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우리는 지금껏 만나 본 적 없는 세계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애드리엔 마리 브라운)

원문: adriennemareebrown.net/st-louis-racial-equity-summit-2021-keynote/

세인트 루이스 인종 평등 회담 기조 연설

애드리엔 마리 브라운adrienne maree brown

우리는 지금껏 만나 본 적 없는 세계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그 세계를 현실에 써넣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의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행성의 경이를 체감해 보지 못했습니다. 홈리스, 빈곤, 불평등, 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y, 가부장제, 성차별,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 정상신체중심주의, 강간 문화, 노예제, 환경 파괴, 기후 위기, 감옥이 없는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옥타비아 E 버틀러의 말대로 이는 우리네 ‘끔찍한, 평범한’ 일들의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섬찟한 신념과 행동이 없는 세계를 본 적이 없지만 ― 많은 이들은 이런 신념이나 행동이 일부나마 없는 자그마한 공동체조차 겪어보지 못했지만 ― 그래도 우리는 상상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상상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그저 사실처럼 느껴지는 구조의 대부분을 우리는 사실이라고 배우지만 이것은 실은 역사 속 상상의 산물들입니다. 현실이, 권위가, 전통이, 당연한 전제가 되기 전에 상상된 것들입니다. 미국 역사의 상상은 패권supremacy, 지배domination, 승리victory를 중심에 두어 왔습니다. 인류 역사상 상상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라, 가장 폭력적으로 떠받들어져 온 것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식민지 이주 노동indetured labor과 노예제 ― 노동하는 이들에게는 돌아가는 것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비인간화된 사람들의 착취하는 생산 ― 에 기반한 인종화된 경제 체제를 상상했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쉼 없이 생산하고 규모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규범이자 전제이고, 따라서 우리는 죽도록 일합니다. 혹은 특권을 가진 경우라면 타인들을 죽도록 혹은 죽음의 위험에 처하도록 일하게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착취가 시야에 들지 않게 하기를, 철창이나 국경 너머에 두기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인종화된 자본주의에서 착취 당하는 이들은 대개 유색인Black and Brown people입니다. 하지만, 희다는 것이 인종적 차이나 우월성의 표식이라곤 해도 백인의 패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굉장히 특정하고 제한적인 인종화된 경제적 지위를 이야기하는 것임을 ― 부유하고 장애 없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을 말하는 것임을 짚어 두어야 하겠습니다. 백인 특권이 다른 백인들에게 낙수 효과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백인임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흰 피부의 특권에 다가갈 수 있는 모든 이들이 백인White의 저 엘리트 경제적 지위를 두고 싸우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코로나19 확산 종식을 위해 잠시 멈춰 시민들을, 심지어 백인white people조차도, 돌보지 못한 것이 바로 그래서입니다. 엘리트 집단은 손해를 보기를, 생산을 멈추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57만 명의 목숨이 자신들의 손익 결산보다 중하다는 시나리오는 상상치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하지만, 바로 지금, 그 모든 생명과의 관계 속에서 상상하는 법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 선주민 연인들은 제게 우리가 미래의 일곱 세대를 상상하고 그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함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같은 장기적인 관점은 우리의 온 존재를 시간을 넘나드는 가족 관계 속에 밀어 넣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승이자 벗인 테리 마셜Terry Marshall이 상상력 전쟁이라 칭한 것을 치르고 있습니다. 억압적인 역사적 상상력, 패권의 상상력을 의문에 붙이는 순간, 정의를, 자유를, 옳은 관계를 꿈꾸는 순간, 우리는 상상력의 전사가 됩니다. 조직가가 됩니다. 우리의 사명은 억압보다 강력한, 패권보다 정직한 전망을 함께 꿈꾸는 것입니다. 이윽고 상상에서 새로운 현실로 힘껏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퍼거슨에서 일어난 [경찰이 흑인을 사살한] 일들은 우리의 상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이 생각해 온 무엇이 가능한지가 하는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경찰관이 자신이 위험해 처했다고 상상하고 우리네 아이들, 배우자들, 부모들, 친구들을 죽일 수 있는 세계에, 우리는 질려버렸습니다.

브롱크스에서 아마두 디알로Amadou Diallo가 살해당한 당시 저는 대학에 있었습니다. 캠퍼스 바로 북쪽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청년이었던 제게 충격을 주었고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제게 어떤 틀이 되었고 저를 겁에 질리게 했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시급히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CPR이라는 캠퍼스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무엇의 약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오래 가진 않았지만, 이것이 철폐운동가abolitionist로서의 제 출발점입니다. 지금 저는 저와 비슷하게 여기서 일어난 일들로 각성한 한 세대를, 그리고 여러분이 일곱 해 전 이 주에 일어난 일에 어떻게 떨쳐 일어났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판과 분노에 빠진 후에야 철폐의 길에 나서곤 합니다. 우리는 불평등을, 우리의 공동체가 백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유로 구금되는 것을 봅니다. 해로운 존재들이 잡혀 들어갔다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적어진 채로, 살아 남으려면 법을 어기는 것밖엔 그다지 수가 없게 된 채로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런 일들이 대체 언제쯤 끝날까요? “대체 언제쯤 끝날까”, 그 답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다음에 올 세상을 상상할 때 끝날 것입니다. 우리가 다음에 올 세상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할 때, 바로 그때가 철폐의 때일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은 한편으로 기억에서 옵니다.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 모두의 선조는 이 지구 어딘가에, 여러 유산을 물려받은 이의 선조들은 이 지구상의 여러 곳에, 뿌리 내리고 있었습니다indigenous. 전 세계적 식민화의 이전에 존재했던 이 선조들은 이 땅의 면면과, 그리고 서로와 갖가지 방식으로 관계 맺으며, 땅과 삶을 지키며 책임 있게 살았습니다. 시간과 노예제와 자본주의와 백인을 자처하는 자들the construct of whiteness로 인해 고향과 이웃을 잃고 쫓겨 나온 우리는 기필코, 그런 삶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상상해 내야 합니다. 오늘날 살아 있는 선주민indigenous people 대부분은 관계를 부정하는 현대 사회의 속도와 압박에 맞서 유구한 전통과 문자 그대로의 땅을 찾고 또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선조들이 물려준 기억 주머니 속에 살아 있는, 우리 DNA 속에 살아 있는 어떤 미래-과거를 상상해 낼 수 있습니다. 선주민의 리더십을 발견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느 땅을 딛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그 첫걸음입니다. 저는 디트로이트에, 아니시나베Anishnaabe 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활발히 활동하는 아니시나베 조직가들이 저와 사람들에게 지식과 기억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디주칸Adizookan 같은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상상한 바를 아낌없이 나눕니다.

