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8-25.(수-토)

일기라고 하기엔 곤란한 지경, 이 굳어졌다.

13일만에 금연을 중단한 후로 또 일이 이어져 흡연량이 회복되고 말았다. 이제 일은 다시 잦아들었다. 흡연은 과연.

2021.12.08.(수)

오전에 중고거래 앱의 알람이 울렸다. 관심 물품으로 등록해 둔 “의자”가 올라왔다고 했다. 메시지를 보내 약속을 잡고 오후에 다녀왔다. 약간 낮은, 좌판과 등받이에 스펀지가 대어져 있는 “카페 의자”였다. 하나에 오천 원, 만 원을 주고 두 개를 샀다. 친구와 하나씩 들고 집까지 삼십 분 가까이를 걸었다. 판매자가 일러 준 주소는 오며가며 본 적이 있는 네일샵이었다. 무언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오는 길에 보니 같은 간판이 다른 곳 ― 곧 신축빌딩에서 더 넓은 매장을 새로 여는 양과자점이 있던 자리 ― 에 걸려 있었다. 네일샵을 확장해 이전하고 남은 짐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꼭 필요해서 산 것은 아니다. 이미 식탁 의자 두 개와 책상 의자 하나가 있다. 하지만 어느 쪽에 앉든 너무 일해야 할 것 같은 자세라 늘어져 있을 만한 곳을 갖고 싶어 굳이 샀다. 골반과 허리가 아파 바닥에는 앉지 못한다. 그렇다고 누우면 너무 늘어져 도무지 다시 일어서질 못한다. 중고 매물로는 소파가 종종, 심지어 무료로도, 올라왔지만 차도 엘리베이터도 없으므로 곤란했다. 싸구려는 흔하므로 인터넷으로 새 걸 살까도 생각했지만 처리하기 곤란한 짐을 늘리고 싶진 않았다. 나름대로 한참 기다린 끝에 샀다.

저녁에는 느리게 일했을 것이다.

2021.12.09-15.(목-수)

역시 주로 느리게 일했을 것이다. 15일 마감이었던 원고는 결국 새벽 늦게야 보냈다. 14일 오전에 스터디가 하나 잡혀있어 13일에는 급히 영어 논문 하나를 읽느라 늦게 잤다. 재밌었다. 참여자들의 일정과 건강 등의 문제로 스터디는 취소되었다. 14일 저녁에는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평소처럼 잠자코 있었다.

9일에는 서울에 다녀왔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여는 무장애예술주간의 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서울: 이음센터 갤러리, 21.12.01-14.)를 보았다.[1]http://nolimits.kr/2021/words 이음센터는 혜화역 바로 앞에 있다. 건물 바로 앞에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가 있다. 지난 12월 6일, 서울교통공사는 여기에 “금일 예정된 장애인단체의 불법시위(휠체어 승하차)로 인하여 이용시민의 안전과 시설물 보호를 위하여 엘리베이터 운행을 일시 중지합니다.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혜화역장 명의의 “안내문”을 걸고 “출입금지”라 적힌 줄을 쳤다.[2]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69 이날은 정상 운행 중이었다.

플랫폼 스크린도어에는 “국회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즉각 개정하라”, “국회는 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하라”는 등의 문구를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붙인 것이다. 문제의, 그리고 일련의, 시위 끝에 국회에서 개정안 논의가 시작되었고 22일, 국토교통위원회 교통소위원회에서는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조항이 담긴 개정안이 통과됐다.[3]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56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국비 예산 반영은 임의조항으로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안, 정의당 심상정 의원안 등을 통합하고 약화한 위원회 대안이다.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는 백신 음모론에 기반한 만화가 붙어 있었다.

2021.12.16-20.(목-월)

마찬가지로 느리게 일한 날이 며칠 있다. 20일 마감이던 보고서쯤 되는 것을 거의 철야한 끝에 보냈다. 해가 뜨는 걸 보고 잤던가.

