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양심, 그리고 어떤 믿음

《톰과 제리》는 폭력으로 가득하다. 유혈이 낭자, 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일 것이다. 치고 받고 던지고 터뜨리고 찌부러뜨린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된다. 조리기구나 밀대걸레 정도면 점잖은 편이다. 도끼나 폭탄도 서슴없이 사용한다. 톰과 제리는 혹이 나거나 납작해지거나 부풀어 오르거나 꺾이거나 바스러진다. 물론 아프다. 두렵다. 앞에서 상대가 무기를 집어들면 겁을 먹고 숨거나 눈을 감는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복수가 돌아올 것을 알지만 공격한다. 때로는 도발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들은 종종 힘을 합치기도 하고 서로에게 애정을 표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잠시다. 곧이어 누군가가 다칠 것이다.

상처는 오래 가지 않는다. 혹은 눌러 넣을 수 있다(때로는 다시 튀어나오지만 말이다). 납작해지면 바람을 불어 넣으면 된다. 폭탄이 터져도 털이 좀 그슬릴 뿐이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을 때도 있지만 (다음 화조차 아니라) 다음 장면이면 모든 것이 멀쩡해질 것이다. 큰 상처를 입고 멈춰서지만, 숨을 가다듬고 장면을 바꾸고 다시 쫓아간다. 막대기로 내려치거나 꼬리에 폭탄을 묶거나 커다란 무언가를 떨어뜨려 깔아뭉개 줄 것이다.

끊임 없이 반복되는 그런 모습을 보며 폭력과 상처와 회복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아프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을 만큼 무섭지만, 그것이 물러설 이유는 되지 않는다. 거창한 극복이나 다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두려운 것은 없다. 실패하면 호되게 당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보단 골탕을 먹이거나 복수하는 기쁨이 더 크다. 아마도 금세 잊을 수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말이다.

쥐와 고양이지만 어쨌거나 대등한 힘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일 테다.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으므로, 그러고는 웃고 털어버릴 수 있으므로, 이렇게 당하는 것은 지금 한 순간의 일일 뿐이므로, 가능한 일일 테다.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공포에 사로잡혀 숨어들지 않는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은 말이다. 이 만화를 벗어나면 대개는 힘이 대등하지 않으므로, 어쩌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불가능한 무언가를 상상해 그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공격을 주고 받으면서도 한쪽이 기죽지 않는 관계, 라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적 오늘 싸운 친구와 내일 웃으며 놀았던 기억들 같은 것을 통해 말이다. 감정이 금세 변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기억력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지금 당한 어떤 일이, 다음 순간이면 내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테다. 어린 아이의 주먹에 맞았대 봐야 멍이 들지도 뼈가 부러지지도 않으므로, 뒹굴며 묻은 먼지만 털어버리면, 내 기억 말고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으므로.

꼭 그런 식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통증이 남을 만한 일들조차도 그 통증 이상의 효력은 갖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어쨌거나 이것이 그리 오래 갈 일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 통증이 사라질 때쯤이면 역시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 내가 반격할 수는 없는 상대일지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 당하는 폭력들 중 어떤 것은 졸업만 하면, 독립만 하면, 과 같은 단서들과 함께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이 된다. 졸업 날짜가 정해져 있는 학교 혹은 제대 날짜가 정해져 있는 군대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이를 갈며 견딘 후에나마 제 삶을 되찾곤 한다.

폭력이란 아프고 두려운 것이지만, 이처럼 그것이 그저 순간의 일임을 알거나 순간의 일이라고 믿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삶의 어떤 분기점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 수없이 두려워 하고 수없이 아파 하면서도 톰과 제리가 변함 없는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렇다고 이 만화를 만든 이들이 어린 시절이나 학교와 같은 특수한 곳에서의 기억을 토대로 이런 상상에 이르렀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만화에서 흑인이 재현되는 방식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전을 보장 받는 특권층으로서 가능한 상상이었을 것이다.

특정한 인구를 인간적인 삶이라는 기준 바깥으로 내몰지 않고서도, 그러니까 어떤 위험이나 절대적인 침해를 한 쪽에 쏟아 부음으로써 다른 한 쪽을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과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그런 믿음을 만드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소위 제도와 구조로써 보장되는 사회적 안전망 같은 것, 그런 것이 유효한 수준으로 제공된다면, 폭력에 대한 감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차에 치이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ー 물론 믿음이 무너질 만큼 큰 사고를 겪은 사람을 제외하면 ー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통 체계를 믿으며 의식할 만한 두려움 없이 차를 몰거나 찻길 옆의 보도를 다닌다. 그런 식의 감각, 폭력과 상처와 후유증에 대한 공포를 덮을 수 있을 만큼의 안전에 대한 감각이 있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아직 만나지 못했으므로, 이런 단절을 믿는 것은 ー 그런 식으로 털고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 진학한 학교나 취업한 직장에서 다시 그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므로, 가정을 독립한다 해도 그가 언제든 내 주소를 알아낼 수 있으므로, 직장을 옮긴다고 해도 이 업계에서 사람들은 대개 연결되어 있으므로, 지금껏 그를 제지한 사람이 없었듯 비슷한 누군가를 만났을 때 또한 아무도 도움을 줄 것 같지 않으므로,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거나 거의 같은 형태로 반복되리라는 상상이 훨씬 설득력 있다. 폭력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너무 강력해서이기보다는 더 자주, 그것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톰과 제리는 치고 받고 하면서도 함께 살지만, 만화적 설정 속에서도 여전히 더 약자인 제리는 (제리는 주먹질로 톰을 날려 버릴 수 있지만 천성상 톰을 잡아먹을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톰은 늘 실패하고 있지만 한 번이라도 성공한다면 제리를 먹어치워 버릴 것이다.) 다른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꾼다. 짐을 꾸려 멀리 떠나지만 그곳은 더욱 혹독했고, 제리는 돌아와야 했다. 그만큼 혹독하지는 않은 톰을 보려 안도감을 느껴야 했다. 한 번은 도무지 쥐를 잡지 못하는 톰을 대신할 고양이가 집에 들어온다. 그는 톰보다 강하고 잔인하다. 제리로서는 혼자 살 것이 아니라면 그보다는 톰이 있는 편이 낫다. 톰은 쫓겨나면 갈 곳이 없으므로 어떻게든 그를 쫓아 내야 한다. 톰과 제리가 힘을 합치는 것은 이런 순간이다. 톰과 합심하여 그를 쫓아 내고 제리는, 또 한 번 안도감을 느낀다.

제리는 아프거나 무서울 일 없는 삶을 꿈꾸지만 녹록지가 않다. 덜 아프고 덜 무서운 삶 ー 톰과 쫓고 쫓기는 삶이 그나마 나으므로 안주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 분명히 남는다. 모든 인간이 선의만을 갖고 있으며 실수조차 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것이 아니라면, 인간도 없고 야생동물도 없으며 독초도 없고 풍수해도 없는 어딘가에 숨어들어서는 영영 나오지 않을 요량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필연적으로 타협해야 한다. ‘그나마 나은’ 어딘가에서 말이다. 이 정도라면 그래도 해 볼만 하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는 되는 어딘가에서 타협함으로써만 우리는 이 물리적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 모든 것이 어떤 관계들 위에서 벌어지는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타협의 단위가 ‘이 세계’ 정도 되는 것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기를 희망한다. 누구는 맞아서 뼈가 부러졌는데 나는 멍만 든 정도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 같은 식의 타협은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더 끔찍한 경험을 하고 돌아와서는 느끼는 제리의 안도감이 아니라,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을 바탕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이 사건이 저절로 단절되지 않는다면 내가 문을 나섬으로써 단절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안전에의 감각 위에서 삶이 구성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이다.