우리의 상상은 또 한편으로 우리 자신의 살아 있음을 음미하는 데에서 옵니다.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우리가 스스로의 에로틱한 살아 있음을 경험하고 나면 보잘것없는 데에, 고통에, 자기부정에 머무는 것이 더는 불가능해진다고 썼습니다. 저는 이 세계의 불평등을 변혁하기 위한 활동을 할 때 그러한 살아 있음을, 참된 무언가에 닿아 있다는 감각을, 혈관을 타고 도는 연결의 감각을 느낍니다. 우리는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전쟁과 스트레스와 충족되지 않는 욕구와 외로움과 거짓이 우리가 살아갈 세계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꿀 수 있습니다. 엄밀한 정치적 분석 따위 없이도 세상이 달라져야 함을, 우리가 바꿀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 하나하나가, 우리가 함께 할 해방된 미래의 조각들을 속에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유하게 물려받은 경험들, 또한 우리가 살아온 경험들로 빚어진 그 조각들을 끄집어내려면 상상력을, 참된 자아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과학소설, 사변소설, 공동 구상collaborative ideation에 걸쳐 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소설은 만약에 그렇다면what if, 그렇게만 된다면if only, 이대로 나아간다면if this goes on, 하는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사회 정의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과도 같은 우리네 삶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우리의 자유가 흥정거리가 되지 않는non-negotiable, 우리가 만족스럽고 상호의존적인 삶을 사는 세계를 함께 꿈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감옥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할까요? 그런 세상에서 참여하고 책임지고 성장하고 그 결실을 누리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인민을 복종시키는 군대가 없는 곳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신이 납니다. 군대 없는 땅, 코스타 리카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즐거움이, 공동체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어린이가 똑같이 건강한 식사, 놀이를 하고 이것저것 만들 공간, 가족과 마을의 든든한 사랑, 시신체적, 감정적, 성적 폭력으로부터의 안전, 질 좋은 교육을 누릴 수 있다면요? 감정적, 신체적으로 폭력적인 처벌을 견딜 일 없이 자신의 행동과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 주는 환경에서 자란다면요?

우리가 인종, 성별, 계급에 따라 단정되는 정체성에 속박되지 않고outside of any preconceived identity-value construct 너머에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으로 삶을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흑인이라는 것our Blackness이 공동의 트라우마와 강요된 회복의 자리가 아니었다면, 그건 어떤 느낌일까요? 지금 세대에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의 역사에서 흑인이라는 것의 의미를 작디작게 만든다면요?

만약에 그렇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민주주의와 합의consensus와 협동collaboration을 그저 정부가 우리를 대변하며 행하기를 바라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서 배우기만 했더라면.

우리의 경찰이 살상무기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위해를 중재하고 조치를 취하도록 훈련받기만 했더라면.

우리에게 협력경제가 있기만 했더라면. 우리가 사유하고 실천할 때 희소성에 얽매이지 않을 수만, 풍요를 누릴 수만 있었더라면.

그렇게만 됐더라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운동이 이대로 나아간다면, 우리 종species은 지구에서 살아남고 별들 사이에 뿌리내리는, 옥타비아가 『씨 뿌리는 자의 우화the Parable of the Sower』와 『달란트의 우화the Parable of the Talents』에서 선물처럼 보여준 미래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철폐운동이 이대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인간이 서로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퀴어·트랜스 정의 운동이 이대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옭아매고 상처 주는 젠더라는 구축물construct과 이성애 규범의 패권을 무너뜨리고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수없이 다양한 사랑, 삶, 쾌락의 경험에 진정으로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만약에 그렇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이대로 나아간다면.

바로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상상력을 일깨우는 역사적 국면에 있습니다. 이 질문들이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중요한matter 존재인 꿈들을 서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고 ― 흑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의 생명만이 아니라 흑인 퀴어 트랜스 여성, 논바이너리 장애인의 생명도 중요하다고 ― 서로를 향해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들의 이름을 말할 것이며 이 생명들이 모두에게 중요해질 때까지 직접행동을 전개하고 정책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금의 이 정치적 순간에 관해 제가 쓴 시 한 편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한숨 돌리는 것이다this is not justice, this is respite」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최초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숨쉬기,
함께
숨 쉬지 않는 자 유죄
(할렐루야 할렐루!)
음, 그들은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한다
(그도 놀란 모양이다)
자그마한 연대조차 드물어
우리의 처지가 적나라하다
고요한 고함이 우리 몸을 지난다 마치 (기억하라) 우리가 한몸인양 하지만
실은 합창이다, 이 많은 마음의
크디큰 공허감
이만한 희열
이만한 분노
우리의 비애
안도
한번에, 출렁거리며,
기뻐 외친다
이내 불만에 한숨 돌리고
이 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순간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하지만
다음 숨의 세상에서
그는 지금 아버지이리
아니면 여기 우리처럼 즐거이
살아 있음을 들이쉬고 자유를 내쉬는
삶에 섞여든 어느 날
복 받아 알려질 일 없는
다음 숨의 세상에선
그들 모두 오늘 살아 있으리
그리고 그 부재의 존재는
헤드라인을 흐린다
거리를, 혼돈을, 분노를 많이도 불태워야 했다
소리지르면서 사수하면서
아이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면서
모든 진실이 아닌 것과 욕지기 나는 취약성과
후회와 싸우면서 이미 위험에 처한
너무도 많은 소중한 생명의 무게와 싸우면서
이 죄책감을 얻는다, 죄책감을, 죄책감을
우리는 오늘 밤 이 군중을 높이 찬양하리
우리는 오늘 밤 우리의 전사들에게 감사를 바치리
우리는 오늘 밤 고전 끝에 고지를 점령하리
내일 우리는 전장으로 돌아간다
겨우 네 하고 말하면서도
깊이 슬퍼 애도해야 하는
우리는 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한숨 돌리는 것이다