나머지 며칠은 서울에서 보냈다. 16일에는 춤추는 허리의 《연극연습 4: 관객연습 ― 사람이 하는 일》(고주영 기획, 서울: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2021.12.15-19.)를 관람했다.[4]https://wde.or.kr/춤추는-허리-공연-안내-연극연습-4-관객연습-사람이-하는-일 이날은 간만에 학교에서 철야했다. 밤은 예의 보고서 작성에 일부, 17일 마감이던 원고 작성에 일부를 썼다. 원고는 결국 쓰지 못해서 낮에 썼다. 밤에 쓴 것은 버렸다. 17일 오후는 친구와의 스터디로 보냈다. 17일 저녁과 18일은 프로젝트 이인의 《쿼드Quad》(사무엘 베케트 원작, 서울: 플랫폼엘, 2021.12.17.-18.)[5]https://quad2021.com 하우스매니저로 일했고 18일 오후 공연을 관람했다. 《무용수-되기》 때와 마찬가지로, 지인을 여럿 만났다.

이번에는 평소와 다른 숙소에서 잤다. 몇 년 전 다른 지점을 이용해 본 적이 있는 업체다. 샤워실이 아주 좁은 것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이곳도 같았다. 예매를 하며 본 이용후기에는 캠핑장 샤워실 같다, 는 말이 있었다. 직접 가서 보니 그저 작아서만은 아닌 듯했다. 평범하게 타일로 마감한 것이 아니라, FRP쯤 되어 보이는 외장재로 마무리한 공간이었다. 나는 좋았다. 꽤나 열심히 청소하는 곳이라고 타일 사이의 때는 잘 지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완전 일체형은 아니어서, 이곳이라고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1.12.21.(화)

오전엔 뭘 했을까, 오후엔 스터디를 했다. 저번에 읽던 글의 후반부를 마저 읽었다. 아주 이론적인 ― 그러나 설명은 상세하지 않은 ― 부분은 끝나고 주로 공연을 분석하는 대목이었지만 전반부에서 제시한 개념을 ― 여전히 상세한 설명은 없이 ― 종종 사용해서 조금은 애를 먹었다. 이번에도 끄트머리 조금을 남기고 마쳤다.

처음 가보는 카페에 앉아서 했다. 메뉴가 적고 로스터리가 딸린 곳이었다. 아메리카노와 라떼, 아포가토 정도만 있었던 것 같다. 대신 원두 예닐곱 가지 중 하나를 고르게 되어 있었다. 디카페인 원두 한 봉지를 샀다.

2021.12.22-23.(수-목)

금요일 스터디에서 읽을 글을 번역했다. 글을 반만 읽기로 해 두었으므로 아주 열을 올리지는 않았다. 너무 느리진 않게 일했다.

2021.12.24.(금)

눈을 뜨고 처음 접한 세상 소식은 다름 아닌, 박근혜의 사면이었다. 수없이 나갔던 집회가, 뜻하지 않게 집회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여전히 과거의 정권과 싸우고 있는 이들을, 지금의 정권과 싸우고 있는 이들을 생각했다.

스터디는 오후였다. 어렵지 않은 글을 열 쪽 정도만 번역한 터라 금세 읽었다. 앞뒤로는 수다를 좀 떨었다. 물론 박근혜와 문재인 이야기도 있었다.

점심은 케이크로 먹었다. 저녁엔 해리포터 시리즈 한 편을 보았다. 나름대로,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한 일이다. 말하자면 《나홀로 집에》 보기에 해당하는 의식. 해리포터 시리즈의 출연진, 제작진이 지난 20년 여를 돌아보는 영상이 곧 공개되는 모양이다. 원작자 조앤 K. 롤링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트랜스혐오발언이 문제가 되었다고들 한다.

