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를 굽고 있다던 친구네에 가려던 참이었다. 같이 가기로 한 다른 친구와 만나기로 한 시각이 다가올 즈음 한일병원의 소식을 들었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된―그들의 형식 내에서는, 고용 승계가 되지 않은―식당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구사대와 경찰의 탄압으로 위험한 지경이라고 했다. 오래 전에 잡은 약속인데다 친구가 손님 맞을 준비까지 하고 있대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약속을 미루고 한일병원으로 향했다.
쌍문역에 내려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여러분 곁에는 믿을 수 있는 한일병원이 있습니다”라는 문구의 광고판이었다. 의료 서비스를, 환자들이 믿을만한 병원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무리하게 새로 인력을 고용해 운영 중인 병원 식당은, 새로운 노동자들의 미숙함으로 인해 이삼십 분씩 배식이 늦어지는 일도 일쑤라고 했다.
해고된 이들은 짧게는 이삼 년에서 길게는 삼십 년을 일했다고 했다. 원래는 병원에 직접 고용되어 자녀 등록금 지원 같은 복지 혜택까지도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누리다가, 외부 용역 업체로 적을 옮기게 된 것이 IMF 때의 일이라고 했다. 다들 그렇듯,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 승계를 받으며 지난해까지 일했지만 갈수록 나빠지는 근로조건을 견디다 못해 노조에 가입하자 올해 새로 선정된 업체로는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해 마지막 날, 그러니까 그들이 저번 업체의 직원이었던, 그리고 한일병원에서 일했던 마지막 날, 그들은 잔업을 했다고 했다. 자정이 지나고, 자신들이 직장을 잃은 첫날이 된 것도 모른 채 늘 하던 대로 열심히 일하고 퇴근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투쟁을 시작하면서도 그게 백 일이나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병원 로비를 점거했다가 다른 연대 인원들은 다 끌려 나오고, 해고 노동자 여섯 명이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온 이들은 아직 바람이 찬 환절기의 밤, 야외에서 침낭을 덮고 잠을 청했다. 농성장에 남은 해고 노동자는 원래 일곱이었지만, 끌려 나가지 않겠다고 서로의 목을 밧줄로 엮은 그들을 구사대가 무리하게 끌어내려다 다친 한 명은 119 구조대를 불러 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 정문에서 응급차에 실린 그는, 다른 어느 병원으로론가 이송되었다.
밤이 가고 첫 차가 다닐 무렵, 로비 한가운데 앉아 있던 노동자들은 복도 구석 화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로비만 비워주면 더 이상 끌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였다. 그들이 보이는 곳으로, 연대 온 이들도 자리를 옮겼다. 잠긴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연애 인원이 앉은 복도는 병원에 입점한 편의점을 거쳐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돈 안 될 것도 뻔하고, 한데서 밤을 새어 이미 꾀죄죄해 진 이들이 편의점을 끊임없이 드나들고 한쪽 구석을 메우는 모습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은 난색을 표했다.
농성 중이던 이들이 끌려 나온 다음 날, 오전 열 시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병역거부자 K에 대한 선고 공판이 있었다. 평화적 신념과 더불어 잘못 사용되고 있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병역을 거부하고자 한다는 그에게 판사는 계속 말을 붙였다. 심리 때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에 와서 설득을 하고 싶은 것인지 혹은 자신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티를 내고 싶은 것인지 하여간 그는 말이 길었다. 재판을 방청한, 이미 형을 마친 병역거부자 Y는 자기 때는 선고에 1분도 안 걸렸다며 우스워했다.
판사의 말에 어떻게든 K는 대답을 했지만, 판사는 결국 미리 써 온 판결문을 읽었다. 늘 그랬던대로 1년 6개월 형이 언도되었고, 판사는 K를 구속하며 또 한 번, 다른 수형자들과의 형평성이 어쩌고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누구 하나 자신의 정당함을 인정받은 이 없는 그 법정에서, K는 방청 온 친우들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뒤로 끌려 들어갔다.
속칭 까치방이라 불리는, 검찰청 내의 간이 유치장에 잠시 머물렀다가 구치소로 이송될 인원이 한 차 분량만큼 차면 과천의 구치소로 이송된다고 했다. 그곳에서 달포 가량을 지낸 후 기결수가 된 K는 어딘가의 교도소로 또 한 번 이송될 것이다. 면회 오는 벗들과 그들이 보낸 편지 외에는 아마도 이렇다 할 즐거움이 없을 생활을, 한 해 반 동안, 회색 공간에서 하게 될 것이다.
안에 있어야 할 이들은 끌려 나오고, 밖에 있어야 할 이는 끌려 들어가는 이상한 세상을, 겨우 만 하루만에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