대개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안전한 편에 속하는 곳에서 지내 왔지만, 견디기 힘든 공간들에서 지낸 적도 물론 있다. 어떤 곳에서는 곧 이 시간이 끝나고 나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ー 적어도 그 공간에 가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ー 그럭저럭 무탈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그런 기약이 없었지만,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순간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후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한 곳이었지만, 그만 두는 순간에 ー 정확히는 상사에게 화를 내고 그럴 거면 그만 두라는 말을 들었던 그 때에 ー 아무 망설임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일상을 꾸리는 데에 필요한 자원은 많지 않고1, 그 정도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언제든 구할 수 있다는 믿음과 경험이 있었던 덕이다. 그 이후로도 지금껏, 이렇다 할 사건조차 없이도 그저 좀 지쳤다 싶으면 일을 그만 두고 한동안을 쉬며 지내고 있다. 오로지 그 믿음과 경험 만으로 말이다.

이제 그런 식으로 하는 일 없이 푼돈을 버는 자리에 들어가기에는 나이나 경력이나 모두 애매한 지위가 되어버려 조금씩 두려움이랄까 불안감이랄까가 생기고 있다. 이런 감정이 조금씩 실체화되다 보면 어쩌면 내 삶은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저축이래봐야 백만 원 남짓, 한두 달 겨우 버틸 돈밖에 없을 때조차도 망설임 없이 일을 그만두곤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서너 달 버틸 돈은 있어야 일을 그만 둘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더 먼 미래를 걱정하며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게 될 날이 오고 말 것이다. (몇 년쯤 버틸 돈은 있는 상태, 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내일을 걱정하는 맘이 커질수록, 오늘의 작은 상처들 하나하나가 모두 치명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2

짧으면 몇 달, 길어야 두 해 정도를 버티고 일을 그만 두기를 반복하는 것은 실제로는 대개 그저 심신의 피로 탓이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양심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피로를 피하기 위해 벌이를 줄이고는 그러다 급해지면 무어라도 하게 되므로 지금도 그다지 양심껏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낮아지는 수준으로나마 지키고자 하는 양심의 선 같은 것이 있다. 예컨대 사기업에 취직하지 않는다거나 가격이 좀 더 비싸더라도 노동환경이 나은 곳의 물건을 산다거나(정확히 말하자면 노동환경이 극악함이 알려진 곳의 물건은 사지 않는 수준이지만) 하는 것들 말이다. 과외로 돈을 벌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조금 물려 글쓰기 이외의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수준으로 바꾸고 논술학원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굳이 찾아가던 동네 서점을 버리고 몇천 원의 할인을 받기 위해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작은 절망들을 토대로 상상해 보건대, 적어도 지금 상상하기로는 십 년째 못 쉬고 일해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절망감보다는 이런 것들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데에서 오는 절망감이 내게는 더 크다.

최근에 무언가 읽다가 정부의 예술작품 지원 제도나 예술인 지원 제도에 대해 생각했다.3 개인 작업이 주가 되는 장르는 다르지만, 연극과 같이 집단적으로 작업하는 경우, 대표자 ー 연극에서는 주로 연출가 ー 개인을 지원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지원금 수혜자로 등록된 이가 다른 이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할 때 이를 고발한다면 지원 자체가 취소되고, 부당한 요구를 당했던 이들은 그런 일을 겪은 걸로 모라자 작업할 기회와 그에 따른 수입이 모두 사라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러므로 작품이나 제작 집단 자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임금을 체불하거나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일삼거나 일은 하지 않고 이름만 걸어 공을 가로채는 대표자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맞는 말이었지만, 그리고 맞는 말이었으므로, 나는 그 다음을 상상했다. 그렇게 갈아치운 대표자도 알고 보니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면, 그런 일이 반복되어 더 이상 누구도 대표로 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면, 혹은 그 영역의 예술이나 예술 자체에 대한 애정이 사라져버렸다면, 그 다음에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상상을 했다. 예술에 종사해 왔다면 저축 따윈 없기 십상인데, 예술 경력을 인정 받아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예술을 벗어나면 그나마의 지원조차 받을 기회가 없을 텐데, 그 다음에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상상을 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다르지 않은 삶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4

부당한 행위들에 상처 입고서 절망에 빠지는 대신 회복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고 언제든 벗어날 수 있으므로 두려울 것 없다는 마음으로 맞서 싸울 수 있기 위한 조건, 양심을 접어두고 꾸역꾸역 사는 대신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으므로 아쉬울 것 없다는 마음으로 양심을 좇을 수 있기 위한 조건, 으로서의 기본소득을 생각했다. 제리에게 달리 갈 곳이 있었다면, 어느 가난하고 힘없는 예술가에게 지원금에 매달리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떠나서 새 삶을 꾸리든 필요한 것들을 챙기며 싸우든 할 수 있었다면, 삶을 달랐으리라고 생각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사회당 당원이었던 때 처음 배웠고 “공화주의”라는 말과 함께 배웠다.5 수사로써든 진심으로써든 경제 구조의 지속을 위한 제도로서의 기본소득을 말하거나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보장받을 권리, 란 것은 내게는 언제나 참정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시사에 관심을 갖거나 투표를 하거나 집회에 나가거나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좋은 삶,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삶을 위한 기본조건이었고 따라서 그것은 공화정의 필수조건 같은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스스로를 정치적 존재로 정의할 수 있었던 것이 (적어도 큰 부분) 삶의 필요에 따른 활동들을 노예들에게 전가함으로써 가능했다고 한다면, 조선의 선비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살 수 있었던 것이 (역시, 적어도 큰 부분) 다른 활동들을 노비나 평민들에게 전가함으로써 가능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런 삶의 가치를 믿는 나로서는, 의식주나 의료와 같이 생명의 유지를 위한 활동들을 떠맡는 것은 공화제를 표방하는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정치를 실천하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가지며 그것을 숨김없이 표현한다는 것 ー 그러니까 내가 기본소득이 보장하기를 바라는 참정권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양심을 따를 자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쫓겨나 굶게 되는 일은 없다는 보장 정도로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양심이 다르고 개개인의 양심과 제도의 지향이 또한 다르므로, 양심을 지키고 정치적 존재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거는 일이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종종 여러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믿음, 이 위험이 그 자체로 절망적이고 치명적인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그리하여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갖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아마도 바스러지면 붙여주고 꺾이면 펴주며 납작해지면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그리고, 죽는다면 하다못해 그 죽음을 기억해주는) 존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존재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와 붙여주고 펴주고 바람을 불어준다 해도 일자리를 잃고 나락으로 빠지지는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그러니까 기본소득이든 뭐든 물질적인 사회보장 정도를 알 뿐이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 누구 하나에게라도 힘이 되는 것 외에 그런 존재들을 만들 방법은 알지 못하므로, 그러나 내가 그리 했을 때 당장 내일을 굶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갖지 못하였으므로, 또한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것을 바라므로, 폭력과 상처와 회복에 대한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감각을 가져보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가능하고 유효한지를 스스로 실험해 보는 것, 그 정도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생각한다. 뜻한 적 없이 태어나 원한 적 없는 일을 하며 부지하는 이 생에, 다른 그 무엇이 ー 어쩌면 죽음마저도 ー 내게 치명적일 수 있을까. 실은 폭력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폭력 이후의 삶만을 생각하는 것, 막힘 없이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걸리고 쓰러져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삶만을 생각하는 것은 말이다. 물론, 폭력으로 가득한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종류의 폭력을 겪은 적 없는 덕분이지만.

