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수정을 위한 자리도

《단명소녀 투쟁기》(AMC 제작,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2022.10.18-23.)는 한국 고전설화 중 단명기의 요소를 차용해 쓴 현호정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지난해 8월에 읽었고 “이미지가 다채롭고 전개가 빠른 짧은 소설.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라고 해야 할까. 사랑으로서의 죽음이나 죽음으로서의 사랑을 생각하며 읽었다. 작가가 생각한 것은 아마도 조금 다르다. 소녀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를 꽤 따랐을 것이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사랑으로서의 죽음이나 죽음으로서의 사랑에 관해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흐릿하다. 소녀와 죽음에 대해서는, 작가의 말을 덧붙이면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씨앗이 된 ‘북두칠성과 단명소년’ 설화에서 단명소년은 수명을 관장하는 노인들에게 찾아가 자기 명을 늘려 달라고 빈다. 이 소년이 짧을 단을 쓰기에 때문에 나는 끊을 단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명을 끊는다’는 의미가 주는 고통이 4년 동안 점점 더 명확해졌다. 너무 많은 이들이 소녀인 채 죽었다.”[1]현호정, 「작가의 말」, 126쪽, 『단명소녀 투쟁기』, 사계절출판사, 2021, 126-7쪽.

이야기는 단순하고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저 어느 대학에 가게 될지 정도를 들으려 무당을 만났다 곧 죽으리라는 말을 듣고 만 열아홉 살 수정은 죽음을 피하기로 한다. 무당 북두가 일러준 대로 죽음을 피해 남동쪽을 향하고 곧 반대로 죽기 위한 여행을 떠난 동갑내기 이안, 사자만한 몸집에 내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를 만난다. 원하는 것은 다르지만 가야 할 길은 같은 둘이 눈인간이니 허수아비인간이니를 무찔러가며 저승에 당도해 그곳을 무너뜨린다. 이 모든 것은 자살 시도로 혼수상태에 빠진 수정의 꿈이다. 정신을 차린 수정은 같은 병실의 노인에게서 오늘이라는 개를 선물 받는다. “내일이 너무 개같으니까. 내일이 온다는 게 개같고, 내일이 있다는 게 개같아. […] 죽도록 쉬고 싶어. […]”라고 썼던 유서의 뒷면에 “내일은 개같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는 일기를 쓴다.

지난 8월에는 그 모든 것이 꿈이라는 데 대한 불만은 쓰지 않았다. 소년이 제 수명을 연장하는 수백 년 전의 이야기를 가져다 “너무 많은 이들이 소녀인 채 죽”는 여기에서 펼치는 저 모험담이 다 꿈이라면, 이안도 내일도 모두 이제 흐려질 기억 속에만 남을 존재라면, 수정은 너무 외롭지 않은가. 칼을 휘두르며 모험을 끝낸 차에 돌아와야 하는 이곳이 이안도 내일도 칼도 없이 그저 자신의 다짐과 용기밖에는 기댈 데 없는 곳이라면 수정은 너무 외롭지 않은가. 방금에야 펼쳐 본 윤경희의 평문에는 사라진 이안을 슬퍼하는 “수정의 연명 서사는 어쩌면 이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소중한 존재를 상실한 이후, 그의 죽음 이후를 살아남아, 홀로.”[2]윤경희, 「연명담의 현대적 재구성과 재해석」, 149쪽, 현호정, 같은 책, 134-50쪽.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죽음으로서의 사랑, 혹은 사랑의로서의 죽음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었을 테다. 사랑하는 이의 삶을 위해 죽는 마음보다 적어도 내겐 훨씬 어려운, 죽은 이를 위해 사는 마음, 혹은 사랑하는 이 없이도 살고자 하는 마음.