2021.12.25.(토)

처음으로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농성장에 다녀왔다. 정식 명칭은 아마도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이다. “2021 성탄절 연합 감사성찬례”에 맞추어 방문했다. 제대로 보지 않고서 성공회 나눔의집연합회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다른 어느 개신교회의 연합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 자리에 앉아 앞에서 하는 말들을 들으며 천주교의 언어치고는 꽤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 알고 보니 성공회의 나눔의집연합회, 정의평화사제단, 걷는교회가 함께 한 것이었다.[6]이 달 말일, 즉 올해 말일에는 2021 차별금지법 제정 송년문화제 “사랑과 우정이 이긴다”가 열린다.
https://equalityact.kr/year-end/

다음으로는 분단이미지센터의 전시 《환영으로 채운 굴과 조각보로 기운 장벽 탐사대》(서울: Hall1, 2021.12.18.-31.)을 보러 갔다.[7]https://afterdivision.center 아마도 창고로 쓰였을 공간을 개조한 듯한 전시장이었다. 온풍기가 ‘파워’ 모드로 돌고 있었지만 실내 기온은 섭씨 5.5도였다. 나올 때쯤엔 4.6도로 떨어져 있었다. 영상과 설치 몇 점을 보았고 반재하의 〈와갈봉조선범_프로토타입〉에 꽤 시간을 들였다. 컴퓨터를 직접 조작해야 하는 작업이었는데 컴퓨터가 느렸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프로그램 하나는 성공적으로 실행했지만 나머지 하나는 결국 실패했다. 실행은 잘 됐지만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는데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와서는 카페에 잠시 앉았다가 제천으로 이사하기 전에 한 번 가본 파스타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테이블 세 개짜리 작은 식당인데, 크리스마스인데도 ― 혹은 크리스마스라서(동네 식당쯤 된다) ― 아무도 없었다. 막차보다 하나 앞의, 여덟 시 이십 분에 서울을 출발하는 차를 타고 귀가했다.

보통은 간 김에 최대한 시간을 보내고 막차를 탄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다. 일정을 당긴 것은 추위 탓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파트에 안내 방송이 울렸다. ‘한파 예방을 위해 동파 방지를 위해 각 세대에서는 대책을 강구해 주십시오’쯤 되는 말을 두어 번 반복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알려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무엇을 강구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현관에 붙여 둔 안내문을 참고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안내문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수도를 틀어두라고 적혀 있다.

예보에 따르면 밤에는 영하 10도보다도 훨씬 떨어질 것이었다. 기관마다 달랐지만 제일 높게 예측하는 곳도 영하 17도, 낮게는 영하 21도였다. 진짜로 그렇게까지 온도가 떨어지면 틀어 둔 수도가 얼 것 같았다 (화장실이 보온이 제대로 안 될 구조다). 그래서 조금 일찍 귀가했다. 기온은 예보보단 조금 높았다. 제천에 도착한 열 시 언저리엔 영하 11도쯤이었고 (역시 기관마다 다른데) 새벽엔 영하 13도에서 15도쯤까지 갔다. 수도를 틀지 않고 잤다. 얼지 않았다.

일자 미상

날이 추워진 후로 베란다 창을 닫아 둔다. 베란다가 빨래를 말리기에 부적절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아주 느리게 마른다. 빨래 한 번에 옷 한두 장씩은 꼭 상한 내가 나게 되고 만다. 나머지에도 베란다 냄새 ― 바닥을 높이는 데 쓴 각목의 상한 냄새 ― 가 스민다. 창을 열어 두면 아주 조금은 낫지만 베란다에는 보일러와 수도꼭지가 있고 심지어는 공용 수도관도 베란다를 지난다. 함부로 열어두긴 곤란하다. 바람이 약간은 도움이 될까 싶어 분해해 두었던 선풍기를 조립했다. 작동하지 않는다. 헤드 회전 기능은 멀쩡한데 날개가 돌지 않는다. 모터 쪽만 단선되었을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윤활유 문제일 텐데, 새로 넣어주면 될지 요즘 베란다 기온으로는 굳어서 애초에 못 쓰는 것일지 모르겠다. 일단 방에 넣어 따뜻한 곳에서 돌려봐야 할 텐데 귀찮아서 아직 방치하고 있다.