한숨 돌리는 시간은 우리의 목숨을 지켜줄 것입니다. 휴식이 우리의 목숨을 지켜줄 것입니다. 또한 휴식은 우리로 하여금 멈출 줄 모르는 지금의 고단한 긴급사태에서 잠시 내려올 수 있게, 우리에게는 꿈꿀 책임 또한 있음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흑인의 생명이 중요한 세상, 강간 문화가 끝장난 세상, 우리가 이 별에서 우리의 자리를 되찾는 세상, 사랑, 중재, 규칙boundaries and consequences을 통해 서로에게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의 멘토 그레이스 리 보그느Grace Lee Boggs는 ‘이 세상의 시곗바늘은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느냐’고 묻곤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우리는 ‘만약에 그렇다면’과 ‘그렇게만 된다면’이 실현되고 해악이 계속될 수 없는cannot go on 세계를 함께 꿈꾸는, 상상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런 미래들을 상상한다는 것, 이런 이야기들을 쓴다는 것이 우리가 이런 꿈을 살아 낼 방법을 이미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지난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촉진자facilitator이자 매개자mediator로 일해 왔고, 제가 중재를 요청받은 분쟁의 상당수는 우리가 스스로나 타인의 실수를 책임질 권한은 없으면서도unable to be accountable 그에 화를 낸다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위기는 화급하지만 급진적인 상상력에서 나오는 변혁은 느리고 관계적이며 불완전한 작업입니다. 우리는 배우는 중입니다.

올해 초, 저는 흑인 여성 리더들이 버려지는 패턴을 또 한 번 확인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고, 처음엔 너무도 아파서 아무것도 쓸 수 없었습니다. 겨우 쓰지 시작하자 많은 것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침내 「패턴 깨부수기Disrupting the Pattern」라는 글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1][역주]지난 4월에 게시된 글로, BLM 재단 설립자 중 하나인 패트리스 컬러스Patrisse Cullors가 공격받은 ― 공금 횡령 의혹 등 ― 일을 다루고 있다. … (계속) 흑인간에든 지구와 서로에 대한 바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는 다른 이들과 인종적으로 구축된 선들을 가로질러서든 현대를 실천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몇 가지에 관하 썼습니다.

“비인간화가 벌어질 때면 늘,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이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유력한 급진적인 흑인 여성을 공격해 이득을 얻는 것이 누구인지, 흑인을 위해 물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운동들 내부의 충돌을 조명해 이득을 얻는 것이 누구인지 자문해 보십시오.

당신이 흑인의 성공과 자유는 위험하다고, 특히 흑인 여성의 성공과 자유가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이득을 얻는 것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회 정의 운동이 우리 대다수가 생활임금도 못 받으면서 추세와 인류애의 변덕에 휩쓸리며 몇 년째 일해 온 영역임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어떤 배신이랄 일, 어떤 권력의 부패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 그야말로 여간해선 제 인생의 수십 년을 사회 정의 운동과 동포의 해방에 바친 흑인 여성이 제게 남겨진 유산을, 우리를 배반하는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리라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족하다는 거짓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해방 운동이 풍요롭기에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거짓말을,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빛나는 리더 여럿이 동시에 있을 수는 없다는 거짓말을.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도 풍요를 누릴 길들이 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대한 힘을 가진, 흑인 해방을 위한 사회 운동이 겨우 이만한 공격을 받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신공격 수준입니다. 이것은 흑인 해방을 위해 우리가 열어가는, 불완전한 모든 노력에 대한 공격입니다.

당신이 모든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저속하고 외설적이고 분열을 초래하는 거짓 정보다 돈이 되는 소셜미디어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왜곡과 조작에 능한 이들이 권세를 부리는 곳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를 이끄는 이들을 잡아먹으려 드는 짐승들에게 먹이를 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죠. 특히나 진실을 알기 위해 캐묻고 조사할 시간이 없다면, 특히나 대뜸 판결을 요청받은 참이라면 말입니다.

당신이 한 적 없는 일로 공격받을 때 어떤 위치에 놓이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 당신이 한 일에 어떻게 책임질 수 있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 차례가 되었을 때, 살해 협박, 신상털기, 기타 사생활 침해, 조직적인 괴롭힘과 끝에 버려지고 싶은지를요. 무슨 일에서든 리더가 될 생각이 있다면, 당신 차례가 오고 말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 문제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당신이 바로 그 문제일 때, 원칙에 입각한 투쟁, 원칙에 입각한 비판이란 어떤 것일지를.

운동이란 그저 우리가 만들 미래에 대한 신념의 터일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우리의 노고와 배움에 대한 신념을 실천해야 하는 터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당신의 행동이 혹은 행동하지 않음이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공격받을 때 운동이 어떻게 응답할지에 한 가지 선례가 될 것임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어떤 흑인 리더의 운동에 비판적이거나 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이유로 백인 우월주의의 공격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지 않을 참이라면, 확인해 보십시오. 당신이 꿈꾸는 세계에 어울리는 일인가요?

제가 존경하는 리더 대부분은 당대에 공격을 받았고, 이는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제 동포에 대한, 우리 동포에 대한,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혁명 운동은 개인적인 것이든 체제상의 것이든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을 뜯어고치는 일입니다.

부정직, 불신, 억압 앞에서 사랑이 무엇을 행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은 진실을 말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최선을 믿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흑인 여성 리더를 소리 높여 사랑하기를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결국은, 오드리 로드의 가르침이 여전히 옳습니다. 당신의 침묵은 당신도 다른 누구도 지켜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공격당하고 비인간화 당하는 모든 곳에서, 흑인 여성 리더에 대한 사랑을 외치십시오.