갑작스런 기연機緣과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이 소설을 연극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도, 심지어는 그리 현명한 일도 아니니라고 생각했다. 끝없이 닥쳐오는 일들을 무대 위에서 펼치려면 약한 연결고리들마저 끊어내게 될 테니까. 이야기는 더 단순해지고 이미지와 메시지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애초에 복잡한 서사가 아닌데다 조금은 혼란스럽던 상징들도 오히려 분명해지는데도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관객이 이따금 있었다. 3인칭 화자의 활자에서 작중 인물의 음성으로 넘어온 어떤 말들, 각색 중에 덧붙여진 어떤 말들에 위로 받는 관객이 종종 있었다. 사자만했다가 점점 작아지는 개라든가 눈이 있을 자리에도 손이 있을 자리에도 눈알만이 있는 눈인간, 척 봐도 모기지만 크기는 사람 만한 모기인간 같은 것들을 무대에 구현하는 일도 소득보다는 수고가 크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이상의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개막 직전에 일정을 며칠 미루었고 원래는 수정과 함께 무대 위를 누볐을 이안은 새로 투입된 배우가 무대 한 쪽에 앉아 낭독하는 형태로 멀어졌다.[3]”프로덕션 내부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이안 역 캐스팅이 변경되었습니다. 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하기에 무리가 있어, 공연 형태와 기간을 … 각주로 이동 소설에서는 꿈 속에 나타났던 존재가 무대에서는 이를테면 환청이 된다.[4]북두와 수정, 저승신은 수정과 눈을 맞추거나 몸을 맞댄다. 북두는 무대 구성상 이안과 눈을 맞추지는 않지만 고개를 돌려 말함으로써 이안의 존재를 … 각주로 이동 이렇게 꿈이 무너졌다. 꿈이 무너졌고, 얄궂게도 내게는 이 편이 더 좋았다. 꿈이 무너진다는 것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 온전히 꿈을 깰 수도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 이안의 부재가 절대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수정은 조금은 덜 외로우리라. 물론 그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수정의 외로움을 덜어줄 이안은 결국, 죽고 싶어하는 존재, 적어도 죽고 싶은 마음이므로. 외로움을 조금 유예한 것일 뿐, 혹은 차라리 외로운 편이 낫겠다 싶은 지난한 싸움이 이어질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수정에게 살 이유는 있을 것이다. 아무리 외롭다 해도 살 이유는.

이 무너진 꿈 속에서 이안은 숫제 수정의 해리解離된 인격이 되고 만다. 수정을 죽게 하고 이안을 살게 하는 온갖 괴이한 ― 그럼에도 끝까지 ‘인간’이라 불리는 ― 존재들을 무찌른 끝에 둘에게는 서로의 이름이 떠오른다. 수정은 이안을 죽어야 살 수 있고 이안은 수정을 죽여야 죽을 수 있다. 이안을 죽이지 않기 위해 칼을 거두려는 수정과 수정의 잠을 깨우려 칼을 겨누는 이안, 소설에서 펼쳐졌던 이 대결은 무대에서도 전개되지만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는다. 이안은 여전히 무대 밖 의자에 앉아 있다. 수정은 혼자서 허공에 칼을 내민다. 이 장면은 마치 ― 영화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는 방식의 ― 해리성 인격장애에 대한 묘사처럼 보였다. 깔끔하게 깰 수 없는 꿈, 어쩌면 조만간 내 현실을 파고 들어 다시금 나를 물고 늘어질 어떤 마음과의 싸움. 그리고 동행을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

꿈의 실감은 넘쳐도 모자라도 무력하다. 딱 현실만큼 실감나는 꿈이야말로 깨기도, 깬 후에 꿈이었음을 깨닫기도, 그리고는 잊기도 어렵다. 종이 위 활자로 환원되지도 그렇다고 아무리 선명해도 현실에 없을 것이 분명한 실체가 되지도 않는, 사람일 것이 분명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모양새로 움직이는, 그러나 사람은 여간해서는 하지 않을 것으므로 어딘가 께름칙한 저 괴물-인간들, 혹은 (소설에서는 끝까지 개의 형상으로 남지만) 여전히 꿈 속이어야 함에도 탈을 벗고 사람 둘의 몸을 드러내어 버리는 내일이. 수정의 싸움 곁에는 꿈이라면 꿈이겠지만 얼마든지 현실일 수 있는 이런 존재들이 있다. 수정의 망상은 언제 어떻게 재발할까. 이곳을 뜨고 싶었던 수정을 위한 자리가 어딘가 있다면, 미친 수정을 위한 자리도 어딘가 있을까.

수정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가능성을 계산하지 않고 진리를 선언한다는 북두를 찾아가 운명을 물어 놓고는 너는 스물이 되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에 싫다면요, 하고 되묻는 인물이다. 그 당돌함이 흥미롭기보다는 이율배반이 흥미롭달까. 운명을 믿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운명을 거역할 수 있다는 역설. 흔들리는 사람만이 단단할 수 있다.

References
1 현호정, 「작가의 말」, 126쪽, 『단명소녀 투쟁기』, 사계절출판사, 2021, 126-7쪽.
2 윤경희, 「연명담의 현대적 재구성과 재해석」, 149쪽, 현호정, 같은 책, 134-50쪽.
3 ”프로덕션 내부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이안 역 캐스팅이 변경되었습니다. 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하기에 무리가 있어, 공연 형태와 기간을 변경하고자 하오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연극<단명소녀 투쟁기> 출연진, 공연형태, 일정변경 안내
4 북두와 수정, 저승신은 수정과 눈을 맞추거나 몸을 맞댄다. 북두는 무대 구성상 이안과 눈을 맞추지는 않지만 고개를 돌려 말함으로써 이안의 존재를 지시한다. 이안과 말할 때 수정은 늘 ― 이안이 있어야 하겠지만 없는, 오직 관객만이 있는 ― 정면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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