  1. “다행인지 불행인지”라고 쓴 것은, 지금으로서는 물질적 욕망이 크지 않은 이 상태가 마음에 들지만, 어쩌면 그것은 천성으로 인한 것도 혹은 자발적인 욕망의 재배치를 통한 것도 아니며 그저 어린 시절을 풍족하지 못하게 지내며 욕망의 가능성 자체가 줄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지금으로서는 이런 정도의 두려움은 겪지 않는다. 유학을 할 마음은 없지만 해외에서 적어도 한두 해 쯤은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만큼의 돈을 모으지는 않는데, 그것은 일 년치 생활비만 갖고 떠나서 일 년을 살다 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의 일 년치 생활비와 귀국 후의 서너 달을 버틸 돈까지만 모으면 시도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떠났다가 해외에서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난다거나 해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기면 치명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고가 났을 때를 위한 준비는 지금도 전혀 되어있지 않고 돈을 벌 수 없을 수준의 상처를 입는다면 이곳에서도 난감해지기는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는 막연히나마 가질 수 있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을 해외에서도 유지할 자신은 없다. 내가 지금 가진 잠재적 자원은 모두가 한국에서만 작으나마의 쓸모를 갖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3. 지난 두 해 동안 나 또한 예술인이라는 명목으로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았으나, 아니 받았기에 더욱, 이런 제도 자체가 이상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래에 적을 이유 때문은 아니다.
  4. 내 경우를 가지고 말해보자면 그것은 마음에 없는 글을 쓰게 되는 상황에 대한 상상이다. 그간 지원금을 받은 것은 젊은 비평가, 쯤 되는 명목으로였다.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떨어진 후에도 지원금을 받거나 청탁을 받거나 하려면 비평 실적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는 지면은 많지 않으므로 창작자가 도록이든 프로그램북이든에 싣기 위해 하는 청탁들을 많이 받아야 한다. 싫은 작업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쓰거나 아예 거절해 댔다가는 금세 청탁이 끊어질 것이므로 나는 맘에도 없는 아부를 써야 하거나 이 일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름 없는 비평가가 다른 곳에서 자리를 구하거나 스스로 유지가능한 지면을 만들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므로 나는 갈등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지원금이 끊겼을 때에 청탁 받은 글의 원고료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 같은 것은 만들지 못했으므로 그다지 쓸모 없는 상상이지만.
  5. “사회적 공화주의”와 “기본소득” 모두 당론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제대로 무언가 읽어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섹슈얼리티, 재생산, 기독교 ―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기독교의 인간상에 대해 잠깐 고민했다. 먼저 떠올린 것은 창세기 1장 27절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였다.1 그 다음으로 떠올린 것이 기도문에 흔히 등장하는 “우리가 주님을 닮게 하시고”라는 말. 나는 물론 기독교의 인격신에 대해 이렇다 할 믿음이나 기대를 갖고 있지 않지만, 저 말이 이 종교에 ― 정확히는 이 종교를 믿는 이들과 내가 한 세상을 사는 데에 ― 어떤 가능성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 신의 속성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절대적인 진리를 소유하며, 전지전능하고, 물리적 한계 없이 편재하며,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 (저 종교 안에서조차 저 모든 속성을 인간이 지니려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합의는 있는 듯하므로) 그런 신의 어떤 측면을 인간이 닮을 수 있을까, 저 신의 어떤 측면을 닮고자 할 때 이 종교가 인간의 것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선택지가 많지는 않아. 신이 읊는 절대진리를 들을 수는 있을지언정 스스로 알 수는 없어 보이므로, 온갖 자연법칙들에 묶여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남는 것은 사랑 정도일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 말을 알고 있으면서 사랑만을 언급하는 것은 저 신은 자기 바깥의 어떤 신을 믿지 않으므로, 또한 저 신은 자신이 실천할 수 없는 무언가를 소망하지 않으므로, 사랑밖에는 남지 않는 탓이다. 그러니까 실은, 사랑보다는 “유일한 존재”라는 속성을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존재, 세상에 단 하나인 존재로서의 그 신을 생각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갖는 존재로서의 신이므로 그런 신이 둘이 된다면 그 둘은 같은 존재요 하나인 존재가 되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인간이므로,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지 않으며 또한 서로 다른 몸까지를 갖고 있으므로, 신이 되지 않고서도 닮을 수 있는 신의 형상이라면 그것은 우리 각자가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이리라 생각했다.

이 땅에 신의 왕국을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은 신의 뜻을 좇지 않는 존재들을 ― 비유적으로건 실질적으로건 ― 죽여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이 ‘유일함’을, 서로간의 ‘다름’을 지키는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서로 다르며 그 중 누구 하나도 다른 누구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전제 위에서, 그러니까 그 평등한 다름을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그 어떤 일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오직 그 위에서만 가능해 보인다.

내게 시급하거나 필요한 고민이 아니므로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멈추었는데, 어제 길에서 만난 사람 덕에 다시 생각을 시작했다. 작은 책자와 “성경”을 내밀며 내게 말을 청한 그는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 것 같으냐고 물었다. 글쎄요, 하고 말았더니 그가 이은 말은 ‘서로 닮았기에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관심사는 신과 인간의 교제였겠지만, 그 스스로도 예로 삼았듯 인간과 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닮았기에 인간과 인간이 교제할 수 있다. 저 신을 믿는 세계관 아래에서, 그 신과 인간의 닮음을 믿는 세계관 아래에서, 인간의 능력이란 다름아닌 ― 그러니까, 일방적인 지배나 정복이 아닌 ― 이 “교제”의 능력일 것이다. 서로 닮았기에 가능한, 그러나 또한 동시에 서로 다르기에 가능한 교제, 말이다.