사랑은 우리에게 집이 되어 줍니다. 사랑은 아무 조건 없이, 우리가 함께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사랑은 우리가 우리 동포를, 우리 종을 위해 해 온 바를 봅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의 집입니다.

저의 인종 정의 운동은 상당 부분이 흑인으로서의 저의 이야기와 전망 속에서my own Black story and Black offer 연대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제가 알기로 이것은 이 세상에서 흑인의 다른 영광으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지 않습니다. 오히려 풍요를 더합니다. 저는 저를 사랑하고, 해방 운동이 영원한 저의 있을 곳이라 믿습니다. 저는 실수해 왔고 실수할 것입니다. 여전히 해방을 향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연대에 마음이 동하신다면, 함께 말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흑인 여성 여러분.
사랑합니다, 운동가 여러분.
당신에 관한 뒷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공격당할 때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과, 당신을 위해, 당신 편에서, 당신 주위에서, 연대하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자유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해두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해방된 세상을 상상합니다. 그 전에, 저는 우리가 그 해방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을,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 경우라도, 깊이 존경하는 세상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저의 시선은 그저 자유로운 상태 너머를 향합니다 ― 제 꿈은 목적지가 아니라 계속 이어질 실천임을 알고 있습니다. 상상 다음은 구상이기 때문입니다 ― 이 꿈을 어떻게 구조와 정책과 합의의 안ideas으로 만들어야 할것인가? 어떻게 지반을 일구어야 할 것인가?

안을 그리고 나면 반복에 들어섭니다 ―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

제가 너무도 많은 것을 상상하고 있음을 압니다. 위해와 패권의 순환으로부터의 해방, 우리 몸과 지구에 대한 주권적이고 안전한 관계, 정체성부터 경제까지 모든 것을 사랑을 지침으로 이해하기. 이런 상상들은 여전히 이상하고 낯설고 … 퀴어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창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의 첫머리에 인용한 엘라 베이커Ella Baker의 말로 끝맺어 보겠습니다.
“그저 제 꿈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역주]지난 4월에 게시된 글로, BLM 재단 설립자 중 하나인 패트리스 컬러스Patrisse Cullors가 공격받은 ― 공금 횡령 의혹 등 ― 일을 다루고 있다. 컬러스는 5월 28일자로 사임했으며, 본인에 따르면 이는 의혹과 별개로 1년 이상 준비한 일이다. 공금 횡령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나온 바 없으며 BLM 재단 역시 의혹을 일축했다.

2021.10.31-11.09.(일-화)

뭐하다 이렇게 일기가 밀렸나.

2021.10.31.(일)

낮에는 오랜만에 의림지를 산책했다. 오전에 나설 생각이었지만 늦게 일어났다. 점심은 가는 길에 먹었던가. 황태해장국을 주문했는데 (수제비 같은 것에 곁들여 나오는) 보리밥이 나왔다. 잘못 나온 것이라곤 생각지 못하고 먹어버렸고, 이따 제대로 나온 공깃밥도 다 먹었다. 의림지에서는 국악단 무대를 지나쳤다. 풍어가 같은 것을 부르는 모양이었는데 한복을 입고는 진녹색 나일론 그물을 들고 덩실거리고 있었다. 한 명은 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잔디밭에 사람이 많았지만 무대를 보는 관객은 단 두 명. 알고 보니 아직 리허설 중이었다. 복장과 객석은 바뀌겠지만 그물은 그대로인 채로 공연했을 것이다.

오후엔 일했을까. 저녁은 뭘 먹었을까. 친구와의 대화록에 따르면 야식으로는 명란비빔밥을 먹었다고 한다.

2021.11.01.(월)

어디서 뭘 먹으며 했는진 몰라도 종일 일했을 것이다. 원고 마감일이었다. 마감에는 실패했다. 요샌 모든 원고를 이틀쯤 늦게 보낸다. 6일에 있는 학술대회에 쓸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만들어 보냈다. 아무 내용 없이, 안 만들진 않았다는 점 정도를 내세울 수 있는 수준으로. 이건 마감을 맞췄다.

2021.11.02.(화)

마찬가지로 어디서 뭘 먹으며 했는진 몰라도 종일 일했을 것이다. 원고 마감일 다음날이었다. 마찬가지로 마감에는 실패했다. 늦게 잤을 것이다.

2021.11.03.(수)

일찍 일어나 원고를 마무리해 송고했다. 서울에 갔다. 전시 《몸이 선언이 될 때》의 마지막 날이라 한 번 더 보아 둘 참이었다. 다음날엔 전시장을 철수한 후 같이 식사를 할 거래서, 화상회의로만 본 기획자나 참여 작가들에게 인사도 할 겸 서울에서 하루 자고 오기로 정해둔 참이었다.

이미 숙소를 예약해 두었는데 이튿날 식사는 늦은 시각으로 잡혀 못 가게 되었다고 말해 둔 채로 출발했다. 사람이 많아서 전시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전시장을 지키러 나온 작가 한 명과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았다.

저녁에는 화상회의가 있었다. 깜빡한 탓에 회의를 할 만한 공간에 가 있지 못했고, 카메라도 마이크도 끈 채 채팅으로만 참여했다.

2021.11.04.(목)

저녁 식사가 취소되고 점심으로 일정이 변경되어, 아침에 숙소를 나와 전시장 근처의 어느 식당으로 갔다. 기획진, 참여 작가 일부와 함께 먹었다. 생각해 보니 초면인 이들과 통성명을 따로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는 전시장으로 가서 해외 참여 작가인 일렉트라 KB의 잡지를 한 권 샀다.

그리고는 노뉴워크 동료의 작업실 스튜디오 포카로 이동.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접시 두 장을 샀다. 동료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났다. 아직 이른 오후였으므로 근처 카페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고 지하철역까지 십여 분 걸으며 낡은 상점들을 구경했다.

