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강사법이 언급되지만 그 문제와는 상관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
시간강사법 개정 문제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한다. 강사 생활을 하다 교수가 되는 루트,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으므로 딱히 당사자로서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여러곳에서의 노동 문제들을 대할 때와 비슷한 거리감이지만, 어쨌거나 대학에 적을 두고 있고 친구들이 당사자인 문제라 조금은 더 자주 생각한다. 구체적인 고민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생각만 한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내가 속한 단체는 대학 강사 노조와 교류하고 있었다. 지역 활동가들과 번갈아 가며 당시 교육위 소속이었던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고, 학내에 대자보를 붙이거나 집회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그 연으로 언론에 글을 싣기도 했고 대학 언론의 인터뷰이가 되기도 했으며, 무려 공중파 TV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다.
아마도 2008년 쯤이었을 텐데, 추적 60분 쯤 되는 시사프로그램에서 관련 이슈를 취재한 적이 있다. 문제에 관심을 갖는 학생 당사자로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한 마디’ 쯤 되는 것을 하는 타이밍이 고비였다. 대학 강의에서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 이를테면 ‘가성비’를 따지는 관점에서 비판하는 멘트를 따 가고 싶어 했다. 소비자 정체성 같은 것을 가져 본 적은 없으므로 나는 끝내 그가 원하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방송에 나오는지는 보지 않았고, 방송이 되긴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는 노조에서 기획한 언론 연재에 글을 쓴 때였는데, 저 프로그램 취재 때와 같은 포지션에서의 글을 청탁 받았다. 낯모르는 기자인지 PD인지가 하는 요구 쯤이야 버티고 거절할 수 있었지만, 노숙 농성장에서 만나는 강사 당사자의 청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교육 환경을 보장 받는 교수 비중이 턱없이 낮으면서도 교육의 질을 운운하며 비싼 등록금을 받아 가는 대학을 비판하는 논조의 글이었다. 요컨대, 많은 돈을 내고도 광고된 대로의 교육을 받지 못한 소비자 학생들이여 싸우자, 뭐 그런 글.
그 글은 여전히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고 아마 종이책으로도 나온 것 같은데 (목차를 보니 내 글로 추정되는 것이 있는데, 인터넷 언론에 실린 제목과는 다르고 필자 이름은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다. 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출판 수 년 후에 알았는데, 어쩌면 책을 받고도 잊은 것일지도 모른다. 후자라면, 책은 버린 것이겠지…) 몇 안 되는 지우고 싶은 역사 중 하나다. (부끄러운 일이야 많지만 이렇게 물증이 공개적으로 남은 것은 흔치 않으므로.) 글의 주장은 물론이거니와 말투조차도 내 것이 아닌 글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길게 적은 것은 아니고, 문득 생각나서 그 글을 찾아 봤다가 발견한 문장이 있어서다. 대학원에서 전공 공부를 계속 하지는 않으리라는 문장. 이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 반 년 후쯤 나는 대학원 입시를 치렀다. 학부와는 다른 전공이므로 어쨌든 전공 공부를 계속 하지 않은 것이 맞기는 한데, 이 시기에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뒀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전업 활동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온전히 버린 시점이긴 했을 텐데, 이 시기의 나는 어떤 탐색을 하고 있었을까.
커리어 관리 없이 살 수 있는 ― 이따금 조교 같은 거나 하며 벌어 먹을 수 있는 ― 시기가 곧 끝날 거라는 생각에 불안에 떨며 진로를 고민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자니 괜히 옛날 생각을 한다.
얼마 전에 메일함 정리하다 보니 책에 실을 자기소개 문구를 보낸 기록이 있었다. 책이 나오는 걸 분명히 알았으나 까맣게 잊은 것. 수령할 주소를 보낸 기록은 없는 것 같은데, 아마도 농성장에 가서 받지 않았을까…