*

그는 그 닮음을 저버리는 것, 그 교제를 포기하는 것을 “죄”라고 불렀다. 여전히 그의 관심은 인간과 신의 교제에 있었으므로, 이 죄라는 것은 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었지만 ― 그는 예레미야서 2장 13절의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라는 말을 근거로 들었다 ― 말이다. 자신을 따르라 명하고 그러지 않으면 응징하는 신이라면 내게는 역시 쓸모가 없지만, 나는 그에 대해 지켜야 할 도리가 없으므로 저 “생수의 근원되는 나”라는 말을 멋대로 “나”에게서 비롯된 다름에 대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교제할 수 있는 존재임을 생각지 않고 타인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라는 마른 구덩이를 파는 죄에 대한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기독교인으로서 임신중지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일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는 이가 있었다.2 이처럼, 명령하고 응징하는 신의 이면에 베풀고 축복하는 신이 있다. 원죄original sin의 서사에 맞서, 원복original blessing의 서사를 수립할 근거를 제공하는 신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인간 생명을 신의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인간 생명에 내포하는 다름의 가능성, 차이의 가능성 또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든지3 전환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받지 않기로 하는, 나의 가능성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저 의구심에 지나지 않으므로 굳이 말하진 않았던 것이 있다. 태아가, 혹은 신생아가 신이 내린 선물이라면, 한때 태아였고 한때 신생아였던 다른 이들의 삶은 무엇일까. 특정한 생명만이 선물로서 받아들여지는 ― 혹은 적어도 보다 더 소중한 선물로서 받아들여지는 ― 데에는 가족이니 민족이니 하는 소위 혈통 중심의 이익공동체 개념 밖에도 한 가지 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이 ‘나’를 축복한다는 생각. 어떤 존재가 신의 선물이라면, 그것은 누구에게 온 선물인가? 나의 몸을 거쳐 나에게 온 선물이라고 한다면, 그 맞은편에는 자신의 몸으로 어떤 존재를 낳지 못한, 그러니까 축복 받지 못하였으며 어쩌면 저주 받은 누군가가 있게 될 것이다. 빛과 어둠을, 뭍과 물을, 풀과 나무를, 짐승과 인간을, 이 모든 것을 보고 똑같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신이 이런 방식으로 축복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가 축복하는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나나 네가 아니라 나와 네가 함께 머무는 이 세상인 것은 아닐까.4 나의 태중에 온 존재가 선물이라면 다른 이의 태를 거쳐 내 곁에 당도한 이 또한 선물일 테다. 아쉽게도 나는 몸을 하나밖에 갖지 못하였으므로 두 선물을 모두 온전히 즐기지는 못할 터이나, 어느 쪽에 마음을 기울이든 그것은 그의 선물을 기쁘게 받는 일이 될 것이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교제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그 신은 세상 만물을 보고 똑같이 좋아한다면, 우리 또한 누구와의 관계인지에 상관 없이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 신, 예수. 예수의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 9장 6절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라는 말로 시작한다.5 ‘아기가 났다’는 말을, 그리고 ‘우리에게’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므로 저 말에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 왔던 세 사람의 이방인을, 예수가 함께 하고자 했던 이방인들 ― 그러니까, 유대민족이 아닌 모든 이들 ― 을, 그리고 이방인으로서의 예수를 만났던 모든 이들을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아기가 우리에게 온다면, 혹은 어딘가의 아기였던 이방인이 우리에게 온다면, 그것은 우리의 재산으로서 오는 것은 아닐 테다. 우리의 친구로서, 이미 서로 다른 우리와 또 다른 새로운 존재로서, 우리와 교제할 이로서, 우리에게 온다고 믿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신이 선물한 이 세상을 신의 형상 속에서 서로 교제하며 살지 않는, 그야말로 이방인이 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1. 여기까지만 떠올렸는데, 인용하려고 원문을 찾아보니 그 뒤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이 이어진다. 최초에 만든 것이 남자와 여자 둘이었다, 는 뜻으로 이해하건 성적으로 분화된 동물적 형상을 또한 담았다, 는 말로 이해하건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으므로 ― 언제까지나 남자와 여자만 있으리라는 말은 없으므로 ― 일단 넘어가기로. 이하에서 『성경』의 번역은 개역개정을 따랐다.
  2. 믿는페미와 무지개예수가 주최한 〈교회×낙태죄 : 배틀그라운드 저자와 함께하는 북토크〉 자리에서 쪽지로 접수 받은 질문 중에 “기독교 신자로서 낙태를 선택해야 하는 당사자가 됐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일 수 있는데’, 이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죄책감과 고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적인 부분에서 어떤 선택이 옳을까요?”라는 것이 있었다. 성공회 신부 자캐오가 대표로 답했고 믿는페미 활동가 달밤과 『배틀그라운드』 공저자 나영이 말을 더했다. “원복” 개념은 매튜 폭스Matthew Fox의 것이라고 하는데 자캐오의 말에서 따온 것이며, 축복으로서의 임신과 대비되는 저주로서의 유산이나 불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영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3. 물론 나는 삶을 선물보다는 저주로 받아들이는 편이므로 이 “얼마든지”라는 것을 아주 힘주어 말하지는 못한다. 나는 그저 이 저주 속에서도 작은 가능성이나마 찾아보려, 그 가능성이나마 즐겨보려 애쓰는 사람에 불과하다.
  4. 필연적인 연결로 여기지 않으며 그가 이런 관점의 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나, ‘나에게 직접 내려지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모종의 선민사상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리라는 의심 또한 갖고 있다.
  5. 나는 이 문장을, 그리고 아래에 쓴 이 문장을 읽는 태도를 한나 아렌트의 책을 통해 배웠다. 그 흔적은, 이 글의 다른 부분들에도 묻어 있다.

비누라는 단어에 대한 잡담

나는 멍하게 있을 때면 제외하면 읽고 쓰거나 듣고 말하지 않을 때에도 대개 속으로 무언가 문장을 떠올리고 있는 편인데, 오늘은 설거지를 하며 ‘그릇을 씻을 땐 겉부터 헹군다, 비눗물이 안쪽 면에 묻을 수도 있으니까’라는 생각을 했다.

설거지 세제를 푼 물을 비눗물이라고 하는 것이, ‘설거지용 비누’ 같은 말이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비누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딱히 유럽에서 온 말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양잿물’ 같은 말을 생각해 보면 오래 전부터 한국어에서 쓰이던 말도 아닌 것 같고, 까지 생각한 후 사전을 뒤졌다.

국립국어원의 표준한국어대사전이 제공하는 어원정보는 【<비노<박언>】이다.1 “비노”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박언”이라는 책은 1677년에 12인의 역관이 함께 저술한, 한국어 주가 붙은 중국어 학습 교재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다.2

이 책의 306쪽(三○六면)에는 “行者ㅣ 듯고 여 나와 大王을 블러 비노 잇냐 날을 주어 머리 게 라”(행자가 듣고 뛰어 나와 대왕을 불러 [말하기를] ‘비노 있느냐, 나에게 주어 머리를 감[는 데에 쓰]게 하라’)라는 말이 있다.3 무려 1677년에 이미 비누에 해당하는 한국어 표현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전의 어형은 밝혀진 것이 없는 듯하다. 날 비飛 자에 더러울 누陋 자를 쓰던 것이라 여긴 이도 있었던 모양인데, 정작 『박통사언해』에 실린 저 한국어 문장의 중국어 표현에 쓰인 것은 肥棗다.4 『조선시대 의궤용어사전』에 따르면, 오히려 飛陋가 한국어의 비노를 차자표기한 것이라고 한다.5

