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상처

용역들이 농성중인 세입자들을 힘으로 몰아냈다. 짤아도 몇 년, 길게는 이십 년을 장사해 온 곳에서, 이렇다 할 보상도 없이 쫓겨난 한으로 한 달 넘게 쪽잠을 자며 폐허가 된 가게를 지켜온 이들이다. 다른 곳에서라도 다시 장사를 시작해 삶을 이을 수 있도록 해 달라 외치고 있던 그들에게, 재개발 업체는 용역을 부려 주먹으로 답했다.
비가 오던 날, 한 때는 매일 출근해 장사하며 생계를 꾸렸던 곳, 최근에는 농성을 하며 밤낮을 모두 보냈던 곳, 한 때는 가게 주인으로 있었으나 지금은 ‘불법’ 점거자로 있는 곳, 그곳에서 쫓겨난 이들은 분에 겨웠다.
문을 막고 서 있던 용역에게 누군가 그렇게 살지 말라고 외쳤다. 용역은 두고 보라며, 당신 자식도 이 일 할 거라고 응수했다. 나는 너 같은 자식 없어, 하고 맞서자 저쪽에서는 나도 당신 같은 엄마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서로에 대한 비난은 서로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가족에 대한 비난으로 번져 갔다. 그렇게 몇 마디가 오가고, 용역은 눈물을 터뜨렸다. 그래, 나 엄마 아빠 없다, 내가 이런 일 하는데 왜 우리 부모님 욕을 하냐, 부모님 욕 하니까 좋냐, 그는 울먹거렸다.
사건의 발단, 혹은 원인이라 불릴만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딘가 으리으리한 사무실, 계산기와 지도만을 갖고 사람을 움직이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아래에서 또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움직이고, 또 그 아래의 누군가가 사람을 움직이고.
그렇게 해서 세입자들은 쫓겨났고, 용역들은 쳐들어 왔을 것이다. 원인 모를 싸움 속에서 그들을 서로를 욕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만지기는커녕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조차 없는 이와 싸움을 벌이기는 힘든 노릇이다.
결국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서는 삶을 꾸릴 수 없는 이와, 그에게 상처 주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없는 이, 이유 모를 싸움 속에서 남은 것은 그네들의 상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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