또한 실패했다. 급격히 배가 고파져 초밥집에 들어가 연어초밥을 주문했다. 매장에서 먹는데 굳이 일회용인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주어 당황했지만 이미 두어 번 경험한 거란 걸 깨닫고는 조금 곤란해졌다. 초밥과 생강절임, 락교절임, 와사비, 간장이 플라스틱 도시락에 담겨 있었다. 국그릇은 따로. 초밥에 얹는 양파절임과 소스가 또 각각의 그릇에. 어차피 비닐봉투에 든 간장을 따로 주면 그 자리에 소스를 담을 수 있고 세 가지 절임 중 두 가지를 한 칸에 넣을 수 있을 텐데,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을 하다 애초에 연어초밥을 먹고 있는 주제란 데에 생각이 닿았다.

익숙한 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도중에 수퍼에 들러 우유와 귤을 샀다. 귤은 밤에 배가 고파지면 먹을 생각이었는데 도착한 자리에서 여남은 알을 홀랑 다 먹어버렸다. 우유는 내일 점심 요리에 쓸 것이다. 그거 하나면 될 줄 알고 샀으나 알고보니 코코넛크림인지를 넣어야 먹을 만한 맛이 되는 것이었던 칠리커리 페이스트에 곁들일 재료다. 우유도 끊어야 하는데. (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최근 며칠은 고기를 꽤 자주 먹었다.) 밤을 다시 대비하려, 잠시 나갔다 왔다. 빵집에서 30cm 정도 되는 연유(또 우유!) 바게뜨를 샀는데 이 글의 첫 문단을 쓰기 전에 절반을, 첫 문단만 쓴 시점에 남은 절반을 다 먹었다. 이게 무슨 짓이람.

귤을 다 먹고 빵을 사러 나가기 전에는 주운 홀쏘를 시험해 보았고 산 등으로 스탠드를 만들었다. 만들었다곤 해도 얼마 전에 목과 받침을 조립해 둔 것에 등을 달 자리를 마저 붙인 것이 전부다. 등은 아직 붙이지 않았다. 목은 작년 상반기에 주운 스탠드에서 떼어 둔 것이다. 받침은 지난 달에 주운 스탠드에서 떼어 둔 것이다. 목은 검은색 철제, 받짐은 에메럴드색과 흰색의 플라스틱제. 후자는 속에 철판이 들어 있다. 상반기 스탠드의 전선과 하반기 스탠드의 전선/터치스위치는 따로 남겨 두었다. 홀쏘는 돌려는 보았으나 뚫어보지는 못했다. 드릴 배터리가 다 된 탓이다. 출력이 약한 물건이라 어쩌면 아주 얇은 판만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대강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날이 상해서 버려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드릴은 MDF 판에 1mm 정도 깊이의 흔적만 남기고는 멈추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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