그래서 이제 비누가 꽤 오래 묵은 한국어인 것은 알겠는데, 그럼 왜 양비누가 아니라 양잿물이란 말이 쓰인 것인가 하는 크나큰 의문이 남았다. 『조선시대 의궤용어사전』에 따르면 (의궤에 쓰인 표기로) 飛陋는 “직물의 세탁에 쓰이는 곡물 가루”를 뜻했다고 하며, 당시에는 “대체로 면, 마직물의 세탁에는 잿물을 쓰고, 명주와 같은 귀중한 직물을 빨 때는 콩·팥·녹두 등을 갈아 빨래에 비벼서 썼”다고 하니 조선시대에 쓰인 세제로는 (적어도) 잿물과 비누 두 가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수산화나트륨, 혹은 그것의 수용액이 곡물가루보다는 잿물을 먼저 떠올리게 했나보다. 이제 이어지는 궁금증은, 그럼 왜 곡물세제를 가리키던 비누라는 말은 그대로 잊혀지지 않고 되돌아와 양잿물을 대체했는가 하는 것인데… (양잿물은 말 그대로 물이므로, 이 말로써 고체비누를 가리키려 했다면 양재였어야 했을 것이라는 점이 뒤늦게 떠올랐다. 양석감, 같은 것도 가능했을까.)

1921년에 발행된 신문에도 화학식 고체비누(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말로 “비누”가 사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석감石鹼이라는 단어가 쓰이는데, 글자 그대로는 돌(처럼 굳힌)잿물을 가리키는 이 말은 원래는 “쑥이나 여뀌 등의 풀을 태운 재에서 추출한 잿물에 밀가루 등을 섞어서 가공하여 만든 고형물”을 뜻했으며 그것은 약재로도 쓰이고 양치, 기름떼 제거 등에도 쓰인 모양이다.6) 역시 비누라는 말을 쓰면서 석감이라고 부연한 1934년 기사에는 “예전 같으면 [세수에 쓸] 비누라고 하면 팟[=팥]비누밖에는 없엇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예전”이라는 게 필자가 어렸을 때 정도쯤이니까 저런 말을 썼으려니 싶으면서도 한국전쟁 휴전 후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늙어서는 젊은이들에게 전쟁도 안 겪어봐서 운운하는 꼴을 생각하니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7

이 정도 정보를 갖고서야, 고체비누엔 석감이란 단어를 빌어 쓰고 비누라는 단어는 서서히 잊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으므로, 나는 여전히 크나큰 궁금증을 품은 상태.

  1. http://stdweb2.korean.go.kr/search/View.jsp?idx=156723.
  2. 고려말부터 읽힌 『박통사』에서 1765년 간행된 『박통사신석언해朴通事新釋諺解』에 이르는 역사에 대해서는 http://kostma.korea.ac.kr/dir/viewIf?uci=RIKS+CRMA+KSM-WO.1765.0000-20150331.OGURA_186 을 참조.
  3. 원문은 http://waks.aks.ac.kr/rsh/dir/rview.aspx?rshID=AKS-2011-AAA-2101&callType=dir&dirRsh=&dataID=06_300@AKS-2011-AAA-2101_DES. 생략한 부분에 당승唐僧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저 행자는 길 가던 사람이 아니라 불교의 수행자일 듯하긴 한데, 저 부분만 잘라 읽은 것이라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대왕은 진짜 왕인가?
  4. 사실 잘 안 보여서 모르겠지만 찍었다. 살찔 비, 대추 조인데 대추 조는 하인 조皂와 발음이 유사하다(당시엔 같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살찔 비, 하인 조를 쓰는 肥皂는 무환자無患子 나무 열매의 육질 부분을 뜻하던 단어로, 중국에서는 이것을 갈아 빨래에 썼던 모양이다. 肥皂는 현대 중국어에서도 비누를 뜻하며, 『박통사신석언해』 54 번째 페이지(http://waks.aks.ac.kr/rsh/dir/rview.aspx?rshID=AKS-2011-AAA-2101&callType=dir&dirRsh=&dataID=12_289@AKS-2011-AAA-2101_DES)에 있는 같은 예문에는 이 단어가 쓰였다. 또한 두 책 모두 정확히는 肥 자와는 한 획이 다른 글자를 썼다. 사전의 이체자 목록에서 찾지는 못했지만 같은 글자이려니…
  5. http://waks.aks.ac.kr/dir/achieveView.aspx?dataID=FND_DIC_UIG_UGYS_0685@AKS-2007-HZ-2003_DIC.
  6. http://www.koreantk.com/ktkp2014/dictionary/dictionary-detail-view.view?dicCd=K0013584http://www.koreantk.com/ktkp2014/medicine/medicine-view.view?medCd=M0001925 참조.
  7. 읽은 기사들의 출전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비누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어서이기도 하지만 저 글들이 호명하는 독자가 “부인”과 “여학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다.

용산참사 10주기

2009년 1월 20일. 이제 곧 10주기를 맞는다. 새벽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아마도 당시 소속돼 있던 단체의 사무국에서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았거나 뉴스를 보고 알았을 것이다. 너댓 시쯤에나 현장에 도착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먼저 온 이들이 경찰과 싸워 얻어낸 좁은 공간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있었다. 방금에야 겨우 자리를 얻었는지, 절을 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 바닥에 흩어진 화재의 잔해를 쓸고 있었다.

전투경찰이 가득한 건물을 둘러 싼 천조각에 사람들이 꽂아 둔 국화들이 보였다. “살려고 올라갔는데 죽어서 내려왔다”, “살릴 수도 있었다.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같은 문장을 쓴 피켓들이 눈에 들어왔다. “살인 진압 규탄한다” 같은 것들도 있었을 테다.

고인들을 추모하고 서울시와 건설사 ― 삼성과 포스코 ― 를 규탄하는 짧은 집회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행진을 시작했다. 앞에서 이끈 이들에게는 목적지가 있었을 테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경찰과 밀고 밀린 끝에 어느덧 명동성당 앞에 도착했다.

기약 없이 밀고 밀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누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보도블럭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방패로 막았다. 길에 떨어진 것을 시위하는 이들을 향해 되던지기도 했다. 아마도 갑자기 무력 진압이 시작되었다. 돌에 맞거나 곤봉에 맞아 다친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을 잃은 안경들이 길에 굴러다녔다.

이후로 남일당 앞에서도, 고인들이 시신을 안치했던 순천향대학병원 앞에서도 숱하게 집회를 했을 것이다. 1주기를 며칠 남기고서야 겨우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에는 가지 못했고, 1주기 추모 집회에 갔다. 마석 모란 공원에도 갔었는데, 시신을 안치할 때 갔던 건지 이후에 갔던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남일당 일대의 건물들을 점거하고 꾸린 대책위 사무실이나 몇몇 작가들의 작업실에도 갔었고, 근처에 문을 열었던 레아 호프에도 갔었다. 일단의 정리를 맞고 나서 수 년간 방치되었던 남일당 터에도 갔었다.