늑장을 피우다 예정보다 사십 분 늦은 버스를 타고 제천으로 돌아왔다. 집을 비운 사이 도착한 택배 상자를 뜯어 거실 조명을 교체했다. 얼마 전에 보낸 원고에 보완 요청이 온 것이 있어 주석을 몇 개 추가해 다시 보냈다. 쓰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쓰기 시작하기까지가 오래 걸렸다.

2021.11.05.(금)

전날 집에 오던 중에 부고를 받았다. 퇴임하신 학과 교수님의 부고. 대학원에 와서 뵈었으니 만으로 10년을 조금 넘겼다. 마지막으로 뵌 것은 2년 반쯤 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시외버스를 타고 성남으로 갔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앞에서 친구를 만나 함께 조문했다. 저녁까지 앉아 있었다.

잠은 급히 잡은, 평소와 다른 숙소에서 잤다. 넓었다. 레지던스 형태의 공간이라 조리도구는 있지만 세면도구는 없어 칫솔을 사러 잠시 나갔다 왔다. 그 참에 피자를 사다 먹었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잠들었으려나.

2021.11.06.(토)

학술대회 발표가 있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대회장에 갔다. 세 명의 발표와 각각에 대한 지정토론을 듣고 네 번째로 발표했다. 급히 쓰고는 제대로 다시 보지 않은 글을 읽었다. 이렇게 써도 되나 싶었지만 이미 늦었지. 지정토론에 답하면서는 이상한 말을 종종 했다.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고 기록도 남는 행사였는데, 나중에 친구가 캡처해 준 것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저녁 식사는 빠지고 곧장 터미널로 이동해 제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2021.11.07.(일)

낮에는 뭘 했을까. 아마도 다음 주 스터디에 발제할 글을 번역했을 것이다. 원래는 5일에 할 스터디였고 4일에 밤새 할 번역이었다.

저녁에는 산책했다. 논밭 사이를 가로질러 아무렇게나 한참 걷다 보니 대형마트 가까이에 이르러 있었다. 온 김에 장이나 보기로 했다. 찬거리를 좀 샀고 가스버너를 하나 샀다. 한 구짜리 전기 렌지를 쓰고 있는데, 밥을 전보다는 제대로 해먹다 보니 한 구로는 부족했고 부엌 배선이 허술하게 되어 있어 두 구짜리로 바꾸기는 조금 걱정 되었다. 한참 생각했는데 즉흥적으로 샀다.

2021.11.08.(월)

번역했다. 이번에는 아르바이트로 맡은 글이다. 스터디 발제문이나 이거나 주제는 모두 장애. 저녁에는 화상회의가 있었다. 꽤 길었는데 평소와 마찬가지로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내 의견을 물은 이가 있었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별 의견이 없다고 답했다. 이 팀에서는 주로 무언가를 보조하는 역할만을 맡으므로 ― 그런 것만 맡을 수 있으므로 ― 정말로 별 의견이 없다.

아마 이날 밤에 거실등 나머지 하나를 갈았을 것이다. 침실에 노랗고 어두운 등을 달면서 떼어 둔 등을 거실에 달았다. 침실등은 언제 갈았을까, 전날이었나. 부엌에도 등을 하나 걸었다.

거실에 원래 달려 있던 낡아 보이는 ― 외관이 상해서는 아니고 요즘은 잘 사지 않는 디자인이라서, 그리고 형광등 하나가 이미 수명을 다한 상태여서 ― 등기구에는 먼지가 전혀 쌓여 있지 않았다. 의의로 최근에 단 걸까, 했는데 떼어보니 안쪽에 벌레 사체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사하면서 외주한 청소 때 등까지 닦아 주신 걸까. 늘 벌레가 많은 집에 살면서 벌레를 잡지 않았으므로 등에는 벌레 사체가 쌓였고 늘 청소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등을 청소해 본 적은 없다.

2021.11.09.(화)

일찍 일어나 잠시 시내에 다녀 왔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으므로 조금 더 자볼까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앉았다. 종일 번역했다. 전날 하던 것과 전전날 하던 것을 번갈아 했다. 점심은 라면. 저녁은 버섯덮밥. 야식은 라면. 저녁엔 새송이덮밥을 할 생각이었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팽이버섯밖에 없었다. 팽이와 청경채와 양파로 만든 오묘한 맛의 덮밥을 먹었다.

일하는 틈틈이 책상과 탁상용 램프를 수리했다. 책상은 침대 헤드에 다리를 단 것이어서 얇은 상판이 조금씩 휘어가던 차였다. 전에 쓰던 책상에서 떼어둔 철제 지지대를 달았다. 원래 있던 구멍에 맞는 머리 크기의 나사가 없어 지지대에 구멍을 뚫었다. 길이가 맞는 나사가 부족해 나사 하나를 잘랐다.

탁상용 램프는 나사가 헐거워서 머리 각도가 고정되지 않는 상태였는데 나사 안쪽에 고무링을 덧댔다. 낡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애초에 헤드를 자주 움직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물건이라 한 번만 움직여도 나사가 풀린다. 10년 전에 산 직후부터 덜렁거리는 채로 썼다. 그래도 움직이다 보면 풀리겠지만 일단은 훨씬 낫다.

일은 한 시까지만 할 생각이었지만 한 시 반 조금 지나서까지 했다. 두 시 반쯤까지 잠이 들지 않았다. 허기가 져서 라면을 먹고 다시 누웠다. 세 시 좀 지나서 잠들었을 것이다.

해로운 침묵: 사라진 성·장애 논의

얼마전에 우연한 기회로 Loneliness and its Opposite: Sex, Disability and the Ethics of Engagement의 일부를 읽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사례를 중심으로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다룬 책이다. 아래는 스웨덴의 한 학생이 쓴, 이 책을 읽고 쓴 글이다.