창을 닫아 두어도 베란다는 춥다. 창은 한 겹이다. (베란다와 실내를 가르는 창만 두 겹이다.) 기온이 어느 정도 떨어지자 베란다에 설치해 둔 케이블 인터넷 모뎀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창틀에 뚫은 전선 구멍은 다른 선과 실리콘으로 막혀 있어 모뎀을 방에 들일 길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에어컨 배관 구멍을 살폈다. 나는 에어컨이 없지만 전에 살던 이의 에어컨 호스가 퍼티로 고정돼 있어 거실에 배관이 튀어나와 있었다. 한참 힘을 주어 씨름한 끝에 퍼티를 제거했다. 그리고 인터넷 선을 통과시키고 모뎀을 거실에 설치했다. 이제 큰 탈 없이 작동한다. 호스를 넣었던 커다란 구멍에 전선 한 가닥만 넣었다. 커다란 구멍을 막아야 하는데, 좀 귀찮다.

10월 26일까지만 쓰고는 방치해 두었던 가계부를 채웠다. 며칠 전 언젠가 일부를 했고 오늘 나머지를 마쳤다. 신용카드, 체크카드, 몇 가지 간편결제 서비스의 내역과 통장의 출금 내역, 자동이체 내역을 확인했다. 총 338개 항목을 기입했다. 60일간 338건. 하루 평균 5.6건의 지출을 한 셈이다. 지출이 너무 많다. 많이 벌지 않으므로 지출액도 많지 않다. 다만 건수가 너무 많다는 뜻이다. 식사를 직접 해 먹는다고 치면 장을 보는 한 번의 지출로 적어도 사나흘을 보내겠지만 식당에서 사먹으면 같은 기간 동안 열 건 남짓의 지출을 하게 된다. 남에게 맡길수록 지출이 잦아지는 셈이다. 덜 그래야 하는데.

의자를 사고 보니 탁자가 필요했다. 만들었다. 네 칸짜리 책장을 반으로 잘라 눕히고 접이식 상다리 ― 책장 가로판에 달아 상으로 쓰고 있던 것을 떼었다 ― 를 붙이니 의자에 앉아 찻잔을 두기 적당한 높이가 되었다. 나머지 절반은 조금 더 잘라 1.3칸쯤 되는 높이의 수납장으로 만들었다. 톱질을 엉망으로 한 탓에 수평이 맡지 않아 나무조각을 조금 덧댔다. 거실에 있던 좌식 탁자를 방으로, 상이 있던 자리로 옮기고 그 자리에 테이블을 놓았다. 책꽂이와 탁자에 두었던 다기는 테이블과 수납장에 나누어 넣었다. 다완 몇 개는 자리를 잃었다.

2021.12.07.(화)

오전엔 뭘 했을까. 점심은 옹심이칼국수집에서 먹었다. 여름 내내 콩국수를 먹었던 곳, 날이 선선해지면서부터는 이따금 가서 옹심이칼국수를 먹은 곳이다. 처음으로 멸치칼국수를 주문했다. 가게에는 2018년에 지역방송사에서 주최한 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받은 칼국수 부분 금상 상장이 붙어 있다. 어떤 칼국수로 받은 상일까를 잠시 궁금해 했다. 칼국수가 나오기까지,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맛은 좋았다. 나는 옹심이칼국수보다 멸치칼국수를 좋아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마도 다음번엔 옹심이칼국수를 먹을 것이다. 그것이 메뉴판 제일 첫 줄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엔가 한 번 가 본 카페에 가 앉았다. 뭐였더라, 잘 모르는 커피를 주문했다. 냉커피에 크림을 얹은 것. 잔을 입에 대고 마시다 숟가락으로 크림을 떠 먹다 하며 친구와 스터디 모임을 했다. 우리 둘 다 잘 모르는 학자의 개념을 토대로, 그러나 이렇다 할 설명은 하지 않으면서, 쓴 비평문 쯤 되는 글이었다. 느리게 읽었고 끝마치지 못했다.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일어나 근처 공원에 잠시 앉았다. 그네가 많은 곳이다. 밝을 때 온 건 처음인가, 어린이가 꽤 있었다. 그네는 건드리지 않고 벤치 ― 그래봐야 이 역시 그네지만 ― 에만 앉아 있었다.