2012년 여름이었던 모양이다. 무슨 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남일당 터 앞에서 작은 집회가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대책위 활동가는 울먹이는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외쳤다, 고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남일당이 있던 자리 맞나요? 여기가 남일당이 있던 자리 맞나요? 남일당이… 어디 갔죠?” 잘 잊히지 않는다.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에 덧붙이는 메모(를 빙자한, 스스로에 대한 푸념들)

명목상으로 이 글은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성과재생산포럼 기획, 후마니타스, 2018)에 실은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박종주, 245-265쪽)에 대한 필자 후기이자 땡땡땡협동조합 길잡이독서회 『배틀그라운드』편의 3회차로 진행된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 읽기 모임에 대한 참석자 후기이다. 따라서 이 글에는 글을 쓰며 했던 생각들, 독서회에서 받았던 질문들에 대한 직간접적 대답들, 독서회에서 다른 참석자들을 통해 하게 된 생각들이 섞여 있다. 독서회에서의 논의를 기록한 후기로는 탤탤의 글이 있다.

1.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의 초고는 2017년 성소수자인권포럼(연세대학교, 17.02.24-26.)의 일환으로 성과재생산포럼이 주관한 세션 “검은색 속 무지개: 성소수자와 재생산권”에서 「적대자들의 연대 :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그리고 재/생산」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1 구체적인 사례로서 두 글 다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를 두는 등 기본적으로는 같은 논의이지만, 염두에 둔 독자가 달랐으므로 ― 책에 실린 원고가 낙태죄 폐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퀴어한 몸들의 경우를 제시함으로써 논의의 폭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포럼에서 발표한 초고는 (각자 좁은 의미에서의) 여성 운동 뿐만 아니라 퀴어 운동 역시 낙태죄 폐지 운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말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 조금은 다른 지점을 향하는 서로 다른 문장들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두 곳에서 나의 관심사는 동일하며, 그것은 두 글에 등장한 문단 하나 씩을 가져다 이음으로써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낙태 금기는 어떤 주체를 생산하는가? 적어도 기술의 개입 없는 ‘뜻하지 않은’ 임신이 소위 ‘양성’ 간의 성기 결합을 통해 일어나는 일인 한에서, 낙태 금기는 양성체제와 이성애규범성에 순종하는 주체를 생산한다. 인간종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주체, 그를 통해 어른으로 인정받는 주체를 생산한다. 이런 명확한 목표 아래, 낙태 금기는 선택적으로 적용된다. 예컨대 ‘양성’의 구성원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의 혼외 출산,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청소년의 출산의 경우 낙태 금기는 훨씬 약화된다는 사실은 낙태 금기가 ‘이성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2

사회는 이들에게 임신중지를 금지하고 질 좋은 재생산을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노골적・물리적으로 개입한다. 이 몸들을 정상화하는 기술적 교정의 끝이 결코 임신이나 출산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성을 두 개로 고정시키기 위해, 양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두 성의 역할을 고정시킴으로써 이성애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담론은 기술을 동원해 몸의 일탈을 막는다. 그 끝에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몸들의 재생산을 금지하는 것, 이 몸들의 재생산을 기술적으로 차단하는 일이다.3

다시 말해 이 글(들)로써 내가 말하고자 한 바는 하나다. 형법상의 낙태죄 조항, 그것을 지지하는 낙태 금기,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성과 재생산에 관한 이 사회의 담론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인공적인 임신중절이라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 때로는 중절을 요구하고 때로는 임신을 금지한다는 ― 사실, 이 금기와 처벌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재생산 담론의 작동은 늘 인간들 사이에 위계를 설정하고 그 위계를 토대로 특정한 존재들만을 선별해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 말이다.

‘퀴어’라 불리는 이들, 정확히는 ‘성소수자’라 불리는 이들이 처한 상황, 혹은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전하고 탐구하는 것은 사실 이 글의 ― 부수적인 효과가 될 수는 있을지라도 ― 목적이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오히려 낙태죄 혹은 재생산과 같은 이슈들과는 일견 멀어 보이는, 그러나 나와 초고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성적 소수자의 삶이라는 영역을 경유해 저 이슈들을 탐구할 때 어디에까지 생각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지 ―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권력들, 제도들, 정치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짚어보이는 것에 가깝다.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명사로서가 아니라 지배적인 성적 관념들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실천으로서의 (그러니까, 동사적 의미에서의) 퀴어를 이야기한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것은 실은 태도에 관한 글이다.

이것이 물론,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하면서 성소수자를 고려할 실질적인 이유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성과 재생산이라는 넓은 층위에서 구체적으로 살핀 트랜스젠더, 인터섹스의 사례 이외에도, 책에 실은 원고에서 인용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발족 집회에서의 발언에서와 같이 출산을 통해 ‘여성’으로 호명되는 일을 겪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의 경우 등 성소수자가 낙태죄의 문제를 실감할 구체적인 현장은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는 공적 지위를 거의 인정 받고 못하고 있기에 논의에 참여할 자격을 얻기조차 힘들지만, 이것은 분명 법의 수준에서까지도 구체적인 논점들을 갖는 문제이다. 예컨대 2015년에 제정된 젠더인정법(Gender Recognition Act)을 통해 비수술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도 인정되는 아일랜드의 경우, 낙태죄의 근거가 된 헌법 조항을 국민투표를 통해 폐지한 후 관련법 입법 과정에서 남성으로 등록되어 있는 임신 가능한 사람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으며 이에 따라 해당 법령에 사용할 용어가 문제가 된 바 있다.

관련 활동가 등이 제안한 법적 용어는 성별을 명시하지 않는 ― 남성으로 등록된 임신 가능한 사람들, 그리고 등록된 명칭과 별개로 여성으로 호명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고려하는 개념인 ― “임신한 사람(pregnant people)”이었다. 비록 법안에서는 “여성(woman)”이라는 용어가 채택되었으나 “‘여성’은 나이에 관계 없이 생물학적여성을 뜻한다(“woman” means a female person of any age)”라는 용어 정의가 덧붙여졌다. 사실 이 문장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4 보건부 장관(Minister for Health) 사이먼 해리스는 의회의 논의에 참석해 “사람”이라는 용어의 사용 또한 고려하였으나 다른 법령들과의 통일성을 위해 “여성”을 택하게 되었다고 해명하며 해석법(Interpretation Act 2005)의 규정에 따라 이 용어는 성별에 따라 임신중지에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5

2.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이라는, 태도에 관한 글에 덧붙이는 메모이므로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볼까 한다. 앞에서 말한 것을 정리해 보자면, 어떤 이슈를 다루기 위한 출발점 혹은 입구로 종종 그 이슈와는 멀어 보이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혹은 퀴어운동이나 장애인운동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으로 소개할 때 나는 ‘여성 문제’, ‘성소수자 문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기보다는 어떤 문제든을 생각할 때 ‘여성’이나 ‘성소수자’ 혹은 ‘장애인’을 (정확히는 이들의 삶을 고민해 온 이들에게서 배운 통찰들을) 출발점으로 삼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생각한다. 어떤 일을 쉽사리 내 일이 아니라고, 남의 일일 뿐더러 다른 모든 남의 일이 아니라 특정한 소수의 일일 뿐이라고 여기게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물론 타인의 일에 대해서 또한 지지를 보내고 변화를 요구할 수 있지만, 타인이 겪는 불의를 구성하는 데에 내가 미치는 영향을 잊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시스젠더 여성만의 일로 상상되는, 기껏해야 자궁 및 관련 기관들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에 생식 기능이 있는 사람들만의 일까지 정도로나 확장될 수 있을 듯한 낙태죄 이슈를 성과 재생산이라는 영역 일반, 그리고 (그 장에서 개개인에게 위계가 부여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사회의 인간관이라 칭할 만한 것의 영역과 연관지어 이야기해 보고자 했던 저 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런 태도로 출발점을 정해 어떤 문제를 살피는 일은 상관 없어 보이는 일들이 세세히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데에로 이어진다. 성별, 성적 지향, 운동 능력, 지능, 나이, 재산, 국적, 학력과 학별 등 사람들을 (그리고 또한 사람과 사람 아닌 존재들을) 분류하고 그 분할을 통해 사회를 운영하는 수많은 기준들이 그저 서로 교차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정렬되어 있음을 ― 어느 하나만을 떼어 생각하는 것으로는 결코 충분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데에로 말이다.