원문: Ebba Olsson, “Harmful Silence: The Missing Discussion of Sex and Disability,” Uttryck Magazine, 2020. https://www.uttryckmagazine.com/harmful-silence-the-missing-discussion-of-sex-and-disability/

해로운 침묵: 사라진 성·장애 논의

에바 올슨

장애인의 접근권은 대개 공적 영역이나 공공장소에의 접근과 관련해 이야기된다. 섹슈얼리티와 관계라는 사적 영역에의 접근은 어떠한가? 얼마 전, 한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외로움과 그 반대항: 섹스, 장애, 만남의 윤리학』(Don Kulick & Jens Rydström, Loneliness and its Opposite: Sex, Disability and the Ethics of Engagement, Duke UP, 2015.)이라는 책을 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 어쩌면 전혀 ―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 확실한, 성과 장애를 다루는 책이다.

『외로움과 그 반대항』의 저자들은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영위되는지를 비교연구했다. 중증 뇌성마비를 비롯한 상당한 지체 장애가 있는 이들과 중증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상당한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연구다. 이들은 “스웨덴에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부정되고 억압되고 좌절되는 반면 덴마크에서는 장애인의 섹슈얼리티가 인정되고 논의되고 조력받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람들 대부분의 삶에 있어 성sex이란 중요하므로, 스웨덴의 상황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UN은 「장애인의 기회균등을 위한 표준규칙Standard Rules on the Equalization of Opportunities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에서 섹슈얼리티를 언급한다. “장애인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경험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고 부모가 될 기회를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이 문구에서 섹슈얼리티는 평등의 문제로 간주된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친밀한 유대와 성적 만족의 경험에 가치를 둔다. 정의로운 사회는, 모두에게 성적 파트너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평등한 토대 위에서 섹슈얼리티와 관계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다른 불평등에 맞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듯, 오로지 장애를 이유로 친밀성에의 접근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우리 스웨덴에는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현장에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가 무시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룹홈에서 시간제로 일하며 장애형제가 있기에 어느 정도 스웨덴의 제도를 경험한 바 있다. 이런 환경에 있음에도 나는 오직 성폭력 논의에서는 성이라는 화두를 마주칠 수 있었다. 성폭력 논의는 중요하다. 하지만 섹슈얼리티의 긍정적인 측면을 전혀 말하기 않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방법일까? 게다가, 중증장애인이 섹슈얼리티에 접근할 수 있기에는 포괄적인 성교육 역시 부족하다. 그들에게는 조력facilitation이 필요하다. 샤워 같은 활동을 조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 활동지원sexual assisstance을 제공해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바로 여기서 논의가 돌연 중단된다.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성 활동지원을 제공할 방법이 있을까? 덴마크는 해답을 찾았다. 덴마크 모델의 토대는 「장애에 구애되지 않는 섹슈얼리티 가이드라인Guidelines about Sexuality – Regardless of Handicap」으로, 이 문서는 활동지원인helper이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분명히 명시한다. 활동지원인이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사람이 자위를 하거나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을 수 도록 돕는 것은 허용되지만 활동지원을 받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은 금지된다. 활동지원인은 요청인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반드시 직접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치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관해야 한다. 덴마크는 또한 이 지침에 따라 성인들을 지원하는 성 자문가sexual advisor를 양성한다. 예를 들어, 자위를 하는 데에 활동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 성 자문가는 당사자와 함께 활동계획을 짠 후 자위기구와 함께 침대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성생활에 사적인 영역이 없게 되지만, 어차피 중증장애인의 삶에 사적인 영역은 얼마 없다. 성적인 만족을 평생 박탈당하면서 사생활을 지킬 것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가 판단할 일이다.

덴마크 모델 최대의 논쟁거리는 성노동자와의 만남을 지원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성 활동지원에 있어 성노동은 일부분일 뿐이다. 또한 성구매가 불법인 스웨덴과는 무관한 문제다. 그런데도 성 활동지원 논의는 성노동 논의로 끝나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덴마크 모델은 다른 ― 나은 ― 가능성을 여럿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섹슈얼리티를 이불 밑에 치워두지 않고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성 활동지원이란 성노동이거나 성폭력 둘 중 하나라고 지레짐작하는 대신, 우리는 스웨덴에서 장애인의 성을 조력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수십 년간 장애인이 강제 단종을 당하게 만들었으며 이 끔찍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중증장애인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권리를 가진 성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어린이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전히 성에 대한 관심에는 눈을 감는다. 아무런 지침을 만들지 못해 여전히 사람들을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으면서도 “성은 사적인 문제”라는 식의 핑계를 댄다. 우리가 이 문제를 피하기만 하는 것은 곧 사람들에게서 친밀성과 성적 만족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다. 우리는 왜 이다지도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두려워하는가?

괴물 뒤집기: 장애 동화로 읽는 《슈렉》

원문: Alice, J., & Ellis, K. (2021). Subverting the Monster: Reading Shrek as a Disability Fairy Tale. M/C Journal, 24(5). https://doi.org/10.5204/mcj.2828

내용을 먼저 보지 않고 번역을 시작했는데, 재밌는 글은 아니었다.

2021.10.30.(토)

자정쯤 누웠다. 여섯 시가 지나 잠들었고 열두 시가 지나 일어났으므로 금세 잠들기는 감히 바라지 않았다. 두어 시간은 그냥 ― 시트콤을 보며 ― 흘려보내고 차차 잠들 노력을 할 요량이었다. 두 시에 이르자 허기가 졌다. 일어나 짜장라면을 끓였다. 먹었다. 멜라토닌도 한 알 삼켰다. 누웠다. 그러고도 네 시 경까지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뒷덜미에 불안의 감각 ― 불안의 감각이란 말이 썩 어울리지는 않을 어떤 통증인데, 달리 표현할 말은 찾을 수 없다 ― 이 퍼졌다. 한 시간 넘게 줄곧 뒤척였다. 다시 일어나 담배를 피우고야 겨우 잦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섯 시까지도 잠은 들지 않았다. 일곱 시에 알람이 울 예정이었다. 잠은 포기하기로 했다. 시트콤을 보다 말다 하며 한 시간 반쯤을 보내고 일곱 시 반에 일어나 채비를 했다. 여덟 시가 좀 지나 집을 나섰다. 정류장 전광판에 도착 예정 버스가 표시되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확인해 보니 몇십 분은 지나야 올 성 싶었다 (왜인지 정류장 이름으로 검색하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정확한 도착 예정 시각은 확인하지 못했다).