저녁은 피자를 시켜 먹었다. 집을 한참 정리했다. 금연 13일차. 저녁 내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새벽 두 시가 조금 지나 결국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평소에 가는 편의점은 두 시에 닫는 모양이었다. 어쩌다 어지간해선 들어가지 않는 골목으로[1]아마도 집을 보러 왔던 날 아니면 이사 온 첫날 딱 한 번 가 본 것 같다. 들어갔더니 영업 중인 편의점이 있었다. 담배를 참지 못할 것까진 없었으나 그냥 피우고 이를테면 리셋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틀 정도 (그것이 최장기록이다) 안 피운 후의 첫 담배는 종종 역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담배를 사서 그랬을까. 사지 말단이 나른해지고 감각이 둔해졌다. 담배는 편의점 앞에 두고 귀가했다. 한참 놀다 네 시를 훌쩍 넘겨 잠들었다.

1 아마도 집을 보러 왔던 날 아니면 이사 온 첫날 딱 한 번 가 본 것 같다.

2021.12.06.(월)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더디고 더디게. 전후로 두 끼를 모두 파란만장하게 먹었다.

점심께에 집을 나섰다. 시내쪽, 으로 방향만 정하고 계획 없이 걷다가 분식집에서 아무 찌내가 먹기로 했다. 그러다 이내 라면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원래 가려던 분식집은 길을 한 번 더 건너야 했으므로, 하지만 라면을 먹을 것이라면 조금 더 가면 나오는 라면과 김밥만 파는 분식집에 가도 되므로, 그대로 더 걸었다. 기껏 도착했더니 휴무. 생선구이를 먹기로 하고 조금 더 갔다. 생선구이집은 다른 데로 이사를 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을까 하다 지난 주에 여러 끼를 콩나물국으로 먹었음을 떠올리고 더 걸었다. 하릴 없이 마냥 걷다가 터미널 지나 어느 골목에 있는 ― 내 생활권 최외곽에 해당하는 ― 다른 생선구이집을 향했다. 또 휴무. 결국 생활권 밖이라 해도 좋을 만한 곳에서, 결국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갔다. 두어 주 전에 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그땐 황태콩나물국을 먹었다. 이번엔 쭈꾸미비빔밥을 먹었다.

터미널 근처 카페에 앉아 느린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시간이 되어 휴무인 생선구이집 옆에 있는 보리밥집엘 갔다. 늘 보리가 없다며 쌀밥도 괜찮냐고 묻는 그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번에도 그는 기운 없는 얼굴로 맞았다. 식사 하실 거냐는 알 수 없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자리에 앉자 물병을 내어 와서는 요즘 문제가 좀 있어서 밥에서 모기가 나올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가 한참 생각해야 했다. 벌레 모기 말씀이시냐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영문이 너무도 궁금했지만 묻기는 곤란했다. 다음에 오겠다는 ― 아마도 거짓이 될 ―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쭈꾸미비빕밥을 먹은 콩나물국밥집을 지나 가본 적 없는 골목에서 “○○네 밥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식당에 들어갔다. ○○은 주인일까 주인의 자녀일까.[1]『단명소녀 투쟁기』(현호정, 2021)에는 은주네수퍼라는 가게를 했던 은주라는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 구수정은 어린 시절 그 이름을 보며 … (계속) ○○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생긴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여성에겐 어지간하면 붙이지 않을 이름이었고 여성들이 일하고 있었다.) 가격은 싼 편이고 찬은 푸졌다. 메추리알 표면이 아주 단단했다. 고등어가 들어갔을 메뉴가 전혀 없어 보였는데 원산지 표시판에 고등어가 적혀 있어 기이하게 여겼다.

1 『단명소녀 투쟁기』(현호정, 2021)에는 은주네수퍼라는 가게를 했던 은주라는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 구수정은 어린 시절 그 이름을 보며 ‘불경하다’고 생각했다. 불경하다는 단어를 모른 시절이었으므로 큰따옴표는 쓸 수 없다. 그 감정이 저 단어로 표현되는 것임은 나중에 알았다.