결국 나는 “만들어지는 몸”, 혹은 “만들어지는 욕망” 따위를 생각한다.6 굳이 따지자면 나는 인간의 ― 어떤 관점과 욕망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으로서의 ― 자율성을 믿는 편이지만, 그리고 자율성을 믿고 움직이는 데에서 비로소 가능해지는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낙관하는 편이지만, 힘주어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그리고 너무 강력한 힘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를 가지면서도 드러나기로는) 다양한 이념들과 제도들이 사람의 여러 속성들을 나누고 그것들에 위계를 부여하며 또한 그 중 어떤 것을 핵심적인 것으로 나머지 어떤 것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나는 스스로가 있는 곳과 있고 싶은 곳 모두 알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고 만다. 어떤 일을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믿기에도, 또 어떤 일을 외압에 의해 도리 없이 택해야만 했던 것으로 믿기에도 너무 쉬운 존재인 인간으로서의 나는 종종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행하는 무수한 일들을 어떤 것은 나 스스로 내린 판단에 따른 것으로, 어떤 것은 현실에 타협하는 과정에 일어난 일로, 또 어떤 것은 생각 없이 저지른 일로 분류하며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고 방침을 세워야 하는 순간들, 혹은 내가 가진 (아직 완성되지조차 않은) 이상들의 얼마만큼을 지금 당장 실현하기 위해 애써야 하고 얼마만큼은 잠시 미룰 수 있을지를 나누어야 하는 순간들, 체제를 비판하는 가운데 얼마만큼의 개인들을 그 체제의 적극적인 실행자들로 여기고 직접적으로 거론해야 할지를 정해야 하는 순간들,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 일관된 인간이 되지는 못하였으므로, 때로는 감정에 휩쓸려 어쩌며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말하고 또 때로는 게으름을 이기지 못하고 침묵하고 만다.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행위를 한 이들에게 때로는 연민을 느끼고 때로는 분노를 느낀다. 매순간 내리는 결단들을 잠정적인 것으로 남겨 둔 채,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내게 필요한 윤리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는 데에 머무른다. 어쩌면 아직은, 내가 어떤 차별과 억압 아래에 있는지, 혹은 내가 누구의 차별과 억압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할지가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누구에게 차별과 억압을 가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중이다. 루인의 말을 빌자면, 지금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이러저러하게 차별받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특정 상황에선 차별받고 있지만 다른 상황에선 특권적 위치에 있다’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7

3.

여전히 태도만을 고민하는 내가 잠정적인 결단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말의 대부분은, 지금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이기 보다는 지금 이것만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들에 가깝다. 아니, 애초에 모든 상황에서 틈 없이 적용할 수 있을 구체적인 지침 같은 것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므로, 영원히 이럴지도 모를 일이다. 예컨대 이런 식의 접근을 통해 어디부터를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간 생명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에 이르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다.8

물론 내가 여기에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임신중지에 대해 정당한 방식으로 도덕적 비난이나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을 여지를 남겨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가지 생각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유림을 인용해 이 정도만을 말해 두기로 하자.

[‘]저는 페미니스트인데(또는 저는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낙태만은 동의할 수 없다’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게 자신의 윤리로든, 종교적인 이유로든 어떠한 이유로든 말입니다. 여성이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나 판단에 대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맥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성이 임신을 중지했다는 것을 국가가 그 윤리의 담지자가 되어서 심판하고 범죄화하고 응징하고 처벌하는 낙태죄에 동의하는 진보적인 사람이나 페미니스트는 있을 수 없습니다.9

부정할 수 없을 이 정도의 입장만 가지고서도, 임신중지를 비난하고 형법을 통해 처벌하며 그러한 제도를 용이하게 운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모자보건법 ― 물론 이 책에서 여러번 이야기되듯, 모자보건법 제 14조는 낙태죄의 단순한 수단이라기보다는 낙태죄의 바탕이 되는 철학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장이다 ― 을 통해 선별된 사례들을 정당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4.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의 마지막 문단은 이러하다.

적지 않은 경우 강제적인 불임수술을 당하고, 많은 경우 성적인 교제 자체를 금지당한다는 점에서 성적 낙인을 공유하는 소수자로서의 장애인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를 개인의 결함이 아닌 사회적 구성물로 간주하는 장애학의 논의를 참고해, 사회의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재생산할만한 것이 못되는 것으로 평가받는 성적 소수자성을 일종의 사회적 장애로서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 것들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보다 많은 이들을 모아 보다 큰 적과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글의 제재인 퀴어한 실천의 주체들, 그러니까 거칠게 말해 성소수자들을 두고 생각해 보자. 성적 소수자성을 단순히 생물학적이고 수적인 문제, 그러니까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타고나는 어떤 속성 같은 것으로 규정해서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10 물론 타고난 것 ― 예컨대 여성으로 호명되고 싶지 않음 ― 을 고려하는 수준에서도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 성은 재생산을 위해 사용하라는 요구, 재생산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라는 요구와 같은 것들에 저항하려 할 때, 저런 식의 접근은 성소수자를 이류 인간의 위치에 남기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는 것이다.

또한 (책에서도 짧게 설명한) 동성애 규범성과 같은 것을 의식할 때, 예컨대 동성을 향하는 성적 지향을 타고났으며 그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나머지 영역에서는 비-성수자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 다시 한 번 예컨대 성소수자 또한 보조생식기술 등을 이용한 재생산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훌륭히’ 수행할 자질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그렇지 않은 이들을 말하자면 삼류 쯤의 자리로 밀어내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 역시 느낀다.