시내까지 걸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친구가 준 쿠폰으로 커피와 조각케익을 주문했다. 케익이 품절이라며 다른 것을 고르라고 했다. 잠시 들여다보다 티라미수를 골랐다. 추가금액 200원을 카드로 결제했다. 후회했다. 맛은 문제가 없었다. 코팅된 종이 위에 얇은 비닐을 둘러 얹어 둔 몇 가지 조각케익을 두고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티라미수를 고른 것을 후회했다.

한 시간 반 넘게 (시트콤을 틀어두고) 웹서핑만 했다. 한동안은 쇼핑몰을 뒤졌다. LED등과 전등갓을 찾았다. 이 집에 와서 손을 댔거나 댈 예정인 것의 대부분은 기능이나 위생상의 문제가 있는 구석들이다. 뻥 뚫린 창에 커튼을 달고 찝찝한데다 문이 망가지기까지 한 욕실장을 갈고 물이 안 튈 수 없는 곳에 달린 휴지걸이를 옮기고 욕실용 선반을 달고 세면대 배수관을 갈고 ― 물살을 잘 이기고 있으므로 이제 실리콘을 발라야겠는데 화장실은 늘 젖어 있으므로 마땅치가 않다 ― 식기건조대를 갈고 싱크대 틈에 실리콘을 새로 채우고 거울에 가려지게 된 전등 스위치를 옮긴 것이 그렇다. 전선 몇 군대를 새로 이을, 침실을 도배할, 욕실 문틀에 페인트를 칠할 예정인 것도 그래서다.

다만, 기능에 문제가 없고 딱히 찝찝하지도 않은데도 그저 보기 흉해서 손을 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 하나가 바로 전등이다. 거실에는 두 개의 형광등이 달려 있는데 등기구의 생김새도 설치한 매무새도 모두 흉하다. 침실등 역시 비뚤게 달려 있다. 침실등을 거실로 옮겨달고 침실에는 좀 더 어두운 등을 달 생각이다. 남은 거실등 하나는 그대로 두거나 새것을 사다 달 것이다. 침실과 거실에 달(지도 모를) 것을 검색했다. 주문하지도 확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컴퓨터를 끄고 황정은의 『일기』를 마저 읽었다. 어제 반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삼분지이 가량이 남아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세월호나 산업재해에 관한 문장들이 종종 나왔다. 성소수자에 관한 말도 있었다. 책꽂이나 갈피표에 관한 문장도. 열두 시 반까지 읽기로 하고는 시계를 보지 않고 책을 읽다 이쯤이면 됐겠다 싶어 책을 덮었는데 뒤늦게 확인하니 아직 이십 분이 남아 있었다.

다시 폈다가 금세 덮었다.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세가 꺾인 탓이었는지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클래식 기악곡 너머로 카페 스피커의 음악이 혹은 건너편 테이블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온 탓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건너편 이들의 대화는 잊었다. 저 시점에 카페 스피커에서 나온 음악은 Juanjo & Amigos의 “Cosas de Amor”라고 했다. 원래 알던 곡은 아니다. 정확히는 지금도 모른다. 휴대전화의 소리 인식 기능으로 검색했더니 저 곡목이 떴는데,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곳은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다.

집까지 걸었다. 중간에는 오던 길을 돌아가 잡화점에 들렀다. 80ml짜리 페인트와 세탁조 세정제를 샀다. (페인트만 기억나고 나머지 하나는 기억나지 않았는데 페인트 옆에 아무것도 없어 방을 한참 살폈다. 페인트 옆에서 찾았다.) 면도날도 살 생각이었는데 그만 잊어버렸다.

집에 와서는 곧장 엎드렸다. 한 시간 좀 넘게 시트콤을 보다가 그제 야식으로 먹다 남아 (그제 일기에는 빼먹은 것 같다) 얼려 둔 피자를 데워 먹었다. 바나나도 두 개 먹었다. 다시 누워서 시트콤을 보다 다섯 시쯤 일어나 이불을 걷고 청소기를 돌렸다. 가진 이불의 전부이자 침실에 깔려 있는 이불의 전부 ― 홑이불 둘과 솜이불 둘, 메시 소재 매트의 커버 ― 와 베개 커버를 챙겼다. 솜이불만으로 커다란 트렁크가 가득 찼다. 나머지는 등가방에 넣었다.[1]나는 대개 등가방이나 배낭이란 말을 쓰는 것 같다. 백팩이란 말도 안 쓰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등가방이란 말은 잘 안 쓰는 것 같다. 배낭과 백팩은 … (계속) 대용량 세탁기 한 대를 쓸 생각이었으나 하나뿐인 25kg급 세탁기에는 이미 빨래가 돌아가고 있었다. 25분이 남았다고 했다. 그 정도면 기다릴 수도 있지만, 지난 번엔 밤에 온 터라 의식하지 못했던 세탁소 카운터가 운영중이어서 주인인지 점원인지가 앉아 있었으므로 곧장 빨래를 시작하기로 했다. 20kg급 세탁기에 솜이불 두 채를 넣었다. 거의 늘 표준코스만 쓰지만 실질적인 용량을 초과한 것 같았으므로 ― 안내문에는 이불 두세 채를 돌릴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 시간과 물과 돈이 조금 더 드는, 그리고 온수를 쓰는, 이불 코스로 돌렸다. 역시 세탁기가 버거워 보였다.