2021.12.04-05.(토-일)

2021.12.04.(토)

일찍 일어나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내려서는 라면을 먹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몰랐는데 주문 받던 이가 나를 언니라 부른 모양이었다. 그냥 씩 웃고 말았는데 그는 다른 직원과 몇 마디를 더 주고 받았다. 머리도 길고 마스크도 쓰고 있고 생긴 것도 여자 같아서, 하는 식의 이유 몇 가지를 댔다. 말을 받은 직원은 그래, 다 언니지 뭐, 하며 웃었다. 한 번 더 씩 웃었다.

카페에 앉아 일을 했다, 고 쓰고 싶지만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최근에 본 열 시즌짜리 ― 260편이 조금 못 될 것이다 ― 시트콤, 그새 또 마친 다섯 시즌 짜리 ― 이건 시즌당 편수가 적고 마지막 시즌은 한 편짜리라 총 스물다섯 편, 그러니까 앞의 것 한 시즌 정도의 분량이다 ― 시트콤에 이어 보기 시작한 만화를 봤다. 열 시즌짜리는 처음 본 것이고 다섯 시즌짜리는 이번이 세 번째. 만화는 아마 네 번째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왔다. 잠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어느 채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친구와 잠깐 서점에 들렀다. 친구는 필요한 것을 사고 다음 일정으로 떠났고 나는 괜히 서점을 좀 더 배회하다 다른 친구를 만났다. 근처 카페로 가서 두어 시간 잡담을 나누었다. 늦봄이었나 구한 일자리를 부당하게 그만 두고는 새로 구한 자리에서 먼젓번 일자리에서 보낸 만큼의 시간을, 석 달쯤을 보낸 친구다. 두 직장에서의 일화를 주로 들었다. 나는 생활이 단조롭고 대개 감흥이 없으므로 많이 말하지 않았다.

그 친구를 보내고 또 친구를 만나 지하철을 탔다. 뚝섬역에 내렸나, 십오 분쯤 걸었던 것 같다. 중간에 어느 행사장에 잠시 들렀으나 들어가자마자 나왔다. 존재는 알았지만 그날 거기서 하는 줄은 몰랐던 행사였고 계획에 없던 방문이었다. 다른 친구가 부스를 차려놓고 있는 곳이었는데 너무 금세 나와서 만나지는 못했다. 마저 걸어 공연장에 도착했다.

김원영과 프로젝트 이인의 무용 공연 《무용수-되기》. 지난해에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장애·비장애 문화예술 동행프로젝트” 《같이 잇는 가치》에서 상연된 동명의 공연을 확장한 것이었다.[1]여기에 다녀와서는 「대체 텍스트, 번역, 비평 혹은 패싱의 정치학」이라는 글을 썼다. 무용수 한 사람과 안무·연출을 맡은 두 사람(둘 중 하나는 ‘무용수 한 사람’과 동일인이다), 드라마터그와 의상 디자이너가 아는 사람인 공연이었으므로 관객 중에도 아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오랜만에 본 이가 많았지만 인사를 길게 나누지는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는 같이 간 친구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텐동. 돈부리야 익숙하지만 텐동은 처음인가. 둘이 다르긴 한 건가. 모르겠다.

이튿날에는 노뉴워크 그룹전 《다정한 침해》의 설치가 예정되어 있었다. 동료들의 전시이자 ‘침해자’라는 이름으로 나도 사진 세 장을 낸 전시다. 설치도 돕고 전시도 볼 수 있을지, 이틀을 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하루를 묵고 설치를 돕기로 하고 숙소를 찾았다. 주말 밤에 급히 숙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만실인 곳이 대부분이었고 이따금 방이 있으면 꽤 비쌌다.

2021.12.05.(일)

그래도 어찌저찌 서울에서 잤다. 구기동 전시장까지는 한 시간 반 가량이 걸린다고 했다. 일어나서 대강 씻고 아홉 시 조금 지난 시각에 길을 나섰다. 우선은 ― 간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일정이 바뀌진 않았는지 떠보려고 ―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주전부리를 사갈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는 메시지가 올라 왔는데 배가 조금 고팠지만 역시 조용히 넘겼다. 전시장은 서너 번 가 본 곳이라 어렵지 않게 당도했다. 연락 없이 나타났으므로 사람들이 놀랐다.

