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에 일어났다. 다섯 시 반쯤 일어날 요량으로 다섯 시부터 알람을 울리게 맞춰뒀는데 첫 알람에 곧장 깼고 곧장 일어났다. 여섯 시 사십 분 버스를 타려던 계획을 수정해 여섯 시 버스로 서울로 향했다. 터미널에 가는 길에도 간식을 먹었고 서울에 내려서도 우동을 먹었다. 서울에서는 카페에 앉아 사오십 분 정도 일을 했다. 성과는 적었다.
아홉 시 반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를, 아홉 시 십오 분쯤 만났다. 목적지 ― 전시장 ― 근처의 카페로 갔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오픈 시각이 5분쯤 남은 때여서 잠시 배회한 후 돌아왔는데 여전히 닫혀 있고 인기척도 없었다. 오픈 시각이 바뀐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어제 하다 만 스터디를 마저 했다. 남은 부분 역시 번역이 제멋대로였다.
예전에 꽤 자주 갔던 곤드레밥집에서 식사를 하고는 화방에 잠시 들렀다. 화방에서 뭔가 살 게 있었는데, 까지만 기억나서 일단 들어가 보았으나 결국 떠오르지 않아 그냥 나왔다.버스로 몇 정거장을 이동해 윤결과 조희진의 전시 《낯선 환호들》을 보았다. 재작년쯤이었을까, 우연한 자리에서 윤결 작가와 마주 앉게 되어 이 작업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전시 소식에 시간을 내어 볼까 하던 차에 어느 동료의 후기를 읽고는 일정을 잡았다. 각설이와 품바, 그들의 공연, 기술, 관계맺음 따위에 관한 전시다. 글이 많았다. 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나와서는 오전에 못 들어간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녁은 근처 중식당에서 먹었다. 채식 메뉴판이 있는 곳이다. 입소문이 나 채식주의자들이 많이 오는지, 들어가 앉자마자 채식하시냐고 묻고는 그렇다고 답했더니 메뉴를 소개했다. 인터넷에 많이 알려달라고도 했다. 버섯 꿔바로우와 채식 간짜장을 시켜 먹었고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옥수수 온면을 추가로 주문했다. 온면에는 김치가 들어 있었다. 젓갈을 쓰지 않은 김치였을까,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다음 일정이 있는 친구를 배웅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차 시간이 20분 조금 안 되게 남은 때에 도착했는데 원래라면 담배를 피웠을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고 차에 올랐다. 오는 길에는,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시트콤을 봤다. 90년대 중반부터 10년을 방영한 열 시즌짜리를 이로써 마쳤다. 2000년대 중반 에피소드에는 2010년쯤에 본 시트콤에 나온 인물들이 조연으로 나오곤 했다. 초반 시즌에 비하면 나았지만 흑인이나 동북아시아인은 후반까지도 스쳐가는 인물들로만 나왔다. 남미계는 더했다. 남아시아인도 나왔던가. 여러 시즌을 거의 매 화에 꾸준히 출연한, 그러나 비중은 아주 낮은 어떤 인물을 종종 생각했다.
집에 와서는 설거지를 했다. 쾌거를 올렸다. 설거지를 기깔나게 했다, 같은 건 물론 아니고. 수도를 고쳤다. 이 집의 문제는 적어도 (추위를 타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남들보다 필요한 것이 적은) 내 기준에선 대부분 미관에 관한 것이고 일부는 약간의 성가심에 관한[1]예컨대 어지간히 주의하지 않으면 샤워를 할 때 화장실 문에 물이 튀고 이 물은 문턱에 고인 후 거실로 흘러 나오므로 우선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해야, … (계속) 것이다. 딱 한 가지, 절대적으로 기능적인 문제인 것이 바로 싱크대의 온수였다.