설명을 시도해 본 적 없는 여러 층위에서 성적 소수자성과 장애의 유사성을 생각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우선 생산성을 빌미로 매겨지는 위계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 경우에는 성적 생산에의) ‘불능’ 혹은 ‘불량’을 수반하는 일탈적 실천을 이유로 논의의 장에서 성소수자들이 배제되는 광경과, 마찬가지로 ‘불능’ 혹은 ‘불량’을 이유로 공론장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당하는 광경의 유사성을 파악하는 것은 사회가 이 존재들에게 자리를 부여하는 방식을 분명히 보여 준다. 예컨대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이 농인의 세계로 진입하면 삶의 요소로서 장애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수화와 농인 공동체의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청인이라면 농인의 세계에 들어가는 그 즉시 의사소통 영역에서의 무능력함 때문에 핸디캡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농인은 청인들 사이에서 비슷한 것을 느낀다. 이런 핸디캡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을 방문했을 때 나타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11

농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일정 수준 이상의 청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류 사회가 언어를 비롯한 여러가지 의사소통 수단들(하다못해 자명종마저도)을 소리를 중심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의 소리 언어에의 ‘무능력’과 구어를 사용하는 비-청각장애인의 수어에의 ‘무능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치화된다. 마찬가지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휠체어 접근성이 완비된 공간에 살 때와 계단만이 가득한 공간에 살 때 경험하는 장애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퀴어한 성적 실천이 불능으로, 혹은 불량으로 규정되는 것 또한 같은 식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성별을 두 개로 구분하고 양성의 결합만을 인정하며 그것에 따른 출산이라는 행위를 통해 궁극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회에서만 퀴어는 불능이 되고 불량이 된다.12

이런 식의 생각들을 하며 나는, 애초에 불평등하게 기획된 구도 속에서 사람들에게 위계를 부여하지 않는 어떤 장을 상상한다. 나 또한 충분히 생산적이라고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산과 나의 생산은 애초에 다른 것이라고, 그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질적인 차이를 갖는 것이라고, 그러한 차이 속에서 나는 당신의 세계에서처럼 중요한 것이 아닌 무언가로서의 생산을 상상하고 경험한다고, 그러니까 또한 생산이 아닌 다른 것들을 상상하고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길들을 찾는 중이다.

  1. 이 세션에서는 또한 이유림과 김선혜가 각각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를 넘어, 낙태죄 폐지 운동과 성소수자」, 「초국적 게이 대리모 사업 : 재생산권과 재생산윤리」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2. 「적대자들의 연대 :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그리고 재/생산」의 도입부. 여기에서 “재생산” 대신 “재/생산”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생산과 재생산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표현되는, 실제로는 경중을 따질 수 없을 수많은 생산(이자 파괴) 행위들 사이에 설정되는 위계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생산이라는 말로써 새롭거나 더 나은 것, 혹은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을 가리키고 재생산이라는 말로써 현상 유지 수준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가리키는 것, 혹은 생산이라는 말로써 인간의 수고를 가리키고 재생산이라는 말로써 자연의 과정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경우 말이다.
  3.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 253쪽.
  4. 이 문장 자체는 이번 입법과 함께 폐기될 “임신중의생명보호를위한법(Protection of Life During Pregnancy Act 2013)”에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또한 여기서 female을 woman과 구분하기 위해 관행적·잠정적으로 생물학적 여성으로 옮겼지만 (다음 주석에도 썼듯, 아일랜드 보건부 장관은 ‘생물학적 여성’을 ‘biologically female’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젠더인정법의 “if the preferred gender is the male gender the person’s sex becomes that of a man, and if it is the female gender the person’s sex becomes that of a woman”이라는 문장에 비추어 볼 때 직접적으로 소위 ‘생물학적’ 성별을 뜻하는 것으로 읽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으며, 여성을 연령에 따라 woman과 girl로 구분하는 영어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읽을 필요 또한 있을 것이다.
  5. 이 법안은 최근 상원에서 통과되었으나, 12월 22일 현재 12월 5일자 하원 통과안까지만 공개되어 있다. https://www.oireachtas.ie/en/bills/bill/2018/105/에서 해당 법안 및 입법 과정에서의 논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보건부 장관의 설명은 11월 27일자 하원 회의록12월 6일자 상원 회의록 등에 실려 있다. 장관은 이러한 설명을 법령 공표시 함께 공개하는 법령설명(Explanatory Memorandum)에 명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관은 11월 27일에는 “남성(male)이라고 정체화하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biologically female) 개인도 이 법의 목적에 따라 여성(woman)으로서 동일한 권리와 책임을 갖게 될 것”이라고, 12월 6일에는 “임신 중지 서비스는 성별(gender)에 관계 없이 필요로 하는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6. 책에서는 “순응하는 몸”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썼으나, 그것은 당신의 고유한 욕망이 아니며 당신은 그저 체제에 순응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므로, 어쩌면 부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7. 이것은 「차별 받는다는 문장의 복잡한 함의」라는 짧은 메모의 마지막 문장으로, “사실 교차성 논의의 핵심은”이라는 주어 뒤에 이어진 말들이다.
  8. 물론 이런 것은 애초에 나의 관심사가 아니기도 하다. 독서회에서 한 참가자는 태중의 수정란 등을 ‘인간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경우에 대해 ‘시민 대 (난민 등을 비롯한) 이주민’ 구도로 구체화되는 시민권 개념의 한계가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나는 이런 접근에 더 관심을 갖는 편이다. 시민권 개념을 긍정적으로 전유할 길은 잘 떠오르지 않아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 왔기에 저 말에 대해 적절히 덧붙일 문장을 찾지는 못했고, (거의 면피를 위해) 소유물로서의 권리에 대한 것보다는 서로가 어디까지를 내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점에 대해서조차 구체적으로 생각을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페미니스트의 용기」, 「말랑한 용기에 관하여」 같은 글에 그런 생각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멀리까지 뻗자면 「불안을 껴안고 살아가기」까지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대부분의 생각들이 그러하듯, 이런 식의 생각은 나 개인의 윤리를 구성하는 데에는 참고가 될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의무나 제도를 이야기할 때에는 별 쓸모가 없어 보인다.)
  9. 이것은 여성환경연대의 활동가 안현진이 정리한 이유림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10. 다양한 형태의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들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단언하기에 나는 아는 바가 너무 적다.
  11. Roger J. Carver, “Deaf Culture of Disability?”, Transition, December 92/January 93 1992. 수전 웬델 지음,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 『거부당한 몸』, 그린비, 2013, 70쪽에서 재인용.
  12. 필요 이상의 낭만화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물론 삶에 필요한 모든 시설에 휠체어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 곳에 거주하는 휠체어 이용자조차도 모래와 돌이 깔린 길을 가고 싶을 때 혹은 휠체어가 고장나 수리 기사나 활동보조인을 기다려야 할 때면 어떤 불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또한 보조생식기술 없이 두 개의 난자 혹은 두 개의 정자로 수정란을 만들고 싶은 이들 역시 어떤 불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피임 기술 없이도 생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기결합 섹스를 하고 싶은 이성애자들이 어떤 불능을 마주하게 될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말이다.
    하늘을 날지 못하고 신을 직관하지 못하듯 인간은 언제나 한계 속에 있다. 결국은 인간 개체가 갖는 한계 자체가 아니라 인간에게 무엇이 요구되고 기대되는지에 따라 장애가, 불능이, 불량이 규정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생물학적 조건이 관계 있는지 아닌지는 사회 구조에 의해 좌우된다”고 규정하며 “장애를 만들어 내는 (혹은 예방하는)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것의 상호작용”으로서의 “장애의 사회적 구성”을 말하는 수전 웬델의 논의(앞의 책, 78쪽 이하)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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