조명을 달거나 옮기는 일, 합판과 각목을 잘라 엉성한 경사로를 만드는 일 따위에 힘을 보탰다. 목재를 사서 만들 계획이었으나 근처 목재상 중에는 재단까지 해주는 곳은 없어 동네를 빙빙 돌며 버려진 나무가 없는지를 살폈다. 꽤 많았으나 모두 공동주택의 마당 안에 있었고 길가에 방치된 것은 없었다. 다행히 전시장 창고에서 쓸만한 것이 나와서, 원래 구상보다는 조금 작게, 뚝딱뚝딱 만들었다. 나사가 끊어지거나 뭉개지지고 했지만 큰 탈은 없었다.

전시장에서 동료들이 사온 김밥이나 귤, 커피 따위를 조금 먹었고 네 시쯤 제대로 된 첫 끼니를 먹었다. 전통문화보존명장인가 하는 명패가 붙은, 두부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이었다. 두부 명장이었을까, 나는 청국장찌개를 먹었다. 두부가 들어 있었겠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고양이 사진을 넣은 커다란 액자를 바닥에 세워두고 앞에다 밥그릇을 둔 카페에서 동료가 사 준 커피를 마셨다. 전시장은 나온 것은 해가 진 후. 곧장 터미널로 이동했다.

1 여기에 다녀와서는 「대체 텍스트, 번역, 비평 혹은 패싱의 정치학」이라는 글을 썼다.

2021.12.02-03.(목-금)

2021.12.02.(목)

뭘 했는진 모르겠다. 잡다한 할일이 몇 가지 있었다. 전날 메모지에 적어 노트북 위에 얹어 두고 잤는데, 이날 짐을 싸면서는 메모지는 버려두고 노트북만 챙겨 카페에 갔다. 결국 일은 하지 못했다. 실은 메모지를 두고 가서, 그러니까 할일이 기억나지 않아서는 아니고 그냥 담배 참느라 집중이 안 돼서. 메모지에 뭘 적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일부만 생각 나고 나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귀가해 확인해 보니 그 일부가 전부였다. 그것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영어 위키피디아의 “반복명 목록List of tautonyms” 페이지를 들추었다. 같은 단어가 두 번 반복되는 학명을 모아 둔 페이지다. 마운틴 가젤은 가젤라 가젤라Gazella gazella, 개복치는 몰라 몰라Mola mola, 이런 식의 이름들. 제일 좋아하는 것은 고릴라 고릴라Gorilla gorilla, 그러니까 서부고릴라다. 두 항으로 된 이름까지만 싣는 이 목록에는 없지만, 서부고릴라에 속하는 서부저지대고릴라의 학명이 참으로 백미다 — 고릴라 고릴라 고릴라Gorilla gorilla gorilla.

저 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식의 작명은 동물학에서만 허용되며 식물학에서는 한 글자라도 달라야 한다고 한다.

2021.12.03.(금)

원래라면 친구와 스터디 모임을 해야 했지만 친구의 일정 문제로 한 주를 미루게 되어 정해진 일 없이 보냈다. 책을 읽기로 하고 카페에 앉았지만 거의 읽지 못했다. 평소와 다른 곳에 갔지만 환경이 바뀐 영향 같은 것은 없었고 그냥 늘 그렇듯 그랬다. 식당 결제 기록이 없는 걸 보니 두 끼 모두 콩나물국을 끓여 먹은 모양이다. 전날은 황태콩나물국을 끓여 먹었을 것이다. 잡화점에 들러 커튼 레일을 사다 달았다. 지난 7월부터 내내 미루어 온 일 중 하나다. 커튼을 사진 않았다. 7월부터도 이미 갖고 있었던, 정확히는 그 세 해 전부터 갖고 있었던 — 서울 살 때 쓰던 — 얇은 천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