홑이불은 얼마 전에도 빨았으므로 그냥 되가져 가려다 몇 분 후에 맘을 바꾸어 세탁기 한 대를 더 돌렸다. 이번에는 시간과 물과 돈이 조금 덜 더는 쾌속코스를 택했다. 세탁기 세 대가 돌아가는 소음 속에서 『일기』를 마저 읽었다. 어디부터를 여기서 읽었더라,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고 쓴 글이 조금 버거웠다. 어떤 글이었는지를 요약하는 것도, 이렇게 두리뭉술 넘기는 것도 부적절해 보이는 글이었다. (어차피 부적절하다면, 고됨을 핑계 삼아, 문장을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세 대가 동시에 탈수를 한 어느 시점은 아주 시끄러웠다. 그래봐야 기계음일 뿐이므로 큰 중단 없이 독서를 마쳤다.

쾌속코스가 끝나고 얼마 후 이불코스도 끝났다. 25kg급 세탁기의 세탁이 가장 먼저 끝났지만 주인인지 점원인지가 탈수를 ― 아마도 헹굼을, 이라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 ― 한 번 더 돌려달라고 했다며 한 코스를 추가했으므로 최종적으로는 내 것이 먼저 끝났다. 25kg급 건조기에 옮겨 넣고 말리기 시작했다. 『일기시대』를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달포 전에 도입부의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다. 방에서 일어나는 일만 쓴 책인가 했는데 뒤를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15분쯤 지나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세탁물을 맡기면 업소에서 세탁기를 돌려주는 방식으로도 하나보다 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25kg급 세탁기에 든 빨래의 주인이었다. 아직 안 끝났냐고 묻자 (세탁방의) 주인인지 점원인지가 지금 막 끝났다고 답했다. (빨래의) 주인들이 직접 건조기로 옮겨 넣고 동전을 넣은 후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내 것이 돌아가고 있던 건조기를 보며 용량 이야기를 한 모양인지, (세탁방의) 주인인지 점원인지가 나를 가리키며 저 분이 쓰고 계시는데 시간이 좀 남았다고 하는 게 들렸다. 집에서 빨아 와서 건조만 돌리시는 거, 라고 덧붙이는 것도 들렸다. (빨래의) 주인들은 다시 어딘가로 가버렸다.

건조가 6분인가 남았길래 건조기를 열어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꽤 축축했다. 9분을 추가했다. 다시 4분인가가 남은 시점에 또 한 번 확인했다. 축축한 정도는 아니지만 물기가 있었다. 9분을 추가했다. 이때 빨래를 뒤적이다 뜨거운 것이 손에 닿아 무언가 봤더니 지퍼 손잡이였다. 솜이불 둘 다 솜을 꺼낼 수 없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하나는 다만 지퍼가 잘 안 보이는 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여러모로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부질없는 후회를 했다. 몇 번이고 솜이불이란 말을 쓰면서, 이 솜이란 것이 실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이번에는 문을 열지 않고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그냥 두었다. 이미 기운이 다해 반 정도를 읽은 『일기시대』를 덮은 뒤였고 배도 너무 고팠다. 솜이불들 봉투(플라스틱 재질이다)에 넣고 봉투를 트렁크(역시 플라스틱 재질이다)에 넣었다. 가방에 그냥 담아 왔던 나머지는 세탁방에서 500원을 주고 산 봉투(또한 플라스틱 재질이다)에 넣어 가방에 넣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이들의 빨래도 건조가 끝났다. 시간에 맞춰 빨래를 찾으러 온 것은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식당을 향했다. 고기가 들지 않은 메뉴가 있는 곳 중 제일 가깝다, 고 생각한 베트남국수집을 향해 걸으며 고깃집 여럿을 ― 약간은 갈등하며 ― 지나쳤다. 집과는 반대방향이었다. 곧장 집을 향해 갔더라면 분식집에서 무어라도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극심한 허기로 집에서 밥을 해먹겠다는 계획을 엎고 식당을 가는 중이었으므로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실수다. 토할 것 같이 배가 고팠다. 비유가 아니다. 토를 하지는 않으므로 과장일 수는 있겠다. 아무튼 나는, 허기가 심해지면 식도와 목구멍에서 토하기 직전과 똑같은 불쾌감이 느껴진다.

식당에서는 팟타이를 시켰다. 잠시 기다려 음식을 받고는 셀프바에 반찬을 가지러 갔다. 뚜껑 없이 놓여 있는 찬통에 날파리가 빠져 있었다. 주인인지 점원인지에게 알리고 반찬은 뜨지 않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집게로 잠시 휘적거리다 손가락을 넣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찬통도 집게로 휘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찬통을 바꾸는 ― 적어도 부엌으로 들이는, 그러니까, 바꾸는 척이라도 하는 ―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팟타이는 평소보다 맵고 짜고 질겼다. 휴대전화에 눈을 둔 채 보지 않고 먹다가 나뭇가지 같은 게 씹혀서 질겁했는데 평범한 마른하늘고추였다. 결제를 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따져 묻지는 않았다. 다시 가지도 않을 것이다.

친구와 통화를 하며 귀가했다. 집에 와서 꺼내어보니 이불 모퉁이에서 물기가 느껴진다. 이불을 깔고 보일러를 켰다. 원래는 보일러를 켜지 않고 잘 생각이었는데. 그리고는 일기를 쓴다. 썼다, 고 해도 좋겠다. 지금 시각은 오후 여덟 시 삼십삼 분. 샤워를 하고 누울 것이다. 누운 채로 (아마도 시트콤을 보며) 시간을 조금 보낸 후 열 시를 전후해 잠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페인트를 산 것은 화장실 문틀을 칠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이 오늘 저녁의 원래 계획이지만, 내일 아침으로 미루기로 했다.

1 나는 대개 등가방이나 배낭이란 말을 쓰는 것 같다. 백팩이란 말도 안 쓰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등가방이란 말은 잘 안 쓰는 것 같다. 배낭과 백팩은 용례가 갈리는 것 같은데 단순히 세대나 취향의 차이인지 실제로 두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다른지는 (혹은 전과 달라졌는지는) 모른다. 가끔 룩색이나 륙색이라고 쓰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지만 이건 글로만 봤지 입으로 뱉어 본 적은 없는 말이라 잘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