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일어났다. 보리밥 먹었다. 카페에 앉아서 일했다. 아니, 일을 하기 전에 세 주쯤 밀린 가계부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바람 쐬러 나왔는데 사장인지 점원인지 ― 여러번 간 카페인데 처음 보는 사람이라 새로 온 직원인가 했으나 말하는 걸 보면 사장일 것도 같은 이 ― 가 따라 나와서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일순 당황하여 바람 쐬러요, 하고 답했다. 사실이긴 하지만, 잠깐 허리 펴러 나왔다거나 담배 피우러 나왔다고 해도 역시 사실이었다. 독서실이 아니니 짐 두고 자리 비우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한참 무어라 말을 했다.
주위를 백 미터쯤 걷고 카페 앞으로 돌아와 담배를 피우는데 그가 다시 다가왔다. 비슷한 말을 한 번 더 했다. 짐 두고 식사하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 제가 조금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긴 한데요, 하는 말이랑 공부하고 일하시고 이런 건 다 괜찮은데요, 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가 문제 삼은 것 중 여기에 쓰지 않은 일도 하나 있지만) 한 시간 남짓 앉아 있었던 참이고 빈자리도 많았다. 기분 나빠해야 할지 죄송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서 살기라 해도 과하지 않을 기운이 느껴졌고, 말 그대로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대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선 일을 좀 했겠지, 저녁은 분식집에서 라면. 그리고는 온라인 화상 회의에 참석했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은 없는 행사를 준비 중이라 가볍게 의견을 몇 개 제시하고는 아무 일도 맡지 않고 무사히 끝냈다. 다만, 회의 중에 일을 부탁하는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빚이 있는 분의 청이라 ― 일정에도 능력에도 ― 무리일 것을 알면서도 수락했다.
밤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워 한참 시간을 보내다 일어나 밀린 일기를 쓰고 다시 누워 또 한참 시간을 보내다 일어나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다 먹었다. 멜라토닌도 한 알 먹었다. 그리고 또 누웠다. 다섯 시쯤 잠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