물이 졸졸, 그야말로 졸졸 흘렀다. 여름에 이사했으므로 당장은 급하지 않은 데다 겨울에도 찬물로 설거지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유량이 너무 적어서 보일러가 반응하지 않아 반드시 필요한 때에도 ― 한참을 틀어두어 물을 받는다든가 하는 식으로조차 ― 따뜻한 물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부랴부랴 유량 조절 레버를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대충 눈에 띄는 곳에는 레버가 없다, 는 건 이사 초기에 확인했다. 이번에는 싱크대 뒤나 가벽 사이 같은 곳까지 모두 확인했다.)
오래 전에, 그러니까 세면대가 당연하지 않던 시절에 지어진 아파트다. 원래는 화장실이 지금보다 작은 구조다. 이 집은 화장실을 확장하면서 싱크대를 원래 위치에서 조금 옆으로 옮겼다. 원래 싱크대로 들어가던 수도관은 각각 꼭지를 달고서 화장실에 솟아 있고 거기서 가지를 친 관이 가벽 뒤를 지나 지금 싱크대 수전에 연결되어 있다. 며칠 전에는 화장실에 있는 원래 수도를 한참 틀어 두었다. 그랬더니 싱크대쪽 유량이 조금 늘었고 보일러가 겨우겨우 반응을 할 정도는 되게 되었다. 수도관에 공기가 차서 물이 제대로 안 나올 수도 있나, 이걸로 공기가 조금 빠졌나 생각했다.
그나마도 다시 조금씩 유량이 줄었다. 아직은 보일러가 반응을 하긴 했지만 곧 다시 먹통이 될 것 같았다. 오늘 설거지를 하던 중에, 유량은 원래보다도 더 줄어 버렸다. 쿨럭, 수도가 기침을 한 후의 일이었다. 그야말로 쿨럭 소리와 함께 물과 녹가루를 한 번 뿜더니 유량이 턱없이 줄어버렸다. 녹가루가 어딘가 뭉쳤을까, 망치를 들어 수도관을 몇 번 두드렸더니 더더욱 줄었다. 낭패다. 수도관 청소 비용을 검색했다. 적어도 10만 원, 아니면 20만 원. 그나마도 업체가 많을 수도권 기준이니 이곳에선 더 비쌀지도 몰랐다. 집주인이 기꺼이 해결해 줄지도 모르지만 의사를 묻는 과정부터가 피곤하다.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수도관에 밀어넣을 공구는 없다. 수도관에 공기나 물을 불어 넣은 기계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지. 화장실의 온수를 틀었다. 주방 수도는 (콸콸 나오는) 찬물과 (영 안 나오는) 따뜻한 물의 중간으로 틀었다. 그리고 그 전에, 수전 헤드를 빼고 구멍을 손으로 막았다. 그냥도 수압차가 큰데다 화장실 수도를 틀면 빠져나갈 구멍까지 생기는 셈이므로 그 정도만으로도 찬물을 온수 관으로 역류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통찮았다. 잠시 공구함을 뒤져 수전 구멍에 맞는 굵기의 나사를 하나 꺼냈다. 나사를 끼우고 그 위에 헤드를 채워 구멍을 완전히 막고는 손잡이를 좀 더 찬물 쪽으로 옮겼다. (찬물 쪽은 수압이 세므로 손가락만으로는 온전히 물을 막을 수 없어 충분히 세게 틀지 못했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가 보니 녹가루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역류 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 주방에서도 따뜻한 물이 잘 나온다. 10만 원이나 20만 원을, 혹은 집주인과 연락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아꼈다.
다음주까지는 기필코 침실 도배를 마칠 것이다. 그러면, 일단 현재까지 맘 먹는 범위의, 집 수리가 끝난다.
1년짜리 적금 통장을 하나 만들었다. 담뱃값으로 써 온 만큼의 돈이 들어가도록. 큰돈은 아니다.
주
↑1 | 예컨대 어지간히 주의하지 않으면 샤워를 할 때 화장실 문에 물이 튀고 이 물은 문턱에 고인 후 거실로 흘러 나오므로 우선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해야, 필요하다면 고인 물을 제때 닦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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